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된, 몸 :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

와해된, 몸 :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

$18.00
Description
사고든 질병이든 그로 인한 장애와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적지 않다. 저마다의 절실한 사연을 지녔음에도 그러한 서사들의 공통점은 고통을 겪는 이가 시련을 거쳐 절망을 극복하고 교훈을 얻는 긍정적인 결말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고 기대하는 삶의 공통된 서사 구조와 진행 방식을 아주 닮아 있으며,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으려 하는 것인지 모른다.

여기 소개하는 크리스티나 크로스비의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는,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통념과 예상을 벗어나 버린다. 이 책이 여느 장애/서사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보다 우선 그간 우리가 접해온 서사들이 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와 방식으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경험해 보지 못한 몸-마음의 생생한 모험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데서 온다. 모든 불운한 개인들처럼,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왕성한 활동가였던 저자 크로스비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얼굴이 부서지고 부러진 경추에 척수가 손상되어 거의 전신이 마비되고 몸의 순환계도 망가져 버렸다. “강인하고 유능하며 매력적인 여성”은 과거에만 존재하고, 죽음보다 삶이 두려운 자리에서 그는 고통스런 현실에 순응하거나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언어의 범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와해된 몸’을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고집스럽게 실현하려 한다. 척수 손상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신경학적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무지를 밤낮으로 횡단하는 이 무모한 여행은 이를테면 “잃고 나서야 상실한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이성적 조언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정동이 이끄는 대로 고통의 지형도를 그려나간다. “얼어붙은 사람이, 눈雪을 생각해 내듯” 몸속의 고통과 두려움을 낱낱이 헤집고 셈하는 그녀의 글은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처럼 “번뜩이는 정밀함으로 타오르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 어느 것 하나 비루한 것으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끈질기게 이어진 그녀의 글쓰기는 “우아하면서도 무시무시”한 회고록을 남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내야 했던 그녀의 삶도, 그녀의 글쓰기도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의 지탱 없이는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와해된, 몸: 크나큰 고통 이후를 살아가다』는 손쉬운 자기 연민과 고난 극복의 서사에 저항하면서 스스로를 재정의하려는 안간힘인 동시에 파괴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너절하고, 취약하며, 퀴어할 수 있는지”를 우리가 알아주기를 요청하는 책이다. 그럼으로써 우연과 운명의 간섭에 취약한 우리의 몸과 상호의존성과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는 능력에 대해 숙고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취약한 몸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위태로운 존재들이지만,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드는 용기도 이 존재들의 얽힘에서 나올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자기 보존의 기술과 상품이 더욱 넘쳐나는 오늘도 여전히. 언제까지나.
저자

크리스티나크로스비

저자:크리스티나크로스비ChristinaCrosby
1953년미국펜실베이니아주헌팅던에서태어났다.스와스모어대학교에서영문학을전공하며,학내신문사에페미니즘칼럼을기고했다.스와스모어여성해방단체에서활동했으며게이해방단체설립에기여했다.1982년브라운대학교에서영문학박사학위를받고,이후웨슬리안대학교에서영문학과교수로재직하며웨슬리안대학교의여성학프로그램을발전시키고이를페미니스트,젠더,섹슈얼리티연구프로그램으로재설계하는데크게기여했다.『역사의끝:빅토리아시대사람들과“여성문제”』를비롯해빅토리아시대와페미니즘을주제로한다양한에세이를썼으며,장애학과퀴어,여성학연구자로활동했다.2021년췌장암으로세상을떠났다.2016년출간한『와해된몸』은쉰살생일을갓넘긴어느날자전거사고로목이부러져사지마비가된이야기로부터시작하는회고록이다.손상된몸으로인한비애와상실을겪는중에도관계를성찰하고삶을숙고하는과정이담긴서사라는점에서여러매체와독자들에게극찬을받았다.

역자:최이슬기
고려대학교와미국펜실베이니아대학교,서울대학교에서중남미문학을공부했다.제12회한국문학번역신인상을수상했으며,옮긴책으로는『영원성의역사』(공역),『엄마,나는페미니스트가되고싶어』,『고어자본주의』,『암캐』,『이네스는오늘태어날거야』등이있다.


목차


추천의글

1.너의하찮은,취약한자아
2.내가들은그날의사건
3.어리둥절함
4.지옥에떨어지다
5.금전관계로맺어진돌봄
6.공간속에서길을잃다
7.남성,여성,아니면7월4일
8.시간은나를푸르른채죽어가도록두었다
9.제퍼슨클라크크로스비
10.폭력과성스러움
11.장이이끈다
12.나는당신의육체적연인이야
13.수요와공급
14.우리의개들
15.재세례파종교개혁
16.프리티,위티,게이.예쁘고,재치있고,흥겨운
17.무서워!무서워!
18.살아가다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자전거를타는몸과휠체어에실린몸

자전거앞바퀴살에걸린나뭇가지하나가한사람의삶을완전히바꾸어놓을수있다.몸은이렇듯우연과운명의간섭에취약하다.빅토리아시대의문학을통해그시대와여성문제를연구하던퀴어페미니스트학자이자왕성한활동가이기도했던크리스티나크리스비는쉰살생일을갓넘긴어느날예기치못한자전거사고로운명이갈라진다.지나가던차에타고있던사람이달려와간신히죽음을면하지만,그때까지눈부시게충만하고자전거와오토바이로거리를질주하는것을즐기던“강인하고유능하며매력적인여성은온데간데없어지고,얼굴의뼈가부서지고목이부러지면서척수가손상되어전신이마비되고몸의순환계도망가져버렸다.이갑작스런변화가준충격의강도는그녀에게사고의순간에대한기억도지웠고이제는누군가의도움없이는기본적인신진대사의처리도불가능한몸이되었다.‘납덩이의시간’의시작이었다.그후응급실에서재활병원으로,그리고집으로옮겨진그녀는2년뒤재직했던웨슬리안대학교에반일제연구교수로복귀하여학생들에게강의도할수있게되었지만그녀의몸은휠체어없이는움직일수도없고손을제대로펴지못하는불구에서벗어나지못했다.척수가손상된그녀의몸은시도때도없이전기가흐르는신경학적폭풍이휘몰아치는황무지일뿐이었다.파괴된몸속에서이해의영역을벗어난삶을살아야하는그녀에게만족스러운결말같은것은없었다(꿈꾸지도않았지만).18년을지탱하던그녀의몸은끝내작동을멈췄다.

『와해된,몸:크나큰고통이후를살아가다』는2016년세상에나온그녀의회고록이다.그녀가언제부터글을썼는지(쓸수있었는지),혹은쓰려고했는지는알수없다.죽음과같은잠에서눈을뜬순간부터?아니면티슈하나움직일수없는자신의손에절망하고,수도없는시도끝에연필을거꾸로잡고지우개로책장을넘기게된순간부터?그녀의말처럼“고통에울고,비명을지르고,격노하는것은언어가와해되었다는징후”이다.용량을초과하는끝없는고통에괴로워했겠지만그녀를견딜수없게했던것은이징후일지모르겠다.그녀를지탱하게했던것은언어의범주를벗어난것처럼보이는자신의끔찍한몸을말로표현하고자하는촘촘하고도고집스러운욕구였을거라는생각을해본다.그녀는이욕구를끈질기게실현하고자했다.그리하여그녀의글이세상에책으로나왔을때,사람들은처음당황했고,놀라워했고,마침내사로잡혔다.그것은무엇보다고통과함께살아가는것에대한지독한일기이자생존에대한복잡한긍정이기도한이책이지금까지의장애/고통서사와다름에서오는것이다.그간접해온고통을이야기하는방식과는다른그녀의글쓰기는우리를새로운미지의감각과경험으로이끌어간다.그것은생을긍정하기위해의식/무의식적으로건너뛴어두운자리들을드러낸다.무엇이며,어떤것들일까?

크나큰고통이후―척수손상의황무지를걷는여행

사고든질병이든그로인한장애와고통에대해이야기하는책들은적지않다.그러한이야기들은태어날때발견되는‘결함’으로추정되는것,유전적이상,치명적인사고의순간부터시작되며,대부분의서사는대개선형적인시간순으로전개되고사건들또한결과순을따른다.어렵지않게확인할수있는공통점은그러한서사들이저마다의절실한사연을지녔음에도거의어김없이고통을겪는이가시련을거쳐절망을극복하고교훈을얻는긍정적인결말로나아간다는데있다(물론세상에새롭게존재하는방식으로서장애를수용하고심지어축하하는이이야기들은그자체로결코나쁘지도해롭지도않다).독자들은잃어버린능력을되찾거나새로운능력을발견하려애쓰는인물들을따라그상황으로들어가고공감한다.그런데거기에는이야기속에몰두한우리자신을포함한모든인간적삶의궤적이구조화된공통의지평선이발견된다.곰곰이생각해보면그것들은오래전부터우리안에내면화되어있고기대하는인간적삶의공통된서사구조(빅토리아시대의문학연구자인크로스비가“리얼리즘‘서사라부르는)와진행방식을아주닮아있으며,어쩌면우리는그것을극적으로확인하고싶어그러한장애/고통서사들을찾아읽으려하는것인지도모른다.

『와해된,몸:크나큰고통이후를살아가다』에서는그러한일들이일어나지않는다.크로스비는몸이타들어가고,충격의정도가배가된전기가피부밑으로두껍게지속적으로흐르는,다시는완전히회복되지않을뒤엉킨신경이흉포하게윙윙거리며몸속을활개치고돌아다니는‘진짜지옥’에살게되었음을알고절망하지만,어딘가에있을지모르는출구같은것을찾으려는시도를하지않는다.그녀는아무것도극복하려하지않으며초월하려고하지않는다.대신무너진채로,부서진그자리에서난파된자신의몸속으로깊이들어가고자한다.에밀리디킨슨의시구절처럼“얼어붙은사람이,눈을생각해내듯”일상을잔인하게쪼개는몸속의고통과두려움을낱낱이헤집고셈하는그녀의글쓰기는주디스버틀러의표현처럼“번뜩이는정밀함으로타오르는”고통의해부도를그려간다.그녀는이를테면“잃고나서야상실한것을온전히이해할수있다”는식의이성적조언따위에기대지않고자신의정동이이끄는지점까지나아가려한다.그것은시간순도따르지않고,인과도드러나지않는삶의여러장면들을오간다.기억과망각사이에서한때는자신의삶이었던것에다가가는데골몰하고,이제는온전히체감할수없는자신의육체적욕망어느것하나도비루한것으로내던지거나포기하지않는,삶의짐을내려놓고싶은유혹을밀어내며,무엇보다손쉬운자기연민과고난극복의서사에저항하면서스스로의삶을재정의하려고안간힘을쓰는그녀의글쓰기는“우아하면서도무시무시한책”으로남아우리앞에놓여있다.

취약한몸,타자들,존재(관계)의해부학

그렇다고하여『와해된,몸:크나큰고통이후를살아가다』를고통의해부학으로만이해하는것은이책의절반만이해하는우를범하는일이다.이책은‘존재(관계)의해부학’이기도하다.책의첫시작에서부터크로스비는응급실침대에누인자신의와해되어버린몸이이제는누군가의크고작은도움없이는동물적생존도불가능해져버렸다는사실을상기시킨다.그녀의연인자넷은치명상을입었지만”인격personhood“을잃지는않았다고위로했지만이미내장깊숙이상처받았다는것을실감하면서부터’나자신‘으로부터분리되어완전히소외되었다는생각에사로잡힌,인간적삶에필수적인일관된’신체적자아‘조차손상되어혼란스러운그녀를끌어당겨공동체의일부로살아남게한것은그녀에게다가오고그녀를둘러싼타자들의존재때문이었다.

그녀의깊고무지막지하고압도적인고통이우리의시선을사로잡지만,파괴된몸안에서살아가는삶이얼마나너절하고,취약하며,퀴어할수있는지를전하는그녀의글은우연과운명의간섭에취약한우리의몸과상호의존성과서로의존재를지탱하는능력에대해숙고하도록우리를이끈다.“몸을가지고살아가는이상우리의몸에는늘구체적인타인이깃든다.”(김원영,『온전히평등하고지극히차별적인』,문학동네,2004,9쪽.옮긴이후기에서재인용)우리는언제까지나취약한몸속에서살아가야하는위태로운존재들이지만,삶을살아갈만한것으로만드는용기도이존재들의얽힘에서나올것이다.코로나시대를거치며자기보존의기술과상품이더욱넘쳐나는오늘도여전히.언제까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