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건널수는 없더라도

우주를 건널수는 없더라도

$17.00
Description
자동차로 떠난 35,000km 유라시아 대륙 횡단 - 동해항부터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세상 끝까지 도망치면 머무르는 법도 알게 될 거야”
누구나 ‘현대병’을 앓는 시기가 있다. 쏟아지는 말과 평가, 희미해진 삶의 목표와 망가진 관계로 겪는 괴로움은 슬프게도 보편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능한 한 멀리 도망쳐보기로 했다. 우주를 건널 수는 없겠지만, 하다못해 세상의 끝까지라도. 자동차에 텐트와 밥솥을 싣고 여객선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저자는 그렇게 7개월간 35,000km를 혼자 운전해 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갈 호카곶에 닿았다.

『우주를 건널 수는 없더라도』는 정주민의 삶에서 탈락해 스스로 유목을 선택한 한 인간의 이야기다. 핀란드에서 발견한 자신만의 숲과 호수에서 저자는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유한다. 육지로 끝없이 철썩이는 파도를 보며 바다의 외로움을 생각하고, 녹아내리는 빙하를 보며 엄마의 오래된 꿈을 떠올리는 저자의 다정함은 독자의 마음을 따사로이 물들인다. 아무도 없는 도로를 묵묵히 횡단하는 가운데 시나브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가는 저자의 여정은 마치 순례자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감동을 준다.

저자는 대륙의 끝에 서서 생각한다. 도망치는 것도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또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는 돌아가기로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머무르는 것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세상 끝까지 도망쳐본 저자의 이야기는 도망치고 싶고, 또 머무르고 싶은 우리에게 독보적인 선물이 될 것이다.

*총 여행일수: 207일
*총 주행거리: 34,888km
*여행 국가: 러시아 등 22개국
*여행 루트: 동해항 → 러시아 → 핀란드 → 노르웨이 → 스웨덴 → 덴마크 → 독일 → 폴란드 → 리투아니아 → 헝가리 → 크로아티아 → 몬테네그로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세르비아 → 불가리아 → 그리스 → 터키 → 이탈리아 → 프랑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이스라엘 → 이집트 → 한국

저자

유운

저자:유운
4년차사회부기자.1994년여름서울하계동에서태어났다.낡은아파트와적갈색빌라를누비며어린시절을보냈다.낙관과불안의늪을헤매다4년제대학을9년간다녔다.삶을새로칠하고싶은마음에여행을다녀왔고,글쓰는것이좋아서훌쩍기자가됐다.사람과사건사이를헤집으며또다른유목을꿈꾸고있다.

목차

프롤로그
“죽으러가는거야?”

1부시베리아를횡단하다
긴여행을떠나기에앞서
여행의시작은새우잡이
몰라봐주셔서고맙습니다
앞으로769km직진입니다
마피아출신히치하이커를만나다
안녕,알렉산드리치
끝이없는호수에서캠핑
엄마와함께돌아온바이칼에는폭풍우가쳤다
흐린날도축복이기를
뜻밖의홍수로이르쿠츠크에갇히다
시베리아의하늘은매일다른색깔
시간을여행하는일
펑크난자동차를끌고모스크바로
모스크바와다국적연애편지

2부달과별과오로라,북유럽
자동차로국경을넘다
저기,나오늘하루만더.있을게
산타를만나다
이나리호수의작은숲
유럽의북쪽끝,노르카프에닿다
젖은텐트안에서
녹아내리는빙하의시간
배고파서더는못걷겠어
불법체류자가될수는없으니까

3부구라파의사람들
죽인자들의도시에서
너무화창한날의아우슈비츠
천공의성을찾아서
아름다운것은사람
두브로브니크의사진사
점심값은두고가라고
무덤의언덕스레브레니차
깎여나간것들의뒤편에서
못난이신은어디갔을까
당신을만나러여기까지왔어

4부터키로도망치다
식사는잡쉈어?
동굴에사는사람
태양이너무밝아서
신전에서쫓겨난신에관해

5부자동차는다시서쪽으로
여행과관광은동의어가아니다
망각뒤에홀로이
괜찮지않아도괜찮은
기워지고기울어진도시에서
마드리드질주극
낯설고낡은나의방
한해의끝,여행의끝

에필로그
바다에서보내는편지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곳곳에담아뒀던여행의조각들을천천히꺼내어당신께건넨다.특별한이야기는아니다.그저과거의고통과미래의불안에힘겨워하던한사람이,많은것을유예하고훌쩍떠났던유랑의기록이다.내가어떻게도망쳤는지에대한이야기다.이진부한'도망기'가도움이된다면좋겠다.언제든도망칠수도,돌아올수도있다는사실은우리를도망없이도살게하니까.
---p.15

나는정말로별의노랫소리가존재할지도모른다고상상한다.먼과거부터이어진문명의소음에우리의귀가덮여이제는들을수없게퇴화한것이아닐까생각한다.그런상상을할때면설렘과슬픔을동시에느낀다.잃었으나잃은사실조차도알수없는것들이얼마나많을지를생각하곤한다.방향과지형만으로길을찾아내는능력,평범하지만낯선것을보고즐거워하는마음,언어없이도진심을전할수있는방법같은것들.알렉산드리치를보며나는때로내가무엇을잃어버렸는지알아채기도했다.
---p.58

때로내면의소란이잠재워지지않는날이면차를몰고아무숲이나찾아들어가캠핑을했다.평온한가운데머리위로는별이,발치에는모닥불이반짝이는곳.하루를머무르면서도숲의이름은알지못했다.그저어느도로와어느도로가마주치는곳근처라고말할수있는,지구의가로선과세로선으로만위치를찾을수있는곳.이름난관광지보다그런곳들을나는더사랑했다.고요와무명의축복이그곳에있었다.
---p.89

우리말에는자동차로국경을넘어여행하는사람들을지칭하는표현이없다.그럴일이없기때문이다.반면영어에는'오버랜더(overlander)'라는표현이있는데,직역하자면'땅을넘는사람들'이라는뜻이다.그러나나는그것이우주를건너는일에가깝다고말하고싶다.편리하게한가운데떨어지는대신행성의열기를온몸으로느끼며진입하는일.다른것이품은중력에영향받으며그에게로건너가는추락.이렇게보면좋은여행은좋은사랑과닮았다.
---p.119

햇살은나무와나뭇잎,흙,호수나물웅덩이에각기다른색을부여한다.자작나무는한낮의흰색도됐다가힘찬새벽의짙은파란색도됐다가노을지는붉은색,어스름의연보라가되기도한다.물의색깔도날씨와시간에따라다르다.자연의색깔은하나로고정되지않고어떤햇살을받느냐에따라달라진다.사람도그런걸까,나도이런햇살아래라면더싱그러운사람으로살수있을까.호수에얼굴을비추며나는지금어떤색인지,과거와는다른색인지헤아려보기도했다.
---p.124

노르카프지구본의두철골이겹치도록바다쪽으로서면그앞에는북극이있다고한다.끝없는북극해를멍하니응시했다.보이지않지만언젠가닿을수는있을것이라고생각하다가도아마그럴수없으리라낙담하기도했다.그렇더라도닿을수없는곳에닿으려는마음을사탕처럼입안에서굴리는것은늘그렇듯효험이있었다.그날나의마음은바다를,그끝의얼어붙은신기루를향해있었고바다는내가디딘육지로계속해서철썩이고있었다.
---p.142

마운틴가드는축처진나를깨우려는듯아무일도아니라고연신강조해말했다.따스하고낯선이사람은힘들때꺼내먹을수있는달콤한것이항상주머니에있어야한다며초콜릿과사탕을한움큼쥐여주고는또다른오두막으로떠났다.그가준초콜릿을나는여행을끝마칠때까지하나씩아껴가며먹었다.입에넣고온기를더하면그날의어둠이,추위가,굶주림이슬며시다가왔다가사르르녹아없어지는것같았다.앞으로내게다가올것들도그렇게녹여없앨수있을것같았다.
---p.167

그런데도나는온종일즐거웠다.카잔차키스를만나기에환상적인날씨가아니냐며박물관직원과농담을주고받았다.소설속조르바와주인공'나'가처음만나는항구의날씨도딱이렇게모든것을적셨다.소설의정취를느끼러왔다면최고의날씨인셈이다.그들이전재산을쏟은사업이깡그리망한날저녁,둘은통쾌하게웃으며바닷가에서춤을춘다.'나'는그때비로소스스로가살아있다고느낀다.그마음의한조각이라도얻을수있다면,나도'나'가되어볼수있다면.고작일정몇개어그러진게문제일리가없었다.
---p.244

괴레메에는동굴을개조한비싼호텔이많다.돈을들이면동굴에도별을달수있는것인지,성급을자랑하는호텔들은화려한빛과음악을늦은시간까지발산한다.그사이사이움푹파인구석마다빛도바람도들지않는어둑한동굴이,진짜동굴집에사는사람들이있었다.관광산업이소외당하는이들의양식을비싼값에파는동안그들의삶은점점비싸지기만할뿐나아지지않았다고한다면원망이지나친것일까.
---p.260

매일머무르는곳이바뀌니공간에익숙해질틈이없다.대신주변의낯섦에,그익숙하지않음자체에익숙해지고있다.유목민은공간을길들이기보다공간을넘나드는스스로를길들인다.그렇게정주민이세계안에담길때,유목민은자기안에세계를담는다.그래서나는유목을꿈꿨나보다.그것은틀안에담기는것이두려웠던나약함,공기를철창처럼느꼈던비루한상상에기인한것이지만덕분에내숨에는자유와용기가스몄다.
---p.316

느릿느릿저물던해는결국바닷속으로가라앉았다.이제는밤이일어서고있었다.타오르던한낮을삼키고출렁이는불안을디딘밤이깊은물속으로부터몸을일으켜세우고있었다.밤은걸어갈것이다.이제는작고어두운것들의시간이었다.한낮의찬란함에가려빛나지못하던것들도포근한이밤아래서는괜찮을것이다.미흡하고위태로운것들도저마다의색깔을가질것이다.그러니까괜찮지않았던것들도,앞으로는다괜찮을것이다.
---p.322

너는우울한사람이라는말을,먼과거타인으로부터듣고오랫동안시달렸다.그때는전부부인했으나지금은반쯤은동의한다.나는그저우울과슬픔을잘조영하는사람이되고싶을뿐이다.두려움과나약함을숨기지않는것도선함의한종류일수있다고믿을뿐이다.고통도불편도없는문학이유행하는요즘,그런믿음을붙잡고나신같은감정들을당신께꺼냈다.당신은몰랐거나알고도지나갔을것같다.이이야기를읽은뒤당신이지을표정이조금두려우나앞으로도우리는함께였으면좋겠다.고요한바다에숨어깊은숨을나눌수있으면좋겠다.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