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 도시텃밭 그림일지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 도시텃밭 그림일지

$19.50
Description
“흙이 숨 쉬는 작다란 임대 공간은 놀라운 해방구가 된다”
눈, 코, 귀, 혀가 열리는 곳
텃밭에 세 들어 살아가는 지극한 기쁨에 대하여
생태적 감수성이 깊이 묻어나는 그림책들을 지어온 유현미 작가가 텃밭에 세 들어 살아가는 나날을 온몸으로 쓰고 그렸다. 3월부터 12월까지 한 해 농사를 기록한 일지이자 흙과 사랑에 빠진 이의 연서이기도 하다. 뿌리고 심고 기다리고, 또 아침저녁으로 성실히 따고 캐고 나눈 텃밭의 모든 계절이 생생히 펼쳐진다. 땅에 딱 붙은 단어들과 개운하고 시원한 문장, 꾸밈없이 진솔하면서도 어쩐지 찬란한 그림들에서는 마치 우리 또한 그곳 텃밭 가운데 발 딛고 있는 양, 페이지마다 흙냄새가 끼친다. 두 발로 단단히 땅을 디디고 두 손으로 보드라운 흙을 어루만지는 그 지극한 기쁨을 함께 맛보자고 다정히 손 내미는 책. 꼭 맞잡고 싶어질 것이다.
“이 조그만 밭이, 흙이, 나를 조건 없이 통째로 받아주는구나. 씨를 넣고 모종을 심느라 흙을 계속 매만지는 동안 정작 흙이 나를 어루만지고, 흙과 나 사이 오래된 신뢰의 감정이 모깃불 연기처럼 따스하게 피어났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일 수 있을까. 이상한 감흥에 젖은 채 모종과 씨앗을 마저 다 심었다.”

저자

유현미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영문학을공부했다.미술치료를공부하다가뜻하지않게그림놀이의재미에빠져그림책작가가되었다.구순인실향민아버지에게그림을가르치며함께만든책『쑥갓꽃을그렸어』와『너희는꼭서로만났으면좋갔다』,2016~17년촛불집회를기록한『촛불을들었어』가있다.개인전[서있는사람들](2014,좋은자리갤러리),그림책원화전(2016,북촌전시실)을열었다.어디에서든있는재료를써서마음가는대로그리는일상드로잉을즐기며,그리기를통해그대상과세계가환하게밝혀지는순간의느낌을좋아한다.비올때나무줄기들이빗물을머금고점점색이짙어지는것을기다렸다가검어진나무줄기에코를대고큼큼냄새를맡아보기도한다.

『내가좋아하는갯벌』,『내가좋아하는야생동물』의글을쓰고,『냇물에뭐가사나볼래?』,『세밀화로그린동물흔적도감』같은책을만들었다.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펴낸『상처입은자의치유』를우리말로옮겼다.

목차


들어가며:나를사랑한텃밭

1부뿌리고심고한눈팔고:집에가고싶지않아라
3월딱새를보면/흙인간
4월씨뿌리는날/*봄텃밭작물지도/쑥대밭에서/벌교송영심여사무말랭이차납시오/집에가고싶지않아라/이상한날씨/기지개켜는싹
5월텃밭에누가똥쌌어?/어서오세요,환영합니다/귀한첫물은/불사조들의밤/진딧물도깔깔깔/타는목마름/단비머금은얼굴들/양파가누웠다

2부따고캐고나누고:요상한날씨에도작물은자라고
6월왜찻길로나왔어/이슬의힘/비로소온전해지는/양산모자모녀/나의뽕나무/버찌/홍화꽃피었다/올해첫나눔상자/하지감자안캡니다/장마시작/환호작약/나도일으켜줘요/청갓푸른마을/작물은기다려주지않는다
7월장맛비그치고/혹독하다/감자캐는날/*여름텃밭작물지도/소서/사마귀새끼/천국과지옥/분꽃에홀린날/곤충과거미의집/빗속에서오이따기/당신의허물/저녁의사마귀곁에서/옥수수익는냄새/침이꼴깍,고구마순김치담그는날/한여름/땅은거짓말을안해요/수고많으시네요/굉장한날
8월늙은오이/모깃불피우고/매미한쌍/하마터면!/가을빛/검어질동말동/가을밭만들기/벼가익는다/원산지는‘이태리’/반가운주문

3부뽑고널고말리고:더할수없게좋아기쁘구나
9월탄저병/기쁜범인/태풍이지나가고/발은땅을디디고손은흙을/*가을텃밭작물지도/허공의캐슬/매미는아직/한번걸려들면/마스크쓴지구/알밤꿀밤/*밤편지/가을이라는선물/배추벌레향연/커다란기쁨
10월가을호우주의보/기러기날아오고/엄마사마귀/번갯불에콩볶듯/경사났네,경사났어!/가을볕에말립니다/널고걷고덮어주고/마지막논/짚단실어나르기/오늘은걸어서

4부덮고걷고또덮고:텃밭은고마워요,내년에또봅시다
11월추위소식/이불덮기/이불걷기/김장무수확/사는맛/왕겨이불/겨울이와서다행이다/동장군납신다
12월마침내배추수확/마지막나눔상자/곧보자,새싹들아

부록:제철텃밭밥상

출판사 서평

도시삶의최전선이자보금자리,텃밭에서회복하는몸과마음
“부지런히몸을놀리다보면어느새오롯이나자신이되어있다.”

자연속소박하고느린삶을그려낸임순례감독의영화〈리틀포레스트〉에는주인공혜원에게남긴엄마의편지에이런구절이나온다.“힘들때마다이곳의흙냄새와바람과햇볕을기억한다면,언제든다시털고일어날수있을거라는걸믿어.”엄마의말처럼도시생활에몸도마음도꺾여버린혜원이시골마을로돌아와그땅에서나고자란것들을돌보고먹으며다시자신의삶을살아갈힘을되찾았듯,유현미작가는텃밭이자신을살렸다고고백한다.비록도시속한뙈기텃밭이지만어릴적고향의울안으로돌아온것마냥‘흙냄새와바람과햇볕’정다운흙밭에서,그는다양한사회관계를위해써야하는이런저런가면들을훌훌벗고머리가아닌몸을바삐움직이며지독한우울감과무기력을떨치고본연의자신으로회복해간것이다.그모습엔거짓없는기쁨과즐거움이넘친다.도시에얼마남지않은‘흙이숨쉬는땅’인텃밭이우리에게도숨통을틔워주는놀라운해방구임을,‘언제든다시털고일어날’보금자리의공간이되어줌을저자는삶으로써전한다.

“살아있다는감각이새로이피어나면서잃었던자유가돌아온다.복잡하고단조로운도시의가장자리,흙이숨쉬는작다란임대공간은놀라운해방구가된다.텃밭은흙과더불어나를끊임없이움직이게하여나를살린다.씨를뿌리고작물이자라는것을지켜보고도우면서나도함께자란다.내가키우고돌보는것같지만내가더보살핌을받는다.”

눈,코,귀,혀,손과발이쓰고그려낸온갖작은존재들의향연
“이텃밭에세들어살기는도긴개긴입니다”

이작다란땅에세들어살아가는것은인간만이아니다.텃밭은인간이힘을들여작물을키워내는인위적인공간이지만,“놀랍게도자연과야생이슬그머니합방”하는곳이기도하다.절로자라나는연둣빛어여쁜냉이꽃과아욱싹,작물탐하러온물까치며족제비며고라니,잎에구멍뽕뽕뚫어점점이똥알을만들어놓은애벌래들,나무사이어룽거리는노란빛꾀꼬리,흙속굼벵이들의우주,홍화허리꺾어놓는진딧물대첩,누더기처럼제몸을내어준씨감자껍질,몇겹으로지어성채같은거미줄과그주인,고구마넝쿨에기거하는비현실적인박각시,저녁밭에서사람을홀리는분꽃,자꾸만마주치는사마귀커플과그들의허물과알집,청갓푸른마을에거주하는노린재와무당벌레들까지.“이서로다른녀석들이따로또같이어우러져잎을타고오르내리며먹고자고사랑하고똥누고하는모습이보기에좋다.어쩌면노래도부르고춤도추겠지?빗방울맺혀싱싱하고싱그러운청갓푸른마을.영원히세주고싶다.내가먹고이웃과도나눌청갓이야충분하니까.”

서문에서도밝혔듯“이텃밭농사일지는친절하고실용적인도시텃밭지침서가아니”라흙이한어른과여러존재들을“보살피고보듬고볼비비며아낌없이사랑한”사랑이야기인것이다.그사랑의터전에펼쳐지는“다정하고도거친,온전한세계”에서,한낱인간은기쁘게작아지고치열히살아가는작은존재들의존재감은더크고찬란하게빛난다.

요상한날씨에도작물은자라고또나누지마는

“작고소박한텃밭농사라도농사는정확히기후변화와함께”갈수밖에없다.텃밭은“모든날씨들의영향을정직하게제몸에새”긴다.저자가기록한2022년의봄은이상고온과냉해,긴가뭄으로작물들이전에없이제대로자라지못했다.“이렇게처음겪는일이앞으로계속늘어나겠지.가뭄을구체적으로겪으니쌀이나채소씻은물을그냥버리는것도너무나아깝다.내가이러한데생업이농사인농부들심정은어떨까.텃밭과함께하지않았다면나는기후변화의심각함을잘난머리로는알아도몸으로실감하지는못했을것이다.”그렇기에더더욱삶쪽으로몸을움직인다.반가운단비가내리는날은기꺼이비맞으러나간다.빗속에서고마운작물을똑똑딴다.

“며칠째비맞아올해가장부드럽고크게자란깻잎을두봉지듬뿍담아경비실앞나눔상자에내놓는다.“비실컷맞고잘자란텃밭깻잎이에요.필요한분가져가셔요.”메모와함께.경비실앞에서비구경하고계시던할머니가당신도가져가도되냐고물으신다.아유,참.할머니드시라고내놓는거여요.나누어먹는것은얼마나마땅한가.왜내가더좋을까.도시에서더많은사람이텃밭을일구었으면좋겠다.흙을만지고작물을키우고먹을것을나누기.나는이것이작은혁명일수있다고여긴다.도시에살아도흙과더불어인간본연의자연스러운모습을회복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