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다음이라는 말,에 담긴 무진한 그리움
- 허림 시집 『다음이라는 말』
중견 시인 허림이 열 번째 시집 『다음이라는 말』을 펴냈다. 달아실기획시집 29번으로 나왔다.
요즘 허림 시인이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기는 하다. 그의 산문집 『보내지 않았는데 벌써 갔네』에 실린 시 「마중」에 작곡가 윤학준이 곡을 붙여 노래(가곡)로 만들었는데, 이 〈마중〉을 소프라노 조수미, 테너 임형주, 바리톤 송기창,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 등 수많은 성악가들이 부르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 허림, 「마중」(『보내지 않았는데 벌써 갔네』) 전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시인 허림은 낯설지도 모른다. 노래 〈마중〉은 알아도 시인 허림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시인 허림은 강원도 홍천의 오지 내면에 들어 작은 오막을 짓고, 아프고 아리고 쓸쓸하다가 마침내 따듯한, 오막 같은 고향의 말들의 집을 아주 오래 짓고 있다. 1988년 등단하여 지난 35년 동안 열 채의 시집을 지은 것이니, 농부가 농사를 짓듯 그야말로 손가락이며 손바닥이며 굳은살이 박이도록 치열하게 시를 지어온 것이니, 그간에 쌓은 공력과 내공으로 눙치듯 시를 펼쳐 보이며 그만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시인이다.
소설가 이순원은 이번 시집을 읽고는 이렇게 얘기한다.
“허림 시인의 시집을 읽다 보면 한 줄 한 줄 표현들도 빛나지만, 무엇보다 홍천의 내면에서 시인이 살아온 시간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에 새겨진 시가 하나로 물결치는 게 놀랍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삶의 그림자인지 경계가 사라집니다.”
“시인은 홍천 내면의 하늘과 자연으로 사람 마음의 그리움을 이야기합니다. 한 줄 한 줄 반짝여서 그것이 詩인 줄은 알지만, 나에게는 웅성거리는 이야기가 먼저 읽힙니다. ‘다음이라는 말이 기약 없이 화두처럼 따라’(「다음이라는 말」)와 벌써부터 그의 다음 시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해설을 쓴 시인 최광임은 또 이렇게 평한다.
“허림 시인에게 내면이란 장소적 공간은 삶의 실체이다. 시인이 사는 내면에도 사람들은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 것이다.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가 견딜 추위를 염려하고, ‘그런대로 해 먹을 만한 겨울 천렵’하며 사람들이 모여 살 것이다. 한 어둠이 다른 어둠에게 내어준 아랫목같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어둠도 환해지는 법이다. 허림 시인이 어둠을 사는 방식이다.”
세상의 어떤 감정도 세상의 어떤 물상도 시인 허림에게 닿으면 허림이 재해석한 단어로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어찌 보면 시인 허림은 자신만의 대백과 감성사전을 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와도
어둠은 덮이지 않네
온 세상 흰빛이 넘쳐도
오막은 저녁처럼 어두워지네
까치밥으로 남겨둔 땡감이 불을 밝히는
서림 빈집의 감나무에도
노을은 속절없이 저무네
괜히 슬퍼지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그대
내안에 반쯤 차 있네
가끔 술잔에 따라 마시다 보면
취해서 잠시 잊네
속 쓰려 일어나니
또 그만큼 고여 있네
슬픔 때문에 사는 것 같아
그냥 살기로 했네
사는 게 좀 슬프면 어때
- 「사는 게 좀 슬프면 어때」 전문
슬픔마저도 허림을 통과하고 나면 하무뭇해지는 것이니, 그의 시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는 시인 박제영은 이렇게 얘기한다.
“홍천은 산과 물이 둘러있고 깊고 궁벽한 곳에 있다, 라는 말은 〈학명루기〉에서 서거정이 한 말이다. 미약골 모두부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벌력의 강이었고 남천이었고 화양강이었다. 이 강에서 아버지가 살았고 어머니가 살았고 그 아들딸이 살았고 또 그 아들과 딸들이 살아 산이 되고 물이 되어 또 살았다, 라는 말은 홍천 시인 허림이 한 말이다. 일찍이 허림 시인을 알고 지냈지만, 나는 도통 그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다. 그가 홍천 산다는데 홍천하고도 내면의 골짝 오막에 산다는데 도무지 거기가 어딘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그의 시를 논할 때면 언토불이(言土不二)를 말한다. 그가 짓는 시농사법이야말로 유기농법 아니던가. 허림 시인이 있어 홍천은 더 깊고 홍천은 더 이상 궁벽하지 않다, 라고 발문을 써준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의 시 〈마중〉이 노래가 되어 요즘 장안의 화제다.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라는 말은 내면이라서 가능한 허림이라서 가능한 문장이다.”
시인 허림이 말하고 있는 〈다음이라는 말〉에 담긴 무진한 그리움을 보고 싶다면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 허림 시집 『다음이라는 말』
중견 시인 허림이 열 번째 시집 『다음이라는 말』을 펴냈다. 달아실기획시집 29번으로 나왔다.
요즘 허림 시인이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기는 하다. 그의 산문집 『보내지 않았는데 벌써 갔네』에 실린 시 「마중」에 작곡가 윤학준이 곡을 붙여 노래(가곡)로 만들었는데, 이 〈마중〉을 소프라노 조수미, 테너 임형주, 바리톤 송기창,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 등 수많은 성악가들이 부르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 허림, 「마중」(『보내지 않았는데 벌써 갔네』) 전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시인 허림은 낯설지도 모른다. 노래 〈마중〉은 알아도 시인 허림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시인 허림은 강원도 홍천의 오지 내면에 들어 작은 오막을 짓고, 아프고 아리고 쓸쓸하다가 마침내 따듯한, 오막 같은 고향의 말들의 집을 아주 오래 짓고 있다. 1988년 등단하여 지난 35년 동안 열 채의 시집을 지은 것이니, 농부가 농사를 짓듯 그야말로 손가락이며 손바닥이며 굳은살이 박이도록 치열하게 시를 지어온 것이니, 그간에 쌓은 공력과 내공으로 눙치듯 시를 펼쳐 보이며 그만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시인이다.
소설가 이순원은 이번 시집을 읽고는 이렇게 얘기한다.
“허림 시인의 시집을 읽다 보면 한 줄 한 줄 표현들도 빛나지만, 무엇보다 홍천의 내면에서 시인이 살아온 시간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에 새겨진 시가 하나로 물결치는 게 놀랍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삶의 그림자인지 경계가 사라집니다.”
“시인은 홍천 내면의 하늘과 자연으로 사람 마음의 그리움을 이야기합니다. 한 줄 한 줄 반짝여서 그것이 詩인 줄은 알지만, 나에게는 웅성거리는 이야기가 먼저 읽힙니다. ‘다음이라는 말이 기약 없이 화두처럼 따라’(「다음이라는 말」)와 벌써부터 그의 다음 시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해설을 쓴 시인 최광임은 또 이렇게 평한다.
“허림 시인에게 내면이란 장소적 공간은 삶의 실체이다. 시인이 사는 내면에도 사람들은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 것이다.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가 견딜 추위를 염려하고, ‘그런대로 해 먹을 만한 겨울 천렵’하며 사람들이 모여 살 것이다. 한 어둠이 다른 어둠에게 내어준 아랫목같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어둠도 환해지는 법이다. 허림 시인이 어둠을 사는 방식이다.”
세상의 어떤 감정도 세상의 어떤 물상도 시인 허림에게 닿으면 허림이 재해석한 단어로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어찌 보면 시인 허림은 자신만의 대백과 감성사전을 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와도
어둠은 덮이지 않네
온 세상 흰빛이 넘쳐도
오막은 저녁처럼 어두워지네
까치밥으로 남겨둔 땡감이 불을 밝히는
서림 빈집의 감나무에도
노을은 속절없이 저무네
괜히 슬퍼지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그대
내안에 반쯤 차 있네
가끔 술잔에 따라 마시다 보면
취해서 잠시 잊네
속 쓰려 일어나니
또 그만큼 고여 있네
슬픔 때문에 사는 것 같아
그냥 살기로 했네
사는 게 좀 슬프면 어때
- 「사는 게 좀 슬프면 어때」 전문
슬픔마저도 허림을 통과하고 나면 하무뭇해지는 것이니, 그의 시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는 시인 박제영은 이렇게 얘기한다.
“홍천은 산과 물이 둘러있고 깊고 궁벽한 곳에 있다, 라는 말은 〈학명루기〉에서 서거정이 한 말이다. 미약골 모두부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벌력의 강이었고 남천이었고 화양강이었다. 이 강에서 아버지가 살았고 어머니가 살았고 그 아들딸이 살았고 또 그 아들과 딸들이 살아 산이 되고 물이 되어 또 살았다, 라는 말은 홍천 시인 허림이 한 말이다. 일찍이 허림 시인을 알고 지냈지만, 나는 도통 그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다. 그가 홍천 산다는데 홍천하고도 내면의 골짝 오막에 산다는데 도무지 거기가 어딘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그의 시를 논할 때면 언토불이(言土不二)를 말한다. 그가 짓는 시농사법이야말로 유기농법 아니던가. 허림 시인이 있어 홍천은 더 깊고 홍천은 더 이상 궁벽하지 않다, 라고 발문을 써준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의 시 〈마중〉이 노래가 되어 요즘 장안의 화제다.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라는 말은 내면이라서 가능한 허림이라서 가능한 문장이다.”
시인 허림이 말하고 있는 〈다음이라는 말〉에 담긴 무진한 그리움을 보고 싶다면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다음이라는 말 (허림 시집)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