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하)(한정판)

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하)(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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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삼국사기」가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정사라면, 「삼국유사」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을 견지한 야사에 해당한다. 5권 2책이며, 상권인 1, 2권은 주로 역사 사실을 다루었고, 하권에 해당하는 3, 4, 5권은 불교 사실을 다루었다. 내용은 주제에 따라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 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일연

일연은고려의승려이다.속성은전씨,이름은견명,자는회연,호는무극·목암이다.경주장산군(지금의경산시)출신으로,아버지는지방향리출신인언필이다.1206년(희종2년)에태어나1289년(충렬왕15년)입적하였다
충렬왕3년운문사에머무르면서「삼국유사」집필에착수하였다.특정신앙이나종파에얽매이지않고다양한불교신앙을표방하는저술을찬술했으며,선과교를막론하고많은불교서적을편수하였다.
9세때해양(지금의光州)무량사에서취학했으며,14세때설악산진전사로출가하여대웅장로에게서구족계를받았다.1227년(고려고종14년)선불장에나아가상상과에급제한이후포산(현풍현비슬산)의보당암·무주암·묘문암등지에서머물렀으며,1237년삼중대사가되고1246년선사가되었다.
대몽항쟁기일연은포산에서22년을보내면서뚜렷한행적을남기지않았다.1249년최씨무인정권과밀접한유대를가지고있던정안의초청으로남해정림사에머물게되었다.이는일시적으로최이에게반발한정안이수선사계통의승려를기피하여가지산문의일연을초청한것인데,이로인하여가지산문의승려들이최씨정권과연결되어1251년에완성된대장경조판중남해분사에서의작업에참가하게되었다.
1259년대선사가되었고,1261년(원종2년)원종의명에따라강화도에초청되어선월사에머물렀는데,이때지눌의법맥을계승했다.이는그가가지산문(헌덕왕때보조선사체징이도의道義를종조宗祖로삼고가지산보림사에서일으킨선풍)에서사굴산문(범일이강릉의굴산사에서선풍禪風을크게일으킴으로써사굴산파또는굴산선파라고함)으로법맥을바꾼것이아니라원종을옹위한정치세력이불교계를통솔하기위해일연을이전의수선사계통의승려를대신한계승자로부각하기위한것이었다.이를배경으로가지산문의재건에힘썼다.1268년왕명에의해운해사에서대장낙성회를주관하고,1274년비슬산인홍사를중수한후왕의사액에따라인흥사로개명했으며,같은해비슬산용천사를불일사로개명했다.
1281년경주에행차한충렬왕에게로가서,불교계의타락상과몽골의병화로불타버린황룡사의모습을목격하였다.
1282년충렬왕에게선禪을설하고개경의광명사廣明寺에머물렀다.1283년국존國尊으로책봉되어원경충조圓經冲照라는호를받았으며,왕의거처인대내大內에서문무백관을거느린왕의구의례(옷의뒷자락을걷어올리고절하는예)를받았다.
그뒤,어머니의봉양을위해고향으로돌아왔다.어머니가1284년에타계하자,조정에서는경상도군위화산의인각사를수리하고토지100여경을주어주재하게하였다.경상북도군위인각사에서는당시의선문을전체적으로망라하는구산문도회를두번개최하였다.
1289년금강인을맺고입적하였다.
대표적인제자로는혼구와죽허가있다.
저서에는「삼국유사」5권,「선문염송사원」30권,「화록」2권,「게송잡저」3권,「중편조동오위」2권,「조파도」2권,「대장수지록」3권,「제승법수」7권,「조정사원」30권등을저술하였다.

목차

하권(권제3~권제5)

권제3
제3흥법興法第三
순도조려順道肇麗/558
순도가고구려에불교를전하다/558
고구려불교가시작되다/559
찬하여말하다/561
난타벽제難陁闢濟/562
마라난타가백제불교를열다/562
찬하여말하다/564
아도기라阿道基羅/565
묵호자가향을전하다/565
묵호자가향을피워왕녀의병을치료하다/567
아도가신라에불법을전하다/568
묵호자와아도에대한논/573
담시가중국에서불법을행하다/576
찬하여말하다/579
원종흥법염촉멸신原宗興法厭髑滅身/580
법흥왕이불도를도울사람을구하자,염촉이내양하다/580
염촉이자신을희생하여불법의이익됨을깨닫게하다/583
흥륜사를세우다/586
법흥왕과진흥왕이출가한것에대한논/590
대통사가세워지다/592
찬하여말하다/594
법왕금살法王禁殺/595
법왕이살생을금하다/595
왕흥사·미륵사가세워지다/596
찬하여말하다/599
보장봉로보덕이암寶藏奉老普德移庵/600
보장왕이도교를따르다/600
보덕스님이절을옮기다/602
양명이개금으로환생하다/604
개금이왕에게도교를추천하다/606
보장왕이불법을믿지않아나라가망하다/607
보덕스님의제자/610
찬하여말하다/612
동경흥륜사금당십성東京興輪寺金堂十聖/613
흥륜사금당의10성/613
제4탑상塔像第四
가섭불연좌석迦葉佛宴坐石/615
월성동쪽에가섭불의연좌석이있다/615
찬하여말하다/617
일연이천지개벽연도를비평하다/618
요동성육왕탑遼東城育王塔/621
고구려성왕이탑을세우다/621
찬하여말하다/625
금관성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626
허황후가아유타국에서파사석탑을가져오다/626
찬하여말하다/628
고려영탑사高麗靈塔寺/629
보덕이신인을만나영탑사를세우다/629
황룡사장육皇龍寺丈六/630
진흥왕이황룡사를세우다/630
아육왕의황금황철로장육상을조성하다/632
찬하여말하다/636
황룡사구층탑皇龍寺九層塔/637
자장이태화지에서9층탑건립의연유를받다/637
백제에서공장을요청하여9층탑을건립하다/640
9층탑의영험/642
찬하여말하다/645
9층탑관련기록/646
황룡사종분황사약사봉덕사종皇龍寺鍾芬皇寺藥師奉德寺鍾/649
경덕왕이황룡사종을주조하다/649
경덕왕이분황사의약사여래동상을주조하다/650
경덕왕이주조하고자한성덕대왕신종을혜공왕대완성하다/652
영묘사장육靈妙寺丈六/654
선덕왕이영묘사를창건하고경덕왕대장육존상을개금하다/654
사불산굴불산만불산四佛山掘佛山萬佛山/655
진평왕때사불산에사방여래가떨어졌다/655
경덕왕대굴불사를창건하다/657
경덕왕이만불산을조성하다/659

〈이하생략〉

출판사 서평

「삼국유사」는이렇게엮어졌다
‘유사遺事’라는이름에서볼수있듯이「삼국사기」에서빠뜨린것을보완한다는성격을가진다.국가의대사업으로편찬된「삼국사기」는방대하고도정확한자료를바탕으로한것이지만,역사를기술하는태도와자료를다루는방식에있어편찬자의시각이지나치게합리성을강조하고,중국중심적이어서중요한역사적사실을소홀히다루거나왜곡하는경우가있었다.특히기존의역사에서중요한비중을차지하고있는불교적측면을무시하거나소홀히다룬점은승려인일연의입장에서수긍하기어려웠을것이다.
더구나일연이이를저작할당시는중국을지배하게된몽골의침략이계속되어,중국에대한모화사상이비판되고민족자주의식이강하게대두되던시기였다.일연의저술의도에는이같은민족감정이여실히반영되어있다.따라서「삼국사기」에서는가치가없다고제외시키거나소홀히다룬자료들에대해서주목하고새로운의미를부여한결과「삼국사기」에서는볼수없는내용도있고,다르게기술하거나해석한부분도적지않게있다.이런면에서「삼국유사」는「삼국사기」와서로대조적이면서도상호보완적인성격을가진다.
「삼국유사」는총5권으로구성되어있다.
내용상으로보면상·하양권으로구분되기도하는데,역사사실을주로다룬1,2권은상권에해당하고,불교사실을주로다룬3,4,5권은하권에해당한다.실제내용에서는주제에따라다시9개의편목으로나누어서술하고있다.
제1권에서는삼국역대왕들의계통을도표로보인왕력,건국의시조와왕들의사적을다룬기이紀異2편이들어있다.왕력편에서는중국의역사를상단에놓고그아래신라·고구려·백제의왕들을시대적으로배치하여대비시켰다.
기이편은제2권에까지이어지는데,전반부에서는건국의시조와왕들을중심으로삼국과그주변여러나라의유래와역사를이야기했다.전반부에서언급된나라는고조선을비롯하여위만조선·마한·진한·변한·대방·낙랑·가야·부여·말갈등수십개국에이른다.후반부에서는주로신라의역대왕들이중심이며,마지막부분에서는후백제와가락국에대한상세한기록을첨부했다.
제3권에는불교를전해준여러승려들의사적을다룬흥법,사찰의탑이나불상,건물등에얽힌일화를다룬탑상2편이실려있다.
제4권에는원광·자장·원효같은고승들의학업과공적을실은의해1편이실려있다.
제5권에는불교적이적을다룬신주,수도승들과신도들의정진하는모습과덕행을다룬감통,세속을떠나은둔하며덕행을닦는승려와신도들의생활및사상을이야기한피은,효행의미담을전하는효선등4편이실려있다.
「삼국유사」는오랫동안필사본으로전해져왔다.
후대로오면서필사본은판각본과활자본으로출간되어오늘까지전해지고있다.최초의판각본이언제간행되었으며어떻게전해져왔는지는분명하지않지만그동안의자료들을검토해볼때고려시대에처음으로간행되었음을알수있다.고려때의판각본은남아있지않으며,현재전하는것으로가장오래된판본은1512년(중종7년)경주부윤이계복이주관해서간행한정덕본이다.그는「삼국유사」의판본이마멸되어없어진것을애석히여기고,성주목사권진으로부터완본을구해서여러읍에나누어준뒤그곳에서부분적으로판각한것을모아간행했다.
그러나중간의편목명칭이빠져있고편저자의서명이5권에만실려있는것등으로보아이때에도이미내용상의혼란이있었던것으로보인다.이판각본은조선후기까지전해오다가1845년(헌종25년)에개간되었다.필사본으로는안정복이소장하던것이발견되어여러차례영인,출간되었다.일본교토대학[京都大學]문학부총서제6에수록되기도하고,국내에서고전간행회본으로영인되기도했다.이것은「삼국유사」의원형을확인하는데상당한도움을주지만,글자의탈락과오류가많고뒷사람이가필한곳이많아자료로서의가치를감소시킨다.
현대활자본으로는1908년일본도쿄대학문학부에서나온사지총서본史誌叢書本이가장오래된것인데,이것은임진왜란을전후해서일본으로건너간것을바탕으로하고,다른판본을참조해서교정한것이다.
국내에서발간된활자본으로는1928년조선사학회본과계명구락부에서출간한최남선의교감본및그것을다시수정한증보본이있다.이증보본은1954년에나온것으로그동안일반에게가장널리보급되었으며「삼국유사」연구의바탕이되어왔다.이것은계명구락부본을바탕으로하고순암본과광문회본및근년에제1권만이발견된송석하본등을참조해서교합한것이다.
「삼국유사」의가치는여러가지측면에서살펴볼수있다.
단군신화를실어민족의시조와유래를알수있게한점,한반도를중심으로생성·소멸했던여러나라에관한자료를실어우리민족의형성과정을살필수있게한점,신라가삼국을통일한후에당나라에예속당하지않기위해투쟁한사실을기록함으로써민족의자주의식을보여준점,「가락국기」를통해역사에서사라진가락국의모습을상세하게전해주는점등이그것이다.
당시의불교에관한풍부한자료가실려있으므로불교의전래와전파,사찰의건립유래,불교와민간신앙의갈등과화합등을살펴볼수있다.뿐만아니라당시정치상황과불교와의관계,중국불교및중국과의외교관계등도엿볼수있다.지은이자신이승려이지만불교의문제점과폐해에대해서도객관적비판을가하고있어사료적가치를더해준다.
당시에사용된거서간·마립간·차차웅·거칠부·벌지지伐知旨같은고유의지명·인명·관직명·사물명등을원음에가깝게표기하고있어서당대의언어생활을어느정도짐작할수있게한다.이를바탕으로해서고대국어의원형과변모과정을추적할수있게되었고,국어사의기술이어느정도가능하게되었다.국문학적측면에서는우선향찰로된향가14수의원문이설화와함께실려있어고대문학의모습을살필수있게해준다.
「구지가龜旨歌」·「해가사海歌詞」·「치당태평송治唐太平訟」과일연의찬시讚詩등한시漢詩작품도상당수들어있어당대한문학의흐름을살펴보는자료가되기도한다.또한작품속에풍부하게수록되어있는신화와설화들은우리나라산문문학의원류를밝히는데중요한단서를제공한다.「조신몽調信夢」·「김현감호설화金現感虎說話」·「거타지설화」등은후대소설의소재적원천이되어소설문학의발전에기여했다.
속담과격언,사물의형태를설명하는설화,기원을밝히는설화,지명의유래를밝히는설화등이풍부하게실려있다.악귀를쫓기위해문에그림이나글자를써붙이는관습이라든지,정월대보름날까마귀에게밥을해주는관습등의유래와의미를여기서볼수있다.이밖에도그안에인용된수백권의책이름을통해서당대의전적과문헌을살펴볼수있게된것도또하나의가치이다.「삼국유사」는우리고대사를총체적으로전해주는보고寶庫로서,최남선은이책의가치에대해서“만일「삼국사기」와「삼국유사」가운데하나를택하라고한다면당연히「삼국유사」를잡을것이다.”라고단언한바있다.


일연의「삼국유사」집필동기」

첫머리에말한다.대체로옛성인들은예악으로나라를일으키고인의로가르침을베푸는데있어괴력난신怪力亂神을말하지않았다.그러나제왕이장차일어날때는부명符命을받고도록圖籙을얻어반드시보통사람과는다른점이있으니,그런뒤에야능히큰변화를타서제왕의지위를얻고대업을이루었다.
그런까닭으로황하에서그림이나오고낙수洛水에서글이나옴으로써성인이나왔으며,무지개가신모神母를에워싸서복희伏羲氏가탄생하였고,용이소전少典의왕비인여등女登과교감하여염제炎帝를낳았으며,황아皇娥가궁상窮桑이란들에서놀다가백제白帝의아들이라칭하는한신동神童과통하여소호少昊를낳았고,간적簡狄은알을삼켜설契을낳았으며,강원姜嫄은거인의발자국을밟아기弃를낳았고,요堯는잉태한지14개월만에태어났으며,패왕은용과큰못에서교접하여태어났던것이다.그이후에도이와같은일이너무많으니어찌다기록할수있겠는가.
그러므로삼국의시조들이모두신기한일로탄생했음이어찌괴이하겠는가.이것이책첫머리에기이편紀異篇이실린까닭이며,그의도도여기에있는것이다.
「삼국유사」권1,「기이」1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