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서정적 전위성을 확보한, 사유가 있는 큰 시
- 위선환 시집 『서정시선』
- 위선환 시집 『서정시선』
1960년 서정주, 박두진이 선(選)한 용아문학상으로 등단하여 1970년부터 이후 30년간 시를 끊었다가 1999년부터 다시 시를 쓰면서 이후 펴내는 시집마다 ‘한국 서정시’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위선환 시인이 신작 시선집 『서정시선』을 펴냈다.
이 시집은 위선환 시인이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써온 서정시 중에서 79편을 골라 엮은 시선집이다.
“시집을 펴낼 때마다 한국 서정시의 진화를 확인시켜준다”는 평가를 받아온 시인의 서정시가 한눈에 조감되는 시야(Visual field)는 물론, 시인이 ‘다시 쓰는 다른 시’를 쓰면서 꾸준히 확보해온 서정적 전위성의 됨됨이가 가린 것 없이 펼쳐지는 전경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이 시를 쓰는 마지막에서 쓰고 있는 “서정적 전위성을 확보한, 사유가 있는 큰 시”의 밑그림이기도 한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기존의 시집과 달리 해설을 싣지 않고 대신 〈위선환의 문학 연보〉를 실었으며,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를 사랑한 모든 이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정끝별은 위선환의 이번 시집을 표사를 통해 이렇게 평한다.
“여기, 백지가 있다. 하늘 혹은 허공이라 치자. 선 하나를 긋는다. 허공이 새를 찌른 것이다. 땅바닥에 잎이 찍힌 것이다. 점 하나를 찍는다. 그림자가 돌을 감싼 것이다. 물방울이 제 몸을 궁굴린 것이다. 이제, 면 하나를 칠한다. 그렇다, 폭설이다, 아니 월식이다. 퍼렇게 멍이 든 물속이다. 순간으로 가득 찬 풍경들이다.
백지에 위선환 시인이 새겨놓은 풍경의 비의(秘義)를 눈치채려면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최대한 관념의 찌꺼기를 비울 것, 의식을 투명하게 할 것, 모든 감각을 활짝 열 것! 그리하여 투명하게 투과해야 하고, 조용하면서도 차갑게 스미고 번져야 한다. 무엇보다 집중해야 한다. 야생조류 관찰자들의 행동수칙처럼 말이다. 그래야 시인이 백지에 새긴 새와 돌과 물의 역동적 침묵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위선환 시인은 1960년에, 그러니까 무려 60여 년 전에 용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으나 절필하다 1999년부터 시를 다시 썼으니, 다시 쓰는 시력 20년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젊다. 그리고 깊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의 전위다. 시선의 전복이다. 그러한 그의 시는 최하림의 풍경시, 오규원의 현상시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현상-풍경시라 이름해본다.”
이번 시집을 편집한 시인 박제영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장흥 간다〉는 문장과 〈탐진강 간다〉는 문장,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좀 뜬금없겠다. 〈물은 흐르며 비우고 흘러서 채운다〉는 문장과 〈나무는 뻗어 별에 닿고 뿌리는 내려 지구의 중심에 닿았다〉는 문장,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또 뜬금없겠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언어를 깎다가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진 노 시인, 언어를 깎아서 새떼를 베끼려 하는 노 시인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중이다. 언어를 깎아내고 깎아내 마침내 무어지경(無語之境)에 닿으려 한다는데, 나로서는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는 문장의 이치에 닿기도 어려운 노릇이라 다만 흉내를 내볼 따름인데, 과연 무어지경에 이르면 거기가 어딜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나는 더디고 햇살은 빨랐으므로 몇 해째나 가을은 나보다 먼저 저물었다
땅거미를 덮으며 어둠이 쌓이고 사람들은 돌아가 불을 켜서 내걸 무렵 늦게 닿아서 두리번거리다 깜깜해지던
그렇게 깜깜해진 여러 해 뒤이므로
저문 길에 잠깐 젖던 가는 빗발과 젖은 흙을 베고 눕던 지푸라기 몇 낱과 가지 끝에서 빛나던 고추색 놀빛과 들녘 끝으로 끌려가던 물소리까지, 그것들은 지금쯤 어디에 모여 있겠는가
그것들 아니고 무엇이 하늘의 푸른빛을 차고 깊게 하겠는가
하늘 아래로 걸어가는 길이 조용하다
사람의 걸음걸이로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더디게 오래 걸어서 이제야 닿는구나, 목소리를 낮추어 혼잣말하듯이,
- 「혼잣말」 전문
시가 말[言語]의 사원[寺院]이라 할 수 있다면, 위선환의 시집이야말로 말의 사원이 아닐까 싶다.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 뼈 한 조각, 날개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공중空中이다, 라고 쓴다
- 「새떼를 베끼다」 전문
시가 무(無)가 아니고 허(虛)와 공(空)이라 할 수 있다면, 위선환의 시집이야말로 비워서 가득하고 가마득한 허공(虛空)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들은 “서정이 낡은 게 아니라 낡은 서정을 쓰는 게 문제”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시집은 위선환 시인이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써온 서정시 중에서 79편을 골라 엮은 시선집이다.
“시집을 펴낼 때마다 한국 서정시의 진화를 확인시켜준다”는 평가를 받아온 시인의 서정시가 한눈에 조감되는 시야(Visual field)는 물론, 시인이 ‘다시 쓰는 다른 시’를 쓰면서 꾸준히 확보해온 서정적 전위성의 됨됨이가 가린 것 없이 펼쳐지는 전경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이 시를 쓰는 마지막에서 쓰고 있는 “서정적 전위성을 확보한, 사유가 있는 큰 시”의 밑그림이기도 한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기존의 시집과 달리 해설을 싣지 않고 대신 〈위선환의 문학 연보〉를 실었으며,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를 사랑한 모든 이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정끝별은 위선환의 이번 시집을 표사를 통해 이렇게 평한다.
“여기, 백지가 있다. 하늘 혹은 허공이라 치자. 선 하나를 긋는다. 허공이 새를 찌른 것이다. 땅바닥에 잎이 찍힌 것이다. 점 하나를 찍는다. 그림자가 돌을 감싼 것이다. 물방울이 제 몸을 궁굴린 것이다. 이제, 면 하나를 칠한다. 그렇다, 폭설이다, 아니 월식이다. 퍼렇게 멍이 든 물속이다. 순간으로 가득 찬 풍경들이다.
백지에 위선환 시인이 새겨놓은 풍경의 비의(秘義)를 눈치채려면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최대한 관념의 찌꺼기를 비울 것, 의식을 투명하게 할 것, 모든 감각을 활짝 열 것! 그리하여 투명하게 투과해야 하고, 조용하면서도 차갑게 스미고 번져야 한다. 무엇보다 집중해야 한다. 야생조류 관찰자들의 행동수칙처럼 말이다. 그래야 시인이 백지에 새긴 새와 돌과 물의 역동적 침묵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위선환 시인은 1960년에, 그러니까 무려 60여 년 전에 용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으나 절필하다 1999년부터 시를 다시 썼으니, 다시 쓰는 시력 20년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젊다. 그리고 깊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의 전위다. 시선의 전복이다. 그러한 그의 시는 최하림의 풍경시, 오규원의 현상시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현상-풍경시라 이름해본다.”
이번 시집을 편집한 시인 박제영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장흥 간다〉는 문장과 〈탐진강 간다〉는 문장,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좀 뜬금없겠다. 〈물은 흐르며 비우고 흘러서 채운다〉는 문장과 〈나무는 뻗어 별에 닿고 뿌리는 내려 지구의 중심에 닿았다〉는 문장,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으라면 또 뜬금없겠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언어를 깎다가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진 노 시인, 언어를 깎아서 새떼를 베끼려 하는 노 시인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중이다. 언어를 깎아내고 깎아내 마침내 무어지경(無語之境)에 닿으려 한다는데, 나로서는 〈나무 뒤에 기대면 어두워진다〉는 문장의 이치에 닿기도 어려운 노릇이라 다만 흉내를 내볼 따름인데, 과연 무어지경에 이르면 거기가 어딜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나는 더디고 햇살은 빨랐으므로 몇 해째나 가을은 나보다 먼저 저물었다
땅거미를 덮으며 어둠이 쌓이고 사람들은 돌아가 불을 켜서 내걸 무렵 늦게 닿아서 두리번거리다 깜깜해지던
그렇게 깜깜해진 여러 해 뒤이므로
저문 길에 잠깐 젖던 가는 빗발과 젖은 흙을 베고 눕던 지푸라기 몇 낱과 가지 끝에서 빛나던 고추색 놀빛과 들녘 끝으로 끌려가던 물소리까지, 그것들은 지금쯤 어디에 모여 있겠는가
그것들 아니고 무엇이 하늘의 푸른빛을 차고 깊게 하겠는가
하늘 아래로 걸어가는 길이 조용하다
사람의 걸음걸이로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더디게 오래 걸어서 이제야 닿는구나, 목소리를 낮추어 혼잣말하듯이,
- 「혼잣말」 전문
시가 말[言語]의 사원[寺院]이라 할 수 있다면, 위선환의 시집이야말로 말의 사원이 아닐까 싶다.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 뼈 한 조각, 날개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공중空中이다, 라고 쓴다
- 「새떼를 베끼다」 전문
시가 무(無)가 아니고 허(虛)와 공(空)이라 할 수 있다면, 위선환의 시집이야말로 비워서 가득하고 가마득한 허공(虛空)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들은 “서정이 낡은 게 아니라 낡은 서정을 쓰는 게 문제”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정시선 (위선환 시집)
$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