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향토적 서정과 긍정의 미학으로 빚은 순리의 시편들
- 서봉교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영월 출신으로 원주와 영월에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서봉교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를 펴냈다. 달아실시선 68번으로 나왔다.
서봉교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든 잘 모르는 사람이든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아니! 낮에는 직장일 하고 주말에는 농사일 하는 사람이 시는 언제 쓰느냐고. 그러면 난 늘 웃으면서 답을 한다. 시 쓰는 것은 영적靈的인 작업이니, 시 한 편이 환영처럼 머리 뒤에 떠오르면 그때 한 편 쓰고, 아니면 놓고 하는 일을 수십 년 했다고. 그렇게 부끄러운 자식들을 모아서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인터뷰를 했다. 앞선 두 시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시집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번 시집에서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시에 관한 본인의 철학은 무엇이고 다음 시집에 대한 계획은 있는지 묻자 서봉교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첫 시집 『계모 같은 마누라』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집 『침을 허락하다』는 첫 시집 발간 후 12년 만에 낸 시집으로 고통스러웠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자연과 인생을 다시 보려고 했고요. 이번 시집은 50대 중반을 넘긴 시점에서 사물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고향인 수주면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 쓴 작품들입니다 요선정, 요선암, 법흥사, 신선, 설귀산 등이 대표적인 소재들이죠. 우리의 삶 자체가 시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의 흙과 하늘과 바람과 풀과 나무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이번 시집에서는 고향을 많이 노래하려고 했습니다. 시인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시인입니다. 다만 그것을 느끼고 못 느끼는 차이일 뿐이죠. 그래서 시인은 쓰고 독자는 공감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시집은 제 고향 수주면을 배경으로 쓴 시들만을 모아서 〈水周別曲〉이란 제목의 시집을 춘하추동 4부로 나눠서 묶고 싶습니다.”
시집의 해설을 쓴 최연수 시인은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향토적 서정을 겸비한 긍정의 시학”이라고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시적 대상은 무수히 많다. 그리하여 어떤 소재를 가져와야 하는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일상사를 중심으로 정서를 잇댈 수도 있고, 추상적인 관념에 집중할 수도 있다. 또한 사물의 본질에 사유를 입힐 수도 있다. 각각을 드러낼 수 있는 시적 개성이기 때문이다. 서봉교 시인은 자연과 인간을 시적 소재로 삼는다. 그 자연과 인간 속에는 고향이 있고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들에 얽힌 일상과 추억이 있다. 자연과 인간에 근거한 일상을 시적 소재로 다루는 것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과 사소한 일상이 전체적인 삶의 무게와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는 말이다. 소소한 것들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시적 공감으로 이어지는 것, 한국적 정서에 닿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에 적절한 감정적 수분을 입히고자 한다. 이는 상대와의 거리를 적절히 좁히면서 삶의 서성거림 속에서 오는 아픔과 깊음을 읽는 맑은 눈과 연결된다.”
“서봉교 시인의 시는 일상에서 시작되고, 경험의 구체성과 거기에 덧입힌 미적 기능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깊고 따스한 눈길로 자연과 사물과 인간사를 읽어가는 정서가 빛을 발한다. 모호하고 애매한 지경에 빠뜨리는 시적 오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자연스럽게 의미에 닿게 한다. 그러면서도 정제되고 고도화된 형상화에 충실하다. 소박하고 조촐한 정서를 육화시킨 시들은 건강한 정신적 산물이자 생에 대한 성찰이다.”
이번 시집을 편집한 시인 박제영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중국집 말라가는 고무나무가 안쓰러워서 짬뽕 한 그릇 먹은 것도 눈치를 보는 사내다. 나무들도 스트레스 받는다고 산에 가면 고함지르지 말라는 사내다. 주중에는 직장 다니랴 주말에는 농사지으랴 남는 시간 아껴서 시 한 줄 쓰는 데도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사내다. 논농사 밭농사 시농사 모두 숙명이라는 사내다. 그가 두고 간 원고 뭉치를 펼치자 영월의 처처곳곳을 그려낸 지리(地理)지도였다. 영월의 토속어를 담아낸 말[言語]지도였다. 영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人生]지도였다. 영월을 통해 세상과 생명의 순리(順利)를 깨닫고 있다는 한 사내의 고백록이었다.”
농촌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은 안다
강물도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려면
길게는 열흘 짧게는 일주일간
물때를 벗는다는 것을
그때는 아무리 지저분한 강물일지라도
물밑이 명경처럼 맑아지고
민물고기들도 물가로 마실을 가는 예의를 보인다
그렇게 그 시간이 지나고 강물 바닥이 누렇게 변하고 나서야
내년 이맘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한생을 살 준비를 하고
몸을 정갈하게 갖추고 난 후에야
철이 들었다 혹은 인생을 안다고
그때서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전문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는 한글만 깨쳤다면 누구든 읽기에 편하고 수월할 것이다. 편하고 수월한 독서의 끝에서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세상과 생명의 순한 이치를 느끼는 순간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 서봉교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영월 출신으로 원주와 영월에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서봉교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를 펴냈다. 달아실시선 68번으로 나왔다.
서봉교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든 잘 모르는 사람이든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아니! 낮에는 직장일 하고 주말에는 농사일 하는 사람이 시는 언제 쓰느냐고. 그러면 난 늘 웃으면서 답을 한다. 시 쓰는 것은 영적靈的인 작업이니, 시 한 편이 환영처럼 머리 뒤에 떠오르면 그때 한 편 쓰고, 아니면 놓고 하는 일을 수십 년 했다고. 그렇게 부끄러운 자식들을 모아서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인터뷰를 했다. 앞선 두 시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시집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이번 시집에서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시에 관한 본인의 철학은 무엇이고 다음 시집에 대한 계획은 있는지 묻자 서봉교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첫 시집 『계모 같은 마누라』는 일종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집 『침을 허락하다』는 첫 시집 발간 후 12년 만에 낸 시집으로 고통스러웠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자연과 인생을 다시 보려고 했고요. 이번 시집은 50대 중반을 넘긴 시점에서 사물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고향인 수주면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 쓴 작품들입니다 요선정, 요선암, 법흥사, 신선, 설귀산 등이 대표적인 소재들이죠. 우리의 삶 자체가 시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의 흙과 하늘과 바람과 풀과 나무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이번 시집에서는 고향을 많이 노래하려고 했습니다. 시인 아닌 사람이 있을까요?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시인입니다. 다만 그것을 느끼고 못 느끼는 차이일 뿐이죠. 그래서 시인은 쓰고 독자는 공감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시집은 제 고향 수주면을 배경으로 쓴 시들만을 모아서 〈水周別曲〉이란 제목의 시집을 춘하추동 4부로 나눠서 묶고 싶습니다.”
시집의 해설을 쓴 최연수 시인은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향토적 서정을 겸비한 긍정의 시학”이라고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시적 대상은 무수히 많다. 그리하여 어떤 소재를 가져와야 하는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일상사를 중심으로 정서를 잇댈 수도 있고, 추상적인 관념에 집중할 수도 있다. 또한 사물의 본질에 사유를 입힐 수도 있다. 각각을 드러낼 수 있는 시적 개성이기 때문이다. 서봉교 시인은 자연과 인간을 시적 소재로 삼는다. 그 자연과 인간 속에는 고향이 있고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들에 얽힌 일상과 추억이 있다. 자연과 인간에 근거한 일상을 시적 소재로 다루는 것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과 사소한 일상이 전체적인 삶의 무게와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는 말이다. 소소한 것들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시적 공감으로 이어지는 것, 한국적 정서에 닿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에 적절한 감정적 수분을 입히고자 한다. 이는 상대와의 거리를 적절히 좁히면서 삶의 서성거림 속에서 오는 아픔과 깊음을 읽는 맑은 눈과 연결된다.”
“서봉교 시인의 시는 일상에서 시작되고, 경험의 구체성과 거기에 덧입힌 미적 기능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깊고 따스한 눈길로 자연과 사물과 인간사를 읽어가는 정서가 빛을 발한다. 모호하고 애매한 지경에 빠뜨리는 시적 오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자연스럽게 의미에 닿게 한다. 그러면서도 정제되고 고도화된 형상화에 충실하다. 소박하고 조촐한 정서를 육화시킨 시들은 건강한 정신적 산물이자 생에 대한 성찰이다.”
이번 시집을 편집한 시인 박제영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중국집 말라가는 고무나무가 안쓰러워서 짬뽕 한 그릇 먹은 것도 눈치를 보는 사내다. 나무들도 스트레스 받는다고 산에 가면 고함지르지 말라는 사내다. 주중에는 직장 다니랴 주말에는 농사지으랴 남는 시간 아껴서 시 한 줄 쓰는 데도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사내다. 논농사 밭농사 시농사 모두 숙명이라는 사내다. 그가 두고 간 원고 뭉치를 펼치자 영월의 처처곳곳을 그려낸 지리(地理)지도였다. 영월의 토속어를 담아낸 말[言語]지도였다. 영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人生]지도였다. 영월을 통해 세상과 생명의 순리(順利)를 깨닫고 있다는 한 사내의 고백록이었다.”
농촌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은 안다
강물도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려면
길게는 열흘 짧게는 일주일간
물때를 벗는다는 것을
그때는 아무리 지저분한 강물일지라도
물밑이 명경처럼 맑아지고
민물고기들도 물가로 마실을 가는 예의를 보인다
그렇게 그 시간이 지나고 강물 바닥이 누렇게 변하고 나서야
내년 이맘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한생을 살 준비를 하고
몸을 정갈하게 갖추고 난 후에야
철이 들었다 혹은 인생을 안다고
그때서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전문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는 한글만 깨쳤다면 누구든 읽기에 편하고 수월할 것이다. 편하고 수월한 독서의 끝에서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세상과 생명의 순한 이치를 느끼는 순간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 달아실시선 68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