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 (김미량 시집)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 (김미량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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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불량을 건너 미량에 다다르다
- 김미량 시집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
대전 출신으로 2009년 『시인시각』(현 『시인동네』)로 등단하여 현재는 속초에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는 김미량 시인이 등단 14년 만에 첫 시집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를 펴냈다.

김미량 시인의 초고를 받아보고 출간을 결정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며, 이번 시집을 편집한 시인 박제영은 이렇게 얘기한다.

“십수 년 전 동학사 그늘에서 처음 그 여자를 만났다. 손목에 네잎클로버 문신을 한 여자는 명랑하게 말을 더듬었다. 시 시를 쓰 쓴다고 했다. 아 아직은 부 불량이라고 했다. 독을 숨긴 유혈목이 같았다. 가시를 숨긴 찔레 같았다. 십수 년이 지나서 기억이 흐려지고 동학사 그늘마저 흐려질 때쯤 우연과 필연의 중간쯤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났다. 네잎클로버 문신은 여전했고, 명랑하게 말을 더듬는 것도 여전했지만, 그 사이 여자의 배는 만삭이 되어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묻자 그 사이 부 불량을 건너 미 미량에 다 다다랐다고 했다. 내 아 아이들을 꺼 꺼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더 이상 유 유산할 수는 없다고. 피할 도리가 없었다. 여자의 자궁을 뚫고 마침내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자 그제야 여자는 새끼들을 쳐다보며 웃었다. 미량에서 다시, 미량까지 그것은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처방전이었다.”

그리고 시인 임재정은 이번 시집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김미량에게 시는 삶이 가진 필연적 결핍을 적극 옹호하는 ‘나의 편’이다. 그가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시와 연을 맺어온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시집 전편을 통해 줄곧 시인이 되묻는 함의를 포함한 「미량」은 자신에 대한 질책과 삶의 여정, 다정한 다독임을 동반한다. 내적 울음이 함께할 것이 틀림없을 이 과정들은, 그러나 담담하고 자조적이며 때로는 명랑하다. 꿈의 영역이기도 하기에 솟구치고 추락하지만 끝내 「다시, 미량」이라는 추임새와 함께 날갯짓을 예비하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축원 때문에라도 시인은 마술사가 되고 「스님, 책임져요」에서 보듯 ‘손끝에서’ ‘꽃’을 피우는 내일의 마술에도 가 닿는다. 오래 생활과 싸우며 쌓아올린 시집 『신의 무릎에 앉은 기억이 있다』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날갯짓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함께 독자가 되어 김미량이 꺼내올 미래를 기다려보기로 하자.”
저자

김미량

시인김미량은1970년대전에서태어났다.2009년『시인시각』(현『시인동네』)로등단했고,등단14년만에첫시집『신의무릎에앉은기억이있다』를펴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내몸엔독성미량이함유되었으므로조심하세요
미량|꿈이흐려서|신의무릎에앉은기억이있다|가을장마|도망가자는말을들었다|새를묻고꽃을꺾었습니다|던지고받기|드라이빗처럼|마침내낯선계절이|목련이졌습니다|스님,책임져요|스물여덟개|아이스박스|잔느의초상

2부.귀를막았다열면파도가부르는즐거운노래
걸다|팬티의힘|오래손잡아주었네|일기예보를마칩니다|초경|러스크|반말고쳐드립니다|흘림과홀림사이|가로등|돌아온세계|칼,도마,그리고나|이상한광고|우리가먹던것은무엇이었을까|멸치말입니까|모래집에사는사내

3부.길어지고길러지는손톱은당신인가요슬픔인가요
쿠키에물렸다|물집|레커교도|와사비갬|귤의시간|스피커가하는일|우리의그곳이웃기거나쑥쓰러워도|짝꿍|비를의심하는사람들은우산을들고|시월|악몽한근|정말개뿐이었을까|너머에는|에너자이저|하늘아래풍경|칠월칠석

4부.우리는고요에찔린뒤달아나기위해늙는다
너라는두통|일요일의카디건|동화에살고있다|우리는스파게티를먹었다|케이크|호루라기|휴일|정원을주목하다|미더덕|대설|저녁과나란히|나는죽입니다|고요|다시,미량

해설_불안이라는질서를넘어혁명으로|최은묵

출판사 서평

어떤맛일까,미량은

궁금해요내혀는몸어디에도닿지않으니
꽃밭에누워하품하는나를맛볼수없죠

설렘은커다란귀를쫑긋세우고
인기척에놀란벌떼와는좀다른거겠죠

벌같은걸까요
내몸엔독성미량이함유되었으므로조심하세요
주의사항은늘늦게읽히죠

미량이어서
이마만동그랗게부풀었습니다
미량보존의법칙은이마에도유효합니까
입술이누굴환영하는것을본적이없어요
방금누가내이름을불렀습니까
미안,트림이나왔어요

하이,박사님
머릿속이흐린날이너무많아요
극미량이라면서요
열숟가락쯤상상을추가하면
여우처럼보일까요

한숟가락의상상으로
얼마나많은늑대를길렀는지는말하지않은
실험실에서의하루

미량스럽다,는말은그쯤일거라생각했다
-「미량」전문


김미량의이번첫시집은시인자신의이름을차용한「미량」이라는시로시작해서「다시,미량」으로끝을맺는다.이에대해해설을쓴시인최은묵은다음과같이이야기한다.

“『신의무릎에앉은기억이있다』가「미량」으로열고,「다시,미량」으로닫는부분은눈여겨볼지점이다.‘미량’은의미적으로는아주적은분량을뜻하면서동시에시인의이름이지만,형식적으로는이시집전체를관통하는중심이다.다시말해이시집은‘미량’에서‘다시,미량’까지의여정이며,‘김미량’이담고자했던(혹은담아야만했던)오랜시간의‘김미량’인셈이다.”

“‘미량’은사전적의미와시인의이름이라는두값이등치를이룬다.‘어떤맛일까,미량은’이라는질문은의식과무의식이공존하는순간발화한언술이며,아울러주관적인자아와객관적인자아의간극에서제시하는물음이기도하다.시적물음에‘상상’은필연이다.김미량은상상의영역을화자와독자에게함께제시한다.이러한상상의과정에서우리는미량이어떤맛일지서서히알아갈것이다.”

“그렇다면‘미량스럽다’는무엇일까?어느계절안쪽에멈춰있는기억일까?아니면‘머릿속이흐린날’의표정일까?‘늘늦게읽히’는‘주의사항’처럼우리는이시집곳곳에스며있는‘독성’이‘어떤맛일’지미리상상해도상관없을것이다.‘주의사항’을모른채몸으로맞닥뜨리는시도야말로‘미량스럽다’라는의미를날것그대로느낄수있을테니까말이다.”


돌을던진다하나,둘,셋,던진돌에번진파문들이돌에되돌아오다파문을만나서로를건넌다나는당신이어디서나와마주쳤는지어디서나를건넜는지알지못한다돌의부피만큼불어난호수의물은어디로갔을까기슭에오래앉아있었고어둠이내렸다호수와내가,어둠과내가,당신과내가없다해도아침이올것이다호수와무관한내눈이조금넘쳤던것같았다돌은내가슴에떨어졌을까
-「다시,미량」전문


그러나무엇보다이번시집을이해하는데있어가장중요한열쇠는「물집」이라는시일것이다.김미량시인이스스로이번시집을정의해주고있기때문이다.


여름에도착한사람이야기입니다//뜨거운세계//숨을곳이필요한//따가운시선을피해//건축설계에없는그늘을준비하는동안//빠르게부풀려완성한집//소문처럼비웃는집//얼음처럼서늘한말//그늘을빌려쓴이해할수없는사람이야깁니다//그이가창문을깨고나가면//소독이필요한집//걸어가는눈물과떨어지는빗물뿐인//나를//견디는당신의이야깁니다
-「물집」전문


“건축설계에없는그늘”과“그늘을빌려쓴이해할수없는사람이야기”라는문장과“걸어가는눈물과떨어지는빗물뿐인//나를//견디는당신의이야기”라는문장에귀를기울일필요가있다.사전적의미망을벗어난문장이니독자는상상력을최대한발휘해야한다는이야기이며,나를통과한타자들그리하며마침내당신이보일것이라는이야기가아닐까.확인하고싶다면일독을권한다.“미량”으로열리고“다시,미량”으로닫히는이독특한시집이당신안의미지의문을열어주기를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