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대의

여성의 대의

$17.00
Description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페미니스트
지젤 알리미의 대표작 국내 최초 출간

지난 2020년 7월 28일 9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지젤 알리미의 대표작 『여성의 대의(La cause des femmes)』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지젤 알리미는 프랑스의 인권 변호사이자 페미니즘 운동가로, 억압받고 소외당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평생 헌신한 인물이다. 낙태는 무거운 죄인데도 성폭행은 죄가 아니던 시절에 온몸으로 맞서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률’과 ‘성폭행 및 사회 도덕을 저해하는 행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페미니즘의 본질을 꿰뚫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남성에 치우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이고 투쟁이며 혁명이다. 대중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켜 지지를 끌어내고 법과 제도를 만듦으로써 완성해나가는 실천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큰 오해 속에서 살고 있다”는 지젤 알리미의 진단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방법론적 문제가 초점을 흐리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모두가 사람인 세상’이다. 이것이 지젤 알리미가 일평생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고 강조한 까닭이다. 이 책에는 말 그대로 위대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페미니스트가 역설하는 진정한 페미니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저자

지젤알리미

GisèleHalimi
변호사,페미니즘운동가,반전·반식민·반자본주의활동가,정치가,문필가.1927년7월27일,프랑스식민지였던튀니지에서태어났다.어릴적부터극심한남아선호분위기속에서여성에게채워진족쇄를끊고자부단히저항했다.딸을공부시킬생각도능력도없던부모에게의지하지않은채오롯이자신의노력으로튀니지에서고등학교까지마친다음,1944년열일곱살이되던해프랑스로건너가지금의파리제1대학교인팡테옹소르본대학교(UniversitéPanthéon-Sorbonne)에서법학및철학학위를취득한뒤1949년변호사에임용됐다.
1953년모크닌(Moknine)재판에서튀니지독립운동가들을변호했고,알제리독립전쟁때는장폴사르트르(JeanPaulSartre),시몬드보부아르(SimonedeBeauvoir)등프랑스지식인들과함께알제리독립을지지하면서재판에회부된민족해방전선(FLN)활동가들을변호했다.특히1960년프랑스군에체포돼온갖고문과성폭행을당한스물두살여성자밀라부파차(DjamilaBoupacha)의변호를맡아그참상을폭로하고여론을이끌어냈다.
1967년에는미국이베트남전쟁중저지른범죄와패악을심판하고자버트런드러셀(BertrandRussell)이제창하고장폴사르트르등당대유력지식인및정치인25인이발족한러셀법정(TribunalRussell)조사위원회위원장자격으로베트남을방문했다.
1971년당대여성저명인사343명이들고일어나피임과낙태의적법한권리를요구한‘343선언(Manifestedes343)’에동참했으며,같은해시몬드보부아르와함께「여성의대의를선택하다(Choisirlacausedesfemmes)」협회를설립해억압받고소외당하는수많은여성을조직적으로지원하면서페미니즘투쟁을본격화했다.
1972년에는성폭행으로임신한태아를낙태해기소된열여섯살고교생마리-클레르(Marie-Claire)와어머니미셸슈발리에(MichèleChevalier)그리고이들을도운세명의여성을모두변호한보비니(Bobigny)재판에서승리함으로써3년후‘베유법’,즉‘자발적임신중단에관한법률’이제정되는데결정적영향을미쳤다.
1975년~1978년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재판은그동안온전히범죄로인식되지못했던성폭행이비로소중범죄로규정되는전환점이됐으며,1980년‘성폭행및사회도덕을저해하는행위에관한법률’제정으로이어졌다.
1981년국회의원당선후1984년까지활동하면서선거여성할당제를법제화하고자노력했고,성소수자인권문제에관심을기울였으며,매춘및대리모합법화에격렬히반대했다.1985년~1986년유네스코(UNESCO)프랑스대사로,1989년에는유엔(UN)프랑스대표단특별고문으로활약하면서여성과남성의정치평등을실현코자애썼다.1998년에는국제금융관세연대(ATTAC)를공동설립해반신자유주의운동에동참했다.
재판,입법,시위,조직,여론등과더불어출판도주요투쟁활동가운데하나였다.대표작인이책외에도『자밀라부파차(DjamilaBoupacha)』『부르고스재판(LeProcèsdeBurgos)』『낙태,재판중인법:보비니사건(Avortement,Uneloienprocès:L’AffairedeBobigny)』『성폭행:액상프로방스재판(Viol,Leprocèsd’Aix)』『여성의공동계획(LeProgrammecommundesfemmes)』『오렌지우유(Lelaitdel’oranger)』『잃어버린아름다움(Uneembellieperdue)』『여성의새로운대의(Lanouvellecausedesfemmes)』『정치생활의평등(Laparitédanslaviepolitique)』『무례한변호사(Avocateirrespectueuse)』『열정의역사(Histoired’unepassion)』『치열한자유(Unefaroucheliberté)』등수십권의책을썼다.
평생페미니즘운동에헌신하고여성의대의를위해투쟁한지젤알리미는2020년7월28일,자신의아흔세번째생일다음날세상을떠났다.

목차

옮긴이해설_페미니즘을초월한페미니스트

개정판서문_오해의시대
초판서문_감금당한여성

제1장_나의삶
제2장_선택협회
제3장_보비니재판
제4장_형법제317조
제5장_낙태와성
제6장_그르노블사건
제7장_알리바이
제8장_투쟁의동력


부록

출판사 서평

나는정의가아닌것을참을수없어요
이것으로내일생을요약할수있습니다
_2019년8월〈르몽드〉와생애마지막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이여성스스로극복할수있도록도울것이다.자신의정체성에대한처음의불확실성을제거하도록해줄것이다.여성으로서역할에갇혀있는여성은자신들의억압자역시남성으로서역할에갇혀있다는사실을이해하지못한다.여성은스스로해방함으로써동시에남성을해방한다.나아가여성은남성과동등한위치에서역사에참여함으로써다른역사를만들어낸다.한성이다른성을지배하는관계는소멸하며,역할은서로를자유롭게오간다.
이것이페미니즘혁명이다.폭력과증오가없는조용한혁명이다.언론에서슈퍼우먼은힘들다느니,페미니스트는속으로외롭다느니,이미남자들이여자들앞에서기를못편다느니아무리떠들어도이혁명은계속될것이다.오늘날왜페미니즘일까?페미니즘이휴머니즘이기때문이다.페미니즘이인류를자유롭게하기때문이다.
페미니즘은이제막기나긴여정을시작했을뿐이다.
페미니즘은20년후,50년후,100년후,인류의삶을송두리째바꿔놓을것이다.
_개정판서문「오해의시대」중에서


-여성대의의열정적수호자
2020년7월28일,20세기가장위대한페미니스트가세상을떠났다.알제리독립전쟁에서민족해방전선(FLN)활동가들을변호하고,낙태합법화와성폭행범죄화를위해지칠줄모르고싸워온지젤알리미가93세의나이로영면에들었다.자신의아흔세번째생일다음날이었다.
그녀는반식민지주의인권변호사이자페미니즘운동의주역이었다.프랑스의법이낙태를금지하고성폭행을범죄로인정하지않던시대에지젤알리미는법정에서,특히1972년‘보비니재판(낙태합법화)’과1978년‘액상프로방스재판(성폭행범죄화)’에서역사적인승리를거뒀다.
그녀는어떻게페미니즘의아이콘이됐을까?그녀는어떻게반식민주의투쟁에서싸울무기를단련할수있었을까?
1927년7월27일,당시프랑스식민지였던튀니지튀니스의라굴레트(LaGoulette)라는마을에서제이자지젤엘리즈타이에브(ZeizaGis?le?liseTa?eb)라는아이가태어났을때,그녀의부모는딸의탄생을반기지않았다.아버지에두아르(?douard)는딸이태어난게너무나섭섭한나머지보름이지나고서야지인들에게딸의출생을인정했다.
지젤알리미는남아선호사상이뼛속깊이박혀있는분위기속에서여성에게채워진족쇄를끊고자부단히저항했다.어릴적부터그녀는딸이남자식구들의시중을들고집안일을도맡아해야한다는의무를거부했다.열세살때는단식투쟁끝에설거지나집안일을하지않아도된다는허락을받아냈다.그날그녀는일기장에“오늘은내가처음으로약간의자유를쟁취한날이다”라고썼다.
열여섯살때는“여자는최대한빨리결혼해야한다”며부모가정한남자와혼인하라는어머니의요구를단칼에거절했다.그녀는딸을공부시킬생각도,돈도없던부모에게한푼도의지하지않은채장학금과무료도서관등가능한모든수단을활용해학업을이어갔다.그리고열일곱살때그녀는부모의반대와회유를무릅쓰고꿈에그리던프랑스로건너가,파리대학교장학생으로밤에는미군부대전화교환원일을하면서법학과철학을공부한뒤1949년변호사로임용됐다.
튀니지로돌아온그녀는1953년,이후‘모크닌재판’으로불린정치재판에서튀니지독립운동가들을변호했다.알제리독립전쟁(1954~1962)때는장폴사르트르(JeanPaulSartre),시몬드보부아르(SimonedeBeauvoir)등프랑스지식인들과함께알제리독립을지지하고,재판에회부된민족해방전선활동가들을변호했다.이때자밀라부파차(DjamilaBoupacha)와의운명적인만남이이뤄졌다.

-자밀라부파차를위하여
1960년2월10일,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일원으로프랑스군에맞서싸우던스물두살여성자밀라부파차가알제(Algiers)의한식당에폭탄을설치한혐의로체포된다(1959년9월27일에그녀가설치한폭탄은프랑스군이발견해뇌관을제거함으로써폭발하지는않았다).그녀는영장도없이불법으로체포됐고,정식수감시설이아닌프랑스군막사로끌려가한달동안군인들에게모진고문과성폭행을당한다.
1960년3월어느날,부파차의오빠가지젤알리미에게이사실을알렸고,그녀는즉시이사건의변호를맡는다.1960년5월17일,지젤알리미와의면회에서자밀라부파차는이렇게진술했다.
“그들이제질속에칫솔손잡이를집어넣고맥주병을밀어넣었어요.끔찍하게고통스러웠어요.저를이상한자세로묶은뒤병의목부분을집어넣은거예요.저는이틀동안울부짖다가의식을잃었어요.”
지젤알리미에게상황을전해들은시몬드보부아르는1960년6월2일자〈르몽드(LeMonde)〉칼럼“자밀라부파차를위하여(PourDjamilaBoupacha)”를통해다음과같이폭로했다.
“군인들은그녀의가슴,다리,사타구니,성기,얼굴에테이프로전극을붙였다.이들은전기고문을가하면서주먹질을하고그녀의얼굴을담뱃불로지졌다.그런뒤욕조위에거꾸로매달아물고문했다.”
이사건은프랑스전역에커다란파문을불러일으켰다.수많은지식인이나서서‘자밀라부파차지원위원회’를결성해여론을결집하자1960년12월알제법원은사건을프랑스로이첩했다.지젤알리미는프랑스국방부장관과알제리주재프랑스군총사령관을직권남용혐의로고소했다.
1961년6월28일,자밀라부파차는지젤알리미의논리적이고설득력있는변론에도불구하고사형을선고받았다.그러나다행스럽게도1962년3월18일알제리독립을인정하는에비앙(?vian)협정이체결됨으로써4월21일석방됐다.이때부터지젤알리미는여성의대의를위해투쟁하고법정에서변론을펼치는페미니스트로서명성을얻기시작했다.

-“나도낙태했다!”_343선언
1971년4월5일,‘낙태죄’라는억압에맞서수많은여성이피임과낙태의권리를요구하고자대규모행동을개시했다.자신들도낙태한경험이있다고시인하며피임과낙태의적법한권리를요구한당대여성저명인사343인의공동선언문이〈르누벨옵세르바퇴르(LeNouvelObservateur)〉에실렸고,지젤알리미도이명단에이름을올렸다.이것이이른바‘343선언(Manifestedes343)’이다.그해지젤알리미는시몬드보부아르와함께〈여성의대의를선택하다(Choisirlacausedesfemmes)〉협회를설립해억압받고소외당하는수많은여성을조직적으로지원하면서페미니즘투쟁을본격화했다.협회의슬로건은“임신은나의선택이다!”,“피임은나의자유다!”,“낙태는나의최후수단이다!”였다.그녀는이책에서이렇게말하고있다.
“우리는낙태의권리를위해싸우는십자군이아니다.어머니가되는일이여성스스로선택하는권리가되도록싸우는것이다.”

-“죄가있는것은재판장님의그법입니다!”_보비니재판
지젤알리미를설명할때빼놓을수없는사건이‘보비니(Bobigny)재판’이다.1972년10월과11월에파리근교의보비니라는도시에서열린이재판은프랑스는물론전세계적으로엄청난파장을일으켰고,프랑스에서자발적임신중단(낙태)이형사처분을받지않도록하는데결정적영향을미쳤다.이재판에서지젤알리미가변호한피고인은모두다섯명이었다.같은학교남학생의성폭행으로임신해어쩔수없이낙태수술을받은열여섯살고등학생마리-클레르(Marie-Claire),그리고딸이낙태수술을받도록한어머니미셸슈발리에(Mich?leChevalier)와그녀를도운세사람의여성이이들이었다.미성년자인마리-클레르는불법낙태혐의로,네명의여성은불법낙태공모및시술혐의로기소됐다.
파리지하철공사말단노동자로힘겹게세딸을키우던미혼모미셸슈발리에는마리-클레르에게자초지종을듣고딸아이가출산을원치않는다고하자산부인과를찾아간다.하지만의사가불법으로낙태시술을해주는대신그대가로그녀의석달치월급에해당하는수술비를요구하자미셸슈발리에는직장동료인뤼세트뒤부세(LucetteDuboucheix)와르네소세(Ren?eSausset)에게사정을털어놓는다.이들의주선으로마리-클레르는낙태시술을할줄아는일반인미슐랭방뷔크(MichelinBambuk)에게불법낙태수술을받는다.그러나출혈이심해져사경을헤매게됐고,결국병원에서응급치료를받아목숨을구한다.
그런데얼마후마리-클레르를성폭행한남학생이자동차절도혐의로체포됐고,그과정에서마리-클레르의불법낙태를경찰에밀고한다.그렇게마리-클레르와네사람은기소된다.이들은지푸라기잡는심정으로〈선택〉협회에도움을구했다.지젤알리미는자신들을변호해달라는이들의요청을즉시받아들였다.
지젤알리미와〈선택〉협회는이어려운재판에서승리하기위해기소된여성들의동의를얻어낙태재판을정치재판으로변모시킨다.1920년의낙태금지법자체를문제삼아그부당성을부각하는전략이었다.당시부유한프랑스여성들은낙태가합법인스위스나영국으로건너가좋은환경에서낙태수술을받았고범죄자도되지않았지만,빈곤여성들은열악한환경에서형사처분을감수하며불법으로수술을받아야했다.
지젤알리미는사회저명인사들을찾아법정증언을부탁하며착실히재판을준비했고,이와더불어여론전에도총력을기울였다.〈선택〉협회는조직적으로시위를주도하면서시민들에게전단을배포했다.시위확산을우려한정부가강경진압을지시하자시위대가경찰에게폭행을당하는지경에이르렀다.이모습을취재한주요언론이대대적으로보도했다.이로써보비니재판은사회적사건으로확장됐다.
1972년10월11일먼저열린재판에서마리-클레르는자발적낙태가아니라는판결이유로무죄를선고받았다.지젤알리미는“판례의관점에서보면새롭고용기있는판결이지만한편으로는매우모호한판결”이라면서,“마리-클레르는자발적으로낙태를한것”이며“자발적낙태에무죄가선고돼야했다”고아쉬워했다.마리-클레르는법정에서당당히이렇게증언했었다.
“저는고등학생이에요.제나이때는아이를가질수있다는생각자체를안하고아이를갖고싶어하지도않아요.”
네사람의여성에대한재판은1972년11월8일에열렸다.법정에는과학자장로스탕(JeanRostand),자크모노(JacquesMonod),프랑수아자코브(Fran?oisJacob),영화배우델핀세이리그(DelphineSeyrig),프랑수아즈파비앙(Fran?oiseFabian),정치인미셸로카르(MichelRocard),작가이자정치인에메세제르(Aim?C?saire)와문필가시몬드보부아르와같은수많은저명인사가참석해지젤알리미와피고인들에게힘을보탰다.
증인으로나선의사이자독실한가톨릭신자이기도한폴밀리에즈(PaulMilliez)교수는“그런상황에서는다른해결책이없었을것”이라며,“가톨릭신자들이왜모든프랑스국민에게우리의도덕성을강요하는지모르겠다”고말했다.시몬드보부아르는“여성에게임신과출산을장려하는목적은여성을가정에붙잡아두고집안일을시키기위한것”이라고목소리를높였다.피고인증언대에오른미셸슈발리에는판사앞에서당당히외쳤다.
“재판장님,저는죄가없습니다!죄가있는것은재판장님의그법입니다!”
재판결과미셀슈발리에는500프랑벌금형에집행유예선고받았으나,피고측의항소에검찰이항소심설정을하지않아시효만료로집행되지않았다.사실상무죄선고를받은셈이었다.뤼세트뒤부세와르네소세는“마리-클레르와직접관련되지않았기때문에”공범이아니라는명목으로석방됐으며,미슐랭방뷔크는안타깝게도낙태시술당사자라는이유로징역1년을받았지만집행유예1년이적용돼수감되지는않았다.
보비니재판은이후보건부장관시몬베유(SimoneVeil)가발의해1975년1월17일가결되고공포된‘베유법’,즉‘자발적임신중단에관한법률’로향하는거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