모던 경성과 전후 서울

모던 경성과 전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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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모던 경성과 전후 서울』은 식민지기 경성에서 해방 이후 서울로 이어지는 근대문화가 단순히 일본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폭력성을 이겨내면서 자생적인 문화로 탈바꿈을 위한 실천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적한 결과물이다. 『모던 경성과 전후 서울』이 제시하는 근대문화의 로드맵은 예술작품과 기사문, 르포 등에 나타난 문화의 양상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사적 기능을 축약한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이 활용하는 연구서적으로서의 가치도 중요하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경성/서울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고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혼효하고 있는 서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제시하고자 한다.
『모던 경성과 전후 서울』의 구성은 1장 『모던 경성 태동기, 개화기(~1910년대), 2장 『1920년대-사상과 분열의 시대 “모던 경성” 형성기』, 3장 『1930년대 경성의 “ᄭᅩᆺ” - 여행·소비·모더니즘』, 4장 『해방과 전후 서울』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국권침탈 이후 일본의 도시계획에 의해 대한제국의 수도가 쇠락과 동시에 발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바라보았다. 이에 따르면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멸망함에 따라 수도 한성 역시 식민지 수도 경성으로 격하되어야만 했다.
2장에서는 3·1운동 이후 경성의 변화된 모습을 탐색하였다. 일본의 회유 정책은 조선 내 일용직과 여성 노동자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사상적 계몽운동이 주도되면서 경성의 근대(성)는 더욱 주체적인 면모를 띠게 된다.
3장에서는 30년대 경성의 풍경을 여행·소비·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개발의 명암을 다루었다. 이는 문화의 선도 역할을 맡는 계층의 등장과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방법론을 발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4장에서는 해방공간에서 경성이 서울로 개칭된 후 펼쳐진 정치적, 문화적 변모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경성부가 서울시로 명칭을 변경하고 행정구역을 특별시로 승격시킴으로써 새로운 도시 공간으로 창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식민지의 잔재와 한국전쟁, 도시화 과정에서 상공업과 주거지가 혼재하는 환경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저자

한국문학연구원

한국문학연구원은문학을중심으로교육·언론·경영·문화등의전문인을토대로예술과사회각계의참여를통해문학을올바르게향유할수있는환경과공공교육방안을만들기위해연구해온단체이다.연구원의구성원들은문학단체,학술단체,예술경영아카데미,문화재단등에참여하면서한국문학의질적·양적성장을강구해왔다.일례로일본에서‘한국현대시인시리즈’의첫번째시집으로『시간의동공』(思潮社)을출간한경험을바탕으로한국시가국내뿐만아니라해외에서올바르게향유되기위해노력했다.소설분야에서도김영하,신경숙,한강,편혜영등의소설을비롯한국내도서1,000여종을해외에수출하고맨부커상을수상하는데기여하는등한국문학이국내외에서활발하게향유될수있는방법에대해고민해왔다.
이같은성과를바탕으로한국문학이가지는전통성,지역문화,고유언어등에대한지속가능한교육을통해한국문학사전체에대한올바른모델을연구하고있다.

목차

일러두기
총론

1장.모던경성태동기,개화기(~1910년대)

해설

01(시)최남선,「漢陽歌一節」
『소년』,1908.12.

02(소설)전영택,「惠善의死」
『창조』,1919.2.

03(광고)「부인다옥」
≪매일신보≫,1911.6.7

04(기사)「動物園完了」
≪황성신문≫,1909.3.21.

05(기사)「공진회와기ᄉᆡᆼ:광교기ᄉᆡᆼ,다동기ᄉᆡᆼ,시곡기ᄉᆡᆼ,연예관」
≪매일신보≫,1915.9.10.

06(사진)「긴담ᄇᆡ피문사ᄅᆞᆷ」
≪매일신보≫,1913.9.23.

07(기사)「好適ᄒᆞᆫ水泳塲」
≪매일신보≫,1915.7.16.

08(기사)「厥技極巧,고등녀학교뎐람회ᄂᆞᆫ젼에업던대셩황으로
ᄂᆡ외국안이모다칭찬」
≪매일신보≫,1914.11.9.

09(사진)「시구의ᄀᆡ졍으로인ᄒᆞ야엽흐로이샤ᄒᆞ랴ᄂᆞᆫ죵로인뎡달린보신각」
≪매일신보≫,1915.6.15.

10(사진)「『京釜線漢江橋梁竣工紀念寫眞帖』(1914)앞표지」
서울역사박물관,1914.

11(사진)「요사이의문밧경치동대문밧」
≪매일신보≫,1916.9.6.

12(사진)「서울전경(환구단)(1910)」
서울역사박물관,1910.

13(사진)「京城寫眞館(『京城繁昌記』,博文社,1915)」
서울역사박물관,1915.

2장.사상과분열의시대,모던경성형성기(1920년대)

해설

01(시)박팔양,「南大門」
『동광』,1927.1.

02(시)임화,「네거리의順伊」
『조선지광』,1929.1.
『현해탄』,1936.

03(기사)「라혜석,김우영공개청첩장」
≪동아일보≫,1920.4.10.

04(기사)「歡迎밧는朝鮮人電話交換手」
≪동아일보≫,1920.4.12.

05(기사)「京城市民大運動會」
≪동아일보≫,1920.5.3.

06(기사)「여자학교의원조리화학당창립삼십오주년긔념식」
≪동아일보≫,1920.5.30.

07(기사)「ᄉᆡ로되ᄂᆞᆫᄲᅡᆯ내터」
≪매일신보≫,1924.4.3.

08(기사)「백남『푸로덕숀』의처녀작『심청』조선극장에상연즁」
≪조선일보≫,1925.4.1.

09(기사)「한강漢江의스케트대회大會」
≪시대일보≫,1926.1.18.

10(기사)「羅蕙錫女史世界漫遊二十二日京城驛出發」
≪조선일보≫,1927.6.21.

11(기사)「崔承喜壤의舞踊을보고」
≪동아일보≫,1927.10.28.

12(사진)「광화문전화분국」(1922)
『조선』,조선총독부,1925.

13(만평)안석주,「가상소견1-5」
≪조선일보≫,1928.2.5~13.

14(품평·논평)최학송,「모-던껄,모-던뽀이대논평」
『별건곤』,1927.12.20.

15(품평·논평)정수일,「진고개,서울맛·서울情調」
『별건곤』,1929.9.27.

16(잡문)城西學人,「서울의녀름」
『개벽』,1923.8.1.

17(기타)홍사용,「백조시대(白潮時代)에남긴여화(餘話)」
『조광』제2권9호,1936.9.

3장.모더니즘의꽃-여행소비모더니즘(1930년대)

해설

01(시)오장환,「수부(首府)」
『낭만』,1936.

02(시)이용악,「다방」
《조선중앙일보》,1936.1.17.

03(소설)이상,「날개」
『조광』,1936.

04(수필)김남천,「街路」
《조선일보》,1938.5.10.

05(수필)백석,「마포」
『조광』,1935.11.

06(수필)이서구,「애인다리고갈사랑의〈하이킹코스〉」
『삼천리』,1936.

07(수필)이헌구「文人이본서울-ᄭᅩᆺ업는서울」
《조선일보》1928.10.12.

08(수필)최정희,「다방거리의피난처」
《조선일보》,1933.10.6.

09(수필)박길룡,「大京城삘딩建築評」
『삼천리』,1935.10.1.

10(수필)「서울株式界成功者,사변난이후누구누구가수낫든고」
『삼천리』,1937.10.1.

11(수필)「환락의서울,新裝한사교장白馬를차저!」
『삼천리』,1937.5.1.

12(기사)「부민관준공(府民館竣工)」
《동아일보》,1935.12.8.

13(사진)「대경성안내지도」
1932.6.5.

14(품평·논평)「서울에딴스홀을許하라」
『삼천리』,1927.1.1.

15(품평·논평)이서구,「實査1年間大京城暗黑街從軍記,카페·마작·연극·밤에피는꼿」
『별건곤』,1932.1.1.

16(품평·논평)「가을거리의男女風景」
『별건곤』,1930.11.1.

4장.해방과전후서울

해설

01(시)오장환,「병든서울」
『병든서울』,정음사,1946.

02(시)이용악,「우리의거리」
『이용악집』,동지사,1949.

03(시)이육사,「서울」
『문장』,1941.4.

04(수필)윤동주,「종시(終始)」
미발표작,1941.

05(수필)박인환,「서울역에서남대문까지」
『신태양』,1952.11.

06(수필)노천명,「서울체류기」
『나의생활백서』,대조사,1954.

07(수필)조병화,「明洞시절」
『한국문단이면사』,깊은샘,1983.

08(기사)「창경원동식물원부활,창덕궁국립박물관도수리착수」
《자유신문》,1947.9.25.

09(기사)「쓰는것과呼稱을統一二重式서울市名의矛盾업세라」
《자유신문》,1945.11.18.

10(기사)「씩씩한新建設의巨步②서울市의神經中樞」
《조선일보》,1945.11.24.

11(기사)「活氣를띈百貨店의賣場」
《조선일보》,1945.12.1.

12(기사)「“特別自由市”로“昇格하는東洋屈指의“國都서울”」
《동아일보》,1946.11.21.

13(기사)「朝鮮文學家同盟서울支部結成準備」
《현대일보》,1946.8.4.

14(기사)「흥성대는양키시장」
《동아일보》,1955.5.16.

15(기사)「서울시의지역별전쟁피해현황」
《동아일보》,1951.3.16.

16(기사)「전쟁이면의사회상」
《경향신문》,1952.5.27.

17(기사)「서울의축소판명동의하루」
《동아일보》,1957.11.25.

18(기사)「새로운여름철의상」
《조선일보》,1957.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