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기존 판본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자세한 주석과 사진 자료를 더한 새로운 『백범일지』
왜 또 『백범일지』를 출간하나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6). 『백범일지白凡逸志』는 그가 쓴 자전적 기록으로, 「상권」과 「하권」, 「계속」으로 구성돼 있다. 출생부터 동학군 선봉장을 지내고 국모의 원한을 갚겠다며 치하포에서 거사에 참여했다가 수감, 탈옥 후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가 되었던 청년 시절과,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교육구국운동을 벌이다 1919년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조직하고 경무국장과 국무령을 거쳐 주석에 취임, 한국광복군을 조직해 항일무장부대를 육성하다가 광복을 맞아 환국한 일대기를 담았다. 1947년 국사원國士院에서 처음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40여 종(백범김구기념관 소장 목록 기준)이 출판되었으며, 어린이 도서까지 포함하면 80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백범일지』가 널리 읽히는 것은 백범의 애국 애족 정신을 배운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문제는 그 『백범일지』 각처에 잘못된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기존 판본들의 오류를 바로잡아 출간한 이 책 『새 번역 새 주석 백범일지』 역주자들에 따르면, 국한문 혼용의 친필본 『백범일지』를 기준으로 국사원 발행본을 비롯해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여러 『백범일지』 판본들에서 발견한 오류만도 250여 군데에 이른다. 따라서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정확한 내용의 『백범일지』 발간이 절실하다.”는 것. “이것이 평생을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범의 높은 뜻을 받들어 기리는 일이 되리라고 판단해 『백범일지』 한 권을 더 발간한다.”는 취지이다.
백범일지』에 나타난 오류와 새 번역, 새 주석
그렇다면, 그간 출판된 『백범일지』에 나타난 오류의 실상을 알아보자. 우선 친필본의 내용이 누락된 경우이다. 가령, “이시파尼市派는 창조創造 상해파上海派는 개조改造를 주장主張하였나니 소위所謂 창조創造는 현現 임시정부臨時政府를 취소取消하고 새로 정부조직政府組織을 하자는 것이고 개조파改造派는 현정부現政府 개조改造를 주장主張하다가…”, “기其 간부幹部는 윤기섭尹琦變 성준용成俊用 김홍서金弘叙 석정石正 최석순崔錫淳 김상덕金尙德 등等 제인諸人인데 즉시卽時로 환영회歡迎會를 개開하므로 기其 석상席上에서 통일문제統一問題를 제출提出하되…”에서 각각 밑줄 부분이 이유 없이 누락됐다.
백범이 잘못 쓴 친필본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쓴 경우도 나타난다. 全奉準은 全琫準으로, 金炳燕은 金炳淵으로, 朴永孝는 朴泳孝로, 金弘逸은 金弘壹로, 安進士 祖父는 安進士 父親으로, 受戒師는 授戒師로, 白衲은 百衲으로 고쳐 써야 하는데 그대로 잘못 쓴 것이다.
용어의 뜻을 잘못 해석해 독자에게 혼란을 일으킨 예도 있다. ‘한훤寒喧 후에’는 날씨의 춥고 더움을 말하는 “인사를 한 후에”의 뜻인데 이를 “한참 후에”로 풀이하고, ‘꽃게 한 머리’는 “꽃게 한 덩어리”의 뜻인데 이를 “꽃게 한 마리”로 풀이하며, ‘김양金樣’은 일본어로 ‘김 씨’ 즉 김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를 “김구의 형상”이라고 한 것 등이다.
한자를 잘못 쓰거나 음을 잘못 읽은 것도 많다. ‘茂朱邑’을 ‘武朱邑’으로, ‘동감폭포東坎瀑布’를 ‘동취폭포’로, ‘수원성綏遠省’을 ‘유원성’으로, ‘童蒙先習’을 ‘童夢先習’으로, ‘公震遠’을 ‘公鎭遠’으로, ‘韓弼昊’를 ‘韓弼浩’ 또는 ‘韓弼鎬’로 잘못 표기한 것이 그것이다.
『백범일지』 곳곳에 이 같이 잘못된 해석과 엉뚱한 오류가 많아 백범의 본의가 잘못 전달되고 있는 실정인데, 같은 내용의 오류가 여러 판본들에서 똑같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 책의 부록 ‘기존 출판 『백범일지』 정오표’에서는 이 같은 오류들을 상세히 밝히고 바로잡았다. 『새 번역 새 주석 백범일지』는 친필본 『백범일지』 원문에 충실함을 원칙으로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서술했으며, 친필본에서 훼손됐거나 내용 확인이 가능한 부분은 보완 서술했다. 어려운 용어나 인명, 지명 등을 각주에서 자세히 풀이했으며 본문 이해를 돕는 사진이나 지도 등 도판도 많이 수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6). 『백범일지白凡逸志』는 그가 쓴 자전적 기록으로, 「상권」과 「하권」, 「계속」으로 구성돼 있다. 출생부터 동학군 선봉장을 지내고 국모의 원한을 갚겠다며 치하포에서 거사에 참여했다가 수감, 탈옥 후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가 되었던 청년 시절과,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교육구국운동을 벌이다 1919년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조직하고 경무국장과 국무령을 거쳐 주석에 취임, 한국광복군을 조직해 항일무장부대를 육성하다가 광복을 맞아 환국한 일대기를 담았다. 1947년 국사원國士院에서 처음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40여 종(백범김구기념관 소장 목록 기준)이 출판되었으며, 어린이 도서까지 포함하면 80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백범일지』가 널리 읽히는 것은 백범의 애국 애족 정신을 배운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문제는 그 『백범일지』 각처에 잘못된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기존 판본들의 오류를 바로잡아 출간한 이 책 『새 번역 새 주석 백범일지』 역주자들에 따르면, 국한문 혼용의 친필본 『백범일지』를 기준으로 국사원 발행본을 비롯해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여러 『백범일지』 판본들에서 발견한 오류만도 250여 군데에 이른다. 따라서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정확한 내용의 『백범일지』 발간이 절실하다.”는 것. “이것이 평생을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범의 높은 뜻을 받들어 기리는 일이 되리라고 판단해 『백범일지』 한 권을 더 발간한다.”는 취지이다.
백범일지』에 나타난 오류와 새 번역, 새 주석
그렇다면, 그간 출판된 『백범일지』에 나타난 오류의 실상을 알아보자. 우선 친필본의 내용이 누락된 경우이다. 가령, “이시파尼市派는 창조創造 상해파上海派는 개조改造를 주장主張하였나니 소위所謂 창조創造는 현現 임시정부臨時政府를 취소取消하고 새로 정부조직政府組織을 하자는 것이고 개조파改造派는 현정부現政府 개조改造를 주장主張하다가…”, “기其 간부幹部는 윤기섭尹琦變 성준용成俊用 김홍서金弘叙 석정石正 최석순崔錫淳 김상덕金尙德 등等 제인諸人인데 즉시卽時로 환영회歡迎會를 개開하므로 기其 석상席上에서 통일문제統一問題를 제출提出하되…”에서 각각 밑줄 부분이 이유 없이 누락됐다.
백범이 잘못 쓴 친필본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쓴 경우도 나타난다. 全奉準은 全琫準으로, 金炳燕은 金炳淵으로, 朴永孝는 朴泳孝로, 金弘逸은 金弘壹로, 安進士 祖父는 安進士 父親으로, 受戒師는 授戒師로, 白衲은 百衲으로 고쳐 써야 하는데 그대로 잘못 쓴 것이다.
용어의 뜻을 잘못 해석해 독자에게 혼란을 일으킨 예도 있다. ‘한훤寒喧 후에’는 날씨의 춥고 더움을 말하는 “인사를 한 후에”의 뜻인데 이를 “한참 후에”로 풀이하고, ‘꽃게 한 머리’는 “꽃게 한 덩어리”의 뜻인데 이를 “꽃게 한 마리”로 풀이하며, ‘김양金樣’은 일본어로 ‘김 씨’ 즉 김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를 “김구의 형상”이라고 한 것 등이다.
한자를 잘못 쓰거나 음을 잘못 읽은 것도 많다. ‘茂朱邑’을 ‘武朱邑’으로, ‘동감폭포東坎瀑布’를 ‘동취폭포’로, ‘수원성綏遠省’을 ‘유원성’으로, ‘童蒙先習’을 ‘童夢先習’으로, ‘公震遠’을 ‘公鎭遠’으로, ‘韓弼昊’를 ‘韓弼浩’ 또는 ‘韓弼鎬’로 잘못 표기한 것이 그것이다.
『백범일지』 곳곳에 이 같이 잘못된 해석과 엉뚱한 오류가 많아 백범의 본의가 잘못 전달되고 있는 실정인데, 같은 내용의 오류가 여러 판본들에서 똑같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 책의 부록 ‘기존 출판 『백범일지』 정오표’에서는 이 같은 오류들을 상세히 밝히고 바로잡았다. 『새 번역 새 주석 백범일지』는 친필본 『백범일지』 원문에 충실함을 원칙으로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서술했으며, 친필본에서 훼손됐거나 내용 확인이 가능한 부분은 보완 서술했다. 어려운 용어나 인명, 지명 등을 각주에서 자세히 풀이했으며 본문 이해를 돕는 사진이나 지도 등 도판도 많이 수록했다.
백범일지 : 새 번역 새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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