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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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은 32명이 사형 3명, 무기징역 4명과 징역 총 119년형을 받았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다른 사건에서 실패한 수사관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꾸며낸 작품이었다.
울릉도 사건은 조작간첩 백화점이다. 한국전쟁 중에 월북 내지 납북되었던 사람이 1960년대에 친인척을 만나러 와서 조작된 간첩 사건, 일본에 이주한 친인척 또는 지인이 조총련과 연관이 있다고 하여 간첩으로 조작된 재일동포 간첩 사건, 1960년대 외화 수입을 위해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북한에 납치된 후 돌아온 납북귀환어부 간첩 사건, 북한에 있는 친인척 등을 만나려고 정부 몰래 입북했다가 돌아와서 조작된 간첩 사건, 이들의 가족들이 모두 간첩이 되어버린 간첩 사건, 이 모든 것이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에 녹아들어 갔다.
공안기관은 연관 없는 사람들을 엮어서 이 사건을 커다란 덩치로 불렸다. 울릉도에 살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 전라북도에서 군마다 1명씩 뽑아 보내준 일본 농업연수(실제로는 노동력 공급)를 하고 귀국 후 감옥으로 가게 된 사람들, 성공한 재일동포 사업가가 고국에서 사업을 확대한 일과 관련된 가족들, 일본에 가서 받은 금전적인 도움이 올무가 되어 간첩 누명을 쓴 전라북도 사람들, 일본을 통해 몰래 입북해서 사람을 만났다가 귀국하여 간첩이 된 사람들이 모두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에 있다.
저자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사회과교육과교수.한국근현대사전공.

목차

서문:다시,울릉도사건을떠올리며

제1장독재정치대민주화운동,그리고공안통치의시대
1.민주화열기를잠재운공안통치의병기,간첩조작사건
2.장기집권시도속에자행된간첩조작사건
3.유신독재체제의수립과민주화운동,그리고간첩조작사건
4.영구집권의길을둘러싼독재정치대민주화운동,그리고울릉도사건

제2장하나가된두개의사건:수사와재판과정
1.체포와구속수사
2.중정의사건발표
3.재판과정과판결

제3장중앙정보부와차철권
1.한국현대사와중앙정보부
2.중정의창설과정
3.중정의조직체계와활동
4.간첩단조작사건의배경,유신과이후락의실각
5.간첩단조작사건의설계자,차철권
6.‘증거의왕’,고문과허위자백

제4장울릉도사람들
1.섬으로서의울릉도
2.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속울릉도사람들

제5장울릉도간첩단사건에연루된전라북도사람들
1.재일교포이좌영과전라북도사람들
2.일본에서사업가로성공한이좌영에게의지한가족과마을사람들
3.간첩조작올가미에걸린일본농업연수생들
4.동향출신재일교포사업가에게도움을받은지식인들
5.무너진삶을딛고감옥에서벌인봉사활동

제6장이좌영과재일한국인정치범구원운동
1.일본에건너가사업가로서성공하다
2.울릉도간첩단사건에서주모자로몰리다
3.재일한국인정치범문제를일본사회에‘고발’하다
4.한국과일본,세계를무대로재일한국인정치범구원운동을벌이다
5.재일한국인정치범구원운동은아직도냉전에갇혀있다
6.조국을사랑한죄,재일한국인정치범

제7장간첩조작사건이후‘간첩’의삶
1.사회적낙인과체념,또다른형벌
2.보호관찰,감옥의연장선
3.연좌제,가족공통의고통
4.고향의변화,푸근함과냉정함사이

제8장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재심권고와사법부의재심재판
1.머나먼길의종착점,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재심권고
2.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조사
3.재심개시와간첩죄무죄판결
4.재심의아이러니,간첩이아님을스스로증명하라

출판사 서평

유신이후민주화열기를잠재우기위한공안통치의병기,
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

1974년3월15일중앙정보부장신직수는기자회견을열고‘울릉도거점간첩단’47명을검거했다고발표했다.이자리에서그는“북괴가남한적화혁명을목적으로그들의공작원을직접남파시키거나일본을통해우회침투시켜…소위인민민주주의대남혁명전략에입각하여현정부전복을획책해온대표적인간첩단사건”이라고규정했다.
1973년8월김대중납치사건과같은해10월최종길교수고문치사사건으로인해중앙정보부에대한여론은악화일로로치닫고있었다.또한북한은‘남조선혁명론’에따라1960년대까지는공작원을활발하게남파했지만1970년대들어그빈도가확연히줄었다.1960년대를거치며비대해진박정희정권의대공·방첩기구는거대한조직을계속유지해야하는지의심받고있었다.중정의입장에서는상황을반전시키기위한‘큰것한방’이필요한시점이었다.이때문에중정은내사상태를유지하고있던이런저런수사건들을하나의간첩단사건으로확대·조작할유혹을강하게느끼고있었고,그것을실행에옮긴결과가바로‘울릉도거점간첩단’사건이라고할수있다.
이책《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은‘울릉도거점간첩단’조작사건의배경에서부터전개와실상,이후피해자들의삶과,재심으로무죄판결을받기까지의과정을일목요연하고깊이있게파헤친다.

거대한조작간첩백화점,울릉도사건

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은32명이사형3명,무기징역4명과징역총119년형을받았던사건이다.울릉도사건은조작간첩백화점이다.한국전쟁중에월북내지납북되었던사람이1960년대에친인척을만나러와서조작된간첩사건,일본에이주한친인척또는지인이조총련과연관이있다고하여간첩으로조작된재일동포간첩사건,1960년대외화수입을위해고기를잡으러바다에나갔다가북한에납치된후돌아온납북귀환어부간첩사건,북한에있는친인척등을만나려고정부몰래입북했다가돌아와서조작된간첩사건,이들의가족들이모두간첩이되어버린간첩사건,이모든것이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에녹아들어갔다.
공안기관은연관없는사람들을엮어서이사건을커다란덩치로불렸다.울릉도에살고있다가날벼락을맞은사람들,전라북도에서군마다1명씩뽑아보내준일본농업연수(실제로는노동력공급)를하고귀국후감옥으로가게된사람들,성공한재일동포사업가가고국에서사업을확대한일과관련된가족들,일본에가서받은금전적인도움이올무가되어간첩누명을쓴전라북도사람들,일본을통해몰래입북해서사람을만났다가귀국하여간첩이된사람들이모두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에있다.


재심의아이러니,간첩이아님을스스로증명하라

2014년12월,피해자중한사람인이성희가마침내무죄선고를받았다.그나마재심을청구한지4년간각고의노력끝에받아낸결과였다.간첩이라는올가미를씌운사법부는스스로나서그올가미를풀어주지않고피해당사자들이재심을청구해야만‘간첩이아니었음’을선고했다.30명이넘는피해자들은직접여덟차례에걸쳐재심을신청했고무죄판결을받아냈다.이성희에게진실화해위원회의존재를알려준것은정부도사법부도아니었다.동백림사건으로고초를겪은최창진이었다.이성희는그이야기를들은후얼마지나텔레비전에서진실화해위원회에사건을접수하라는안내를보고신청을했다고한다.그렇게세월이속절없이흐르는동안재심이시작되었지만자신이간첩이아니라는무죄선고를보지못한채죽음을맞은피해자도생겨났다.
국가폭력의가해자인정부는피해자로하여금스스로재심을청구하도록하는아이러니를해결할수있는조치를하지않았다.국가폭력에의해잃어버린고통의세월에대한보상유무도사법부에내맡겼다.
사법부의시계는가슴떨리며기다리는피해자들의고통의시간을헤아리지않았다.피해자들은무너진삶의무게를짊어진채진실화해위원회에서참담한과거의일을떠올리며진술하고법정에불려다니며자신을구렁텅이로밀어넣었던검찰의변명을들어야했다.간첩누명을벗은후에는다시민사소송을위해법원을들락거려야했다.국가가저지른폭력의역사를청산하려면국가가나서서진실을규명하고가해자를처벌하고피해자에게사과와배·보상을해야한다.이러한과거사청산의정상적절차를무시하고간첩조작사건의피해자들에게스스로자신의누명을벗기위해나서도록만든권력에게서민주주의껍질속깊이뿌리내린반공의그림자를발견하게된다.

*재단법인들꽃은조작간첩사건피해자들이받은보상금의일부를종잣돈으로설립한재단이다.재단의설립을위해고문ㆍ조작의피해당사자들과인권사회실현을위해함께해온각계인사들이마음을모았다.재단법인들꽃과도서출판책과함께는《간첩시대》와《삼척간첩단조작사건》,《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등조작간첩역사를정리한책들을비롯해한국현대사속에숨은부조리를파헤치는‘들꽃역사총서’를꾸준히출간할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