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위기’가기본값인시대
연구에관한사적이고도공적인이야기
『연구자의탄생:포스트-포스트시대의지식생산과글쓰기』는40여년전사회운동의일환으로만들어져학술운동의일부이기도했던한인문사회출판사의편집자로서,그리고인문·사회과학분야의오랜독자이자한명의시민으로서품었던의문으로부터시작했다.인문사회출판의역할중하나가학계에서생산된지식을일반시민들과연결하고사회적담론을만드는작업이라고할때,연구자들의이야기는왜과거처럼힘을발휘하지못할까?여전히좋은연구자들이존재하지만,왜기존에인문·사회과학의일이었던것은문학과에세이의몫처럼보일까?왜문학으로부터우리가어떤사회에서살고있는지를알고자하고,에세이로부터어떻게살고싶은지를찾는사람들이급격히늘어났을까?인문·사회과학의언어,학계에서생산되는지식은어떻게‘사회적으로’(출판시장에서)매력적일수있을까?물론부정적인대답이라면,여기에는‘인문학의위기’나‘학문공동체의붕괴’,‘연구자의전문화’,‘학문후속세대의재생산실패’,‘논문중심글쓰기’,‘성과주의·계량화’등학술장의변화를지적하는말들이뒤따를것이다.이러한말들은익숙하다못해지루한기본값처럼느껴진다.하지만그럼에도,부단하고도예민하게‘사회’와(활동으로서의)‘글쓰기’를동시에염두에두면서2000년대이후에인문학과사회과학을공부해온동시대젊은연구자들이있고,그들의가장날것의이야기를,동료연구자들뿐만아니라학계바깥의시민들도경청할수있는자리를마련해보고싶었다.
비판적사회연구의전통에속할다양한전공의,문학평론가와비평가,독립연구자,박사과정중인국내외대학원생과교수까지다양한위치의인문사회연구자열명에게다음과같은질문을던졌다.‘지금가장중요하게여기는문제,천착하고있는주제는무엇입니까?왜그문제가개인적으로,또는사회적으로중요하다고생각하며,그러한문제의식은어떤개인(사)적·시대적경험을통해,어떤궤적을거치며형성된것인가요?그리고그러한문제를규명또는해결하기위해어떤연구(글쓰기)를하고있습니까?이러한작업을통해어떤지적또는정치적변화가일어나기를희망하시는지요?’다시말해,어떤경험과문제의식이이들을지금의위치로이끌었는지에대한대답을들려주기를바랐고,이런이야기를통해독자들이자연스럽게2000년대이후의한국사회와지식생산이맺는관계에관해풍부한영감과통찰을얻을수있기를희망했다.『연구자의탄생』은‘나는왜이런연구를하고글을쓰는가?’에관한연구자의사적이고도공적인기록을통해‘지금우리는어떤세상을살고있는가?’에대한대답에이를수있는책으로기획되었다.
‘분과학문’과‘학계’안팎을가로지르며
연구자는어떻게만들어지는가
‘연구자’는일반적으로,대학원생과시간강사와교수를아우르며‘학계’에서연구를하고지식을생산하는이들을칭한다.하지만연구자라는말의쓰임은지난20여년간변화한학계와사회의조건을정확히반영한다.이말은한분야에대한‘전문성’을강조하는대신,다른분야나학계외부,즉시민과사회와의단절을의도치않게장려한다.따라서이러한진단이가능하다.2000년대이후학술장에진입한인문사회연구자들은“광활하고도혹독한지식/교육‘시장’에맨몸으로내던져”“가까스로‘연구자’인지‘콘텐츠제공자’인지‘덕후’인지모를무언가가되고있는중이다.”(79쪽)문학평론가오혜진에따르면,“‘지적분기점’이라고합의할만한공통의역사적경험”이도출되지않고,“모더니즘과포스트모더니즘을별시차없이접한,이른바‘포스트-포스트모던시대의지식노동자’라고호명되곤하는동시대젊은연구자들은자신의지적좌표와궤적을묻는질문앞에서때때로불안해진다.”(73~74쪽)그러므로이러한시대에연구자는어떻게만들어지는지,연구자들이자신의지적좌표와궤적을이야기하고공유하는일이더욱중요해진다.『연구자의탄생』은동시대젊은인문사회연구자들에게연구란무엇인지묻고인문·사회과학‘연구’와‘연구자’를재정의해보려는책이되었다.문화연구,국문학,사회학,여성학,인류학,영문학등다양한전공과관심사를가진연구자들은각자의방식으로이에대한답변과새로운질문들을들려주었다.이책은2000년대이후‘분과학문’또는‘학계’안팎을오가며연구자로살아온이들의이야기를통해사회와시민들과의연결을놓지않는지식생산이어떻게가능한지되묻는다.
이러한맥락에서문화연구자이자『우리는왜공부할수록가난해지는가』를비롯해여러권의책을쓴작가인천주희의「나는내일도연구자이고싶다」는이책의서문역할을한다.“한명의연구자가만들어지기까지얼마나많은경제적자원이필요할까?”라는질문으로시작되는이글은청년연구자이자프리랜서연구자로활동한자신의경험을하나의사례로제시하며연구자들이직면한물적조건을살핀다.암묵지인동시에민감한주제인대학원생과연구자의재생산문제를제기하면서,연구자는어떻게만들어지며연구란무엇인가에대한더근본적인질문으로나아간다.또한일반적으로사회적지식을생산하는주요장이라고여겨지는언론계,출판계,학계를기자,작가,유학생으로경험한안은별은「이동중에,글쓰기의자리에대한생각들」에서자신의연구주제인‘이동’을키워드로,일본에서공부한다는것,학계에속한지식생산자로서거리를유지한다는것에관해이야기한다.
앞의두편이작가-연구자의이야기라면,다음두편은비평가-연구자들의이야기이다.2010년대의페미니즘문학비평을대표하는문학평론가오혜진은「불투명한언어로말하기」에서국어국문학과를중심으로2000년대이후학술장과한국사회의변화를개괄하며,소수자정치에관한자신의비평적문제의식이어떻게벼리어졌는지를들려준다.한편,비평가이자한국사회의감정을사회적맥락과엮어고찰하는감정사회학연구자인김신식은「그것:감정사회학,내삶의가망이되다」에서이러한작업을하게된계기를좀더내밀하고개인적인관점에서접근한다.이글은자기자신의문제,특히목회자가정에서자란경험과연결해연구의여정을서술한다.
코로나19가강화시킨디지털환경속에서,젠더교육연구소이제(IGE)연구원으로도활동중인윤보라와서울국제여성영화제집행위원이자시네-미디어기억연구자인배주연의글은각각디지털공간과페미니즘연구,그리고영화와페미니즘·기억연구가어떻게만나게되었는지를톺아본다.윤보라의「몸없는공간의젠더를연구하기위해」가1990년대의시대적공기에예민했던십대가인터넷과페미니즘을두축으로삼아촛불집회와온라인외모관리커뮤니티,스마트폰,일베·메갈리아,n번방등의사건을거치면서그것들을연구과제로삼아추적해온과정을담아냈다면,배주연의「영화는무엇이될것인가」는학생운동을하며소설을쓰던수학과대학생이어떻게영화이론을하게되었는지에관한이야기를,그동안영화를둘러싼매체·문화환경의변화에관한이야기와겹쳐놓는다.
서울대인류학과교수인이승철과하와이대사회학과교수인양명지의글은각각인류학·경제학·사회학,정치학·역사학·사회학을오가며한국사회를분석해온두“사회과학자”들의작업이어떻게탄생했고어떤방향으로가고있는지에관한기록이다.이승철의「무너지는사물,부유하는말」은현재한국사회의변화를설명할“좌표와분석틀의부재”,“말과사물의위기에서촉발된혼란스러움”을지적하며,신자유주의적자본주의에대한비판기획으로서사회적경제와사회혁신,금융화와투자자주체연구에관한이야기를들려준다.양명지의「박정희시대의유산으로부터」는박정희시대의유산이현한국사회에미치는영향에대한탐구로서중산층의형성과태극기부대의극우정치연구가어떻게이루어졌는지에관한이야기를들려주며,해외에서한국사회를연구한다는것의의미를덧붙인다.
한편,미국대학에서영문학을공부하며자연과학적관점에서문학에접근하는김성익은「언어의감옥내수감자와탈옥수」에서자연과학이생산해내는지식이지배적인시대에인문학의자리를묻는다.어떻게한국사회에서자연과학이인문학의공백을채웠는지,왜미국학계와달리한국에서는인문학과자연과학이분리되어있었는지를분석한다.마지막으로,사회이론과문화사회학을전공하는김정환의「사회에대해말하지않기,보는나를보기」는이책을닫는글역할을한다.지방교대에서학생들에게사회학을가르쳤던경험에서출발하는이글은왜그토록공론장에서많은말들,심지어“선의”와“이상적인지론”이오가지만사회는변하지않는지되물으며,지식생산은‘연구자’에국한된것이아니라대학생과일반시민들에게도해당되는일이고,그것은“곧자기변환의실천”이되어야함을강조한다.
언어와관점의발명,그리고자기변환의실천까지
다시,인문사회연구란무엇인가
다양한위치와전공의연구자들이쓴책이지만,『연구자의탄생』은자연스럽게2000년대이후의풍경을펼쳐놓으며,지난20여년간한국사회의변화를그려낸다.학술장의문제는물론,청년운동,독립출판,여행(이동),페미니즘,소수자정치,‘감정’의부상,종교,힐링,스마트폰,인터넷,n번방,영화,기억정치,사회적경제,사회혁신,금융화와투자자,중산층,태극기부대,여러번의촛불집회,과학의대중화,비판담론의포화상태와변하지않는세계등새롭게등장한과제들과여전히해묵은문제들,그리고다른모색과실천의시도들이드러난다.
그리고이토록다양한연구자들은,연구란무엇이며왜연구자가되었는지에대해놀랍게도비슷한대답을들려준다.“공부란,내주변에산재한죽음과불평등과배제,소외,부조리함을어떻게해석하고또바꿔나가야할지삶과생존을위한가능성을포기하지않도록독려하는매개”(12쪽)이며,“이것을어떻게이해하고받아들여야할지언어와관점을찾는것이었다.불안정하고기이한삶에서시작된궁금증과질문들,그리고그것을해결하고자했던마음이매일켜켜이쌓여서나는공부하고책읽고연구하는사람이된것이다”(13쪽)라는천주희의이야기는“모든사태를‘퇴행’,‘백래시’,‘반지성주의’같은말로일축하는것은손쉬운현실도피이자연구자의직무유기아닐까”,“지금긴요한것은,내가속한‘현재’를이미규범화·질서화된가치를기준으로재단하는것이아니라,‘동시대’의문제계로서새롭게구성·재현하기위한관점과언어다”(82~83쪽)라는오혜진의이야기로이어지고,다시“부유하는원한과분노는언젠가자신의언어와대상을찾아내기마련입니다.그때사람들이찾아내는언어와이름이극우포퓰리즘이나종교근본주의,금융시장의니힐리즘이아닌새로운급진적보편성의정치가될수있을까요?주어진시간이그리많지않아보이는상황에서,우리는대안적언어와장치들을벼리는작업을해낼수있을까요?”(207쪽)라는이승철의이야기와공명한다.이들은인문·사회과학을한다는것이새로운관점,언어,담론을생산하는작업임을강조한다.동시에,지식을생산한다는것은“사회를분석하고비판하고계몽하려는의지들”에그쳐서는안되고,“사회에대해말하거나사회에대해쓰기를멈추고서나를봄으로써동시에사회를보는것”(286쪽)이기를바라는김정환의이야기는앎과실천이라는해묵은말들을새롭게갱신해내는데,사실상이책에실린모든글들의숨은전제일것이다.
물론『연구자의탄생』은한계가뚜렷한책이기도하다.이책에자신의이야기를들려준연구자들은‘나’의자리로부터동시대를사유하고세상을정확히,또는다르게읽어내는언어와관점을모색하고있지만,당연히이들이인문사회연구생태계를대표할순없다.철학,역사학,심리학분야,또는서울아닌곳의대학원생이나유럽대학의유학생처럼누락된이야기들이더많다.그럼에도,바로그렇기에이책은파편적으로흩어져있는연구자들사이에서또다른공동의이야기들을촉발해내는일종의발제문이자,학계와시민사회에서인문사회연구를한다는것,그리고지식을생산한다는것에대해더많은이야기들이오가는장을여는초대장이될수있을것이다.그런책이되기를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