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빈 신후담의 학문 세계 (동아시아 최초 서학에 대응한 학술적 논변자)

하빈 신후담의 학문 세계 (동아시아 최초 서학에 대응한 학술적 논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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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근대지향적 실학사상가로 서학을
대응적으로 이해하고 바판했던 학자
신후담(?後聃, 1702~1761)은 18세기에 활약한 성호학파의 한사람으로 실학자, 성리학자로서 철학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본관은 거창이고 자는 이로(耳老), 연로(淵老), 호는 하빈(河濱), 돈와(遯窩), 금화자(金華子)이다. 박세흥, 성호 이익의 문인이다.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723년(경종 3)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이후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몰두하였다. 그는 유학 뿐만 아니라 도가(道家), 불가(佛家), 병가(兵家) 사상에도 통달하였고, 특히 그는 『칠극』, 『직방외기』, 『천주실의』, 『영언려작』 등과 같은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이 책들을 통독하여 『서학변』을 저술하고 이들 서적들에 내포된 천주교리에 대해 하나하나 논평을 가하였다. 또한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참고하여 천주교의 영혼, 사후 세계를 비판하였다. 서학변을 비롯한 100여 편의 저서 작품을 남겼고, 소설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사후세계관 모두 실체하지 않는 존재로 백성들을 혹세무민하고 협박한다고 보았다. 일찍이 순암 안정복과 함께 성호학파 가운데 가장 독보적으로 학문적 일가(一家)를 이룬 것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안정복, 이헌경(李獻慶) 등과 함께 공서파 남인의 태두가 되었다.
이 책은 신후담이 당시 새로운 변화의 물결, 특히 서학을 강하게 비판하고 배척하였던 인물로서 많은 저술가로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유한 성호학파, 성호 이익, 소남 유농규, 정산 이병휴, 순암 안정복 보다 연구 관심이 소홀한데 대해 의문시하면서 그를 근대지향적 실학 사상가로서의 그 의미를 재부여해보려는 시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저자

강병수

·경북의성출생,동국대에서학사·석사·박사학위받음
·2005년부터한국학중앙연구원(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연구원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편찬연구실장,향토문화전자대전편찬실장등을역임.
·2012년한국학중앙연구원수석연구원으로연구정책실장역임
·동국대·호서대겸임교수,경기대·호서대등에서강사역임

주요논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수록인물추가선정방안연구』(공저),한국학중앙연구원,2008
·『한국의민족주의와탈민족주의』(공저),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2014
·『성호사설의세계』(공저/(주)푸른길,2015)
·「성호이익과하빈신후담의서학담론」,『한국실학연구6』,2003
·「18세기성호학파의학문과사상전개」,『중앙사론』21,호암김호일교수정년기념특집,2005
·「성호학파의동국경학사유」,『조선시대사학보』57,2011
·「하빈신후담의사칠론전개」,『한국실학연구』22,2011

목차

서언18세기조선의길목에서

Ⅰ.연구사검토

Ⅱ.생애와저술활동
1.가계
2.사우관계및학통
3.저술활동

Ⅲ.제자백가에대한이해
1.『팔가총론』ㆍ『팔가총평』의저술배경
2.『팔가총론』ㆍ『팔가총평』의체재와내용
3.제가백가인식에대한의미

Ⅳ.이학관과서학경험
1.17세기이전조선정치사회의이단비판론
2.신후담의이학관
3.서학정보에관한경험

Ⅴ.서학에대응하는비판과이해
1.이익ㆍ이식ㆍ이만부와의서학담론
2.서학에대응하는학술적논변

Ⅵ.경학사상의이해와해석
1.경학사상관련자료
2.생애시기별경학사상

여언동아시아에미래의길을묻다

미주
참고문헌
표목록
부록「하빈연보」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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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신후담은동아시아문물의본원本源은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주대周代까지의하화夏華문물,즉성인聖人들이이룩한유학원형儒學原型이라자부한것으로해석된다고보았다.그는『팔가총론』ㆍ『팔가총평』등을통해제자백가사상의비판적선택은물론유학본원에벗어난유가儒家사상도거침없이비판하였다.경학이해에있어서한대漢代는물론송학宋學까지비판적으로걸러내면서선진시대수사학洙泗學복원구명에전념하였다.그러한그의고구考究과정중에16~17세기동안중국·일본등을통해서학이조선으로까지들어오게된것이다.
그는조선의정치사회에서벌어지는당쟁도유학원형에벗어난학설상차이가원인이라고진단하고,한편으론18세기조선선비의관점에서유학원형회복을통한서학대응에선구자로나서려했던면으로도읽혀진다.그가『돈와서학변』저술에서드러난서양문물비판적대응,이익과서학담론을벌인〈기문편〉에서서양과학보다는천주교리에더많은관심을가지고강하게비판한그런국면은다음과같은그의사유를추측해볼수가있다.
그는스스로일천번이상독서한『논어』ㆍ『맹자』를해석한『논어차의』ㆍ『맹자차의』등을통해유학원형을‘콸콸샘물이솟아나오는근원’으로사유했을개연성을합리적으로추측해보았다.맹자는“근원이있는샘물이콸콸솟아나와밤낮으로쉼없이구덩이를채우고흘러내려사해四海에이르니,근본이있는것이이와같다.”라는그원천이바로하화문물,즉유학원형이라고신후담은확신한것으로읽혀진다.

한편,맹자는“진실로근본이없으면7,8월사이에비가집중적으로내려서크고작은도랑이나하천이흙탕물로넘쳐나도그물은곧말라버린다.”고했듯이,신후담이서학을허학虛學으로비유한논지는결국서학은‘근원이없는7,8월의폭우’로해석했을가능성이다.그는7,8월에내리는근원없는물이범람할서학물결이조선에위협으로다가온그추세를18세기적관점에서동아시아유학원형복원논리로대응해나가야한다는신념을견지하였다.

본연구자의위와같은해석에도불구하고신후담학문세계에대한총합적인위상평가는다음과같은미흡한분야와과제에관한다음연구성과를기다려야할것으로사료된다.

첫째,신후담을실학자또는경학자로보느냐의해석문제는실학과실학사상이무엇인가라는문제에서부터근대의정의나성격규정,내재적발전이냐서학의영향이냐에대한해석문제까지어쩌면통설적연구성과를전제로할지도모른다.또한,실학이나실학사상을전제하더라도제도적으로전개된사실이미미한이상,그것이시대적으로어떤의미를찾을수있느냐는비판적시각도엄존하고있다는측면이다.그러한제반적연구현황은차치하면서도본연구자는제현들이그동안신후담을실학자또는경학자로규정해왔던기왕의연구성과로는그의학문과사상의전반적천착에의한종합적평가를내리기에는아직이르다는견해이다.

둘째,그의생애에서소년기는자유로운교육환경에서이학異學,특히노장학ㆍ소설패사등에심취하고,청년기에는『쌍계야화』를통해붕당의원인을원시유학의원형에관한주소注疏차이에서비롯되었다고진단하며,그러한입장의연장선에서『팔가총론』ㆍ『팔가총평』등의저술을통해유학원형을제자백가사상과분별하여규명해내고자하는입장을견지하고있었으며,『서학변』에서는서양문물에대응하는비판과이해를유학원형을추구하는관점의입장에서구두선이아닌학술적논리로전개시켜저술을남겼다는국면등은당대학인들과는다른모습이다.

셋째,성호학파1세대로평가되는그는이익ㆍ이병휴등을중심으로전개한공부방법,즉자득自得을우선시해간국면이다.그의자득적의지의학문추구방법은의양衣樣적공부방법을우선적으로전개하던윤동규ㆍ안정복등과는다른모습이다.자득의공부방법은당시남인이던성호학파가노론의주자학비판을허용하지않는정파적입장을극복하려는명분적수단으로삼아가던학술추구전략이라고해석해볼수도있다.17세기이전에는조선학계가자득과의양의공부방법을가지고의도적으로전개한사실은쉽게찾아지지않고있다는본연구자의해석이다.특히,천주교교리를수용해간성호학파2세대가운데권철신ㆍ이기양등이주자학을비판하기위한수단으로자득적공부방법을선택해서전개한것도사실인데,천주교교리에관심을보이는그들의자득의공부방법을안정복이지속적으로비판한측면은그러한사실을반증한다.신후담은자유로운교육환경에서이학異學에빠진적이있었고,선유先儒들의학설에크게구애받지않고자기견해를주장해간국면은자득의공부방법을택해서전개해간것이었기에가능했다는본연구자의해석이다.

넷째,『서학변』의명확한저술시기가아직미결과제로남아있다.현재까지「하빈연보」에의한1724년설과신후담생애후반기인1753년설등두가지학설이있다.그렇지만본연구자는『서학변』과『서학변』의「기문편」에보이는내용과의연계성에비춰보아1729년이후로보아야한다는새로운해석을하고자한다.왜냐하면그는이익ㆍ이식ㆍ이만부등과만나서학에관한질의응답을한사실이『서학변』에대부분담겨져있기때문이라는사실이다.본연구자가그렇게해석해보고자하는이유는일반적으로학인들이저술의완성단계에이르기까지의문이남는논지는학식있는교유학인들과강론을통해보완하여다듬고그것을완결하려는과정을거친다는합리적추론에기초해서다.

다섯째,생애전반기서학에대응하는그의인식이생애후반기에는어떠한변화를보였을까하는문제가향후과제로남는다.즉,천주교리외서양의과학문화에대한그의입장등이새로운자료발견기대와함께생애전반기에보여준그의비판인식에서생애후반기는어떠한변화를보여줄까하는증험문제가그것이다.현전하지않거나쉽게찾아지지않고있는그의생애말기의저술인『천문략』ㆍ『곤여도설』ㆍ『해조설海潮說』ㆍ『조석설潮汐說』등이바로핵심적인자료들이라고판단되는데,그런저술에담긴신후담의이해가어떤지향으로전개된것인지에관한객관적자료의발견도여전한기대적과제로남는다.

여섯째,그의‘공희로이발설’의조선후기학설적위치를규명해야하는것도과제로남아있다.신후담의자득공부방법의연장선에서전개된그견해는그가학술적신념에서추구해간측면과학파적ㆍ정파적으로취하는입장은별개로생각했던결과물이라해석된다.그가정파적으로같은남인의종주인퇴계의사칠설에대해일정한비판을가한학설이라는사실이다.그는7년동안이나퇴계와논변한고봉高峰기대승奇大升,그리고사칠설에관해퇴계와대척점에있었던율곡이이의학설도수용하고있다는견해가그것인데,그러한국면에대한학설적인위치규정도남아있다.또한‘공희로이발설’은성호학파신후담과이익이몇년에걸친논변으로전개되다가소남윤동규와정산이병휴사이에서20년이상학술적논변으로확대되었다.신후담과이익의논변과윤동규와이병휴의논변의확대로이병휴는신후담의견해를‘공칠정이발설’로발전시켜나갔으며,결국이익의『사칠신편』중발重跋이라는특이한형식으로실리게된다.또한맹자로부터시작된‘사단’과‘칠정’으로나눠진두가지인간의정情을권철신ㆍ이기양등이‘정情은하나다.’로해석하여정주학을비판하면서,천주교교리까지수용해가는
단계로진행되었으며,그뒤다산정약용에게까지영향을미친학설이라는해석이다.

일곱째,그의생애가운데거의절반을『주역상사신편』저술등주역연구에열정을쏟은국면을주목해야한다는견해이다.그러므로『주역』에관한그의많은저술에관해서는향후지속적인연구과제로남아있다.그의주역에관한저술에대해서는최근에많은관심을보이면서지속적으로연구성과가나오고있다는사실은고무적이다.그렇지만,아직그의주역사상을역사적위치로올려놓을총합적해석을내릴연구성과단계까지는더많은연구지향이요구된다고생각된다.

여덟째,그를경학자로규정하려할경우좀더객관적이고구체적인고찰에의한평가적결론이내려져야한다는당연한귀결이아직남아있다.그가주자학을일정부분비판하기시작하고,선진경학추구를통해유가와기타제자백가를분변하여원시유학원형만을규명해내려는노력이당시조선사회의정치적사회적문제해결에어떤의미를지니느냐에대한해석의문제도남아있다.더욱이한국사에서근대라는시기구분과실학이라는역사적개념규정은여전히논의중에있다는엄연한사실을직시할필요도있다.사실그가『물산기物産記』ㆍ『백과지百果志』등곡식과농산물에관심을보인저술,『물외승지기物外勝地記』ㆍ『여지비고』부록등지리서,『해동방언海東方言』ㆍ『아언』등문자언어에관한저술,『동식잡기動植雜記』와같은동식물에관한관심을드러낸저술등등당시사회적실생활에필요한저술의고찰등이함께총합된뒤에해석되어져야할성격이라는이해이다.

아홉째,그의대표적저술중에서심의深衣제도고찰도한과제로남아있다.성호이익이신후담의새로운학설로인정하는두가지,즉‘공희로이발설’과‘심의’제도에관한그의견해가그것이다.주지하다시피심의는단순한의복이아니라선진先秦시대이래신분과질서를나타내는의미를담고있고,그
것이시대적으로어떻게변해오고그변화된사실을신후담은어떻게받아들여심의제도의복원을전개하려한것인지에대한자세한고찰도향후과제로남아있다.

열째,그의시가1,200여수를넘고있는데,그의시에관한연구성과는매우일천하다.특히그는당대최고의시를지었던이서우李瑞雨의외손이라는사실도고려되어이에관한많은연구도기대하는바이다.이연구과제는본연구자와전혀다른분야이므로더이상이연구분야를깊이언급하는자체
가외람될뿐만아니라능력밖이라고생각된다.

끝으로신후담이『쌍계야화』ㆍ『팔가총론』ㆍ『팔가총평』ㆍ『서학변』등에서일관되게보이는선진유학원형규명을명분으로비판적태도를강하게취해가는국면이다.신후담은중종반정으로그의8대조신수근과단경왕후등의정치적희생이당쟁때문이고,그당쟁의원인은선진유학원형을벗어난학설
차이에서비롯되었다고보았다.그는연산군대와중종대2대에걸쳐국구國舅를낸외척가문의후손이다.그것도정쟁에피해를입고폐비된사실이있는권세가이던조선조정의한축을이뤘던가문이다.그는중종의폐비인단경왕후와그녀의부친신수근의복위를위해부친신구중과직접그절차에필요한자료를준비하여조정에바쳤고,그들의전말을담은『소은록』과『온릉지』를편찬하는데직접참여하였다.왜냐하면전자는중종반정당시단경왕후의폐비와신수근의사사賜死사건전말을,후자는단경왕후복위이후『선원보감』을보완하기위해서편찬한책이다.이러한외척가문의후손으로서처신해오던국면은그가조선조정이지향하는정치사회적이념을뛰어넘는특별한사유를전개하기에는한계로작용된것으로도읽혀지기때문이다.

그러함에도불구하고『서학변』에서보인그의비판논리는경직된사유는아니라는해석이다.동아시아최초로서양문물을학술적으로비판하는신후담의유학적입장의대응은구두선이아니라줄곧학술적논리로자신의주장을펼쳤다는사실이다.그는서학의주장에대한대응으로6경과사서四書의세계를그증험의핵심자료로삼고있지만,서학의논지를철저히검토,정리하는입장에서저들의주장을조목조목분변分辨하여반박해간사실은대척적서학의학술적입장을냉철히존중한엄정한학인의모습이기도하다.그러므로그의서학비판은배척을위한비난이아니라서양문화에대응하는동양문화의관점에서객관적학술논변을수단으로전개했다는국면이다.그는미미한관심에그치고있기는하지만,‘서학의술術,과학이나기술은정묘精妙하다’고극찬한그런사실에서도서학에대한비판자로서만그를위치지우기에는적절하지않다는해석이다.그는서학을‘천학天學교리와술術(과학’로분변하여비판과이해를하려한측면은이중적이면서도타자를대하는그태도와논리는당대학인으로서는진취적위치로규정되어져야할성격으로읽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