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의 지도자 만암 스님

석문의 지도자 만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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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수행자이자 교육자.
불사의 완성자.
한국불교 정통성의 수호자.
만암 스님의 일생은
근대 한국불교가 자신을 지켜낸
가장 정직한 기록이다.”

만암 스님이 한국불교사에 남긴 자취는 크고 깊다.
백양사를 10년 만에 호남 굴지의 대가람으로 일으켰고, 광성의숙 창설부터 중앙불교전문학교 승격, 정광학원 설립까지 평생을 인재양성에 바쳤다. 또한 임제종 운동에 참여해 한국불교의 정통 법맥을 지켰고, 고불총림 결사로 전통불교 회복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조계종 종명 회복과 도의국사 종조 명문화까지, 이 모든 활동을 관통한 것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자세였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한순간도 어긋나지 않은 수행자, 그것이 만암 스님이었다.
저자

이재형

동국대학교인도철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교대학원사학과를수료했다.30여년간법보신문에서한국불교의역사와사상,수행과문화유산등을다루어왔다.학술기자등과편집국장을거쳐현재법보신문대표로있다.
「만암대종사행장에관한고찰」,「불교계친일행적어떻게볼것인가」,「세종의훈민정음창제와신미의역할」,「초기불교연구현황과전망」등의논문을썼고,공저로『월산대선사생애와중도선사상』(조계종출판사)이있다.
한국불교기자협회취재부문및대상,대한불교조계종불교언론문화상교계신문부문최우수상을받았다.

목차

프롤로그

1장적멸
전통불교수호하고승가화합이끈다면불

2장입산
어머니뜻따라출가,70년백양사와의숙연

3장백양사학문전통
교학·선의종장들배출한조선후기불교거점

4장은사취운도진
“가까이는온정넘치고멀리서는존경스러웠네”

5장전강스승환응탄영
경전의오묘한이치꿰뚫어보도록이끈선지식


6장강사시대
강백의길에새겨진사숙응운스님의비극

7장정진과오도
“보배칼마음대로쓰고밝은거울은앞뒤가없도다”

8장광성의숙
전통과신학문함께가르치며민족의식고취

9장임제종운동
환응·석전·만암등참여한전통불교수호운동

10장백양사주지취임
추사가예견한대로법의수레바퀴굴리다

11장중창불사
10년중창불사이끌어피폐한백양사일신

12장반선반농주창
반선반농으로재건한자급자족수행가풍

13장모범사찰
“전조선의모범사찰로추천을주저치아니한다”

14장중앙불교계진출
교육자로서역량발휘,불교교육근대화주도

15장중앙불교전문학교승격견인
불교계숙원사업인고등전문교육기관설립

16장보성고보인계사태
“학교매각은불교계수치”,굽히지않은신념\

17장백양사포교소운영
산에서마을로,백양사가일군풀뿌리포교


18장제주불교복원
‘무불無佛의섬’제주에26개포교소건립

19장재가신행규범화
탄생부터죽음까지,일상에새긴불교의례

20장한글강습소운영
‘한글의씨’뿌린백양사,민족교육의요람

21장정광학원설립
5대본산연합한전례없는불교교육사업

22장정화사상의형성
축출아닌회복,평화적자주적정화론주창

23장고불총림결성
내부정화넘은확장적결사로공동체재편

24장고불총림일과
새벽부터밤까지,청규로짜인공동체의하루

25장전란속백양사
잿더미된암자들앞에서도꺾이지않는희망

26장종조명문화
6·25포화속에서다시세운한국불교법맥

27장권력의개입
“불교존중은고사하고압박·멸망을기도하는가”

28장환부역조
“아버지와조상을바꾸는환부역조를용납하랴”

29장마지막호소
화쟁과화동의길,마지막호소가닿은자리

30장제자들(상)
불교중흥기치든정법,제자들삶에살아나다

31장제자들(하)
제자들삶속에꽃핀원력,다양성이빚은법맥

에필로그
후학과학자들이본만암스님

부록
만암스님연보
참고문헌
사진및이미지출처

출판사 서평

만암종헌(曼庵宗憲)
1876년전북고창에서태어나아홉살에백양사로출가했다.은사취운도진스님아래서행자생활을거쳐득도하고,운문암에서환응탄영스님에게배워강맥을이었다.이른나이에강백으로이름을떨쳤고,강학중에도정진의끈을놓지않아물외암에서깨달음을얻어오도송을남겼다.
1909년백양사청류암에근대식학교인광성의숙을세워학감을맡았고,1911년에는전통불교를지키려는임제종운동에참여했다.1928년동국대학교전신인불교전수학교교장을거쳐1930년이를중앙불교전문학교로승격시키고초대교장을지냈으며,해방후에는전남다섯본산의힘을모아정광학원을설립해초대이사장을맡았다.
1917년부터10년중창불사를이끌어폐허나다름없던백양사를호남굴지의대가람으로일으켜세웠다.낮에는밭을갈고밤에는화두를드는반선반농半禪半農을주창해사찰경제의자립을꾀했고,호남과제주곳곳에포교소를열어불교의대중화에힘썼다.
1948년백양사에선·교·율이조화를이루는수행공동체인고불총림을결성했으며,1951년교정敎正에추대됐다.1954년에는종헌개정을이끌어조계종종명을회복하고,도의국사를종조로명문화했으며초대종정이됐다.그러나종조마저바꾸려는급진적정화에‘환부역조換父易祖’라비판하며스스로종정에서물러났다.1957년백양사에서세수80세,법랍70년으로입적했다.수행과교육을아우르고끝내화합의길을놓지않은석문釋門의지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