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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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외조하는 조선 남자들
조선은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을까? 실질 생활 속으로 들어가 조선 시대 사람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살림은 주부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저자

정창권

고려대학교문화창의학부조교수.서울시청평가및자문위원.서울시교육청고전인문아카데미(‘고인돌’),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길위의인문학등의강의를진행했다.2010년대한민국학술원우수학술도서,2019년롯데출판문화대상본상,2019년세종도서학술부문,2015년~2019년고려대학교석탑강의상등을수상했다.주로역사속의소외계층인여성,장애인,하층민관련인문서와어린이책을집필하고있다.
주요저서로『천리밖에서나는죽고그대는살아서』,『근대장애인사』,『정조처럼소통하라』,『홀로벼슬하며그대를생각하노라』,『세상에버릴사람은아무도없다』,『꽃으로피기보다새가되어날아가리』,『조선의부부에게사랑법을묻다』,『역사속장애인은어떻게살았을까』,『기이한책장수조신선』,『거리의이야기꾼전기수』,『한쪽눈의괴짜화가최북』등이있다.

목차

시작하며-우리조상들이영위한남녀공존의역사

1장조선사람의살림인식
장가와처가살이의나라/여자의경제주도권/조선남자,일기를쓰다/남자에게도당연한살림/남자가살림하는건부끄러운일이다

2장가족을부양하다
녹봉/기타부수입/꼼꼼한농사관리/농사는어떻게지었을까?/닭을기르고,벌을기르고,사람도기르다/상업에대한이중적인태도

3장음식
음식/의복/주택

4장요리하는남자
최고의효도,음식공양/전문적인남자요리사/장담그기와술빚기/남자가쓴요리책

5장재산증식
재산증식에대한관심/토지,조선시대의재산증식법/뽕나무재배와원포가꾸기/중요한살림,노비관리/노비를다스리는법,‘은위병행’/노비,재산에서식구로

6장남녀가함께한봉제사접빈객
봉제사,가장중요한집안행사/남녀가함께지내는제사/접빈객,인심의척도

7장조선시대의부부관계
손님을대하듯공경하며/부디부디조심하옵소서/아내의바깥활동을뒷바라지한남편

8장조선의다정한아버지상
아버지의역할을다하다/자식의병상일지를쓰다/퇴계이황의자식교육/연암박지원의자식교육/아버지의딸교육

9장극성스런손자교육
최초의육아일기『양아록』/퇴계이황의손자교육/미암유희춘의손자체벌기

10장임신과출산그리고육아
목숨을담보로한출산/출산과육아풍속/육순노인이달리무엇을구하겠니?/산기가있거든즉시사람을보내소

11장원예취미와정원가꾸기
꽃을든남자/연암박지원의정원가꾸기/다산정약용의정원꾸미는법/조선의원예서

12장외조하는남자
외조하는남자/미암유희춘,아내의문집을만들다/허균,누이의문집을만들다/아전이기녀의시집을간행하다/남동생임정주의『윤지당유고』간행/남편윤광연의『정일당유고』간행/아들유희의『태교신기』번역과간행/남편과아들과사위가힘을보태다/남편서유본의『규합총서』저술지원/양자성태영의『정일헌시집』간행

글을마치며-한국가부장제를재조명하자

출판사 서평

조선이가부장제사회였다고?

이책은조선시대양반가의생활을들여다보고,그들이영위한남녀공존의역사를찾아보는것을목적으로집필되었다.이책의조사대상이조선시대양반가남자로한정된데는,유감스럽게도현재남아있는자료대부분이양반남자들의기록물이기때문이다.자료의양은적지만그속에서발견한유의미한부분은,조선시대양반남자가집안의살림꾼이었다는사실이다.
조선은16세기까지만해도여권이제도적으로보장된남녀공존의시대였고,이는여러문헌을통해확인할수있다.조선이남자중심의가부장제사회였다고주장하지만,그것은지나치게오늘날의관점에서바라본것이요,정치권력을기준으로바라본또다른남자중심적인시각이다.정확한남녀의관계,그리고전통시대여성상을알기위해서는집안을둘러싼실질사회에주목해야한다.
조선시대양반가는그규모만해도오늘날의중소기업체와맞먹을정도였다.신발,옷,쌀,술등의식주에필요한생활필수품을집안에서생산했고,자녀교육,질병치료,종교활동도집안에서이루어졌다.그야말로오늘날의작은사회와같은곳이었다.
조선시대의집안살림은크게안살림과바깥살림으로나뉘었다.음식장만과옷짓기등안살림은주로여자의몫이었고,각종생계활동,재산증식,노비관리등바깥살림은주로남자가담당했다.그밖에도남자는정원가꾸기,자식교육,가족돌보기등정서적인활동에도적극참여했다.
안팎,내외로구분하고남녀의역할을나누는것은양성평등의이념과어긋나지만,이러한내외의구분은음양의구분만큼이나조선시대에는당연한것이었고,조선후기내외법(內外法)이강화되면서는더욱엄격해졌다.성리학과내외법의강화로여자의사회참여자체가금기시되는풍조가만연할즈음에이른바‘외조하는남자’들이본격적으로등장했다.지금까지는조선시대의외조하는남자를거의주목하지않았지만,이들이야말로조선을대표하는진정한남자의모습일수있다.조선이가부장제사회라는막연한생각을여지없이깨트리는면면을이책을통해살펴보자.

외조하는조선남자들

이책에서는조선시대양반남자가평소집안살림에어떤방식으로참여했는지유형별로나누어종합적으로살펴보았다.당시바깥살림의종류와그것을처리한방식,또그들만의살림비법과고충을구체적으로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조선시대생활사연구에서는대상인물의행장이나묘지명,언행록등이주요자료로사용되었는데,이것은당시사람들이지향하는규범적이고이념적인모습을부각시켜그인물을위인화하기위한것으로,그의실제모습과는거리가있다.그러므로이책에서는실제생활의기록인일기나편지,그리고개인문집의다양한기록등을토대로조선시대남자의살림참여모습을살펴보았다.
조선은‘일기의나라’라고해도과언이아닐만큼,이시대에는국가와개인을막론하고수많은사람들이일기를썼다.특히양반남자들은날마다집안대소사를꼬박꼬박일기에기록했는데,현재까지남아있는대표적인조선시대일기로는『묵재일기』(1535~1567),『미암일기』(1567~1577),『쇄미록』(1591~1601),『계암일록』(1603~1641),『흠영』(1775~1787),『노상추일기』(1763~1829)등을들수있다.
현대의일기가철저히개인의기록인반면,조선시대의일기는집안대소사를차례대로기록한일종의가족일지이자가계부였다.그래서대대로후손에게물려주어생활의귀감으로삼도록했다.다시말해자신의살림노하우를후대에물려주고자했다.

1596년10월4일.아침에아내가나보고가사(家事)를돌보지않는다고해서한참동안둘이입씨름을벌였다.아!한탄스럽다.

조선중기의인물오희문(1539~1613)이쓴『쇄미록』의기록이다.아내는살림에무관심한남편오희문이원망스럽고남편오희문은집안일에나름열심인자신을몰라주는아내가무척서운하다.남자가살림에등한시하는것이부부싸움의빌미가되었다.‘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화만사성’이라는글도모두집(家)이나라(國)보다앞서있다.다시말해국가보다집안을우선시했고,남자의모든바깥활동은궁극적으로여자의안살림을지원하는차원에서이루어졌다.어쩌면조선시대는오늘날과는정반대의세상이었는지도모른다.
지금껏우리는오로지독서에만골똘했던『허생전』의주인공허생을양반남자의대명사라생각하고,여자와더불어살아가는남자의모습에대해선거의관심을기울이지않았다.이책은조상들이영위한‘남녀공존의역사’를담아냈다.

살림은여자의몫이라는고정관념

〈조선시대남자는집안의살림꾼이었다!〉
조선시대에는인간이살아가는데필요한거의모든것들을집안에서자급자족했다.소규모사회였던집안에서남녀간역할구분은뚜렷하지않았고상황에따라매우유동적이었다.물론조선후기엔성리학이강화됨으로써내외의구별이엄격해지긴했지만,그것은단면일뿐실제로집안살림에서의남자의역할과비중은매우컸다.
조선시대여자는임신과출산이목숨을담보로하는가장중요한문제였기때문에주로집안에서할수있는음식과의복을담당했다.반면에남자는물질적·정서적측면에서의각종집안살림을담당했다.다양한생계활동을비롯해서의식주마련등안살림에도적극참여했고,그밖의재산증식이나노비관리,봉제사접빈객등도담당했다.정서적인측면에서는훨씬그역할이컸다.원만한부부관계로집안을화목하게했고,부모를봉양하고,아들과딸,며느리등자식들뿐만아니라손자들의양육과교육도책임졌다.또본래여자의영역이라할수있는임신과출산및육아에도적극참여했으며,가족의행복을위해꽃과나무를심고기르며정원을가꾸기도했다.더나아가아내나어머니,누이등여자의작품활동을통한사회적인자아를실현할수있도록외조했다.
조선시대에는남자가오히려여자보다훨씬많은살림을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조선시대의정치적(국가적)가부장제모습을과도하게집안의영역에대입할수없는것이다.

〈일제강점기에외재적,타의적으로주입된현모양처〉
집안살림을여자의역할로규정하고남자는집밖일터에서오로지경제활동에만종사한것은언제부터였을까?이러한성별역할구분은일제강점기와현대의산업화시대에본격적으로형성되었다.그것도내재적,자발적인생성이아닌근현대의식민지와전쟁,자본주의산업화라는외재적,타의적인주입이었다.
1910년이후35년동안일본의철저한탄압으로우리민족문화는말살직전까지갔고,1945년광복후미군정의지배,1950년한국전쟁,1970년대경제개발이라는기치아래전통적인모든가치가몰가치화되면서급속도로자본주의산업사회로편입되었다.이모든사건이채한세기도되지않은기간에일어났다.
남녀간역할이구분된현대가부장제의정착도마찬가지였다.일제의식민지가되어강제로근대화를겪으면서우리나라는집안보다사회의비중이커지기시작했다.또사회와집안은공(公)과사(私)로구분되면서집안은철저히사적영역으로치부되었다.그와함께사회는남자의영역,집안은여자의영역으로각각역할을부여받았다.조선시대만해도집안자체가공이면서사였는데,이시기부터는남녀의역할구분만큼이나집안과사회의구분도뚜렷해졌다.이제남자는사회에나가경제활동만담당하고,여자는가정에남아전업주부로서가사를담당함은물론어머니로서자녀를양육해야했다.일제의식민지여자교육의목표는조선인의황국신민화와함께부덕(婦德)의함양을통한‘현모양처’양성에있었다.특히중일전쟁을겪으면서이런모습은더욱강화되었다.
현모양처는우리나라의전통적,유교적관념이아닌일본의메이지시대에만들어진것으로,일제에의해의도적,조직적으로식민지사회에이식된근대의왜곡된여성상이었다.원래조선시대에‘양처’는‘양민신분의처’라는신분적개념이었는데,일제는이를가사노동의전담자로만들었다.또조선시대에‘현모’는어진어머니정도의뜻이었는데,일제는이를여자의역할로바꾸었다.이후현모양처는한국여성의삶을규정짓는주요한이데올로기가되었다.
한편,1970년대이후산업화사회로접어들면서사회와가정은완전히분리되었고,남자와여자의성별노동분업도강화되었다.자본주의산업사회에서남자는일터에나가가족을부양하는가장(家長)이되고,여자는가정에남아가사노동과자녀양육을담당하는주부(主婦)가되었다.가정은이제소비공간이자휴식공간으로낮게평가받게되었다.
문제는이러한인식이여자의사회참여비율이남자와동등한현대에도여전히지속되고있다는점이다.남녀모두가자유롭고공평하게사회활동과집안살림에참여할수있어야하고,여자의일-가정양립못지않게남자의일-가정양립역시중요하다.언제까지가부장제운운하며현사태를관망만할것인가.조선시대의자료들을살펴보며지금우리의모습을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