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조금설레며기다린다.할머니가되는날을.”
다른것,낯선것,쉽게이해되지않는것,오해받는것,
그러나그속에선명한아름다움이있다
수년간‘어른들을위한그림책읽기’를이끌어온무루작가의커다란나무테이블에서는상기된얼굴로둘러앉은어른들이함께그림책을보고이야기를나누고그림을그리거나문장을쓴다.그리고하나같이이야기한다.‘혼자읽을때보다무루의시선을통과해볼때더아름답다’고,또‘선명하고정확하게한발한발원하는방향으로걸어나가는사람의삶을더알고싶고닮고싶다’고.이책은무루작가가“오래품고있던생각들을천삼고아끼는그림책들을실삼아”쓴첫에세이로,무루가그동안걸어온이상하고도자유로운길과선명하고도아름다운시선이고스란히담겨있다.
모두가정상으로여기는삶에서비껴나현실보다는이상을사는듯한조금이상한사람.비혼여성으로,프리랜서로,고양이의집사로,채식지향주의자로,그림책읽는어른으로살아가는무루작가는이미얼마쯤자신이바라는모습이되어있는건아닐까.“꼿꼿하고단정하며동시에부드럽고따뜻”하여우리에게또렷한흔적을남기고희망의마음을불러일으키는,그가꼽은그림책들속카진스키,로잰느,미스럼피우스,엠마,‘우리동네’할머니처럼말이다.
“사는것이무엇을향해가는일인기조금씩더선명해졌으면좋겠다”
비혼,여성,프리랜서,집사,채식지향주의자,그림책읽는어른…
세계의가장자리를살아가는마음가짐에관하여
-‘어른들을위한그림책읽기’안내자무루의첫에세이
그림책은비교적단순한그림과짧은글이만들어내는작은목소리로삶안팎에크고깊은파장을일으키곤한다.‘어른들을위한그림책읽기’의안내자이기도한무루작가는한권의그림책을읽는일을“한번도열어보지못한방의문을열고들어가는것”에빗댄다.그때마다우리의“세계가한칸씩넓어진다”고말이다.이책은세계의언저리를사는존재가‘이상하고자유로운’자신의본성대로살기위해,‘어제보다오늘조금더나은’삶을완성해나가기위해,그림책을읽고부단히세계를확장해온어른의성장기록이기도하다.그의지도를따라걷다보면어느새우리의세계도한칸,어쩌면여러칸쯤더넓어진것만같다.
-태어나는마음과삽질하는마음
선명한길을따라성큼성큼걸어나가는듯보이는이가정작스스로는지금도‘자라는중’이라고말한다.몇번이고‘태어나는마음’을반복하며여전히“자신을둘러싼울타리를수없이넘나들며어떤것은허물거나새로짓기도하면서지도를만들어”나가는중이라고말이다.그런그가그려온지도는어떤모양일까.음악,사진,차,식물,온갖다채로운‘구덩이’를파면서‘삽질의역사’를써온무루가가장공들여그린지도의한부분은책과글로채워져있다.20대에는아이들에게글을가르쳤고,30대에는청소년들과인문서를읽고글을썼으며,40대인지금은어른들을대상으로그림책과문장수업을한다.가르친이들의성장을지켜보고독려하며자신도그들과함께자라난듯,스스로‘늦된’사람이라고표현하는그의글에는‘성장’과‘모험’이라는키워드가곳곳에박혀있다.이책은어른의삶에끼어드는갖가지‘변수’속에서수많은‘선택의가능성’들을발견해나가는이야기이기도하다.
“우리는모두태어나기로결심한아이들이다.성장은언제나균열과틈,변수와모험들사이에서생겨난다.그속에서수많은‘선택의가능성’들을발견하며조금씩자신을완성해나가게될것이다.”(1부1장<태어나기로결심했다>)
-혼자걷는마음과세상끝에가닿으려는마음
자유로운삶을지향하는저자가비혼을결심할무렵,그가아는어른중에비혼자가없었다.그전과후에도그가선택한많은일들에모델이될만한실제인물이주변에없었다.그래서그에게는이야기가필요했다.꼭두사람이삶을함께꾸려가야하는걸까고민하던시기에그는《어디로갔을까,나의한쪽은》과《떨어진한쪽,큰동그라미를만나》를여러번읽으며“어떤삶은빈틈에서완성”됨을,“누군가에게함께란각자의속도로나란히굴러가는일”임을깨닫는다.쓸데없는일을한다며누구에게도이해받지못하는동안에는햇빛과이야기를모으고있다는프레드릭을비난하지않고“잠잠히자신들의할일을하는들쥐들의너른마음”을떠올린다(《프레드릭》).
어딘가조금씩이상한사람들이어디에도속할필요없이저마다의본성대로살기바라는그는《쫌이상한사람들》속인물들의이상하고도사랑스러운구석을찾으며그들을바라보는작가미겔탕코의애정가득한눈을상상한다.오해받아도좋다고말하는저자는그럼에도서로를이상理想스레바라봐줄수있는사람들을모아이상한활동들(자급자족의일상기술나누기,마을에라벤더길만들기등)을전개하기도한다.그는이처럼혼자서씩씩하게걷고자삶안팎으로분투하며동시에타인이라는세계의끝에닿기를바라고애쓴다.
“나는스스로고독하게살기를선택했다.내인생대부분의시간을혼자서조금외롭게보내고있다.외롭기때문에자유롭고고요하며느슨하게흘러가는시간은내가원하는방식으로나를지키고채워준다.그러나동시에나는세상과연결된사람으로살아가고싶다.세상속에서내가무엇이되고어떤것을해낼수있는지도알고싶다…혼자지만더넓은지도를가지고살아가고싶은이마음은‘지금도좋지만더좋아지고싶다’는것이아니다.훨씬더절박한마음이다…삶에서아름답고소중한순간들은관성밖에존재했다는지난경험의되새김이다.”(2부1장<실은한발짝도나가고싶지않지만>)
-현실에저항하고판타지를사랑하는마음
무루가연결되고자하는,혹은연결되어있다고믿는대상은타인만이아니다.고양이와식물과벌레와심지어보이지않는것(작은신‘쿠나’같은존재)들에까지가닿는다.그는《사슴아내형제야》를읽으며옛사냥꾼과우리시대의채식주의자가연결될가능성을발견하기도한다.하지만작고연약하고보이지않는것들을믿으며돌보는마음은그것을잊은세계에서자꾸만상처받는다.‘살처분되는돼지들’,‘평생임신한채고통속에사는개와고양이들’,세상의온갖구멍들에발밑이꺼질때마다저자는“세상에구멍이있다고큰소리로말하는이야기”를읽는다.그런이야기를만드는이들이존재하고그들과연결되어있다는감각이그를지치지않게하고“세상은어쩌면더아름다워질지도모른다는거창한판타지”를꿈꾸게하는지도모른다.
그에게판타지란“무엇도확신하지않고,어떤것도단정하지않으며,어느방향으로든열릴수있는마음의다른이름”이다.그렇게이야기를짓고읽고전하는마음또한이런것일테다.“언젠가는그좁고높은벽에문이나기를”기다리는마음,그문으로우리가잊거나잃어버린많은것들이“사뿐히걸어들어”가기를바라는마음,그리고“내가아닌방식으로나를살아보는”마음.
“그마음안에는‘그런건없어’라거나‘사는게다그런거야’라는시시한말들을밀어낼힘이있다.무엇보다즐거움이있다…판타지는무엇도확신하지않고,어떤것도단정하지않으며,어느방향으로든열릴수있는마음의다른이름이다.”(4부3장<내고양이는나없는동안>)
-할머니가되기를설레며기다리는마음
“나는독거노인이될것이다”라고선언하는비혼여성으로,프리랜서라고하지만실은기존의어떤단어로규정하기어려운일을창안하여살고있는‘프레드릭’으로,어른이라고선생이라고섣불리타인을가르치려들지않고누구나자기만의‘우거진숲과아름다운강과비옥한들’을지니고있음을아는겸손한사람으로,고양이와식물과함께살아가며인간아닌타자와연결되어있다는것을잊지않는존재로,완벽한채식에실패한후에도마음의방향이‘비건적’삶에확실히가있는채식지향주의자로,세조카들이보기에자주엉뚱한일을하고낯선것을보여주는이모로,현실에저항하고판타지를사랑하며세상의언저리에서재미나게살아가는이상異常주의자로,그는“혼자서,두발로,씩씩하게”그러나“몸을낮게숙이고귀를기울이고세심히주위를관찰”하며걷는다.그길끝에신기하고궁금한할머니가있기를바라면서.저자는스스로아직자라는중이라지만,이미얼마쯤자신이바라는모습이되어있는듯하다.그의작고단단한발자국은우리에게또렷한흔적을남긴다.
“작고약한존재들에게다정히이름을불러주고손길을내어줄것이다.세상은어쩌면더아름다워질지도모른다고말한다면너무거창한판타지일까…작고귀엽고아름답고신기한것들이오밀조밀공간을채우고사랑으로가득한마음이그곳에깃들기를.궁금한것을묻고답하며서로의마음에어떤흔적이되기를.슬프지만아름다운일들에대해함께소리내어말할수있는여정이있기를나는기대하고있다.”(5부5장<나는조금설레며기다린다>)
“나는이글들을사랑한다”
초판출간당시국내최고의에세이스트김영민교수와김하나작가가이책에추천사를쓴바있다.김하나작가는“그는틀림없이멋진할머니가될것같다.나는이글들을사랑한다”라고,김영민교수는“살아낸사람만이누릴수있는진귀한경험이라고”라고썼다.
우리는무루작가가써내려간문장사이사이마다,한발앞서길을내는사람의뒷모습과그가남긴흔적을본다.기꺼이‘쉽게이해할수없는사람’을자처하며‘자신의삶을완성해나가는’사람의걸음걸이가얼마나이상하고자유롭고멀리내달렸는지말이다.그뿐일까.서수연작가의몽환적이면서야성미넘치는그림들은저자무루의글과공명하여,우리가모르는세계의문을하나씩열어젖히는듯한경험을선사한다.책을덮고난후에는세계가몇칸쯤넓어져있을것이다.그세계를함께걸어본이는안다.그가그린지도가얼마나재미난지,그지도에함께한그림책들은또얼마나매력적인지.몇번이고펼쳐보게될지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