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잘사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불안하고, 편안함에 이르지 못하나?
우리는 왜 불안하고, 편안함에 이르지 못하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살고 함께 기뻐하기 위한
‘쉼’의 제언
나와 사회가 공존하고,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한 시작
“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Requiésco ergo sum 레퀴에스코 에르고 숨
■ ‘쉼’이 우리를 자유롭고 존엄하게 하리라, 이 시대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는 무엇이 우리의 쉼을 빼앗고 어떻게 쉼을 되찾을지를 사유하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이자 성찰적 에세이다. 이 책은 경쟁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안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잠식하는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가 삶의 주요한 리듬인 사회에서 ‘쉼’이 사라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살피고, 쉼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 일과 소비의 끊임없는 악순환, 대안이 없는 곳에 ‘쉼’은 없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 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려면 끊임없이,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과로와 일 중독을 잊기 위해 또 다른 소비에 열중하는데, 오늘의 소비는 내일의 노동을 담보로 하기에 이 삶의 패턴은 계속 악순환된다. 직장인, 자영업자 등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하루 빠듯하게 돌아가는 ‘노동’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그러한 일상이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쳇바퀴를 이탈하게 되면 어김없이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삶을 영위할 또 다른 대안이 없는 곳에 ‘쉼’은 있을 수 없다.
■ ‘착각 노동’ 판타지와 소비를 쉼으로 혼동하는 현실
일을 자아실현과 동일시하는 사회는 직업 또는 일을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최상의 방법으로 여기지만, 이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이 판타지가 진실에 가깝다면, 우리는 일을 많이 할수록 행복해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믿게 하는 메커니즘을 ‘착각 노동’ 판타지라고 한다. 그리고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 시간마저 장악하여, 신용카드를 긁어야 잘 쉬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현실을 포착한다. 물론 이것 역시 착각이다.
■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하여
소비 중독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커먼즈’(commons)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공유 자원마저 상품화하여 자원을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결정권 및 창발적 역량을 허락하지 않는데, 그 결과는 쉼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커먼즈가 확대될수록 스스로 자원을 활용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자유와 쉼의 가능성은 커진다.
저자는 삶의 공간을 장악한 꽉 짜인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대안으로, 우연한 마주침이 가능한 열린 공터로서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한다. ‘열린 공터’는 다름과 새로움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상품화 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공간이다. 여기에 “전장 밖을 상상하기 위해 나부터 과중한 삶의 리듬을 중단하는 용기를 가져”보자고 말하며, 그러한 중단, 즉 ‘정지’를 함께하자는 차원에서 ‘정지’(停止)와 모순되는 양태인 ‘운동’(運動)을 결합한 ‘정지 운동’을 제안한다. 정지 운동은 폭주하는 시스템의 속도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시작한다.
‘쉼’의 제언
나와 사회가 공존하고,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한 시작
“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Requiésco ergo sum 레퀴에스코 에르고 숨
■ ‘쉼’이 우리를 자유롭고 존엄하게 하리라, 이 시대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는 무엇이 우리의 쉼을 빼앗고 어떻게 쉼을 되찾을지를 사유하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이자 성찰적 에세이다. 이 책은 경쟁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안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잠식하는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가 삶의 주요한 리듬인 사회에서 ‘쉼’이 사라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살피고, 쉼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 일과 소비의 끊임없는 악순환, 대안이 없는 곳에 ‘쉼’은 없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 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려면 끊임없이,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과로와 일 중독을 잊기 위해 또 다른 소비에 열중하는데, 오늘의 소비는 내일의 노동을 담보로 하기에 이 삶의 패턴은 계속 악순환된다. 직장인, 자영업자 등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하루 빠듯하게 돌아가는 ‘노동’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그러한 일상이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쳇바퀴를 이탈하게 되면 어김없이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삶을 영위할 또 다른 대안이 없는 곳에 ‘쉼’은 있을 수 없다.
■ ‘착각 노동’ 판타지와 소비를 쉼으로 혼동하는 현실
일을 자아실현과 동일시하는 사회는 직업 또는 일을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최상의 방법으로 여기지만, 이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이 판타지가 진실에 가깝다면, 우리는 일을 많이 할수록 행복해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믿게 하는 메커니즘을 ‘착각 노동’ 판타지라고 한다. 그리고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 시간마저 장악하여, 신용카드를 긁어야 잘 쉬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현실을 포착한다. 물론 이것 역시 착각이다.
■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하여
소비 중독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커먼즈’(commons)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공유 자원마저 상품화하여 자원을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결정권 및 창발적 역량을 허락하지 않는데, 그 결과는 쉼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커먼즈가 확대될수록 스스로 자원을 활용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어 자유와 쉼의 가능성은 커진다.
저자는 삶의 공간을 장악한 꽉 짜인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대안으로, 우연한 마주침이 가능한 열린 공터로서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한다. ‘열린 공터’는 다름과 새로움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상품화 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공간이다. 여기에 “전장 밖을 상상하기 위해 나부터 과중한 삶의 리듬을 중단하는 용기를 가져”보자고 말하며, 그러한 중단, 즉 ‘정지’를 함께하자는 차원에서 ‘정지’(停止)와 모순되는 양태인 ‘운동’(運動)을 결합한 ‘정지 운동’을 제안한다. 정지 운동은 폭주하는 시스템의 속도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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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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