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후기
시인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에스페란토로 완역하고 출간한 데는 국내외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교감이 있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집 『님의 침묵』을 번역한 뒤, 다음 번역작업이 이 작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습니다. 2003년경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번역의 첫 나들이는 2006년 10월 한국에스페란토대회 분과 모임 “민족시인 윤동주 동시의 에스페란토 번역”(Esperantigo de la infanpoemoj de poeto Yun Dong-Ĝu)이었습니다.
2007년 1월에는 부산-양평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문화의 표현- 낭독을 중심으로’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문학의 밤을 열었을 때, 윤동주의 시 ‘서시(序詩)’가 에스페란토로 낭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윤동주선양회가 여는 문학예술제를 여러 차례 참관해 보았습니다. 또 이종현 전 부산지부 지부장님이 활동하시던 (사)〈시를 짓고 듣는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되어, 윤동주의 시 “길”을 에스페란토로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도서 출판 삼아 안태봉 시인을 만나게 되고, 나중에 윤동주 시집의 에스페란토 초역본(2011)이 그분 출판사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초역본 표지에는 에스페란티스토이자 화가인 정병미(Inda) 님의 귀한 작품이 작가의 시풍에 맞게 실려 있습니다.
2007년 9월에는 세계에스페란토작가협회
(Esperantlingva Verkista Asocio(poste Akademio Literatura de Esperanto, http://www.everk.it/)에서 저와 일본 작가 3분(Izumi Yukio, KITAGAWA Hisashi, USUI Hiroyuki)을 작가협회 회원으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는 에스페란토 독자들에게는 번역 이전 이후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겠다 싶어 여기에 적어봅니다.
먼저,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사랑하고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일본 후쿠오카 문학인들이 -윤동주 시인은 1944년 6월부터 1945년 2월 16일까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수감되어 그곳에서 순국함- 제가 에스페란토로 번역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곳 문학인들과 MUTO Tacuko 여사를 비롯한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제 에스페란토판 발간에 후원해 주었습니다. 저는 큐슈에스페란토대회에 역자로 초청을 받아, 윤동주 시인과 시에 대한 번역 소회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또 일본 오사카의 에스페란토 잡지〈La Movado〉 제722호에 ‘서시(序詩)’와 ‘버선본’의 에스페란토 번역본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도쿄 에스페란티스토 독자인 Take 여사는 자신의 서예전에 윤동주의 시 독후감을 실은 제 시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어로 번역된 윤동주 시 ‘사과’와 ‘기왓장 내외’ 중 일부〉
또, 중국 산시성(山西省) 태원(太原)시 백양수가(柏揚樹街)초등학교 웨이유빈(魏玉斌)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수필집 『柏揚情世界眼』(2022)(아래 사진)에 제가 번역한, 윤동주의 동시 10편을 중국어로 번역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국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제 졸역은 2011년 출간되자 곧 부산일보(2011년 4월8일)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에스페란토로 첫 출간됐다. 시 119수, 산문 4편이 담긴 116쪽짜리 포켓판 시집이다. 3년에 걸친 치열한 번역 손품으로 완성된 에스페란토 시집은 그러나 국내보다 해외에서 그 진가를 먼저 알아차렸다.
〈부산일보, 2011년 4월 8일자〉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번역 출간 장정렬 거제대 교수
특히 일본 애독자들은 일부러 부산을 찾아와 수 십권을 사갔고 내달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큐슈에스페란토대회에 번역자를 특별강사로 초청했다. 그 화제의 인물은 장정렬(50) 거제대 조선과 초빙교수.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전 교육이사 겸 부산지부 기관지인 '테라니도' 편집장이기도 하다.
"고맙지요." 그는 특유의 웃음으로 화답했다.
사실 출간도 일본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번역은 지난 2005년에 일찍 끝났습니다. 하지만 출판을 망설였지요. 비용이 만만찮았거든요."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일본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책을 사줄테니 출판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특강할 후쿠오카는 시인이 일본 경찰의 고문을 받아 순국한 곳이다. 지금도 시인을 추모하고 매달 그의 시를 애송하는 모임이 있다.
"윤동주를 흔히 저항시인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의 죽음에 따른 각인이 너무 강했던 까닭이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그의 119수 시를 찬찬히 읽으면 20대의 젊은 감수성이 더 돋보입니다."
장 교수의 시 번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3년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에스페란토로 옮겨 책으로 펴냈다. 당시 이를 본 뉴질랜드의 한 에스페란티스토는 "한국인의 사랑 표현에 감탄했다"며 호의를 보내 왔다. 지난 2007년 10월 출간한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도 당시 서울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출품해 전 세계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심금을 울렸다.
에스페란토를 한글로 바꾼 번역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국내에 출간된 율리오 바기(헝가리 작가)의 소설 '초록의 마음' 등이 그랬다. 중국 근대작가인 바진의 '봄 속의 가을' 한글판은 에스페란토 번역서로는 처음으로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그동안 10여 권 이상의 번역서를 냈지만 인세 수입은 거의 없다. 다른 언어와 달리 수요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번역과 출간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번역을 끝내고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도 수십 편에 달한다. 크로아티아 동화인 '견습공 흘라피치의 놀라운 모험'과 '침대 아래 이야기들', 헝가리 작가인 이스트반 네메레의 소설 '열정'과 '살모사', 폴란드 오제슈코바의 여성소설 '마르타'가 그런 경우다.
에스페란토에 빠진 지 벌써 30년. "지난 1981년 부산대 기계공학과 1학년 때 처음 배웠습니다." 그는 앞으로 춘향전, 흥부전 등 고전문학을 에스페란토로 옮겨보고 싶다고 했다. 또 부산에 살고 있는 만큼 동래야류와 같은 지역 문화상품도 번역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출판비다. "출판비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번역의 손품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또 이를 계기로 (사)윤동주선양회 입회하고 윤동주 시인을 선양하는 부산의 여러 시인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 단체의 2011년 “소통을 위한 윤동주 시의 모티브(Motive)”에 번역자로서 윤동주 시를 두고, 우리말로 소회를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윤동주 문학은 순수함을, 또 자기 내면을 더욱 파고들어, 독자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 작품을 읽고, 감상하며 번역하면서 느낀 점은 그 글과 시어 낱말의 선택에 있어, 오늘날 우리 젊은이가 가지는 것과 다르지 않아, 시 문학은 시대를 넘어서도 감동을 가져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自畵像)’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어릴 때 산골 마을에 살았던 적이 생각났습니다. 저희 마을의 한 가운데에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 우물 물을 길어 집으로 가고, 여름의 어느 날에는 사람들이 그 우물을 청소하기 위해 그 안의 물을 다 퍼내고, 사다리를 넣고서, 청소하는 주민이 그 안으로 들어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우물을 에워싼 통의 벽이 1미터 높이가 되진 않아도, 어릴 때는 그 벽이 크게 보였습니다. 두레박을 이용해 물을 퍼 담다가 한 번은 중심을 잃어, 아무도 주위에 없어, 그 우물에 빠져 버릴 듯한 위험스런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우물물을 통해 본 하늘의 모습은 정말 맑았고, 그 우물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는 때는 즐거웠습니다. 거울이 많지 않은 시절, 남자아이에겐 거울은 별로 의미가 없었던 시절에 이 우물 거울은 하늘도 거울속에 들어갈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우물이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그 기억이 윤동주의 시를 통해 다시 드러나면서, 나의 삶을 반추해 보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시가 내 삶의 거울로 나타나니, 나의 세월에 묻힌 때, 못난 얼굴, 안경마저 때로는 써야, 때로는 벗어야 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그 모습을 통해 마음의 빗질도 해 보고, 마음의 다짐도 하며, 세상에 나설 힘을 지니게 됩니다. 시가 있으니, 삶이 있고, 삶이 있으니 시를 읽게 되고, 이를 세상에 알리고 다른 언어로 만들고픈 생각이 들게 됩니다. 맛난 음식을 대하면 그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처럼….
또 다른 우물이 있었습니다. 저 산골의 다랑이 논밭의 어느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우물입니다. 평소에는 논물이 되기도 하고, 갈수기에는 농민들의 마실 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물이기에 차가웠고, 논에서 일하시는 부모를 위해 찬물을 가져다주는 일을 맡은 것 외에는 논에서 소년이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뙤약볕이었고, 큰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고 기우뚱거리며 논둑을 거쳐 부모님이 일하시는 곳으로 그 물을 ‘퍼왔습니다!’ 라고 할 때의 임무 완수. 어른들이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논밭에서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당시는 모르고, 오늘에서야 시인의 글을 통해서 다시 당시를 바라볼 수 있으니, 이것이 시인과 독자의 소통이 아닐까요? 시인의 시어가 내 추억의 바탕을 가진다는 것. 그것이 곧 소통이 아닐까요?”
한편 카톡에서도 조문주 문학박사님과 이남행(Feliĉa)님 등이 제 번역을 원본 뒤이어 배치해, 낭송해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코로나 19’ 기간에 진달래 출판사에서 에스페란토 본을 원본과 나란히 배치해 책으로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역자로서는 한편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 조심스럽습니다.
윤동주 시집 원본과 제 번역을 어떻게 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