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시집은 한 사람의 생이 오래된 마을을 지나가듯 흘러가는 여정이다. 어린 시절 뒤안의 대숲과 장독대의 햇살, 공일에 뒤집어 걸린 가마솥 뚜껑 냄새와 장날을 향해 화장하던 엄마의 손끝이 다시 천천히 떠오르고 그 기억 위에 농사짓는 사람들의 뼈마디와 아버지와 할매, 문해학교 만학도들의 고단한 숨이 차곡차곡 얹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주의 들판과 갑장산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채석강의 바람과 곶감 말리던 겨울의 손길이 등장하여 삶의 풍경이 자연의 호흡과 맞물려 하나의 계절처럼 이어진다. 그렇게 삶은 언제나 땅의 언어와 공명하며 자라고 여물고 잦아들고 다시 피어났다. 시집 속의 시간들은 모두 멀어진 듯하지만 그 잔향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늙은 친정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처럼 잊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문득 되돌아와 어깨에 손을 얹고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로 살짝 되살아나며 오늘의 마음을 조용히 데우는 것이다. 삶의 노동과 슬픔, 봄날의 연둣빛과 노년의 서늘한 긴장, 고향의 냄새와 늦은 깨달음이 모두 한 줄기 길이 되어 이 책 속에서 서로에게 길을 건넨다. 《늙은 친정을 간다》는 지나간 시간을 되짚는 시집이 아니라 시간이 우리를 어떻게 다시 길러내는지 보여주는 한 권의 생애서이다.
늙은 친정을 간다 (이순영 시집)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