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들의 시학

평범한 날들의 시학

$16.00
Description
『평범한 날들의 시학』 책소개
- 사라짐의 시학, 존재의 빈 자리를 건너는 언어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침묵 속으로 밀어넣는다.
기억은 가볍게 휘발하고, 발자국은 빛보다 빠르게 지워지고, 살아 있다는 감각마저 손끝에서 흘러내린다.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이 사라져가는 세계의 변두리에서 조용히 시선을 들고, 아주 느린 숨으로 그 붕괴의 리듬을 기록한다. 이 시집은 삶을 찬미하지도 않고, 삶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삶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부재와 균열, 소거와 침묵의 과정을 낮고 투명한 언어로 끌어안는다. 깨진 유리잔 위에 앉은 빛, 금 간 거울에 번지는 얼굴의 윤곽, 비워진 잔 안에 고이는 사라짐의 기척 — 이 조용한 풍경들은 존재가 결코 스스로를 완성할 수 없다는 진실을 환기한다. 시인은 존재의 중심에 있지 않다. 그는 존재의 가장자리, 사라짐의 끝자락에 서서 오직 빈 자리를 응시한다. 그곳에서 그는 묻는다. 너는 이 사라짐을 견딜 수 있느냐고. 이 시집은 존재는 결국 부재의 반사이며, 삶은 느리고 조용하게 붕괴하는 것임을 은밀하게 드러낸다.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빠른 찬란함이 아니라, 아주 느린 기쁨의 잔향을 남긴다. 그 기쁨이란,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지워져가는 것들을 견디는 마음의 숨결이다.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조차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는다. 『평범한 날들의 시학』은 그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조용히 손을 뻗는 책이다.
저자

이은선

저자:이은선
나는더이상격하거나단정하지않기로했다.대신침묵의결,말이전의감정,되돌릴수없는사소한풍경에더오래머무르기로했다.찢기지않은달력,닳아버린문고리,벽에남은얼룩,바람이흔들다간커튼같은것들속에스며있는정적과윤리를붙들고싶었다.이름조차붙지못한감정,의도하지않고머문흔적,눈에보이지않지만끝내사라지지않는기척─이시집은그런것들을향한사유이자헌사다.

저서:『단상』『가슴앓이』『몹쓸마음』『아편쟁이』

목차

서문

1부

그림자와나란히11
골목끝,느린오후14
벤치위의구름16
서있는다는것의의미18
낡은신발이말해주는것20
느리게걷는하루들22
흙냄새가묻은노래26
멈춰선풍경28
저녁안개에젖다30
오래된길의침묵32
책상위의먼지34
잊혀진컵36

2부

사소한것들의집41
균열이있는풍경42
서랍속에남은편지44
바람에흔들리는커튼46
부서진화분48
종이위에남은자국50
지워지지않는얼룩52
손때묻은창틀54
시간의두께를재다56
노트의첫페이지57
오래된시계의숨결59

3부

시간의낙서63
스쳐간이름65
계절이지나간자리67
손목시계가멈춘날69
기억의이끼71
세월을건너는의자73
닳아버린문고리74
낮은목소리로흐르는시간76
부러진나뭇가지78
먼지쌓인달력80
물한잔의온도82

4부

다시시작되는하루85
저물어가는빛86
불완전한순간들88
흘러내린약속90
금간거울92
깨진유리잔을들여다보다94
삐걱거리는계단96
어긋난발자국98
비워진잔100
잃어버린단어102
틈사이로스며드는빛104
살아있다는것106

평론,사라짐의미학,머묾의윤리107

출판사 서평

삶은거창한장면이아니라,사소한것들의연속으로이루어진다.그러나그사소한것들을붙잡는일은언제나어렵다.세상의속도가너무빨라,우리의마음이그것을따라잡지못하기때문이다.《평범한날들의시학》은그잃어버린‘느림의언어’를되찾으려는한시인의여정이다.시집속에서시인은걸음을늦춘다.“시간의숨결보다한박자느리게,생각의그림자보다한걸음뒤로”걷는다.그의시는멈춤과고요,침묵과관조의세계를향한다.

먼지와커튼,낡은신발과금이간벽,비에젖은골목과사라진이름들-그모든미세한존재들이그의시안에서다시숨을쉰다.이시집은한편의일기이자,오래된풍경의기록이다.시인은흙냄새가피어오르는자리에서삶의근원을묻고,깨진화분속피어난꽃을보며상처의의미를새긴다.지워지지않는얼룩,금이간거울,닳은문고리,먼지쌓인달력은모두‘살아있음’의흔적들이다.

그의시선은낡고퇴색된것들을향하지만,그속에서오히려생의윤기를발견한다.《평범한날들의시학》은‘흘러간것들’에대한애도가아니라‘남아있는것들’에대한헌사이다.시인은묻지않고기다린다.말대신바라보고,기록대신기억한다.그의시는한문장한문장마다공기를머금고,빛의결을따라흘러간다.그길위에서독자는문득멈춘다.그리고깨닫는다.삶이란거대한파도가아니라,매일의미세한떨림으로이루어진다는것을.

시집의말미에이르면,그는이렇게속삭인다.“완전한것은없다.부서진틈사이로빛이스며들고,그틈에서야비로소우리는살아있음을느낀다.”이문장은시인의모든시를관통하는중심이다.그는부서진자리마다빛이머문다고믿으며,멈춘풍경속에서다시시작되는하루의조용한기적을노래한다.《평범한날들의시학》은빠른세상속에서잃어버린‘느림의감각’을되돌려주는책이다.이시집을읽는다는것은,곧내안의침묵을복원하는일이다.낡은길위에쌓인먼지한톨,잊힌컵의온기,지나간시간의그림자하나에도마음이머무는순간-그곳에서우리는비로소,‘평범한날들’이지닌고요한시학을만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