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시민으로사는경험’속에서시민으로자란다
저자는민주시민교육을강화할것이아니라‘시민성을다른것으로대체해온구조’를들여다봐야한다고말한다.한국교육은사회문제가발생할때마다개인의품성과태도를강조하면서인성교육으로문제를덮어왔다.이런식으로‘인성교육’이‘시민교육’의자리에대신들어오면서교실에마땅히있어야할‘정의,연대,참여,권리’와같은시민의언어가밀려났다.“시민으로함께부대끼며살아가는삶의방식,공동체에스며든문화,그리고타인에게응답하는감각”,즉일상에서시민으로사는경험을통해서시민으로자랄수있다고저자는말한다.
시민을가르치는학교에왜시민이없는가
민주시민교육은낯선주제가아니다.교육기본법에도명시되어있고교육과정에도들어있고,교육청과학교에서매년관련계획을세운다.그런데도왜교실의일상은바뀌지않을까?시민을길러낸다는학교가학생은물론이고교사조차시민으로대하지않는다는것이우리교육의현실이다.
우리헌법은교사의정치적중립성을보장한다.‘보장한다’는말은정치권력이교사를권력을위한도구로끌어들이지못하도록법으로막아준다는말인데,한국에서이말은지금까지정반대로쓰여왔다.권력으로부터교사를보호한다는취지는사라지고,오히려권력으로하여금교사의시민적자유를막는방편으로쓰여왔다.이제우리는‘교육이정치적이라는사실을왜부정하는가’라고되물어야한다.
민주시민교육의길찾기를돕는일곱개의질문들
교육기본법은오래전부터교육의목적을‘민주시민으로서필요한자질을갖추게하는것’이라고선언해왔다.민주시민교육을위한정책과계획,선도학교와예산도꾸준히늘어났다.그런데교실의일상은얼마나달라졌을까.학생은자신의말이실제로힘을갖는경험을충분히하고있을까.교사는학교의의사결정에참여하고,사회의부당한문제를수업에서자유롭게다룰수있을까.갈등을함께해결하고규칙을함께만드는경험은교육의중심에놓여있을까.
이책은한국교육이시민을길러내지못하는구조적이유를일곱개의질문으로추적한다.‘시민성’이어떻게‘인성’과‘역량’으로바꿔치기되었는지,왜세계시민교육이라는우회로로먼나라의문제는말하면서가까운불의에는침묵하는지,시민을기른다는교사자신은왜시민으로서말할수없는지,돌봄과교육이왜분리되어왔는지,AI와기후위기시대를살아갈어린이들이왜의사결정과정에서소외되는지를묻는다.
인성교육과세계시민교육이라는우회로를택한학교의시민교육이어디서길을잃고있는지날카로운시선으로근본적인질문을던지는이책은민주시민교육의길찾기를돕는나침반인동시에‘교육이란과연무엇인가’에관한물음을담고있다.
책속으로
인성교육은좋은사람을기를수있다.그러나좋은사람과좋은시민은다르다.좋은사람일지라도부당한구조앞에서침묵할수있다.좋은시민은그침묵을깨는사람이다.한국교육은좋은사람을기르는일에는익숙하고,좋은시민을기르는일에는서툴다.(...)세월호참사이후에도우리는역시나‘시민’이아니라‘착한아이’를기르기로결정했다.그결정안에한국교육의근본적인질문이들어있다.
---「첫번째질문」중에서
배려는가르치되권리는가르치지않는사회,존중은말하되차별은말하지않는교실,이구조안에서인성교육은가림막역할을한다.‘우리는배려를가르치고있다’는위안,‘우리는존중을가르치고있다’는자기인증으로눈을가리고있는동안법은만들어지지않고,차별은구조적으로지속된다.
---「첫번째질문」중에서
5·31을떠받친핵심기조는‘열린교육체제,수요자중심교육,자율성,다양화및특성화,정보화’,이다섯가지로간추릴수있다.이가운데한국교육의패러다임을가장근본적으로바꾼것은두번째‘수요자중심교육’이다.이한구절이한국교육의문법을통째로다시썼다.그렇게학생과학부모는수요자가되고,학교와교사는공급자가되고,교육은그둘사이에서거래되는서비스가되었다.
---「두번째질문」중에서
역량은관리가능한,다시말해측정할수있고,비교할수있고,순위를매길수있는시민성을만든다.그러나시민성의핵심은관리불가능한자리에있다.부당한것앞에서멈추는감각,옆사람의고통에응답하는감각,기존질서에물음을던지는감각,이것은측정할수없다.측정하려는순간그감각자체가변질된다.
---「두번째질문」중에서
한국의교실에는두개의모습이겹쳐있다.하나는순응의교실이다.아이들이침묵하고정답을외우고어른의기대에맞추는교실,다른하나는경쟁의교실이다.아이들이침묵하지않는다.발표하고질문하고활동에적극참여한다.그러나그모든행위가‘나의역량을보여주기위한’행위로정렬된교실이다.두교실은다른모습으로보이지만같은토양에서자란다.한쪽은입을다물게하고,다른한쪽은입은열되혼자말하게한다.
---「두번째질문」중에서
한국사회는아프리카어린이를위해동전을모으는마음은길러왔지만학교담장바로밖의가난을가까이서들여다보는마음은기르지않았다.모의유엔에서난민문제를토론하는학생은길러왔지만같은교실에서누가겉돌고있는지,왜그런지를묻는학생은기르지않았다.
---「세번째질문」중에서
침묵하는교실에서어린이는침묵자체를배운다.불편한것은말하지않는편이낫다는것,다른의견은문제가될수있다는것,어른이정한것에따르는쪽이편하다는것,왜냐고묻지말고시키는대로해야칭찬받는다는것을배운다.이것이숨겨진교육과정이다.교실의구조,규칙의작동방식,교사와학생사이의권력관계,어떤질문이허용되고어떤질문이막히는지가모두‘숨겨진교육과정’을이룬다.공식교육과정에는“시민의기초를기른다”고적혀있지만,실제로작동하는교육과정은‘순응’의교육과정이다.
---「네번째질문」중에서
교실은조용하고,수업은매끄럽게흘러가고,아무일도일어나지않는다.그러나아무일도일어나지않는다는것이야말로이교실이잃고있는것이다.(...)침묵은문제를없애는것이아니라문제를다룰기회를없앤다.갈등이사라진것이아니라갈등을다루는법을배울시간이사라지는것이다.어린이는자기목소리가무언가를바꿀수있다는경험을해본적없이자란다.자기목소리가힘이없다고믿는사람은어른이되어서도좀처럼목소리를내지않는다.
---「네번째질문」중에서
한국민주주의를끝까지지켜낸사람들이학교에서시민이된사람들이아니라는것이다.그들은학교교육에도‘불구하고’시민이된사람들이다.침묵을가르치는교실에도불구하고,순응을새기는숨겨진교육과정에도불구하고,시민교육없이도시민이된사람들.이것은한국민주주의의저력이면서동시에위험이다.위기의순간에는분출하지만일상의토양은만들어내지못한다.촛불은켜지지만교실은침묵한다.비상계엄은여섯시간만에해제되었다.그러나교실의침묵은60년이넘도록깨지지않고있다.
---「네번째질문」중에서
「헌법」제7조제2항은“공무원의신분과정치적중립성은법률이정하는바에의하여보장된다”고정하고있다.보장은권리의말이다.‘권리를보장한다’는말의본래의미는정치권력이교사를자기도구로끌어들이지못하도록막는다는것이다.학교장이나정권이교사에게특정정치적입장을강요하지못하게막는일이다.그러나한국에서이말은정반대로쓰여왔다.권력으로부터교사를보호해야할헌법이거꾸로권력으로하여금교사의시민적자유를봉쇄할수있게하는방편이된것이다.
---「다섯번째질문」중에서
배려가한사람의마음에머문다면돌봄은개인을넘어사회의구조를보게한다.배려가개인의태도에서답을찾는다면돌봄은사회의구조에서답을찾는다.배려가‘착한아이’를길러낸다면돌봄은‘응답하는시민’을길러낸다.한사회가아이에게배려만가르치면아이는자기보다약한사람에게베푸는사람으로자란다.한사회가아이에게돌봄을가르치면아이는약함과강함이어떻게나뉘어왔는가를묻는사람으로자란다.다음시민교육이아이에게가르쳐야할것은배려가아니라돌봄에더가깝다.
---「여섯번째질문」중에서
지금여섯살인아이는2056년에서른여섯이된다.그때의기후가어떨지,그때의기술이무엇일지우리는알지못한다.우리가정할수있는것은하나뿐이다.그시대를살아갈사람이자기삶에관한결정에참여해본사람인가아닌가.교실의민주주의는미래를위한대비가아니라,그미래를살아갈시민의몫을지금돌려주는일이다.그리고그것은오늘,한아이의하루에서시작된다.
---「일곱번째질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