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말을 거는 책 (다큐 PD 정석영의 문화예술ㆍ역사 기행)

당신에게 말을 거는 책 (다큐 PD 정석영의 문화예술ㆍ역사 기행)

$25.00
Description
다큐 PD, 카메라 대신 펜 들고
예술과 사랑을 이야기하다
45개국 돌며 기록한
가난과 예술, 광기와 웃음 그리고 사랑

탄자니아 최대 도시 다르에스살람. 30년 넘게 다큐멘터리 PD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교외 어느 초등학교를 찾았을 때 환호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한국 민간 단체와 방송팀이 이곳에 우물을 설치하자,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이들이 드디어 목을 축일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한 것이다. 그때 한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이 우물은 오래갈까요? 예전에도 마을에 우물이 생겼다가 물이 메말랐어요.” 저자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단순한 환호가 아닌, 희망과 불확실함이 뒤섞인 아이들의 복잡한 마음”이었다.
탄자니에서 오염된 물을 마시는 아이들을 취재하며 수없이 마주한 질문은 ‘이 장면을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아야 할까?’였다. 영상에 현지인들의 고통을 담는 행위는 늘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란다. 빈곤 포르노는 가난한 이들의 절망을 선정적으로 소비해 일시적 동정심을 유발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당신에게 말을 거는 책』은 “누군가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때로는 고통을 다루며, 때로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PD로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 장면들을 모은 기록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 역시 책임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장의 고통을 정직하게 보여주되,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함께 담아낸다”는 신념을 갖고 45개국을 누빈 ‘기억’의 기록이기도 하다.
카메라 대신 펜을 들고 시작한 이 또 다른 다큐멘터리는 방송 활동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서양 음악 거장들이 누워있는 오스트리아 빈의 중앙묘지에서 출발해 빛의 순간을 기록한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나고, 자유와 정의를 말하고 싶었던 위고의 자취를 좇는 등, 묘지와 미술관, 공연장과 도시의 길목에서 삶을 바라보고 기록하며 자기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예술과 풍경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술작품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말을 걸어왔다”고 고백하는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그 말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의 잔향이 감정을 깨우는 순간들을 기억한다. 그림이 나를 멈춰 세우고, 도시의 골목이 어떤 사유의 문을 열어주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다큐멘터리이자, 에세이이자, 지금 내가 세상에 붙들고 싶은 감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_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

정석영

사반세기를훌쩍넘도록다큐멘터리를만드는PD.카메라앞에선조용하다.뒤에선수다스럽다.필요하면카메라도든다.부족한스킬은진심으로메꾼다.계속찍고,듣고,묻는다.세상에말걸기를좋아한다.가난한나라아이들,유럽대륙에묻힌예술가,무대위의발레리나에게도말을건다.
예술은학교가아니라집에서배웠다.부모님의클래식과미술사랑덕에자연스럽게‘흡입’했다.
히말라야아이들에게한국어와영어를가르치는게버킷리스트다.그래서한국어교원자격증도땄다.아이들과미술을나누고싶어서울시립미술관도슨트와시민큐레이터과정도밟았다.이유는간단하다.아이들이좋아서.
일단꿈은확실하다.은근히실행력도있다.지금까지45개국을돌며가난과예술,광기와웃음,사랑까지만났다.책도한번써야지싶었다.그래서썼다.제목은고민없이,‘당신에게말을거는책’.화려한말보다사소한순간,결국다‘사람’이야기다.카메라대신펜을든PD가쓴조금은유쾌하고,많이진심인인생보고서.
지금말하고싶다.“혹시이이야기,들어줄수있나요?”

〈경력〉
ㆍ미국롱아일랜드대학교방송학전공.SBS프로덕션에서시작해지금은TVCHOSUN에서일하는중

〈수상〉
ㆍ제1회YWCA좋은TV프로그램상버금상(1996)_SBS‘추적,사건과사람들:해외입양아,친부모를찾습니다’
ㆍ방송통신위원회이달의좋은프로그램상(2017)_TV조선‘박종인의땅의역사-창파생멸(創破生滅)의땅,삼척’
ㆍ정보통신정책연구원시청자가뽑은「1채널1우수프로그램」선정_TV조선‘박종인의땅의역사’(2017년4분기,2018년1분기)
ㆍ몰타공화국방송어워즈TV르포르타주부문2등상(2017)

목차

PROLOGUE_당신에게말을거는책

SCENE01_예술은,내안의시간을깨운다
나의쇼팽,내영혼의발라드_파리와바르샤바를잇는음악여정
크레센도,임윤찬을따라가는여정
크레센도의또다른이름,조성진과협연의예술
32개의튀튀(TuTu),하나의호흡_발레군무의대서사시를찾아서

SCENE02_나는미술관에서도시를읽는다
시간의자화상,화가들이거울에비친자신을만나다
침묵의대화,그림속여인이전하는시대의이야기
빛과순간의여행,인상주의를찾아서
욕망과예술의아슬아슬한경계,명화속에로티시즘
황금빛도시빈,분리파를만나다
빈의황금빛열정_클림트와쉴레의예술로걷는기행
다빈치의마지막숨결을따라500년의시간여행
플란다스의개,예술과기억을찾아서안트베르펜기행
마드리드의빛과그림자속으로‘황금삼각형’예술기행

SCENE03_기억의풍경,다큐멘터리로걷다
카메라너머의존엄,아프리카‘빈곤포르노’의딜레마
부서진비석에서찾은역사,바람은기억을지우지않는다
임정둥이의기억,그기억의기록
덩케르크,시간의조긱들
자유와정의의종이울릴때_파리와런던을가로지른위고를따라걷다

SCENE04_존재와이별,예술의마지막목소리
카페와묘지에서만난파리의연인_보부아르와사르트르를찾아서
빛과고독,광기의여정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시작하다
묘지속의하모니,음악은계속된다_빈중앙묘지의거장들
페르라셰즈,예술가들의별이된자리

EPILOGUE_장면이지나간자리에서
부록_본문에소개된미술작품

출판사 서평

예술은,
내안의시간을깨운다

공연장을자주찾는저자는피아노의숨결과발레군무의호흡속에서자신의감정을움직이는예술의아름다움을만난다.

내가상트페테르부르크를처음방문한가장큰이유는바로발레공연과에르미타주미술관때문이었다.화려한궁전건축과유서깊은예술이넘치는도시.특히영하20도를웃도는혹독한겨울을뚫고극장으로향했던건,이곳에서만느낄수있는정통러시아발레의정수를기대했기때문이다.
‘백조의호수’는작곡가표트르일리치차이콥스키의첫발레음악이다.마법에걸려백조로변한공주‘오데트’,그저주를풀려는왕자‘지그프리트’,그리고검은백조‘오딜’과악당‘로트바르트’가얽힌동화적인서사가특징이다.
1877년모스크바볼쇼이극장에서처음선보인당시에는큰주목을받지못했으나,1895년마리우스프티파와레프이바노프가상트페테르부르크마린스키극장에서재안무한버전이대성공을거두며고전발레의상징으로자리매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레오니드야콥손발레단의‘백조의호수’를관람했을때,2막에등장하는32마리백조의군무에압도당했다.어깨부터팔,손끝까지날갯짓을흉내내는포르드브라(Portdebras)의디테일이모두한결같아,마치진짜백조들이호수위를유영하는듯한착각이들었다.작은호흡과떨림마저동일하게맞출때,‘인간의몸이이렇게까지정교해질수있나?’하는경이감을느꼈다.
특히‘네마리백조의춤(PasdeQuatre)’은작은동작하나라도어긋나면모두가흐트러지기때문에,성공적으로마친뒤터져나오는관객들의“브라보!”소리는무대의정적과극적인대조를이룬다.마지막에주연발레리나가32회푸에테(Fouetté)를깔끔하게마치면,극장을가득메웠던긴장감이한순간에터지며폭발적인기립박수가쏟아진다.
러시아발레는개성과더불어완벽한앙상블을추구하기로유명하다.‘32마리백조’가팔동작과시선까지일제히맞춰한몸처럼흐를때,‘이것이야말로러시아발레의정수’라는생각에누구나고개가절로끄덕여질것이다.

_‘32개의튀튀,하나의호흡_발레군무의대서사시를찾아서’중에서


나는미술관에서
도시를읽는다

“지도가아닌,그림속에서도시를만난다”는저자는거리보다미술관에오래머물고,그림앞에서도시의얼굴을기억한다.

렘브란트는네덜란드의레이덴출신이다.레이덴은16~17세기학문과인쇄문화의중심지로성장하며당대유럽지식인과예술가들이활발히교류하던도시였다.렘브란트는젊은시절부터명암대비가뚜렷한독특한기법으로주목받았다.
렘브란트의청년기자화상은생각보다작은크기이지만,그속에담긴에너지가범상치않다.
도슨트가말한다.“이그림은크기가작아요.그런데가까이들여다보면렘브란트특유의빛과그림자배치가놀라운입체감을만들어냅니다.머리카락쪽만조명을받은듯환하게비추고,반대쪽얼굴은어둠속에살짝감추었죠.이렇게‘부분적인밝음’으로시선을집중시키는방법이바로‘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의핵심이에요.”
도슨트의말처럼,곱슬거리는금발이빛을받으며실감나게표현된반면,반대편그림자의영역에서는윤곽이희미해진다.그럼에도청년렘브란트의눈빛은강렬하다.23세라는나이가믿기지않을만큼,그눈에는야망과호기심이뒤섞여있다.‘나는앞으로어떤길을가게될까?’,‘세상은내재능을알아줄것인가?’와같은질문이화면밖으로뿜어져나오는듯하다.붓자국은섬세하기보다는과감하고,어둠과빛이공존하는구도가이미‘명암의대가’가될미래를예고한다.이작은자화상속에서미래의거장이조용히숨을쉬고있었다.

_‘시간의자화상,화가들이거울에비친자신을만나다’중에서

기억의풍경,
다큐멘터리로걷다

“카메라가지나간자리에는늘침묵이남았다.사라진장면은내안에서다른형태로계속재생되고,그기억들을따라다시걷기시작한다.”

촬영을마치고언덕끝에섰다.태양빛하늘아래태평양은여전히푸르고,묘비는풀숲사이로조용히얼굴을내민다.120년전,이섬에닿았던사람들은각자다른이유로바다를건넜지만,‘조국을되찾겠다’는마음만은함께나눴을것이다.
이화여대아카이브에남아있던메리김함의목소리가떠오른다.“어머니는설령가난해도한국어만은꼭배우라고하셨어요.3월1일이되면모두태극기를흔들고만세를외쳤죠.”누군가는손에쥔동전하나까지독립운동자금으로보탰다.그렇게심어둔한글이름과작은흔적이,지금도묘비위에남아후손을기다리고있다.
나는묘비를잠시바라보다가,바람이더세게불어도이돌덩이가쉽게쓰러지지않을거라는확신이들었다.그안에새겨진이름과120년의이야기는생각보다훨씬단단했다.
‘우리가잊지않는다면,이들의이야기는끝나지않는다.’
역사란결국기억의문제다.누군가기억하고전하지않으면,아무리위대한이야기라도세월속에묻혀버린다.다큐멘터리〈나의아버지,하와이대한인(大韓人)〉.어쩌면그것은역사의빈틈을메우려는작은시도일뿐이지만,누군가는이영상을보고다시묘비를어루만져줄것이다.그리고120년전바다를건너온이들이남긴삶과흔적은하와이언덕을감도는바람속에서여전히,조용히이야기를전하고있다.

_‘부서진비석에서찾은역사,바람은기억을지우지않는다’중에서


존재와이별,
예술의마지막목소리

“무덤은삶이스쳐간자리가아니라예술과사랑이마지막으로숨쉬는공간이다.나는그침묵앞에오래멈춰선다.”

아침일찍아를에서제일먼저발걸음을옮긴곳은고흐의노란집터이다.안타깝게도집은현재남아있지않다.제2차세계대전당시연합군이론강의다리들을폭격하던중노란집도완전히파괴되었다.론강은그집에서불과5분거리에있다.그론강둑에서고흐는평화로운밤풍경을캔버스에담았다.바로그유명한〈론강의별이빛나는밤〉이다.1888년의평화로운풍경이1944년파괴되었다.별이빛나는밤의모습을간직했던〈노란집〉은암스테르담의반고흐미술관에서볼수있다.
그날저녁,나는론강을카메라에담았다.수많은포탄이떨어졌을풍경은평화로운일몰을머금고있었다.자연스레오르세미술관에서만났던〈론강의별이빛나는밤〉과일몰의론강이겹쳐졌다.내가방송제작시선호하지않는편집기법인‘디졸브’가아주느리고,깊게,10초간효과를넣고있었다.
론강을뒤로하고고흐의대표적야경작품중하나인〈밤의카페테라스〉의‘그카페’를찾았다.필수관광코스가된,의미가좀퇴색된카페는임시휴업중이었다.야경작품을다룰때고흐가흔히그리는‘이빛나는밤하늘’은독특한색채사용과감정적표현으로그의내면세계를반영한다.고흐에게는위안과영감의원천이었으며,그의작품에서중요한모티프로자주등장한다.

_‘빛과고독,광기의여정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시작하다’중에서


저자는이책은처음부터차례대로읽지않아도좋다고말한다.“어떤날에는음악이필요할수도있고,어떤날에는그림한장이,또어떤날에는오래된이름하나가마음을붙잡을수도있다.읽는이의감정이이끄는대로펼쳐도좋다.어쩌면그날의감정이가장잘들어맞는장면이당신을기다리고있을지도모른다.”는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