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흐름으로삶을기록하다
영월에서나고자란엄의현시인이두번째시집『밥그릇무겁다』를펴냈다.달아실기획시집24번째시집이다.이번시집을펴내면서엄의현시인은이렇게얘기한다.“인간의잣대로는지금껏꽤먼길을걸어왔다.두번째시집을낸다.아내가이렇게말했다.‘당신이지금껏한일중에가장잘한것이시공부를한것이다.’일상의모습들을시적언어로이야기하는것은의미가있고행복한일이다.시를읽고쓰면서내영혼의생김새는이렇고내여행의풍경은이런거였고내뒷모습의그림자는이랬구나하고깨달아간다.이느낌으로남은길을가야겠다.”
해설을쓴시인이지문학평론가인오민석단국대교수는이번시집을이렇게평한다.“엄의현시인에게시는일상의기록이다.그에게삶은물같다.그에게삶은흐르고,새롭고,변화하며,움직이는어떤것이다.그는유동하는삶의윤슬들에마치플라이낚시하듯시의찌를던진다.그의낚싯대에걸려올라오는것은개인사나가정사만이아니다.그에게삶이란개인적인층위와사회적인층위가만나는두물머리이다.그의시에서개인과사회는별도의공간이아니라삶이라는캔버스를가로지르는씨실과날실이다.그의시는총체성의재현을향해있고,이런점에서그는리얼리스트이다.그의시는화려한수사를거부한다.그의시는마치무색,무취의물같다.노자의말대로최고의선은물과같다.그의정동affect은물처럼낮고고요하며맑다.그는겸허하고담백하게현실을언어화한다.그의시선은낮은곳을향해있고,그의언어는낮은곳을그리며깨달음의경지에도달한다.”
검각산劍角山칼날중앙부근에있는새터마을생가生家번지이고등록기준지로는남면살개골길14의12이다
할아버지가열네살에당신의아버지를잃고가장이되고열여덟살에혼인하신후직접지은집이다
초입부터일자로된건물에는돼지우리와소외양간과재래식뒷간과갈비와땔감을보관하던작은공간과탈곡하던큰마당옆에는담배건조실이있었다
다섯계단위대문옆에는사랑채가붙어있고대문을지나들어서면작은마당과행랑채가있었다
행랑채에는작은방과먹거리를보관하는광이있고작은마당에는지하수를퍼올리는수동식펌프가있었다
안채는니은자로봉당封堂위에대청마루와안방이있고소죽을끓이던대형무쇠솥이걸렸던건너방서쪽의툇마루에는큰한약장이놓여있었다
대청마루에는부엌으로통하는쪽문도있었다
행랑채에서태어나십년을자라고은행나무아래하송리로옮겨와반세기도훌쩍넘었다
―「연당리672」부분
“태어나자란곳에대한이세밀한기록엔,보다시피낭만적허위나과장이전혀없다.화자는육십세를‘훌쩍’넘겼지만,고향을회상하는노인들이통상그러하듯추억을뻥튀기하지않는다.그는마치고고학자나역사학자처럼생가의모습을마치사진을찍듯이정확하게재현한다.이세부묘사의진실성은먼과거의공간에서현재로이어지는삶의객관적모습을호출해낸다.그리하여‘연당리672’엔‘열네살에당신의아버지를잃고가장이되고열여덟살에혼인하신후직접’이집을지은할아버지부터시작하여그곳에서‘태어나십년을자라고은행나무아래하송리로옮겨와반세기도훌쩍’넘긴화자의역사가기록된다.독자들은마치선명한흑백화면을보듯순식간에3대에걸친가계의역사를훑게된다.그것은마치먼발원지에서현재로흘러온시간의물줄기를들여다보는것과같다.”
“엄의현시인의시선은매우포괄적이며총체적이다.이런시선은그만의독특한리얼리즘적세계관을이룬다.모더니스트들에게개인의삶이탈사회적이고탈정치적인것이라면즉,늘고립되고파편화된실존의모습이라면,리얼리스트들에게개인의삶은사회적이고,정치적이며,역사적이다.리얼리스트들에게모든개인은사회적개인이고,역사적개인이며,정치적개인이다.‘인간은정치적동물’이라는아리스토텔레스의전언은리얼리즘의유구한인간관이다.역사는오로지개인들의삶속에서실존하며,개인은오로지역사적인삶속에서실존한다.리얼리스트들에게개인은역사가머무는자리이다.그들에게개인은역사와분리불가능하다.역사는수많은개인들을통하여움직인다.실물의개인들없이역사는가동될수없다.”
시집의제목이기도한“밥그릇무겁다”라는문장은시집속의시「밥그릇의무게」에서따온문장이다.그리고어쩌면이문장에이번시집에서시인이하고싶었던말을담아내고있는지도모르겠다.시인이보기에민초들의삶이란것이,밥그릇하나를얻기위해죽기살기로살아낸/살아내고있는삶들인것이다.밥그릇하나에어쩌면고달픈생의무게가고스란히담겨있다고보는것이다.우리가어디에서왔고우리는누구이고우리는어디로가야하는지,우리는어떻게살아왔고,어떻게살아내야하지는지,시인은남들이그냥지나칠법한시시콜콜한일상의소품까지찾아내어한땀한땀시로기록을남기고있는중이다.시집을읽다보면사라져서는안되는데사라져가고있는어떤풍경이서늘하게다가올지도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