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꺼내 썼다 (고은수 시집)

모자를 꺼내 썼다 (고은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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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성현 시인이 짚어냈듯이 이번 시집의 핵심은 “응시”에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착란을 통해 견자가 된다”라고 한 랭보의 말은 어쩌면 이번 고은수 시집을 통괄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저자

고은수

부산에서태어났다.많은형제들속에서자랐지만고독한성격이많았다.슬프거나아플때노래를부르거나시를외웠다.하늘을보기를좋아했다.2016년『시에』로감사하게등단을했다.그리고10년을모은시들로첫시집『히아신스를포기해』를출간했다.시를생각하는날들은삶의군더더기를털어준다.더단순하게살고싶다.

목차

시인의말

1부
다시걷기
내안의느티나무
안부를묻다
낯선아침
돌아갈수있을까요
모자를꺼내썼다
인기척
계속태어나는일
여기만비가오지않아서
여름에아픈사람
아쉬운노래
D-1
그다음날
회복기

2부
새로쓰는마음
물웅덩이
당신에게전화를걸지도
네가온다면
저런빨강
저녁달
노란꽃
라,라,라
너는어쩔래
장미서른송이
오후네시
누가말좀해봐
출구
기도가필요한시간

3부
눈오는날
메타세쿼이아가붉어졌다
오타루
벽화앞에서
옷을뒤집어입고
구름의내면
다거짓말이었어
노을과통화중
가을이라서
옥천
깊은색
퇴폐적인기분
누구신지요
다시돌아오는것들
부디황혼안에머물기를

4부
구석이살아난다
나비야놀자
빙고
충분해요
나는매일우체국에간다
오늘강
분홍펜
여기서봄이잘보인다
날씨가왜이래요
슬픔이구구구
무늬
雨요일
안톨로기아
아침일기
2월

해설_응시,혹은주체의심연으로다가서기_박성현

출판사 서평

경계가흐려질때까지응시하기,주체의심연에다가가기
-고은수시집『모자를꺼내썼다』


부산에서활동하고있는고은수시인이두번째시집『모자를꺼내썼다』를펴냈다.
2018년첫번째시집(『히아신스를포기해』)에서사물들의틈을집요하게응시하고‘틈의미학’을발견해냈다면이번시집에서는응시를통해주체의심연에다다르고있다고할수있겠다.

박성현시인은이번시집을“응시,혹은주체의심연으로다가서기”라는말로요약하면서이렇게얘기하고있다.

“‘시각’의경계가머릿속에그려지는‘상상-이미지’로까지확대된다면단어와단어사이의경계는재배치되며시각화된단어들의연쇄가빚어내는매혹적인환영-예컨대,바슐라르의존재론적인‘떨림’-을충분히표현하는단어들도이끌어낼수있다.요컨대,‘가파른바위산을조심스레내려오는/하얀염소처럼,//내려오다가주위를둘러보고눈을맑게/뜨는두발’(「2월」」)에서보여주는‘시각’은‘응시’로써더욱깊어지고‘상상’을통해비약한다.
그런데고은수시인은왜이러한‘응시’를시작(詩作)의심급으로,주요한방편으로삼았던것일까.‘응시’가대상으로부터무한한가능성(잠재력)을이끌어내기때문일까.아니면구체적이고세밀한‘운동-이미지(상상)’까지도포획하는그강력한확장성때문일까.이유가무엇이든주목해야하는것은시인이사물을향해그물망처럼던진이‘응시’가단순한형상의기술,혹은1차원적묘사등으로기능하지않는다는점이다.‘남아있는마음이없다면/찬란할것도없는’(「저녁달」」)것으로,시인이포획한대상과시인자신의감각적상승혹은재편을유발하면서역동적이미지를창출하고있는것이다.”

“고은수시인에게있어‘응시’란세계속사물들의저우연하고도무질서한분산(chaos)에서‘일관된깊이’를보는것이다.또한자율적으로작동하는의미를잘라내고그‘너머’,곧사물의‘공백’과‘없음’까지도찾아내는것이다.”

“‘어디로도갈수없는창문은/먼데보는얼굴만갈아끼우고있다’(「雨요일」전문).이생경하고도놀라운문장을천천히읽어보자.‘어디로도갈수없는창문’이라는첫행의문장을통해마치압핀으로단단히고정되어버린주체의우울과멜랑콜리가쏟아진다.그런데곧바로‘먼데(를)보는얼굴’이라는문장이이어지면서화자는자신이하던일,혹은해야만하는행동을정당화하고주의를집중한다.이것이바로‘응시’다;대상에붙박임,주체의움직일수없음,그러나더욱더대상속으로파고들어야하는운명,곧보고자하는의지와용기.”

박성현시인이짚어냈듯이이번시집의핵심은“응시”에있다.그렇다면“시인은모든감각의오랜착란을통해견자가된다”라고한랭보의말은어쩌면이번고은수시집을통괄하는키워드가아닐까싶다.

분홍은조용히저쪽에있다
희열을말할자리를찾지못한채,
조금씩말라가고있다
잊고,잊고,잊고
그래도아직분홍이다

지금은여름이고장마철인데
예쁘다하고는언제잊어버렸나
색깔이분홍이니봄에나어울린다고
생각하다니,

쓸수있다,써진다
의미가없어도,말이맞지않아도
느낌은흘러나온다

분홍이구멍을내고있다
마른우물처럼먼지바람이날린다
윙윙거리며우는소리,
예전에품에품던다정함을
까먹고사랑을잃었다고짐작한다
-「분홍펜」전문

고은수시인의응시는마침내“분홍에구멍을내”기도한다.오랫동안응시하다보면눈물이나고눈이아파오겠지만,그결과사물에틈이벌어지고뚜렷했던경계가흐려질것이다.그리고마침내분홍에구멍이나는그지점에펼쳐지는진경을독자는보게될터,고은수의시가보여주고있는존재의심연이겠다.

내뱉는입김이공기를데운다

가파른바위산을조심스레내려오는
하얀염소처럼,

내려오다가주위를둘러보고눈을맑게
뜨는두발처럼,

내향적인들판에귀를기울여본다

바람의입은훈풍을노래할것이다

나는어딘가로갈생각이다
신성해지는돌을안고,
-「2월」전문

우연이겠지만,그의이번시집이2022년2월에세상에나왔다.그리고그의시집마지막에배치된시가「2월」이다.그리고시인은그마지막시에마침표대신쉼표를찍었다.그는아무래도더“어딘가로갈생각”인데,그의다음시집이기다려지는까닭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