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16.80
Description
부동산 ‘영끌’, 코인투자, 재난지원금, AI,
중고거래, 실직, 가난, 부를 향한 욕망…
재난과도 같은 일상, 충돌하는 욕망들!
욕망하는 군상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자신의 이야기!
JTBC 인기 드라마 〈허쉬〉의 원작 『침묵주의보』를 비롯해 꾸준히 장편소설을 발표해온 정진영 작가가 데뷔 13년만에 첫 소설집을 출간했다.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는 표제작을 비롯해 12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답게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모았다. 부동산 ‘영끌’, 코인 투자, 재난지원금, 인공지능(AI), 중고거래, 실직, 학폭-왕따 문제, 지역통폐합, 부를 향한 욕망 등의 소재를 직설적으로 다루면서도 서사적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라, 읽다 보면 바로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자신의 초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경제적 성취가 모든 것을 대변하다시피 하는 우리 시대의 삶의 조건은 그야말로 ‘괴로운 밤’과 다를 것이 없다. 무수한 욕망들이 충돌하는 재난 같은 일상을, 우리는 그저 춤을 추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수록된 소설 한 편 한 편을 읽다 보면, 우리 삶의 고단함과 그 속에서 욕망에 허덕이는 군상의 민낯들을 마주하게 되고, 또 그럼에도 그런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서의 상호이해와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는 지금 겪고 있을지 모르고, 또 우리 주변에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상황들이 문학적이고 감각적인 이야기로 재구성되어 공감과 연민과 분노와 슬픔을 자아낸다. 한 편을 읽기 시작하면, 제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지만 결국 우리 시대의 초상으로 연결되는 열두 편의 소설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흡인력이 강하다.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거리 두기나 재난지원금 문제, 요동치는 부동산 시세와 같은 동시대적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는 동시에, 고전 설화를 비롯한 다분야의 정보를 차용해 이야기의 결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서 작가의 필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수록된 작품들의 여운이 긴 이유이기도 하다.

이름이 똑같은 대학 동기와 연인이 되었으나 경제적 무능 때문에 버림받은 남자가 그녀의 죽음을 통보받고 찾아간 장례식에서 고단하고 씁쓸한 삶의 조건을 되새기는 표제작(「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에서는 ‘만파식적’과 ‘처용가’라는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어머니의 선물을 사려 하는 실직자의 고달픔(「선물」), 학폭·왕따의 굴레와 법 제도 및 적용의 모순(「네버 엔딩 스토리」), 부동산에 대한 욕망과 가상화폐 투자 끝에 다다른 씁쓸한 현실(「숨바꼭질」), 전염병과 전쟁에 대한 우화(「눈먼 자들의 우주」), 유력 정치인의 부동산 정책 관련 발언 문제로 대동단결해 시위에 나섰지만 서서히 분열하며 드러나는 저마다의 욕망(「동상이몽」), 콜센터 안내원의 취약한 근로조건(「안부」), 자기 욕망 때문에 기꺼이 서로를 질시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일상의 모습(「동호회」) 등 지금 우리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직접적이고 절박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우리가 주인공과 같은 곤경에 처한 것처럼 숨이 가빠오기도 한다.
그런 처절하고 너절한 현실 속에도 희망은 있다. 중고거래 사기를 당했지만, 같은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과 교감을 나누며 살아갈 힘을 찾는 이야기(「징검다리」), 사고 후 인공지능이 되어버린 존재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희생과 사랑(「시간을 되돌리면」), 단군 설화를 차용해 그려낸, 세월에 바래지 않고 단단한 닻이 되어주는 사랑의 가치(「사랑의 유통기한」), 고단하고 힘든 삶 속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첫사랑」)을 담은 작품에서 우리는 괴로운 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춤을 추는 것밖에 없는 삶의 조건 속에서 길어 올리는 작은 희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 감동이 만만치 않다.
지금 우리 시대와 삶의 조건을 가장 적확하게 다룬 단편들을 고르라면 바로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저마다의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욕망의 민낯을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과 배려를 통해 작은 징검다리 하나를 놓는 일도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고,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는 담담히 일러준다.

저자

정진영

저자:정진영

장편소설『도화촌기행』『침묵주의보』『젠가』『다시,밸런타인데이』『나보다어렸던엄마에게』『정치인』,산문집『안주잡설』『소설은실패를먹고자란다』를썼다.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백호임제문학상을받았다.『침묵주의보』가JTBC드라마<허쉬>,『나보다어렸던엄마에게』가KBS라디오드라마로만들어졌다.월급사실주의동인.

목차

괴로운밤,우린춤을추네
선물
징검다리
네버엔딩스토리
숨바꼭질
시간을되돌리면
눈먼자들의우주
사랑의유통기한
동상이몽
안부
동호회
첫사랑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이름이똑같은대학동기와연인이되었으나경제적무능때문에버림받은남자가그녀의죽음을통보받고찾아간장례식에서고단하고씁쓸한삶의조건을되새기는표제작(「괴로운밤,우린춤을추네」)에서는‘만파식적’과‘처용가’라는고전을현대적으로재해석한다.코로나재난지원금으로어머니의선물을사려하는실직자의고달픔(「선물」),학폭·왕따의굴레와법제도및적용의모순(「네버엔딩스토리」),부동산에대한욕망과가상화폐투자끝에다다른씁쓸한현실(「숨바꼭질」),전염병과전쟁에대한우화(「눈먼자들의우주」),유력정치인의부동산정책관련발언문제로대동단결해시위에나섰지만서서히분열하며드러나는저마다의욕망(「동상이몽」),콜센터안내원의취약한근로조건(「안부」),자기욕망때문에기꺼이서로를질시하고진실을호도하는일상의모습(「동호회」)등지금우리시대를단적으로보여주는이야기들이가득하다.직접적이고절박한묘사를따라가다보면,마치우리가주인공과같은곤경에처한것처럼숨이가빠오기도한다.

그런처절하고너절한현실속에도희망은있다.중고거래사기를당했지만,같은사이트에서만난사람과교감을나누며살아갈힘을찾는이야기(「징검다리」),사고후인공지능이되어버린존재의인간성을지키기위해선택한희생과사랑(「시간을되돌리면」),단군설화를차용해그려낸,세월에바래지않고단단한닻이되어주는사랑의가치(「사랑의유통기한」),고단하고힘든삶속에서위로가되어주는첫사랑에대한아련한기억(「첫사랑」)을담은작품에서우리는괴로운밤,할수있는것이라곤춤을추는것밖에없는삶의조건속에서길어올리는작은희망을마주하게된다.그감동이만만치않다.
지금우리시대와삶의조건을가장적확하게다룬단편들을고르라면바로이소설집에수록된작품들이다.저마다의욕망을부추기는세상속에서우리는그장단에맞춰춤을추는것외에달리할수있는일이없을지도모르지만,우리욕망의민낯을직시하고,그것을뛰어넘는사랑과배려를통해작은징검다리하나를놓는일도어쩌면가능한일일지모른다고,『괴로운밤,우린춤을추네』는담담히일러준다.

책속에서

“지수가죽었다.”
---「첫문장」중에서

삼년만의재회다.나는향을사르며영정사진속지수의얼굴을바라봤다.지수는가늘게미소짓고있었다.지수의입술사이로치아가살짝보였다.지수가그토록싫어했던덧니는결혼후교정한듯가지런히정리돼있었다.치아교정의영향으로미묘하게달라진지수의턱선을눈으로훑으며,나는지수가이미오래전에나를떠난여자임을실감했다.나는상주의자격으로서있는지수의남편과맞절하고,그에게의례적인위로의말을건네며일어섰다.그런데그가뜻밖의말로나를놓아주지않았다.
“당신을압니다.”
---「괴로운밤,우린춤을추네」중에서

나는스무살이된딸과마주앉아삼겹살에소주를마시는모습을잠시상상해봤다.그자리에서딸은내게무엇을질문할까.나는딸에게무슨답을해줄수있을까.무슨질문이든간에딸에겐주저하지말고행복을선택해야한다는답을해줘야겠다고다짐했다.네가어디서무엇을하든항상널믿고응원한다고.주눅들지말고네가가고싶은길을가라고.가장중요한순간은언제나지금이라고.내가너의징검다리가돼주겠다고.
---「징검다리」중에서

“나도지금까지너뒤치다꺼리하다보니반은법조인이야.형사끝나면다끝날것같아?민사로가겠지.너때문에입은손해를다배상하라면서말이야.형사와민사가별개의소송이란건너도잘알지?뉴스를찾아보니까그놈이찍은광고가다내려갔다더라.그게끝일까?광고주에게위약금을물어줘야할거야.위약금은보통출연료의두세배라더라.과연그놈이가만히있을까?만약민사에서지면그거다네가뒤집어써야해.내가그놈이라면너를포함해자기한테악플을단모든사람을고소해서합의금을뜯어낼거야.내지않고버티다보면신용불량자로등록되고계좌도압류될거야.경찰은너잡겠다고전국에수배령을내릴테고.그러면이땅에서사람구실을전혀할수없게되겠지.삼면이바다인데어디로도망갈래?그러다가마지막에한강물온도재는거야.그런미래,감당할수있겠어?”
---「네버엔딩스토리」중에서

나는나와비슷한또래인B가이런아파트를신혼집으로살수있다는게믿기지않았다.B는내놀란얼굴을보고손사래를쳤다.
“안방과화장실만우리거고나머지는은행거예요.부모님도움도좀받았고요.”
“얼마에사셨어요?”
B는머리를긁적이며대답을피했다.
“뭘또그런걸물어보세요.쑥스럽게.인터넷뒤지면다나와요.그리고여기는근처에있는다른아파트단지보다학군이별로여서저렴한편이에요.”
저렴한편이라고?도대체어느정도가저렴한편인지감이잡히지않았다.나는B가안줏거리를준비하러주방으로간사이에휴대전화로이집의시세를검색해봤다.이집과같은평형매물의최근실거래가중최저가는4억8,500만원이었다.B의신혼집은내가연봉을한푼도쓰지않고십년가까이모아야겨우살수있는집이었다.
---「숨바꼭질」중에서

“제안을받아들이신거죠?”
“뭐가뭔지모르겠습니다.고작한시간도흐르지않은사이에제게벌어진일이너무버라이어티해서.제흔적을세상에서완전히지우는일이이렇게빨리결정할일인가요?”
“287번째범우씨에게는잠깐일지몰라도,저와저를스쳐간286명의범우씨는오늘이순간을위해긴시간을기다리며준비했어요.”
“제가제안을받아들이지않겠다면요?”
경선이연필꽂이에서문구용커터를위협하듯꺼내보였다.
“이미수도없이죽였는데한번을더못죽일까.저는범우씨가전장에서살인귀가되는모습은차마못보겠어요.그전에제가죽여드릴게요.확실하게.”
---「시간을되돌리면」중에서

그랬던태산신도시가개발마무리단계에접어들자두배넘게시세가뛰어올라명품신도시라는별명을얻었다.고양의일산,성남의분당과판교,수원과용인의광교,화성의동탄처럼태산이라는동이름도브랜드가됐다.태산신도시입주민은자신을고진사람이아닌태산사람이라고칭했다.다른동주민은이를고깝게바라보면서도태산신도시개발의프리미엄이자기가사는동네에도미치기를바랐다.이같은변화에김인형이태산동을바라보는감정도복잡해졌다.
---「동상이몽」중에서

민원인과통화하는동안에도나는경희언니에게서시선을거둘수없었다.쓰러진동료직원을바로옆에두고도일을멈출수없는처지가기가막혀눈물이터져나왔고목소리는뭉개졌다.민원인은내목소리를알아들을수없다며입에담지못할욕설을퍼부었다.경희언니는잠시후도착한구조대원의발빠른심폐소생술덕분에목숨을건졌지만,그날이후콜센터에다시출근하지못했다.이사건은SNS를통해폭로돼사회적공분을일으켰다.폭로자는뜻밖에도누구보다열악한근로환경을잘견뎌왔던윤하였다.
---「안부」중에서

나는조문객들에게음식을나르며첫키스의추억을떠올렸다.스무살여름에아무도없는대학교박물관구석에서첫사랑과몰래나누었던수줍은첫키스에서나는달콤한연유의향기를맡았다.어머니의일기장속오빠와사다코가멀어져간자리에도그달콤한연유의향기가은은하게남아있었다.
---「첫사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