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과 버찌 (한보경 산문집)

사탕과 버찌 (한보경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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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보경 시인의 첫 산문집 『사탕과 버찌』는 엄마가 쓰고 딸이 그린 그리움이 길들인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리운 기억의 언저리쯤이 아닐까. 이유 없이 서성이고 설레고 가슴 졸이게 하던 그리움이 저장 된 거기.

언니와 함께 노각무침에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벼 먹던 여름 저녁의 밥상,
드문드문 팥을 넣어 뜨겁게 찐 찐빵과 통째 베어 먹던 샛노란 참외 같은, 그리움이 길들인 맛의 기억들.
빌려 온 엄희자의 순정만화와,
가을날 문득 내다본 뒤뜰에 소복이 쌓인 노란 은행 잎사귀,
시루떡과 강정을 쌓아둔 다락방에 몰래 숨어들 때의 아슬하고 행복했던 포만감,
멜라니 사프카를 들으며 이별보다 더 슬픈 시간을 생각하던 작은 골방,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칸초네처럼 밝고 단순하고 솔직했던 하루하루들.

켜켜이 쌓인 나의 그리움들이다.

그리움으로 길들인 기억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끝낼 수 없는 시간이다.
한 다발의 그리움이 엮은 지난 시간들을 나는 기억하고 싶다.

한때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은 적이 있다.
저자

한보경

저자:한보경
시인.
시집으로『여기가거기였을때』와『덤,덤』이있다.

목차


1부│시간이기억하는,기억의얼굴
시간이기억하는기억의얼굴13
마들렌과홍차처럼19
퀵서비스맨24
책읽는시간29
하루하루34
지는해를바라보는시간38
11월43
첫눈을기다리며48

2부│기적은기적처럼오지않는다
호야꽃이피다55
행복한동화를꿈꾸며60
부적이야기64
‘더멋진’신세계71
슈가보이의마법76
종이책의미래81
무언가에미친다는것86
콜링유callingyou91

3부│길의이름을묻는다
가지않은길99
뜸들이기104
알고짓는죄와모르고짓는죄109
토종을그리다115
이름짓기120
말못126
틈의틈새130
두시간이더주어진다면135

4부│그리움이나를길들인다
사탕과버찌141
밥솥이야기145
딱새를위한기도150
빛을찾아서155
그냥159
동병상련에대하여164
자연이차린밥상168
케이크한조173

5부│사라진것은흔적이없다
시가왔다간흔적179
복고라는품격184
먼나무가있는풍경190
얼룩,소통의무늬194
산수유그늘아래200
예술과표현과자유와바퀴벌레205
‘만약그런완벽한봄날이있다면’210
새라고부르기217

에필로그
우리가원하는것은끝일까시작일까225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오래전에한일간지에정기적으로보낸칼럼들이시작의우연한단초가되었다.오래묵힌시작을다시꺼내시작하는일이쉽지는않았다.털어내고닦아도여전히남아있는찌든흔적들을누군가에게들킬것같아부끄러웠다.
그러함에도나는산문집을엮기로했다.용기가필요한일이었는데딸이큰힘을보탰다.바쁜일상에도틈틈이내가보낸글을읽고예쁜그림을그려내게보냈다.그리움을반추하기에는제법어울리는그림같아서슬며시용기를내었다.딸과의즐거운협업,그런대로의미있는시간이었다.몇편안되는그림이지만책속에서적절한자리를잡고제몫을충분히해주는것같아무척기쁘고다행이다.

2024년겨울,한보경

책속에서

기억이하나의얼굴을갖기위해서는불편한기억을뜸들이는시간이필요하다고생각한다.좋은기억으로그렇지못한기억들을잘싸매두고기다리는시간이필요한것이다.각각의기억들이서로스며들어반목하지않고서로를받아들일수있을때까지설익거나타서눌어붙지않게잘뜸들이는시간을기다려야한다.
이런저런기억들도뜸들기를기다리는동안서로부딪치고뭉개지고스며들어잘어우러질것이다.어느순간좋고나쁨의경계는사라질것이다.옳고그름의분별이사라지면주장하고고집하던모난얼굴들은비로소부드럽고편안한얼굴을하게될것이다.
(본문「기억의얼굴」중에서)

해마다피는호야꽃에게더는근거없는기적과행운을기대하지않는다.꽃을보는기쁨자체가힘들고팍팍한시간을견딜수있게도와주는향기로운위로다.피는꽃에게고마움을전하는것도귀한깨달음이다.내가진무거운짐과근심을꽃에게떠넘기지말일이다.꽃은꽃으로바라볼때가장큰기쁨이되어줄것이다.
호야꽃도꽃이다.꽃이니까피고진다.천천히피는꽃이지만질때는뒤도돌아보지않고황망히떠난다.후둑후둑낱낱이해체되듯떨어져바닥에흩어진꽃잎은꽃이었던기억조차지워버린듯허허롭다.그허허로움속에못보고지나쳐버린세상이보인다.꽃이었던시간조차낱낱이해체한빈자리.더크고공활한시공속에는눈이부시게아름다운무상이빛나고있다.
(본문「호야꽃이피다」중에서)

인공지능이일상사처럼회자되는세상이다.앞으로더큰변화속에행복의기준과가치도점점달라질것이다.기대보다는두려운마음이더크다.어린시절아버지의사탕속에는불필요한걱정이나불안의쓴맛은어디에도없었다.아버지의사탕이그립고달콤쌉싸름했던버찌맛이그리운이유는걱정과불안이끼어들틈새가없었기때문이리라.작고소소한것이지닌고전적사랑의가치가오래우리곁에머물기를바란다.
거리마다지천인벚꽃이진자리마다빨갛게버찌가열리는풍경을상상해본다.꽃의짧은마감이마냥아쉽지만않을것같다.

어딘가여전히있을것같은‘위그든씨의사탕가게’를찾아잘말린버찌씨하나를조심스레내밀고알록달록한꽃사탕을사오고싶다.
아버지의사탕처럼,작은버찌씨를받아든위그든씨처럼,애틋한사랑의봄날이또올수있을까.
(본문「사탕과버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