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박용하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박용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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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불화(不和)의 시인, 불화(不和)의 시학
지금까지 펴낸 다섯 권의 시집-『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세계사, 1995),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문학과지성, 1995), 『영혼의 북쪽』(문학과지성, 1999), 『견자』(열림원, 2007), 『한 남자』(시로여는세상, 2012)-을 통해 “시인이 어떻게 당대(의 사회)와 불화(不和)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보여주었던 박용하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10년 만에 여섯 번째 개인 신작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를 펴냈다.
저자

박용하

1989년『문예중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나무들은폭포처럼타오른다』(1991),『바다로가는서른세번째길』(1995),『영혼의북쪽』(1999),『견자』(2007),『한남자』(2012),『26세를위한여섯개의묵시』(2022),『이격렬한유한속에서』(2022)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에게시편
무無의저녁
12월
우리는
이그림자없는거리에서
커피
스쿨버스
고별
하늘과바람과별과시
질문
좋아한다는말
인간이싫은날
거들떠보지않는죽음
역무원
엄마
없는사람
나에게

2부.내가사는세계의방식
구름이낮아보이는까닭
3월의마음
마음의3월
한국의가을
기시감旣視感
불굴의피로
생활의실패
생활
칭찬의세계
비판받을권리

폭력
당한사람
입장

거짓말의힘
거짓말왕국
진실
공부
아름다운사람
‘나’라는슬픔

3부.무한너머유한
처럼
목적지
미美

4부.옆구리만큼가까이있었다
시읽는밤
한줄을쓰는사람
1분후의세계
여름밤
이바닥에서놀다보면
거기에순간이있었다
비내리는세계
눈내리는세계
쓸쓸함에대하여
그리하여어느덧우리는

해설_불화(不和)의시학_고봉준

출판사 서평

이번시집의해설을쓴고봉준평론가는박용하시인과이번시집을“불화(不和)의시인이쓴불화(不和)의시학”이라정의하면서다음과같이말한다.

‘격렬한유한’이라는시집의표제가암시하듯이(박용하)시인에게삶은격렬한순간,그러니까불화의연속이다.이전에비해어조는낮고부드러워졌으나여전히그는(당대의)세계에대해강한거부의몸짓을유지하고있다.

박용하에게‘세계’는부재(不在)의공간이다.무(無),거짓(말),슬픔,실패,죽음등박용하의시집에는시인이긍정할수있는가치가등장하지않는다.물론이부재를몰가치로읽어선안된다.그의시에서‘부재’는가치의결핍을지시한다.현실세계에는그가지향하는가치가존재하지않는것이다.

박용하의시편들은가치의전도,즉자본주의적이해관계와‘돈’에대한욕망이지배하는세계,경제적이익을위해서라면서슴지않고인간을‘물건’처럼취급하는현실법칙,온갖폭력이난무하는현실을비판하고있다.(그러나무엇보다)박용하시의미덕은부정적현실에‘나’를포함시킴으로써비판을자기삶에대한성찰적에너지로전유한다는데있다.가령“인간이싫은날입니다/그렇다고내가맘에드는것도아닙니다”(「인간이싫은날」),“아직도안되는듣기”(「비판받을권리」)같은구절이대표적이다.

박용하에게시(詩)는‘쓰는것’이아니라‘하는것’,즉수행적인발화이다.“언어를바꾸려면삶을걸어야”(「입장」)한다는말처럼그에게‘시=언어’는이미-항상‘삶’의문제이다.


열대야에가만히물어본다
너는무엇을원하느냐
너는무엇을사랑하느냐
선풍기도에어컨도없이한여름을나고있는
지난해마냥부채에의지해이여름을나려는납량엽기가족이여
그가족중에
바람한점없는열기속에시를추구하는자가있다
불굴의시를원하는자가있다
팔꿈치에괴는땀을훔치며
날벌레들의난무를조용히지켜보며
바람한점없는열기를지키는일이사치라는것을
고압의비애라는것을
고장난사람의짓이라는것을
사랑의절정에서사랑한다고말할때처럼덧없는짓이라는것을
부질없는짓이라는것을
허망한짓이라는것을
시로말해지지않는짓이라는것을
그러면서이세상에따스하거나더운정신이란말이없듯이
땀에전러닝셔츠에게말하듯이또물어본다
열대지방에사는사람들에게도시가필요할까
시로서염원할그무엇이있을까
등줄기에줄줄땀이채고
몸닿는곳마다짜증스런밤에시를쓰겠다고덤비는사람이
그어느시절승부욕에휩싸여적개심과위악을감행하고
울분깨나쏟아붓던악동이었다는것을떠올려본다
2등은이미진거라며혈서를쓰기도했던사람은
어쩌다시詩하는사람이되어있다
지고는못배기는사람이자주지는사람이되어있고
자신조차구할수없는사람이되어있다
열대야에조용히물어본다
너는무엇을소원하느냐
자신이태어난곳에서북쪽으로2백킬로미터도갈수없는나라에서
남북으로찢기고
동서로갈리고
신분과계급으로똘똘뭉친나라에서너는무엇을바라느냐
-「여름밤」전문

(결론적으로말하자면)바람한점없는열대야의열기속에“시를추구하는자”가있다.어쩌면그는시를쓰기위해백지,아니컴퓨터의빈화면을마주하고앉아있는지도모른다.그런밤에시인은잠들지못하고자신에게끝도없는물음을던진다.“너는무엇을원하느냐/너는무엇을사랑하느냐”.이것은‘욕망’에관한질문이다.이것은타인의시선을의식하여,혹은‘나’의심연에존재하는욕망의진짜얼굴을마주하지않기위해던지는상투적인가짜질문이아니라온갖악조건속에서도시를추구하려는이유에대한물음이요자신과의진솔한대화이다.시를추구하는자로서의‘나’는알고있다.‘나’가원하는“불굴의시”는결코“시로말해지지않는것”이라는사실을.그럼에도불구하고시인은“시로서염원할그무엇”이존재한다면그것은무엇이며,“자주지는사람”,“자신조차구할수없는사람”이되어소원하는것이무엇인지묻는다.(…중략…)박용하의이시집은이세속적행성에불시착한한개인이‘언어’를매개로세계에맞서자신의삶을구성하는과정을‘유한’이라는시간의좌표위에펼쳐놓은것이라고말해도좋을듯하다.

어쩌면시인박용하는끝끝내세상과불화할것이다.그것이시인이라는아트만(Atman)으로서박용하가짊어진숙명이고업(業,카르마)이다.그러니고봉준평론가는박용하의시쓰기를일러“수행적발화”라한것이다.

박용하의시집을읽는다는것은끝끝내숨기고싶었던추악한자신의내면을들여다보는일이기도하기에결코쉬운일은아닐것이다.하지만불편함과불화를무릅쓰고서라도그의시집을읽어야한다.타락은물들기쉽지만벗어나기는어려운법이니,최소한나의타락을정면으로마주하는노력은필요한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