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scription
안개 도시의 안개 언어
- 유기택 시집 『환한 저녁』
춘천의 가장 깊숙한 곳, 소양댐 아래 샘밭이라는 작은 마을에 자칭 ‘춘천이 기른 시 노동자’ 유기택 시인이 산다. 쉰세 살에 첫 시집 『둥근 집』(2012)을 낸 이래 십 년 동안 농사를 짓듯 주경야독 시를 지었고 일곱 권의 시집을 수확했다. 그리고 이번에 여덟 번째 시집 『환한 저녁』을 수확했다며 세상에 내어놓았다. 달아실시선 65번째 시집이다.
시인 유기택은 처음 시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자기만의 시농법을 고집한다. 그 결과 그의 시 저변에는 유기택만의 서정이 흐르는데, 그것은 바로 “유순(柔順)”이다. 유기택의 시적 정서는 유(柔)함과 순(順)함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시집도 크게 벗어나진 않으면서 춘천이라는 안개 도시의 안개 언어를 풀어내고 있다.
시인 박제영은 유기택 시인을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산다. 그는 너스레와 고수레 사이, 몽니와 몽리蒙利 사이, 맷돌과 어처구니 사이, 창과 방패 사이, 칡나무와 등나무 사이, 삵과 고양이 사이, 낭狼과 패狽 사이, 유와 류 사이, 엠마누엘과 칸트 사이, 는개와 안개 사이, 삭朔과 망望 사이, 밀물과 썰물 사이, 비굴과 굴비 사이, 침과 시치미 사이,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 망원경과 현미경 사이, 돌과 달 사이, 허무와 맹랑 사이, 23쪽과 24쪽 사이, 샘과 밭 사이에 산다. 물론 정황증거일 뿐 물증은 없다. 공개수배를 해도 그를 찾기란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기다. 그가 세상을 어지럽힐 위조 시집을 여러 권 냈다는 소문만 파다하다.”(「존 말코비치 되기 혹은 노바디 - 시인 유기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이번 시집을 “안개 도시의 안개 언어”라 함축하며 이렇게 평한다.
“누가 뭐래도 유기택은 춘천의 시인이다. 그의 시선은 물에서 안개로, 안개 속으로 흐려지거나 사라지는 것들의 뒷모습을 향해 있다. 호반의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사물과 사람, 물과 산,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듯, 그는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범주들이 지워지는 것을 응시한다. 사물들은 한순간도 멈추어 있지 않고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지우면서 사라지거나 다른 것이 된다. 안개는 사물들의 그런 자기-이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이다. 세계는 이미, 항상 안개로 뒤덮여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호반의 안개는 실물로 세계의 그런 속성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유기택에게 안개는 세계의 알레고리이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춘천의 자연을 경험하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다. 경계가 흐려질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그 하나는 속성의 사라짐이고, 다른 하나는 속성의 확장이다. 사라짐과 확장은 동시에 일어난다. (죽은 은유이지만) 비둘기가 사라지면서 비둘기는 평화의 알레고리가 된다. 그때 사라짐은 정확히 말해 사라짐이 아니라 변용이자 확장이다. 세계는 사물들의 이런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사라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은 형태변용metamorphosis의 다른 이름이고, 모든 존재는 변용을 통해 다른 것으로 확장된다.”
꽃이 피는 동안
네가 웃는 동안
눈물 한 방울 굴러떨어지는 동안
하늘 환해지는 그동안
빗물 걷히는 동안
아무 일 없이
네가 웃는 동안
- 「금어기禁語期」 전문
“‘동안’은 ‘즈음’처럼 과정의 시간이고 비결정의 시간이다. ‘동안’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것에서 저것으로, 가거나 오거나 하는 시간이고, 무엇-되기의 시간이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으므로, 변용, 생성의 시간이다. 시인은 명쾌한 것, 환하게 밝은 것, 규정되고 결정된 것, 딱딱해서 바뀌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것은 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세계관이다. 시인이 볼 때, 세계는 규정할 수 없으며, 규정한다고 해서 규정되지 않는다. 세계는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으며 다른 어떤 것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세계는 항상 어떤 ‘동안’의 계기 속에 있다. 안개는 그런 ‘동안’과 ‘즈음’과 ‘과정’의 크로노토프chronotope이다. 이 시집은 ‘이미 앎’의 허위를 까발리고 ‘아직 모름’의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거기에 호기심과 기대와 설렘과 생명의 언어가 있다.”
이번 시집에 대해 시인 자신은 “환했다. 너무 환했다. 세상의 저녁은, 다 알겠다는 말보다 조금 더 환했다. 딱, 살고 싶은 만큼 어두웠다. 손이 조금 떨렸다. 용서하시라. 환했다.”(「시인의 말」)고 얘기한다.
안개 속에서 시인은 “환하다는 말이 왜 희망적이지 않은가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다가 “비었다는 말과 환하다는 말이” 같은 말인 것을 깨닫고는 “더는 그런 것을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환한 저녁」)고 한다.
춘천은 안개 도시다. 적어도 시집 『환한 저녁』에 등장하는 춘천은 그런 도시다. 그리고 그 안개 도시를 살아내야 하는 일은 마침내 텅 빈 쓸쓸함, 환한 저녁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시인은 쓸쓸하게 그러나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온통 안개 도시 춘천이겠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결국 환한 저녁을 견디는 일이겠다.
- 유기택 시집 『환한 저녁』
춘천의 가장 깊숙한 곳, 소양댐 아래 샘밭이라는 작은 마을에 자칭 ‘춘천이 기른 시 노동자’ 유기택 시인이 산다. 쉰세 살에 첫 시집 『둥근 집』(2012)을 낸 이래 십 년 동안 농사를 짓듯 주경야독 시를 지었고 일곱 권의 시집을 수확했다. 그리고 이번에 여덟 번째 시집 『환한 저녁』을 수확했다며 세상에 내어놓았다. 달아실시선 65번째 시집이다.
시인 유기택은 처음 시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지금까지 자기만의 시농법을 고집한다. 그 결과 그의 시 저변에는 유기택만의 서정이 흐르는데, 그것은 바로 “유순(柔順)”이다. 유기택의 시적 정서는 유(柔)함과 순(順)함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시집도 크게 벗어나진 않으면서 춘천이라는 안개 도시의 안개 언어를 풀어내고 있다.
시인 박제영은 유기택 시인을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산다. 그는 너스레와 고수레 사이, 몽니와 몽리蒙利 사이, 맷돌과 어처구니 사이, 창과 방패 사이, 칡나무와 등나무 사이, 삵과 고양이 사이, 낭狼과 패狽 사이, 유와 류 사이, 엠마누엘과 칸트 사이, 는개와 안개 사이, 삭朔과 망望 사이, 밀물과 썰물 사이, 비굴과 굴비 사이, 침과 시치미 사이,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 망원경과 현미경 사이, 돌과 달 사이, 허무와 맹랑 사이, 23쪽과 24쪽 사이, 샘과 밭 사이에 산다. 물론 정황증거일 뿐 물증은 없다. 공개수배를 해도 그를 찾기란 바늘구멍에 낙타 들어가기다. 그가 세상을 어지럽힐 위조 시집을 여러 권 냈다는 소문만 파다하다.”(「존 말코비치 되기 혹은 노바디 - 시인 유기택」)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이번 시집을 “안개 도시의 안개 언어”라 함축하며 이렇게 평한다.
“누가 뭐래도 유기택은 춘천의 시인이다. 그의 시선은 물에서 안개로, 안개 속으로 흐려지거나 사라지는 것들의 뒷모습을 향해 있다. 호반의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사물과 사람, 물과 산,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듯, 그는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범주들이 지워지는 것을 응시한다. 사물들은 한순간도 멈추어 있지 않고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지우면서 사라지거나 다른 것이 된다. 안개는 사물들의 그런 자기-이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이다. 세계는 이미, 항상 안개로 뒤덮여 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호반의 안개는 실물로 세계의 그런 속성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유기택에게 안개는 세계의 알레고리이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춘천의 자연을 경험하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알 수 없다. 경계가 흐려질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그 하나는 속성의 사라짐이고, 다른 하나는 속성의 확장이다. 사라짐과 확장은 동시에 일어난다. (죽은 은유이지만) 비둘기가 사라지면서 비둘기는 평화의 알레고리가 된다. 그때 사라짐은 정확히 말해 사라짐이 아니라 변용이자 확장이다. 세계는 사물들의 이런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사라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은 형태변용metamorphosis의 다른 이름이고, 모든 존재는 변용을 통해 다른 것으로 확장된다.”
꽃이 피는 동안
네가 웃는 동안
눈물 한 방울 굴러떨어지는 동안
하늘 환해지는 그동안
빗물 걷히는 동안
아무 일 없이
네가 웃는 동안
- 「금어기禁語期」 전문
“‘동안’은 ‘즈음’처럼 과정의 시간이고 비결정의 시간이다. ‘동안’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것에서 저것으로, 가거나 오거나 하는 시간이고, 무엇-되기의 시간이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으므로, 변용, 생성의 시간이다. 시인은 명쾌한 것, 환하게 밝은 것, 규정되고 결정된 것, 딱딱해서 바뀌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것은 시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세계관이다. 시인이 볼 때, 세계는 규정할 수 없으며, 규정한다고 해서 규정되지 않는다. 세계는 한순간도 멈춰 있지 않으며 다른 어떤 것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세계는 항상 어떤 ‘동안’의 계기 속에 있다. 안개는 그런 ‘동안’과 ‘즈음’과 ‘과정’의 크로노토프chronotope이다. 이 시집은 ‘이미 앎’의 허위를 까발리고 ‘아직 모름’의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거기에 호기심과 기대와 설렘과 생명의 언어가 있다.”
이번 시집에 대해 시인 자신은 “환했다. 너무 환했다. 세상의 저녁은, 다 알겠다는 말보다 조금 더 환했다. 딱, 살고 싶은 만큼 어두웠다. 손이 조금 떨렸다. 용서하시라. 환했다.”(「시인의 말」)고 얘기한다.
안개 속에서 시인은 “환하다는 말이 왜 희망적이지 않은가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다가 “비었다는 말과 환하다는 말이” 같은 말인 것을 깨닫고는 “더는 그런 것을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환한 저녁」)고 한다.
춘천은 안개 도시다. 적어도 시집 『환한 저녁』에 등장하는 춘천은 그런 도시다. 그리고 그 안개 도시를 살아내야 하는 일은 마침내 텅 빈 쓸쓸함, 환한 저녁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시인은 쓸쓸하게 그러나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온통 안개 도시 춘천이겠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결국 환한 저녁을 견디는 일이겠다.

환한 저녁 - 달아실시선 65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