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저집 세트 (1 찬집 | 2 편집 | 양장본 Hardcover | 전 2권)

호저집 세트 (1 찬집 | 2 편집 | 양장본 Hardcover | 전 2권)

$90.00
Description
박제가와 한·중의 묵연(墨緣), 책으로 엮다
『호저집』은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초정 박제가(1750∼1805)의 아들 박장암(1780∼1851 이후)이 부친의 편지글과 시, 필담 등을 모아 엮은 책이다. 제목의 ‘호저’(縞紵)란 본래 비단과 모시라는 뜻으로, 벗 사이에 마음을 담아 주고받는 선물, 즉 시문과 편지 등을 가리킨다. 박제가는 총 네 차례 중국을 다녀왔으며, 이 책은 바로 이때 박제가가 교유했던 중국 문인들과 주고받은 기록이다.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한국과 중국의 오랜 교류의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집이다.
저자

박장암

鄭珉
한양대국문과교수.한국한문학전공.저서로『한시미학산책』,『다산의재발견』,『다산증언첩』,『18세기한중지식인의문예공화국』,『파란』,『비슷한것은가짜다』,『서학,조선을관통하다』등이있다.

목차

1찬집(纂輯)
권수(卷首)
권1무술년(1778)
권2경술년(1790),신해년(1791)
권3신유년(1801)

2편집(編輯)
권수(卷首)
권1무술년(1778)
권2경술년(1790),신해년(1791)
권3신유년(1801)

출판사 서평

18세기한중지식인교류의현장,『호저집』

『호저집』(縞紵集)6권2책은초정(楚亭)박제가(朴齊家,1750~1805)의셋째아들박장암(朴長馣,1790~1851이후)이부친과중국문인들과의교유기록을시기별,인명별로정리한필사본책자이다.편찬시기는부친사후4년뒤인1809년5월이다.제목의‘호저’(縞紵)는벗사이에마음을담아주고받는선물,시문,편지등을가리키는관습적인표현이다.
박제가는1778년,1790년,1791년,1801년,모두네차례사신으로중국에다녀왔다.그는네번의사행길에서수많은청나라문인들을만났고,귀국후에도이들과계속연락을이어갔다.그의중국인맥은타의추종을불허할만큼대단했다.
1776년유금(柳琴)이『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을가져가청나라문인이조원(李調元)과반정균(潘庭筠)의서문과평비(評批)를받아온일로,1778년첫연행부터박제가의이름은이미북경문원(文苑)에알려져있었다.이후네번의연행을통해자연스럽게수많은중국문인들과교유할수있었다.연행의역사에서개인으로서중국문인과나눈교유의폭이앞뒤를통틀어박제가를능가하는경우를찾기란쉽지않다.추사김정희가청나라문인과폭넓게교유했지만단한차례연행에그쳐박제가와견주기어렵다.그리고김정희의중국인맥부터가박제가의소개를바탕으로이루어진것이었다.
네번의연행과이후인편에전해진시문(詩文)과서신,제평(題評)및필담자료까지박제가의집에는중국문인들의묵적(墨跡)이산더미처럼쌓여있었다.박제가는생전에이자료들을책자로엮을생각으로정리해두었지만,만년의갑작스러운귀양이그의발목을잡았고,귀양에서돌아온뒤에는병사하고말았다.부친사후셋째아들박장암이부친의유지를받들어자료들을편집해『호저집』으로종합했다.

『호저집』의소장자후지쓰카치카시

『호저집』은현재미국하버드대학교옌칭도서관소장본이유일본이다.원소장자는추사김정희연구로유명한전경성제국대학교교수후지쓰카치카시(藤塚鄰,1879~1948).그의손때가묻은수택본(手澤本)이다보니,책곳곳에붉은색잉크로쓴후지쓰카의친필메모가보이고,중간중간본문에참고가될만한내용을카드에적어꽂아둔것도여러장이다.
후지쓰카가박제가를접한시기는그가북경주재해외연구자로있던1923년이다.당시후지쓰카는유리창서점가에서청대의학자이자장서가인진전(陳鱣)의『간장문초』(簡莊文鈔)를발견했는데,그책첫장에실린「정유고략서」(貞蕤藁略敍)를보고,박제가라는인물을접했다.하지만당시진전이이름대신자(字)를써서‘박수기’(朴修其)로표기하는바람에후지쓰카는박제가의바른이름조차알수가없었다.
후지쓰카는1926년4월경성제국대학교수로부임해조선으로들어왔다.어느날서울한남서림(翰南書林)에들른그는우연히보게된『사가시』(四家詩)에서박제가의이름을발견하고,그후본격적으로박제가관련자료를수집하기시작했다.얼마지나지않아『정유각시집』(貞蕤閣詩集)과『정유각문집』(貞蕤閣文集)을손에넣었고,곧이어『북학의』(北學議)와『호저집』도구할수있었다.마침내나빙(羅聘)이그린박제가의초상화까지구하자그는마치박제가의전모를눈앞에펼쳐놓은것처럼한눈에살필수있게되었다고감격에들떠술회한바있다.
태평양전쟁말기미군의공습으로후지쓰카의서적은대부분불탔지만,방공호에따로보관한박제가와김정희관련귀중본과필적만은요행으로살아남을수있었고,후지쓰카가세상을뜬뒤1950년대초,『호저집』은하버드대학교옌칭도서관으로흘러들어왔다.
이책의대표역자인정민교수(한양대국문과)는2012년옌칭연구소에1년간방문학자로체류하면서,옌칭도서관에소장된후지쓰카소장본자료56종200여권을찾아내정리하여책으로출판한바있는데,이때『호저집』을접했다.
『호저집』곳곳에남긴수많은친필메모와교정및참고사항의추가는후지쓰카가이책을얼마나아꼈는지잘보여준다.그는『호저집』에등장하는인물들이그의연구주제였던청조문화의동전(東傳)과정에서얼마나중요한역할을했는지잘알고있었다.

『호저집』의구성과정리방식

이책의편찬자인박장암이직접‘범례’(凡例)를작성해『호저집』의구성과정리방식을설명하고있다.
『호저집』은2책으로구성되었으며각책은다시3권으로나뉜다.제1책은찬집(纂輯),제2책은편집(編輯)이다.각책은박제가의연행시기별로1778년의1차연행을권1,1790년과1791년의연속한연행을권2,1801년의4차연행을권3으로삼았다.특별히권1앞에권수(卷首)를두었는데,이는박제가가직접만나보지는못했던선배문인몇사람을따로떼어구분한것이다.
찬집(纂輯)은박장암이부친의메모와관련기록을조사해인적사항과판단정보를인명별로정리한것이고,편집은집에있던자료를찬집의인명순서대로배열하여당사자와박제가사이에오간수창시문과편지를옮겨적은것이다.찬집으로인물을파악한뒤,편집에서교유의구체적내용을확인하는방식이다.이같은구성은복잡하게얽히고설킨자료를일목요연하게파악할수있게해준다.
제1책찬집(纂輯)에는박제가가만난총172명의인명정보가수록되어있다.각권별인명수록순서는1778년과1801년의경우,부친박제가의메모에바탕을두었던듯나름의근거를갖추었으나,1790년과1791년의경우는선후가모호하여어림짐작으로차례를매겼다고썼다.각인물별사적은전기(傳記)의예에따라사제관계와교우관계를밝히고,출처의자취를자세히풀이하여,지파와연원에이르기까지가능한상세한내용을담으려노력했다.여기에박제가가이들에게준증별시와회인시,제첩시등의자료를추가했다.필담의담초가남아있을경우모두포함시켜기초자료로제공했다.
박장암은남은친필시문끝의서명이나인장을통해얻은정보까지얻을수있는정보는직접찾아정리했다.때로는낡은종잇조각에적힌알아보기힘든난필메모에서취해오기도했다.그것마저없을때는훗날을기약하며이름만남겨두었다.
제2책편집(編輯)의경우에는시와문을구분한구성을생각했으나,체재가혼란스러워지자시문과서찰,제평의차례로수록했다.구작(舊作)을주고받은경우는본문보다한글자내려썼다.편지와답장,원운시와차운시는주고받은모든내용을수록해전후맥락을가늠할수있도록배치했다.

최초완역본『호저집』,책의가치와간행의의

『호저집』에는18세기조선과청나라문인의교유양상과그세부정황을입체적으로조망가능한다양한유형의자료가있다.최초완역본『호저집』은박제가를중심으로한한중문화교류의전반적인흐름과윤곽을파악할수있는중요한자료이다.
첫째,『호저집』은유례를찾을수없을만큼풍부한한중문화교류의생생한증언집이다.무려172명에달하는중국사인의인적사항과관련시문을수록해,내용이방대하고교유의실상을세밀하게보여주는자료의보고이다.이조원,반정균,기윤,옹방강등쟁쟁한문인외에도중국쪽사료에도전혀남아있지않은많은인물들의인적사항이적혀있어건륭·가경연간청대지식계의전반적인동향을파악하는데있어서도대단히요긴하다.이를통해한중문화교류사의지평을확대할수있다.
둘째,『호저집』에는박제가의문집에도누락된자료가많아,북학파연구의빠진퍼즐을채울수있다.책에여러번등장하는『열상주선집』은현재실물이남아있지않은데,『호저집』에이조원,반정균,축덕린등의서문과평이실려있다.특히편지와필담자료에는생생한분위기와함께당시지식인들의학적관심사가고스란히담겨있어그현장에함께있는듯한느낌을준다.『호저집』이18세기후반에서19세기초반한중지식인의교유현장을생생하게기록·재현하고있는점은무엇보다이책의가치를높인다.
셋째,당대한중지식인의교유계보와맥락을추적할수있게해주는자료집이다.『호저집』은홍대용에서비롯된전대의만남을잇고김정희,신위로이어지는성대한접속의출발점이된다는점에서한중문화교류상그가치가대단하다.기록속의만남은당시이들의교유가의례적인것에그치지않고조선지식인이중국의문인들에게높은인정을받았고,진실한교유를나누었음을증언한다.
넷째,특별히옹방강과완원,조강이나황비열같은학자들을매개로다음세대김정희로이어지는가교역할을한경과를알수있다.19세기초,김정희와신위등에의해주도된옹방강계열지식인들과의교유와인맥은실제로는박제가의인맥에서출발한것이많다.하지만이들중많은인물들의문집이중국에도남아있지않아,오로지『호저집』에남은정보가전부인경우가적지않다.즉중국건륭·가경연간지식계의정황을보정하는중요한자료이다.
다섯째,이들사이에오간시문과예물,서간등을통해당시한중지식인의문화취향과공통관심사를확인할수있다.서적이나시문,또는자신이거처하는공간의제액(題額)을요청하는일이빈번하였고,시문집에서문또는발문을써줄것을요청한내용도많다.도서요청이나금석문탁본등도주요관심대상이었고,그밖에문방사우나지역특산품도활발히오갔다.박제가는그들에게조선의갓과일본도를선물하기도했다.서로간에초상화를주고받으며,서로의생일을기억해서행사를갖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