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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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질병, 낙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센병이 등장한 이후 의학과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치료와 관리에 개입했으며 환자들이 한 사회 내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역사적으로 풀어낸다. 한 사회가 ‘정상성’을 규정한 후, 특정 질병과 환자를 밖으로 밀어내는 과정을 촘촘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별과 혐오의 메커니즘을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코로나19를 비롯해 앞으로도 예고 없이 찾아올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먼저 질병을 대하는 태도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 길에 분명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

김재형

저자:김재형
전남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하고,서울대학교사회학과대학원에서『한센인의격리와낙인ㆍ차별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학교아시아연구소선임연구원을거쳐현재한국방송통신대학교문화교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함께쓴책으로『절멸과갱생사이』,『마스크가말해주는것들』,『질병관리의사회문화사』등이있다.앞으로도몸과의료,낙인과시설에대한연구를지속할계획이다.

목차

책을열며

1세균설·인종주의·강제격리
노르웨이그리고‘유전병’에서‘전염병’으로|식민지의한센병|인종주의와과학의결합|전세계에서가장혹독한강제격리국,일본|조선에들어선소록도자혜의원

2식민지조선과한센병
늘어나는부랑한센병환자|목숨을끊고버림받으며|살해당하는여성들|문명국의장애물,도시의방해물

3생존과치료를향해
대풍자유의등장|완치와불치|살아남기위한조직화|나를소록도로보내주시오

4소록도,절멸의수용소
죽어서도나올수없는곳|강제노동속으로|죽음의섬|단종수술과낙태수술|스오마사스에그리고이춘상

5해방된조국,해방되지못한사람들
84인학살사건|처치해야할‘문둥이’|넘쳐나는환자와미군정의개입|전국으로확대된한센병수용소|「전염병예방법」의제정과한센병정책

6개혁과반동의시간
소록도의르네상스|다시식민지로|저항하는환자들|단종과낙태의부활

7죽여도되는,죽여야하는
재정부족과모금운동|한센병환자마을의등장|민족적수치와학살

8강제격리폐지라는희망
신약의개발과도입|완치되는질병|국제사회의반격리주의부상|국제기구의개입

9다양해진강제격리
「전염병예방법」개정에대한오해|떠나는사람과남는사람|치료에서장애예방및재활로|격리시설속격리시설|실험대상이되는어린이들

10음성나환자촌
완치의의미|닭과돼지를키우며모여사는사람들|한센병을둘러싼생명정치|벗어날수없는‘환자’의굴레|음성나환자단체설립

11치료를향한전세계의노력
유존균과약제내성균|한국의치료법발전과MDT도입|급격하게줄어든환자들

12지금한센인은어디에있는가?
사라지지않는낙인과차별|공론화된한센인문제|「한센인사건법」제정과한계|소송이남긴것들

책을닫으며
미주
시각자료출처

역사속한센병과한센인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건강에대한욕망이만들어낸근대프로젝트
왜어떤질병은사회밖으로추방되는가?
줄어들지않는확진자,백신부작용,변이바이러스,격리공간과치료제부족,무엇보다감염되는순간사회적으로낙인찍혀사생활이노출되고일상이무너질수있다는두려움.여기에다전세계환자와사망자수가실시간공유되는가운데각국의정책과통제아래살아가는상황은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불러일으킨질병에대한공포를여과없이보여준다.그러나여전히낯선코로나시국이실은100여년전한국사회에한센병이처음발병했던상황과오버랩된다는점을기억하는이들은많지않을것같다.체내세균의유무로병을결정하며병원균의전파를막기위해격리시설과나병원을세우고,국제나회의를통해한센병을세계공중보건문제로인식하며해결하려던노력은오늘과충분히닮아있다.
『질병,낙인』은조선시대부터일제강점기를거쳐현재에이르기까지,한센병이등장한이후의학과국가가어떤방식으로치료와관리에개입했으며환자들이한사회내에서어떻게살아왔는지역사적으로풀어낸다.한사회가‘정상성’을규정한후,특정질병과환자를밖으로밀어내는과정을촘촘히보여준다는점에서차별과혐오의메커니즘을생각해보게하기도한다.코로나19를비롯해앞으로도예고없이찾아올질병과더불어살아가야한다면우리는먼저질병을대하는태도를되짚어볼필요가있지않을까?이책은그길에분명길잡이가될것이다.

현장과연구를오간15년의기록
역사속에서사라진한센인복원하기
저자김재형이한센인의이야기에귀기울이기시작한것은2005년국가인권위원회에서실시한‘한센인인권실태조사’에인터뷰보조원으로참여하면서부터다.당시한센인과‘처음’마주한그는한센인대부분이쉽게오갈수없는정착마을에모여살거나자신의병력을철저히숨기고있었음을깨달았다.여기서‘한센인’은한센병을앓았으나완치된이들뿐아니라현재병이진행중인이들을모두일컫는다.1980년대2만7,000명에달했던한센인이2020년말8,965명으로줄었으나,이집단이대개79세이상의고령이라는점을감안한다면,한센인의감소는치료보다는사망에따른것으로볼수있다.그리고이러한현실은한센인의삶을기록하는일이시급하다는것을뜻한다.
한때‘문둥이’,‘나인’등으로불렸던한센인이평탄치않게살아왔다는점은누구나짐작한다.그러나자료도흩어져있고관련연구자도드물며활발한운동단체도없는데다무엇보다한센인대부분이노출을꺼려그들이겪은고통의실체를알기어려웠다.김재형은그러한황무지위에발을딛고15년넘게머물렀다.안개가하나씩걷혔고,한센인을변호하며조용히걷던이들도만났다.2004년8월23일한국한센인권변호단이일본정부를상대로일제강점기강제격리당한한센인에대한보상청구를시작으로,2009년에는국내에「한센인사건법」이통과됐고,2014년4월19일에는한국에서도일부지만국가의책임을인정하며한센인에게보상금을지급했다.한센인을역사화하려는지속적인노력속에서2016년한센병박물관도세워졌으며,한센인의유물이문화재로등록되기도했다.(12장)그리고이시간덕분에지난100년간한센인의삶이세상밖으로드러났다.『질병,낙인』역시그결실의일부이니,이책은한센인을비롯한그모든이들이함께쓴것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
김재형은한센인의이야기를듣고관련공부를할수록그들이겪은고통이단순히신체적통증에머물지않는다는것을알게됐다.병에대한지식이부족해미신에기댈때나(2장),치료시설이들어선이후병실부족으로병원근처에서부랑하며기다려야할때나(3장),광복소식이소록도에도착했을때나(5장),생계를꾸려가기위해양계와양돈을시작할때나(10장)한센인은국가·도시민·마을이웃들에게‘처치해야할문둥이’에지나지않았다.한센병은그들의‘죄명’이었고,한센인은곧‘죄인’이었다.병을통제한다는이유로사회밖으로쫓겨나혐오와차별에맨몸으로노출됐으며이것만큼은완치되더라도변치않았다.
그렇다고한센인이늘일관된고통속에능동적으로머물렀던것은아니었다.격리공간을탈출하려고시도하고환자자치회를만들어격리시설운영에직접참여했다.1942년6월20일소록도에머물던환자이춘상이일본인원장스오를살해하는일이벌어졌는데,이는극한노동과부당한대우에한센인이직접맞섰던대표사건이라할수있다.(4장)『질병,낙인』곳곳에는한센인의슬픈역사가빼곡하지만그것만으로는이책을절반밖에소개하지못한다.100여장의엄선한사진을실으면서도‘환자’한센인의모습을담지않은것도이때문이다.

‘완치’와‘불치’사이에서
한센병과근대의학에대한의료사회사
현재한센병은전염되더라도리팜피신이라는알약한알로완치가가능하기에신환자가거의발생하지않는다.그러나정확한병인을알지못하고치료제가등장하기전까지는적잖은오해속에있었다.전염경로가연장자에서연소자로흘러가며가족내에서흔히발병한다는점때문에유전병이라고여기던시절도있었고,유럽과미국에건너간아시아계노동자들이옮겨왔다는이유로열등한인종이주로걸리는질병으로규정하기도했다.노르웨이의한센병학자한센이세균에의한감염임을밝힌이후에도병을대하고치료하는방식을두고의료전문가들사이에의견이분분했다.문제는병에대한지식이곧국가가어떻게개입하고어떤정책을입안할것인지를결정한다는점에서,혼란이야기한피해는오롯이환자들의몫으로돌아갔다는것이다.이책에서적지않은분량을할애한강제격리,학살,단종수술과낙태수술,한센인정착마을등은근대의학과국가의정책이합작한결과물중일부다.
그럼에도『질병,낙인』은‘불치병’으로여겼던한센병이‘완치’되는과정을담고있다는점에서의학의발전사이자치료의역사서이기도하다.전세계곳곳에서한센병균을제거하는성분과약제를개발하기위해시행착오를겪는모습,그결과등장한대풍자유·다이안손·MDT에대한이야기,웨이드법을비롯한균검출방법,신체절단·눈썹빠짐·수하수·족하수등완치후에도복원되지않는외모변형을극복하기위한노력등근대의학의지식과치료기술이흘러온시간을찬찬히소개한다.여기서주목할점은효과적인치료제와검사방법이꼭‘완치’로이어지지않을수도있다는것이다.한센병의경우완치판정을받더라도균의검출부위에따라결과가달라지기도했고약에서내성균이만들어지는일도있었다.지금우리가겪는코로나역시격리와치료를마친확진자가다시양성판정을받거나,백신이무용해지는일도예고없이변이바이러스생성되는일도있다.질병이온전히의학의몫일수없다면,그빈틈에방역체계를세우고일상적차별을줄이는일은국가와더불어우리의일일지모른다.

치료시설인가?죽음의수용소인가?
‘미지의섬’소록도의100년사
전라남도고흥의끄트머리에위치한소록도.과거에는녹동항에서배를타고5분여들어가야했지만현재는소록도교가세워져보다쉽게오갈수있고,일반인도관광을위해방문이가능한열린공간이다.그러나소록도는한센인을격리시키기위한목적으로선점된이후긴시간동안폐쇄된섬이었다.그안에위치한소록도자혜의원은1917년환자들이이송된이후현재까지명칭이일곱차례나바뀌었을정도로(66쪽)관계된이들과공간의정체성이달라졌지만,격리공간이라는성격은변치않았다.
1920년대소록도는사회적으로고립됐으나치료와생활면에서모두안정적이었다고한다.그러다1930년대들어소록도자혜의원을확장하는세차례의공사가진행됐고,일본의파시즘적분위기와우생학이유입되면서내부환경이악화됐다.(4장)환자들이고된공사현장에투입되면서사망자가늘어났음에도관리자들은업적을과시하느라치료는뒷전으로미뤘다.국가의예산이부족해모금운동을통해공사비용을충당하고식량도자급자족했다고한다.인권에대한이해도형편없어환자84명이처참하게학살당한사건도이무렵일어났다.
그러다1945년9월김형태가원장으로부임하면서르네상스시절을맞았다.소록도를한센인에게돌려줘야한다고여겼던그는‘민주원장’이라불릴만큼신뢰와지지를받았다.초등학교만있던소록도에‘녹산중학교’가들어섰고,연극을준비해부산·여수등으로외부공연을다녀왔으며,느슨해진병원의통제를염려하며환자들이스스로‘녹산청년동맹’을결성하기도했다.(6장)그러나호시절은짧았다.환자들의흉골을드릴로뚫고골수를채취하는흉골골수천자사건(6장)을시작으로한센인은다시이용되거나부려졌고,그시간은이어졌다.
물론나병원과격리시설이소록도에만있었던것은아니다.부산·대구·여수등에도나병원이존재했고,완치된환자들이모여살던정착마을(음성나환자촌)도있다.그러나한센인에게한번가해진낙인만큼은쉽게사라지지않고끈질기게따라다녔다.근처지역민들이보이는노골적인불만과국가의방임속에서몸을사려야한다는점에서소록도의삶과크게다르지않았다.그리고지금도대다수한센인은편견과차별에익숙한채섬처럼살아가고있다.
『질병,낙인』은거듭강조한다.전염병의확산을막기위해통제하고완치를향해치료제를개발하는동시에질병의심각성을공유하는일은매우중요하다.그렇지만이과정에서우리도모르는사이에내주변의이웃을쉽게배제하고혐오하며낙인찍을수있다는것.한센병과한센인이힘겹게깨우쳐준메시지가이책을읽는분들께가닿기를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