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 그 치명적인 유혹 (정희동 시집)

활, 그 치명적인 유혹 (정희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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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시집은 국궁(國弓)이라는 전통적 행위를 매개로 한 인간이 삶의 선택 앞에서 취해야 할 윤리적 자세와 존재의 긴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이다. 활을 쏘는 행위는 여기서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몸과 마음, 개인과 공동체, 결과와 책임을 동시에 시험하는 하나의 구조로 작동한다. 시인은 설자리에 서는 순간부터 발시 이후의 잔신(殘身)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술적 설명이 아닌 체화된 언어로 끌어올린다. 만작에 이르기까지의 기다림, 놓아야 할 순간을 아는 절제, 쏜 뒤에도 남아 있는 마음의 무게는 결과 중심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비껴가며 과정과 태도의 가치를 전면에 세운다.

국궁의 전문 용어와 규율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적 밀도를 형성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동진동퇴’, ‘습사무언’, ‘집궁례’와 같은 개념들은 공동체 안에서 행위가 어떻게 윤리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의 기량보다 질서와 침묵을 앞세우는 태도는 이 시집이 지닌 미학적 선택이자 사유의 중심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시집이 흔들림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살의 궤적은 직선이지만 삶의 궤적은 언제나 포물선을 그린다. 시인은 그 불완전한 곡선을 부정하거나 교정하려 하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하나의 완성으로 제시한다. 이 시집은 감정의 과잉이나 서사의 과시를 경계한다. 대신 반복되는 습사, 계절의 순환, 몸의 미세한 감각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사유의 깊이에 도달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읽히기보다는 머무르게 되는 시집에 가깝다.

활을 아는 독자에게는 수행의 언어를 문학으로 환원한 기록이며, 활을 모르는 독자에게도 자기 삶의 설자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보편적 사유의 장을 제공한다. 국궁이라는 구체적 세계에서 출발했지만 끝내 도달하는 지점은 인간이 선택 이후를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저자

정희동

정희동

경상남도진해에서태어나진해고등학교를졸업했다(38회).한국해양대학교항해학과를졸업하였고(43기),해군중위로전역했다.한진정보통신(주)의대한항공정보시스템실에서근무했다.현재한토스(주)대표이사및핀하이골프(주)대표이사이다.

2013년황학정입사하여박용범사범및윤상만명궁,김순희,김진영,이민명궁교수진에게활을배웠다.

목차

목차

서문4

1부황학정과활터의사계
황학정의봄16
황학정의여름18
황학정의가을20
황학정의겨울22
봄활터의꽃이전하는말24
황학정125
황학정228
신황학정팔경30
활터의봄나물32
활터의꽃34
한천각에앉아서36
활쏘러가는길38

2부활터풍속과사람들
활병42
집궁44
납궁46
출전48
활배웁니다50
명궁52
집궁례54
삭회56
사우158
사우260
집궁회갑61
한량162
한량264
열정66
어르신떠나신날68
벽안의궁사170
벽안의궁사272
사범74

3부사자성어
파사현정78
물아일체80
만개궁체82
우문현답83
동진동퇴84
습사무언86
일촉즉발88
4부활과인생그리고사랑
어느활꾼의기도92
쏜살94
활그리고인생96
과녁에서배우는삶99
끝까지100
화살기도101
활그리고화살102
변심104
애기살105
어느활꾼의사랑106
호위무사108
가시버시110

5부습사‧초물기
살의행114
한산정116
새벽습사118
관중으로가는길121
마치고122
설봉정에서124
무제125
습사126
내활을쏘다128
활과꿩130
구순몰기132
나는이미알고있었다134
얼마나좋을까?136
접장138
스나이퍼140
눈털기141
쏘는맛142

6부우리활‧활쏘기‧활과시
각궁1144
각궁2146
새활148
활과소149
궁시장150
범아귀151
날것152
궁체154
과녁156
되는날158
탄생159
야사160
겨냥161
만작162
나는살[箭]이다163
살날이[運矢臺]164
비겁한활꾼166
두번째화살168
4천년전화살171
더블타깃174
활은활[活]이다176
깍지179
활,그치명적인유혹180

추천사182
작가후기186

출판사 서평

이시집의출발점은늘설자리(射臺)다.그러나그설자리는곧일상의은유로확장된다.「황학정의사계」에서계절은자연의변주가아니라활꾼의몸과마음이반응하는리듬으로감각화된다.겨울의긴장,여름의무력,가을의관조,봄의회복은자연의묘사가아니라삶이통과하는내적상태에가깝다.시인은계절을바라보지않고계절속에서있다.이시집의중요한미덕은전문성의깊이를숨기지않는태도다.‘만작’,‘발시’,‘잔신’,‘홍심’,‘습사무언’,‘동진동퇴’같은활터의언어는주석과해설을동반하지만시의긴장을해치지않는다.오히려이낯선언어들은삶의특정국면을정확하게겨냥하는개념어로기능한다.만작은단순한기술용어가아니라넘치기직전까지자신을밀어붙이되멈출줄아는삶의상태를상징한다.발시는포기가아니라결단이며잔신은끝난이후에도책임을거두지않는윤리다.특히이시집에서반복적으로강조되는‘잔신’의개념은주목할만하다.화살은떠났으나마음은떠나지않는상태,결과이후에도태도를거두지않는자세,이는현대사회에서가장희소해진덕목을정확히겨냥한다.성공이나명중보다이후의사람됨을끝까지붙든다.이러한태도는개인의수양에머물지않고공동체의윤리로확장된다.「집궁례」,「삭회」,「동진동퇴」같은작품에서활터는하나의사회다.먼저들어가고함께나서야하며혼자만의성취는허용되지않는다.활터의규칙은곧함께사는세계의최소한의질서로읽힌다.이시집은개인의수행과공동체의질서가결코분리될수없음을몸의경험을통해설득한다.또한이시집은시간에대한감각이매우단단하다.「집궁회갑」,「납궁」,「쏜살」같은작품에서는한사람의삶이화살처럼날아간다는진부한비유를넘어서시간이몸에새기는흔적을구체적으로드러낸다.닳아버린궁대,무뎌진촉,익숙해진설자리,시간은회상이아니라마모의감각으로나타나며그마모를부정하지않고끌어안는태도에서이시집의성숙이드러난다.

문체또한이시집의큰성취다.과장되지않은언어,군더더기없는직진성,그러나결코건조하지않은밀도,시인은설명하려들지않고보여주되끝까지버틴다.활을당기는동작처럼문장은끝까지긴장을유지하다가정확한순간에풀린다.이덕분에시편들은짧아도가볍지않고길어도늘어지지않는다.무엇보다이시집은삶을위로하기보다바로세우려는책이다.아픔을달래기보다는자세를고치고감정을풀어놓기보다는중심을낮춘다.그래서읽는이를편안하게하지않는다.대신읽는이로하여금스스로의설자리를돌아보게한다.나는지금어디에서있는가,무엇을겨누고있는가,그리고쏘고난뒤의마음을책임지고있는가.

결국이시집이도달하는곳은명중의환희가아니라끝까지서있는인간의형상이다.활은과녁을향하지만시의화살은독자의삶을향해날아온다.그리고묻는다.지금당신의삶은과연만작에이르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