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의 8대 조선 가마 (개정증보판)

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의 8대 조선 가마 (개정증보판)

$23.13
Description
『일본 도자기 여행: 규슈의 8대 조선 가마』 개정증보판에서
보다 깊이 있게, 좀 더 치밀하게 다룬
일본 도자기의 모든 것
메이지유신의 배경에는
조선 사기장에게서 탄생한 일본 도자기가 있었다!

일본 도자기 속에 감춰진
역사적 아이러니와 조선 사기장의 눈물
수백 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독보적인 기술력과 문화산업을 구축한 일본 도자기. 그러나 일본 도자기의 찬란한 성장 속에는 조선 사기장의 눈물이 감춰져 있다. 도자기 관련 다수의 저서를 펴낸, 세계 도자문화사 전문가 조용준이 『일본 도자기 여행: 규슈의 8대 조선 가마』 개정증보판을 통해 일본 도자기에 들어있는 역사적 아이러니와 조선 사기장의 한을 보다 깊이 있게, 다층적으로 파헤쳤다.
일본 도자기는 뛰어난 예술성과 실용성을 강점으로 근대화시기 유럽 각지로 수출되며 일본이 막대한 부를 쌓고 메이지유신을 추진할 수 있었던 자본의 근간을 마련해주었다. 일본은 파리만국박람회, 비엔나만국박람회 등을 통해 자국의 도자기를 세계에 알리며 판매에 활기를 띠었고 탄탄한 자본력이 구축되자 아시아 침략을 단행한다. 그리고 이는 대한제국 강제 점령으로 이어진다. 이번에 출간된 개정증보판에서는 일본 도자기에 얽힌 우리나라의 역사적 비극이 구체적인 사례와 다양한 사료로 제시된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보고 즐기는 도자기에 식기나 예술품 그 이상의 가치가 들어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저자

조용준

「시사저널」과「동아일보」에서기자를했고,「주간동아」편집장을지냈다.오로지‘내책’을쓰기위해마흔다섯살이되기전기자를그만두어야겠다고생각했고,실제로그렇게했다.

『유럽도자기여행』동유럽,북유럽,서유럽편3권과『일본도자기여행:규슈의7대조선가마』,『일본도자기여행:교토의향기』,『일본도자기여행:에도산책』3권,총6권의출간을통해국내최초로유럽...

목차

PROLOGUE밤은길고나는천년뒤를생각하네

첫번째가마
아리타·이마리,이삼평과백파선그리고3대명가

두번째가마
조선에서사용한요강대부분을만든하사미

세번째가마
가라쓰,또칠의나카자토가마

네번째가마
히라도·미카와치,나가사키수출이끈고려할머니와거관후손들

다섯번째가마
후쿠오카·고이시와라,팔산의다카토리가마

여섯번째가마
야쓰시로,존해의고다가마

일곱번째가마
하기·나가토,이작광·이경형제의후카가와가마,고라이사에손가마

여덟번째가마
가고시마미야마,심수관·박평의의나에시로가와가마

EPILOGUE27년전의나는왜아리타로갔을까?

출판사 서평

조선찻사발에매료된도요토미히데요시
수많은조선사기장을납치해가다

일본도자기의시작을말할때도요토미히데요시의열등감과조선사기장이삼평의백자광발견을빼놓을수없다.도요토미히데요시는자신의미천한출신을숨기고다이묘들을효과적으로통치하기위해차와찻잔,다도를이용했고특히나조선찻사발을몹시갖고싶어했다.임진왜란에참여했던다이묘들은도요토미히데요시의이같은욕망을채우고자수많은조선사기장을납치했는데그중이삼평도있었다.

이삼평은조선도자기와비슷한도자기를만들수있는흙을찾아일본이곳저곳을헤맸고마침내아리타이즈미산에서백자광을발견,일본최초의백자도자기를탄생시켰다.이사실이알려지자다른곳에사는사람들까지이삼평에게도자기제조기술을배우기위해몰려들었고오늘날일본의대표적인도자기마을,아리타가형성되었다.저자는조선사기장납치로시작되는일본도자기역사의태동과성장,변화과정을스토리텔링방식으로생동감있게묘사한다.더불어이삼평을비롯해김태도,백파선,이우경등일본도자문화사에큰영향을끼친조선사기장들의특징과각각의면모를세심히짚어준다.고향을그리워하며낯선이국땅에서도자기를구웠던그들의비애와예술혼이각챕터에깊이녹아들어있다.

일본도자산업의과거와현재를
엿볼수있는역사서이자예술서

조선사기장들은일본에서대를이어가며조선도자기와비슷하지만또다른,매혹적이고독자적인분위기의작품을만들어냈다.단정하고기품있는형상과절묘한유약이조화를이루는다카토리야키,도자기표면에유약이자연스레흐르는듯한세련된멋의아가노야키,정교한양각과투각기법으로뛰어난조형미를보여주는미카와치야키,청화백자와국화무늬세공의세밀한장식에서두각을보이는나카사토야키,다양한색채의유약을발라구운도자기위에그림을그린화려한분위기의아리타야키등은그형태와색감,질감면에서독자적인경지를이루었고지금까지도일본최고의가마로인정받는다.

저자는조선사기장의후예들을직접찾아가그들의작품을면밀히분석하고예술을향한열정과가치관에대해서도이야기나눈다.독자는지금이순간활발히활동하고있는조선사기장들의후예이자주목받는도예가들의이야기를들으며일본도자산업의과거와현재를상상해볼수있다.우아하고기품있는일본도자기의다양성을사진과글로생생히접할수있다.

오로지규슈아리타자기만을고집했던
일본왕실의그릇,개정증보판에서최초공개

2022년다자이후(太宰府)시에있는규슈국립박물관이사상최초로일본왕실에서사용하던그릇들을공개했다.일본박물관이왕실그릇전시회를연것은이번이처음으로오로지규슈아리타자기만을사용한왕실의그릇들이개정증보판에소개됐다.메이지왕의생일축하연에사용했던그릇,고사쿠라마치상왕이사용했던접시,고카쿠일왕이사용했던식기등을자세히살펴볼수있다.

조선에서솜씨좋은사기장들을납치해간뒤도예기술의명맥이끊어지다시피한우리나라와달리발전을거듭하며독자적인도자문화를꽃피운일본,이책에서그통한의역사를살피며우리도자산업이나아가야할방향과새로운문화창출의방향을떠올릴수있다.

책속에서

정유재란의끝무렵인1598년선조31년김해에주둔하던나베시마나오시게의부대가사기장들을강제로끌고왔는데,그중의한명이이삼평이었다.그는처음에는가라쓰근방다쿠에정착하여‘다쿠코가라쓰도자기’라불리는것을만들었지만,이에만족하지못하고조선의것과같은도자기를만들수있는흙을찾아이리저리돌아다니다가아리타의이즈미산에서백자광을발견,1616년광해군8년무렵변두리시라카와에서덴구다니가마를열고도자기를굽기시작했다.이같은사실이알려지자일본의다른곳에서도자기제조기술을배우기위해이곳으로사람들이몰려들기시작해오늘날도자기마을아리타가생겨나게되었다.
---「PROLOGUE」중에서

정조이후조선지배층은점점아리타자기에빠져들기시작했고,조선말에이르면일본도자기가아름답기그지없는조선백자의숨통을끊어버리게된다.조선의국운이기울기시작한19세기중반부터는우리궁궐에서도아리타백자를사용할정도가되었으니그참담함이란이루말할수가없다.일제36년의강점기와그이후한국전쟁을거치며우리도자기가겪은상처와단절은더말할필요가없다.
---「PROLOGUE」중에서

2022년다자이후시에있는규슈국립박물관이사상최초로일본왕실에서사용하던그릇들을공개했다.2022년9월27일부터11월20일까지‘왕실그릇특집전’을열고왕실에서사용하다야마시나가문에하사한그릇들을소개했다.일본왕실에서과거사용하다보존하고있는그릇이나현재사용하는그릇에대한공개는일종의금역(禁域)이어서이렇게귀족에게하사한그릇에대한공개로그일단을알아볼수있는것이다.물론일본의박물관이왕실그릇전시회를연것도이번이처음이다.
---「첫번째가마‘아리타·이마리,이삼평과백파선그리고3대명가’」중에서

하사미는인구1만5,000여명의작은마을이다.그러나나가사키현에서는가장크고,일본전국적으로보아도3번째로큰규모를가진도자기생산지다.이작은마을에무려150여개의가마가있고,그곳에서일본식기의15%를생산한다.생활자기의메카가바로하사미인것이다.그런데하사미는우리에게전혀익숙한이름이아니다.아마대부분이지명을모를것이다.이유가있다.에도시절에는하사미도자기도아리타와마찬가지로40분거리의이마리항구를통해외부에유통됐다.메이지유신이후에는가까운아리타역을통해기차로팔려나갔다.그러니하사미는자신의이름이불릴기회를잃고이마리야키아니면아리타야키로통칭된것이다.하사미에서처음으로가마를연것은1598년조선사기장이우경(李祐慶)으로돼있다.여기서“돼있다”라고표현한것은일본인들이그렇게하기로정했기때문이다.
---「두번째가마‘조선에서사용한요강대부분을만든하사미’」중에서

일본에서는최고의찻사발을선택하는기준으로‘첫째라쿠(?),둘째하기(萩),셋째가라쓰(唐津)’혹은‘첫째이도(井?),둘째라쿠(?),셋째가라쓰(唐津)’라는말이예부터전해져내려왔다.앞의말은제일가치가높은찻사발이교토의라쿠가마에서만든것이고,두번째가하기,세번째가가라쓰에서생산한것이라는뜻이다.뒤의말에서첫째‘이도’는‘이도다완’,곧조선의찻사발을지칭한다.위에서보듯어느말을선택한다해도가라쓰는빠지지않고등장한다.조선사기장들의피땀흘린노력으로인해가라쓰야키(唐津窯)는일본3대다기로성장하면서그유명세가높았다.
---「세번째가마‘가라쓰,또칠의나카자토가마’」중에서

사발이나꽃병,접시등의여러용도로만들어진카라코에를자세히들여다보면도자기의위쪽입술아랫부분에‘고(高)’자가띠모양의영락(瓔珞),구슬을꿰어만든목걸이나가슴치레걸이형태로둘러져있는것을볼수있다.이는히라도에있는고려묘비의‘高’자문양과같은것으로조선도공이만들었다는표식이다.글자에디자인적인변형을주어,그것이‘高’자임을모르게한것이다.이문양은카라코에와더불어미카와치도자기의대표적인상징이자,조선사기장의정신을나타내는것이라할수있다.
---「네번째가마‘히라도·미카와치,나가사키수출이끈고려할머니와거관후손들’」중에서

“일본이약탈해간한국의도자기기술은우리다카토리야키를비롯해서일본의도자기예술을크게발달시켰습니다.그반면에뛰어난도공들을모조리빼앗겨버린조선은도예의맥이끊어지고내리막길을걷게되었지요.일본이한국에서뺏어온것은모두돌려보내야된다는게제신념입니다.저는한국의젊은이를제자로받아들여다카토리야키의비법만이라도본래의자리로되돌리고싶습니다.”이런사실이언론에보도되자제자가되겠다고자원하는젊은이가무려2,500여명이나되었다.세이잔여사는그중에서2명을선발했다.당시서라벌고등학교이규탁군과중앙고등학교최홍석군이었다.
---「다섯번째가마‘후쿠오카·고이시와라,팔산의다카토리가마’」중에서

앞서보았던다카토리야키들은실제로위에서말한회령자기의특징을고스란히지니고있다.아가노야키도비슷하다.가장두드러지는특징은도자표면위에여기저기유약이자연스레흘러내린자국이다.유약은마치화산에서마그마가흘러내린것처럼전혀인위적이지않게눈물을흘리고있다.다만훨씬대범하고자유분방했을‘북방그릇의흔적’은일본에서는많이지워졌다.그네들의평소일상처럼매우조심스럽고간결하다.북방회령자기의거칠고남성적인기풍이남방의다카토리야키나아가노야키에서는좀더세련되어지고고분고분한맛으로변했다고보면될듯하다.
---「여섯번째가마‘야쓰시로,존해의고다가마’」중에서

조선도자기가가진뛰어난특징중하나는흙이주는멋이다.그러므로일본으로끌려간조선사기장들에게가장중요한일은앞서누누이보았지만조선도자기에서사용한흙과비슷한도토를찾는것이었다.하기야키의경우대표적인것이위에서말한호후시의‘다이도쓰치’다.모래와자갈이많이섞인백색점토인이도토가중요했던이유는하기도자기본래의색으로알려진비파색의유색을낼수있기때문이었다.지금까지도일본의다인들에게많은사랑을받고있는것은역시이도토로만든찻사발들이다.
---「일곱번째가마‘하기·나가토,이작광·이경형제의후카가와가마,고라이사에손가마’」중에서

박평의는아들정용(貞用),심당길등마을주민들과함께백자토를구하러다녔으나,용암이분출하면서형성된토질이워낙많았기에쉬운일이아니었다.그렇게번내를샅샅이돌아다닌지10여년만인1614년봄기리시마(霧島)산의이부스키(指宿)에서드디어양질의백자토를발견하고,이어가세다(加世田)인근에서유약으로쓸수있는광석도찾아냈다.백자토발견을학수고대했던요시히로는자신이직접흙을확인하고즉시나에시로가와에자기공장을세우라고지시했다.이렇게해서박평의와심당길이오랜시행착오끝에색이순연(純然)하여질이고아(高雅)한자기를만들어번주에게진상하니,요시히로는“조선의웅천자기와똑같다”고뛸듯이기뻐하며박평의에게세이에몬(右衛門)이라는이름과네가마의녹봉을하사하고,조선인마을을대신다스릴장로에해당하는쇼야(庄屋)에임명했다.
---「여덟번째가마‘가고시마미야마,심수관·박평의의나에시로가와가마’」중에서

아리타와규슈도자기의의미는조선출신사기장에대한연구만으로종결되어서는절대안된다.그것이일본근대화에어떤영향을주고,어떻게도왔는지,그리하여현대일본과어떻게연결되고있는지총체적관계를모두풀어내야비로소하나의단락,‘일본에넘어간조선도자기연구’가완성되는것이다.이런점에서우리학계의연구는아직시작도못한단계라할수있다.
---「EPILOGUE‘27년전의나는왜아리타로갔을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