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만언봉사萬言封事”는 정치인이 꼭 읽어야 할 지침서다
「율곡전서」 총 44권 중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일명 「갑술만언봉사甲戌萬言封事」 또는 「만언소萬言疏」라고도 불린다. 갑술년에 올린 만언에 이르는 상소라는 뜻인데, 실제는 1만 2,000자가 넘는다. 또한 ‘봉사’란 옛날 중국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상주할 때 내용이 누설되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봉해 올린 데서 생겨난 말로, 흔히 장편의 상소문 또는 책자를 말한다.
당시 지진이 일어나는 등 천재지변이 심해 선조는 조정의 신하로부터 초야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구하는 교지를 여러 차례 내렸다. 우부승지에 재임했던 율곡 이이가 「만언봉사」를 지어 올린 것이다. 앞부분에서는 임금이 여러 선비들에게 직언을 구하는 심정과 취지를 약술하고, 본문에서는 정사의 문제점 7항과 대안의 9항을 실제 상황을 열거하며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이이는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때 이루어진 나쁜 습성과 규칙을 개혁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대 정치가 실질적인 공功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상하上下의 신뢰, 관리들의 책임 소재와 책임감, 경연의 운영, 인재 등용, 재해 대책, 백성의 복리 증진, 인심의 교화에 있어 실實이 없음을 지적, 분석하였다.
수신修身의 요체로 분발 · 학문 · 공정, 어진 선비를 가까이 함 등을 들었고, 안민安民의 요체로 개방적인 의견 수렴, 공안貢案의 개혁, 사치풍조 개혁, 선상(選上 ,지방의 노비를 뽑아 서울의 관아로 보냄)제도의 개선, 군정 개혁 등의 조목을 현황과 개선책 제시와 함께 논술하였다. 특히, 안민에 대한 진술은 당시까지 역대 조정에서의 해당 정사의 변천 과정을 따지고 분석한 토대 위에서 ‘옛 제도를 개량하여 새로운 법규를 만든다.’는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만언소의 내용은 당시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과 처방이라는 점에서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이는 말미에서 백성들의 원기元氣가 이미 쇠퇴해 10년이 못 가서 화란이 일어난다고 경고하고, ‘습속을 따르고 전례나 지키려는 의견들로 인해’ 흔들리지 말고 정성으로 해결책을 구하라고 권고하였다.
이이는 우부승지로 재직하던 1574년(선조 7년) 왕의 구언교에 응해 올린 것이다. 내용은 크게 왕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룬 것과 시폐(그 당시의 못된 폐단)를 지적하며 개혁안을 제시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두에서 이이는 때에 맞추어 변법(법률을 고침)하는 것이 영원불멸의 도道라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가를 세운 지 200년이 지났으니 조종지법朝宗之法이라도 상황에 맞추어 개혁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당시의 문제점으로 을사·기묘 사화 이후 관리 기강의 해이, 서리의 부패, 인재의 침체, 각종 제도와 형정刑政의 타락과 각종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대책을 논했는데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산군 때 공물이 늘어나고 불산공물不産貢物이 증가했으니 호구를 조사해 공물액을 다시 책정할 것, 공천 선상은 대립제가 성행하니 선상을 폐지하고 신공身貢을 정부에서 일괄수거해 각사에 분배할 것, 지방관인 병사·수사水使·만호 등에게 봉급을 지급해 방군수포의 폐단을 줄일 것, 군사의 부방을 폐지하고 국경지방에서는 주민을 훈련시켜, 능력이 뛰어난 자는 노비라도 권관으로 등용할 것 등이다. 16세기의 사회 상황과 이이의 정치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이다.
「율곡전서」 총 44권 중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일명 「갑술만언봉사甲戌萬言封事」 또는 「만언소萬言疏」라고도 불린다. 갑술년에 올린 만언에 이르는 상소라는 뜻인데, 실제는 1만 2,000자가 넘는다. 또한 ‘봉사’란 옛날 중국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상주할 때 내용이 누설되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봉해 올린 데서 생겨난 말로, 흔히 장편의 상소문 또는 책자를 말한다.
당시 지진이 일어나는 등 천재지변이 심해 선조는 조정의 신하로부터 초야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구하는 교지를 여러 차례 내렸다. 우부승지에 재임했던 율곡 이이가 「만언봉사」를 지어 올린 것이다. 앞부분에서는 임금이 여러 선비들에게 직언을 구하는 심정과 취지를 약술하고, 본문에서는 정사의 문제점 7항과 대안의 9항을 실제 상황을 열거하며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이이는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때 이루어진 나쁜 습성과 규칙을 개혁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대 정치가 실질적인 공功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상하上下의 신뢰, 관리들의 책임 소재와 책임감, 경연의 운영, 인재 등용, 재해 대책, 백성의 복리 증진, 인심의 교화에 있어 실實이 없음을 지적, 분석하였다.
수신修身의 요체로 분발 · 학문 · 공정, 어진 선비를 가까이 함 등을 들었고, 안민安民의 요체로 개방적인 의견 수렴, 공안貢案의 개혁, 사치풍조 개혁, 선상(選上 ,지방의 노비를 뽑아 서울의 관아로 보냄)제도의 개선, 군정 개혁 등의 조목을 현황과 개선책 제시와 함께 논술하였다. 특히, 안민에 대한 진술은 당시까지 역대 조정에서의 해당 정사의 변천 과정을 따지고 분석한 토대 위에서 ‘옛 제도를 개량하여 새로운 법규를 만든다.’는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만언소의 내용은 당시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과 처방이라는 점에서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이는 말미에서 백성들의 원기元氣가 이미 쇠퇴해 10년이 못 가서 화란이 일어난다고 경고하고, ‘습속을 따르고 전례나 지키려는 의견들로 인해’ 흔들리지 말고 정성으로 해결책을 구하라고 권고하였다.
이이는 우부승지로 재직하던 1574년(선조 7년) 왕의 구언교에 응해 올린 것이다. 내용은 크게 왕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룬 것과 시폐(그 당시의 못된 폐단)를 지적하며 개혁안을 제시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두에서 이이는 때에 맞추어 변법(법률을 고침)하는 것이 영원불멸의 도道라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가를 세운 지 200년이 지났으니 조종지법朝宗之法이라도 상황에 맞추어 개혁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당시의 문제점으로 을사·기묘 사화 이후 관리 기강의 해이, 서리의 부패, 인재의 침체, 각종 제도와 형정刑政의 타락과 각종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대책을 논했는데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산군 때 공물이 늘어나고 불산공물不産貢物이 증가했으니 호구를 조사해 공물액을 다시 책정할 것, 공천 선상은 대립제가 성행하니 선상을 폐지하고 신공身貢을 정부에서 일괄수거해 각사에 분배할 것, 지방관인 병사·수사水使·만호 등에게 봉급을 지급해 방군수포의 폐단을 줄일 것, 군사의 부방을 폐지하고 국경지방에서는 주민을 훈련시켜, 능력이 뛰어난 자는 노비라도 권관으로 등용할 것 등이다. 16세기의 사회 상황과 이이의 정치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이다.
율곡 이이의 정치 필독서 만언봉사
$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