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배종화 수필집)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배종화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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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배종화 수필가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첫 수필집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를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1부에는 ‘희망’ 외 9편의 수필, 2부에는 ‘나는 수필가’ 외 9편의 수필, 3부에는 ‘아버지와 까꾸리’ 외 8편의 수필, 4부에는 ‘봄’ 외 9편의 수필, 5부에는 ‘나태주 문학관’ 외 10편의 수필 등 총 50편의 수필과 백남오 문학평론가의 해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인 백남오 수필가는 해설에서 “배종화 작가의 수필은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해 가고 있다. 도대체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배종화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고난의 시대에 태어나서 무수한 역경을 맞이했지만, 그의 굳은 신념과 의지로 극복해 낸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왔던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승리라 할 수가 있다. 그가 훌륭한 수필가로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절대적인 배려, 형제지간의 특별하고도 남다른 우애가 오늘날 그를 키워냈다. 지금 배종화의 삶과 사유는 완전히 변해있다. 디지털 첨단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예술인 배종화로 섰다. 이제 배종화는 먼 유년 시절부터 내면 깊이 묻어둔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지를 몸소 즐기며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노을로 다시 타오르게 해준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여생을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라고 말했다.
저자

배종화

배종화 수필가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고 2017년《경남문학》신인상, 2022년《선수필》신인상, 2021년에는 진등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경남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진등재문학회, 선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며 수필집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를 발간하였다.

목차

■ 작가의 말

1부_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희망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벽 앞에서
여행
잣대
이심전심
특산물 유감
마음이란 놈 참
남편의 공간
이곳에도 볼거리가 있다

2부_문학으로 부활의 꿈
9999
나는 수필가
분위기 없는 여자
황혼의 품격
봄봄
미스터 트롯
인공섬에 거는 기대
못 믿을 약속
누렁이 안부
잠 못 드는 밤

3부_내 삶의 둥지
아버지와 까꾸리
꽃 중의 꽃
짝사랑
사랑하는 홀씨에게
짝사랑을 위해서라면
제삿날 단상
동생의 선물
마음부자 내 동생
오야, 오야땡

4부_그때 그 시절
봄
남천南川 둑길을 걷다
역사와 삶
그리운 선생님
모텔을 예약하다
고향 친구
번개시장
만추에 취하다
첫사랑
그때 그 시절

5부_나를 깨운 시간
나태주 문학관
경주에서 올곧은 작가를 꿈꾸다
울릉도 독도 여행기
성인봉 정상에 서다
만지도의 봄
지리산
2018년 머릿골
꽃보다 아름다워
나를 깨우는 시간
예감
회한

■ 해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
백남오(수필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수필집 해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
-배종화론

백남오(수필가·문학평론가)

1. 감동의 인간승리
배종화 수필가는 2017년 《경남문학》 수필부문 신인상과 2022년 《선수필》 봄호 재등단으로 작가가 되었다. 등단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필 공부에 매진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진등재문학회 부회장직을 맡아 그 임무를 열정적으로 해내고 있다. 그의 문학에 대한 꿈과 포부가 그만큼 내면에서 들끓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 것이다. 그는 단 하나의 강의도 놓치지 않았고 부과되는 습작을 피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될 정도로 무섭게 성장을 해갔다.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등단 5년이 지난 2022년 「아버지와 까꾸리」란 작품으로 제7회 진등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잘 알다시피 진등재문학상은 수필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수필 문단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하며, 수필 문학 본류를 향한 염원에 밀알이 되고자 제정된 영예로운 상이다. 여기서 문학상 심사를 맡은 현순영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호평을 남긴다.

배종화의 「아버지와 까꾸리」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이다. 작가는 까꾸리라는 소재를 통해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그리움이 어떤 의미와 빛깔을 지닌 감정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버지는 거의 평생 까꾸리를 손수 만들어 파시면서 가족을 지키셨다. 가난하셨지만 부지런하시고 헌신적이셨으며 사랑이 많으셨다. 아버지가 구식 연장과 손으로 정성을 다해 까꾸리를 만드시던 과정과 모습을 서술한 대목, 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오실 때 간혹 값싼 아귀와 복어를 사다 풍요로운 만찬을 베푸셨던 일을 감각적으로 서술한 대목은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특히 크게 기여한다. 아버지는 헌신적으로 열심히 사셨지만, 목숨이 다해 간다는 것을 아셨을 때 묵묵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그 모습을 작가는 까꾸리와 겹쳐 놓았다. 까꾸리는 쓰임새 많은 실용적 도구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음을 환기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은 시대의 변화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라져 버린 가치들에 대한 아쉬움과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 작품의 미덕들은 작가의 수필작법이나 테크닉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먼저, 작가가 아버지를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삶을 그만큼 깊이 응시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까꾸리쟁이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을 직조하였는데 그 결이 생생하다. 특히 아버지가 까꾸리를 만드시던 과정을 서술한 내용은 작가가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얼마나 깊이 응시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또한,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대와 가치의 변화에 대한 아쉬움과 질문으로 확장한 것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를 “질곡의 한 시대를 숙명인 양 살다 가신”한 인간으로 관조하고 이해하는 성숙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좋은 글에는‘한 점 맑음’이 있다. 좋은 글의 한 점 맑음은 작가의 인간적 성숙을 증명하며 독자들을 고양시키는 그 무엇이다. 작가의 문장력 또한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하고 있다.
- 《진등재 수필》 제7호(2021년 10월)

위 심사평에서 현순영 평론가는 수상 작가의 세 가지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 작가는 수필작법이나 테크닉이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소재에 대한 응시가 깊은 통찰력을 획득했기에 아버지를 더욱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세 번째로는 문장력이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하고 있을 만큼 수려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극찬을 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렇다. 그는 이미 수필문학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작기법까지 실제에 적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숙하다. 수상소감에서는
“철없는 어린 시절 작가의 꿈을 가진 적이 있었지요.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아 꿈을 묻고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그 불씨를 되살려 보리라 다짐도 하였지만, 삶에 쫓겨 돌아볼 여지가 없었답니다. 불현듯 그 꿈이 생각나면 밤잠을 설치고 오래 뒤척였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품고 살았다는 것이고, 언젠가는 그 불씨를 되살려 보겠다는 결심이다. 무엇보다도 그 꿈이 생각나면 밤잠을 설치며 오래 뒤척인다는 것이다. 그 결기 찬 꿈과 야망이 오늘의 작가를 일으켜 세운 힘임이 분명하다.
배종화 수필가가 태어난 195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이다. 3년간 동족상쟁의 비극적 전쟁으로 온 국토는 폐허로 초토화되고 만다. 전쟁 후 파괴된 나라를 수복하고 건설해 나가는 과정은 역사적으로도 가장 힘겨운 고난의 시기였다. 그때는 나라 전체가 혹독하게 가난하고 모두가 배고픈 시기였다. 도시의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창원군 웅남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로서도 배움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더구나 남보다 먼저 부모를 잃은 작가에게 교육이란 요원한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는 그 아픔의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 불가능한 일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가는 것이다.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정도다. 그리하여 작가는 중.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이수를 하며 배움이란 목마름을 해소해간다. 그 힘겨운 단계들을 하나하나 밟아 오르며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서 학사과정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가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당연히 문학에 대한 꿈 때문이다. 이 꿈을 위해서 작가는 졸업 후에는 대학의 수필교실을 찾아왔고, 창작중심의 교육과정을 중시하는 수필교실에서 그는 드디어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만하면 인간승리가 아닌가 싶다.

2. 가족 사랑이 피워낸 한 떨기 꽃
배종화 작가는 진등재문학상을 받은 다음 해인 2022년, 대망의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면서 원고를 보내왔다. 수필공부를 시작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더구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디딤돌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니 더욱 반길 일이다.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목차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모두 50편의 주옥같은 작품이 5부로 편집되어 있었다. 제1부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제2부 문학으로 부활의 꿈, 제3부 내 삶의 둥지, 제4부 그때 그 시절, 제5부 나를 깨운 시간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늦은 나이에 그의 이러한 문학적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일 텐데, 언제 공부하고, 일하고, 글 쓰고, 작가가 되어 책까지 내게 되었는지 신통하기만 했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세끼 밥 먹기도 어렵던 봄날이었다. 양지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어머니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함박꽃 뿌리를 듬뿍 파내오셨다. 지극정성으로 키운 뿌리는 튼실해 보였다. 이윽고 집에서 키우던 수탉을 잡아서 털을 뽑고 다듬은 다음, 잘 씻은 꽃 뿌리와 함께 무쇠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폈다. 뿌리와 닭이 어느 정도 물러질 즈음 지난해 말려둔 대추를 한 움큼 넣고 한나절을 뭉근하게 더 끓였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손에는 뽀얀 국물을 담은 국그릇이 들려있었다. 무슨 국이냐며 묻는 내게, “니 그 한 달에 한 번 꽃배 앓는데 좋은 특효약이다.” 하시고는 함박꽃잎 하나를 국물에 띄워주며 천천히 식혀가면서 마시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받아들긴 하였지만 얼마 전까지 좁은 마당에서 꼬꼬 대며 놀던 수탉 생각을 하니 차마 마실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게 되자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급기야는 동생들이 코를 킁킁대며 달려왔다.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국그릇을 지키셨다. 전장을 지키는 장수가 저럴까 싶을 만큼 냉정하고 굳건했다. 애지중지 키우던 장남도, 고추밭에 터를 잘 팔았다고 추켜세우던 두 살 터울 여동생도 예외 없이 쫓겨났다.
- 「꽃 중의 꽃」 부분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어릴 때 화자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작았지만, 얼굴도 병색이 짙어 볼품없는 아이였다. 상심한 어머니는 동무들이 놀러 오면 수시로 나란히 세워 키를 재거나, 몸무게를 어림으로 비교해 보시고는 속상해하셨다. 아버지가 인근에 용하다는 한약방을 찾아가 성장기에 좋다는 한약재를 구해 달여 먹였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생리통 때문에 몸져눕기까지 하였으니 어머니의 큰 근심거리였다. 급기야 어머니는 집안의 재산이나 다를 바 없는 수탉을 잡아 가장 아끼는 함박꽃의 뿌리를 넣어 푹 고아서 약재를 만들어 화자에게 권한다. 이를 눈치챈 동생들이 코를 킁킁대며 달려왔지만,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국그릇을 지키셨다. 그렇게 애지중지 생각하던 장남도, 고추밭에 터를 잘 팔았다고 추켜세우던 두 살 터울 여동생도 예외 없이 쫓겨났다. 그때 분명 보았다. 화자에 대한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이 작품은 어린 시절 함박꽃과 어머니의 사랑을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작가에게 함박꽃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주제가 매우 생생하게 형상화되었다. 문장도 간결하면서 섬세하다. 작가가 문장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작가는 이처럼 부모님의 사랑도 독차지를 했지만, 형제들과의 우애와 사랑도 남다르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①오야, 오야땡은 내 여동생 별명이다. 어릴 때부터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은 사내아이와 진배없었다. 행실 또한 천방지축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사내아이로 오해했다. 엄마가 밖에 외출할 때면 무조건 따라나섰고 싫증 난 고무신은 돌에 문지르거나 칼로 찢어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생떼를 썼다. 내가 그런 행동을 보였다면 혼이 나고 남았겠지만, 부모님은 능히 그 청을 들어주셨다. 고추밭에 터를 팔아 대 이를 아들을 낳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