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지퍼가 터지다 (안진숙 시집)

봄의 지퍼가 터지다 (안진숙 시집)

$12.00
Description
시집 『봄의 지퍼가 터지다』는 〈골목 안 풍경〉, 〈땅따먹기〉, 〈삼월 삼짇날〉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안진숙

경남함안출생
창신대학문예창작과졸업
2002년《자유문학》으로시2회추천완료
마산문인협회회원
참글문학회회원
붓꽃문학회회원
시집『봄의지퍼가터지다』
E-mail:9974027@hanmail.net

목차

1부
골목안풍경
땅따먹기
엄마
수박꽃
삼월삼짇날
호박꽃안부
봄의지퍼가터지다
베토벤
얄궂어라
누드
절벽의봄
함안역
두꺼비의겨울나기
부지깽이낙서
쇠비름
쑥을캔다


2부
앉은뱅이풀
능멸
유효기간
2009년4월1일
공갈빵
병원비
용지공원
영화를찍다
어느봄날
바람의일기
수족관의풍경
희망그물짜기
청개구리
시월의마지막밤
바리스타의의수

3부
검둥이
개구리울음소리
냉이꽃
동백꽃피던날
북천코스모스
인연
검버섯
벼꽃이피던날
쓰레기올림
치매병동
아들걱정
행사장에서
로또
동무
맛있는사투리
쑥을캐면서

4부
스타키산세베리아
원+원
기억
내원사
코로나19
허공에도원룸을짓는다
외할머니
대화
일일남편
연장
불모산저수지에서
통기타를배우며
쫀디기
안구건조증
생쥐깡을먹으며
말장난
전립선아리랑
비상구는없다

■시집해설
삶을이기는해학의지혜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삶을이기는해학諧謔의지혜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시작하며

시인이란무엇인가?이물음에대한질문은늘반복되어왔다.프리드리히횔덜린은“사유가는존재를진술하고시인은성스러운것을명명한다”라고말했다.과연이명제에부합하려고시를쓰는시인은얼마나되겠는가라는질문이있을수있겠다.‘성스러운것을명명한다’라는말은마치창조주의경지에서문장을만들어낸다는말과같다.성경의창세기에기록에의하면하나님은사람을창조한이후동물들을창조할때그이름들을아담에게맡기셨다.하나하나이름을명명할때‘보시기에심히좋았더라’고기록되어있다.
세상의모든존재는이미지어져있고그것을진술하고다시명명하는것은인간의몫이다.그럼시는무엇인가?아치볼드매클리시는시란무엇인가를시적이미지와은유로표현하면서“시란의미하는것이아니라그냥존재하는것”이라고말했다.하지만그존재하는것을문장으로다시명명하는것이시인의주어진숙명이다.남들은그냥지나치면되는존재를다시명명하는의무를지닌것이시인인셈이다.이미수많은시인이세상의존재와사물들을명명했건만또다시다른명명을해야하는부채를지닌시인은어쩌면천형을받은존재이다.

여기에안진숙시인이첫시집『봄의지퍼가터지다』를세상에내어놓는다.시인은세상을보는관점도태어난환경과현실에거주하는공간에따라다른목소리를낼수밖에없는것이다.
이에그의시의흔적을따라서함께이야기를나누고자한다.


이웃을향한시선

시인의마음은어디로향해있을까?그의시를따라가면그마음을읽을수가있다.

월영남5길8번지
좁은골목안좌판
한쪽대문만빼꼼이열려있는
하루
한번오가는길
딱히살것없어쪽파를샀다
오천원짜리한장,머리에쓱쓱문질러
줌치에넣고
거스름돈다른줌치에서꺼낸다
할머니계산법
쪽파값계산하지않고천원짜리
다섯장거슬러받아
다시그돈으로쪽파값을계산하니
아가씨고마우이하신다
자꾸불러주는아가씨란호칭
지나가는행인들힐끔힐끔쳐다본다
쪽파값은하락했고아가씨값은
천정부지로올라
그당혹감어찌하지못해
사장님
아가씨아닙니다했더니
사장은무슨사장하시며
구십넘은할머니가손사래를친다
-「골목안풍경」전문

매일한번오가는골목길에는구십넘은할머니가좌판을벌여놓고있다.시인은그냥지나치지못하고쪽파를한단을산다.당장필요해서산것은아니다.매일지나치면서마음에부채가진까닭이다.그러나그부채는계산대에서바코드로읽히는정확하고빠른계산이아니다.‘오천원짜리한장,머리에쓱쓱문질러/줌치에넣고/거스름돈다른줌치에서꺼낸다’는골목좌판의주인장할머니만의계산법이다.오천원짜리한장이천원짜리다섯장으로되돌아와서물건을산사람이다시계산해주는느긋한셈법이다.그리하여아줌마는아가씨로가치가상승하고주인장은사장으로상승하는말의셈법이다.이셈법들은이웃이라는따스한눈길이없다면이루어지지않을계산이다.
이것은다른시-‘열여섯살엄마는/봄이면/등에베개업고아이어른다-「함안역」’이나‘나는/박수를/할부로치지않고일시불로몽땅쳐주고왔다-「행사장에서」’그리고‘바리스타의비밀하나/봄비에젖는다/나는/바리스타의오른손을살짝스친다-「바리스타의의수」’에서도따스한시인의시선이시로만들어진작품들이다.시는존재에대한관심이며존재너머의이야기를문장으로끌어내는작업이다.마음의그물을던져넣어천천히끌어당겨야만잡아낼수있는,문장이라는고기를잡는과정인것이다.

오른손이없는그는
왼손으로
카푸치노거품속으로미소를
밀어넣는다
약간허리를구부리고
하트모양을커피위에덧칠을한다
그가
커피잔의입술을살짝밀어올리면
하얀거품들이울컥울컥
일어섰다쓰러진다
그는
사랑을사랑이라쓰지않고
하트그림을그린다
거피향따끔따끔혓바늘
돋던날
바리스타의비밀하나
봄비에젖는다
나는
바리스타의오른손을살짝스친다
-「바리스타의의수」전문

오른손이의수인바리스타가만든카푸치노를마시며시인은결코동정어린시선을보내지않는다.‘카푸치노거품속으로미소를/밀어넣는’바리스타의마음처럼무언의격려를보내고있다.사랑은관심이며마음을끌어안는일이다.시가만들어지는과정은바로세상의존재를향하여사랑을하는일이다.관찰과사유를통한문장의벼리기다.그결과물이시로만들어지는것이다.결코사랑없이만들어진시는독자들에게감동을주지못한다


가족이라는이름

가족이라는공동체는태어나는순간선택없이주어지는공동운명체이다.시인역시이문제는피할수없는일이다.그중에서도엄마라는존재는가장아픈손가락이다.이엄마를시로아름답게노래한작품을만난다.

봄날
꽃길따라걷지는못해도
마음은나비처럼날아다녔지요

긴긴겨울밤기저귀에싼오줌은
막내가몇번이나그리다만
엄마얼굴이라고

이봄날
기저귀에싼똥은
고향집마당에핀자목련꽃이네요

말짱하던하늘에서
억수같이내리던빗물
엄마의한많은눈물이었지요
마지막가는길에
좋아하는불경소리도들려주지못했소

엄마
할미꽃몇그루다복이핀
아버지옆에한줌의영혼묻어주었소
-「엄마」전문

‘기저귀에싼똥’이‘고향집마당에핀자목련꽃’이라니.이얼마나어머니를애련하면서도미려하게노래한문장인가.엄마의죽음에대한요란한슬픔의문장대신행간에는눈물을숨기고‘아버지옆에한줌의영혼묻어주었소’로문장을마무리한다.시는문장의절제와아름다운시어로만들어지는예술품이다.눈물대신아름다운문장으로들려주는「엄마」라는노래가만들어진것이다.

호박꽃이
제일예쁘다는엄마는
머리에호박꽃핀을달고
아버지무덤옆에무덤도없이
있는듯없는듯
가을햇살에앉아있다
-「호박꽃안부」일부

위작품역시엄마의기억을노래하고있다.딸에게엄마는더없는동병상련의관계이다.고스란히그길을따라걷고있는자신을보기때문이다.여자라는운명은남자들이흉내도못내는해산의고통과살림살이라는작업이늘따른다.그래서그다른이름이아내라는호칭으로불리는것이다.
가족이라는세상의기초가되는공동체는사랑과희생없이는세워질수없는성채인것이다.
시인은아버지도빼놓지않고이야기한다.

뜨거운여름날
아버지의가슴처럼
갈라진논바닥에
벼꽃이피었다

아버지는
밀짚모자눌러써도
눈이데인다

낮도밤도아닌
어슴푸레헷갈리는시간
안도바깥도없는
세월을꿀꺽삼킨아버지

오늘
고향가는길
논두렁에검정고무신한짝
뜨거운지문남긴채

아버지의벼꽃이아득하게피어있다
-「벼꽃이피던날」전문


아버지의가슴은‘갈라진논바닥에/벼꽃’처럼늘바깥에서노동이라는일로몸이고단하다.‘밀짚모자눌러써도/눈이데인’그런현장에서작업을하고있다.마치뜨거운여름날바깥에놓인에어컨실외기처럼가족들을위해시원한바람을제공하는존재이다.올해처럼폭염에시달리는여름에는더더욱아버지의존재는쓸쓸하고아픈이름이다.

어스름저녁
부리다친새끼비둘기안고들어온남자

주사기로우유와물을먹이고
상처에연고를발라준다

작은박스로집을만들어주고
계속비둘기를보살핀다

야구를좋아하는남자
TV화면속을나와

베란다에쪼그리고앉아
비둘기의눈과자신의눈을맞춘다

어린시절
병아리눈이자불자불하면
죽었던기억이떠오른다고하며

비둘기박스앞
임둘기라는문패도달아놓았다
-「인연」전문

위인연이라는시는아버지라는다른이름의남편을이야기한시이다.‘어스름저녁/부리다친새끼비둘기안고들어온남자’는‘주사기로우유와물을먹이고/상처에연고를발라’주는따스한마음을가진남자이다.아마이시의결과는그비둘기가건강하게회복해서자연으로돌아갔다는이야기로끝날것이다.
이따뜻한마음을가진남편은늘자신과가족을위해헌신하는아내를위해생일선물로이첫시집『봄의지퍼가터지다』를깜짝선물로마련했다.아내에게는끝까지숨겨달라고말하며준비를했다.이시집을받아든안진숙시인의기쁨이얼마나기쁠지는상상이되고도남는다.


시인이만나는삶의현장

그는
간호조무사다
냉동고에간,쓸개를두고출근한다
기도문보다더나비효과가크다
오늘깜박잊고
간,쓸개를가지고출근한것이화근이었다
그환자갑질값
천정부지로올라도
영혼없는웃음티없이웃어주고
생각을휴지통에버렸다
묵주목걸이만지면서침꿀꺽삼켜도
감정노동이자꾸만시비를건다
최저임금도주먹을불끈쥐는사이
억수같은소낙비가내린다
비내리는
풍경속에서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목이더쉬었다
절절한사연
다들어주고나니반성문같은새벽이온다
-「개구리울음소리」전문

시인은요양병원에근무한다.‘냉동고에간,쓸개를두고출근’하는일이다.환자의갑질로마음을상하는한두번이겠는가.본인은감정노동자라했지만육체노동도상당한것이요양병원이기도하다.직업의특성상야간근무도병행해야하니노동의강도도셀것이다.‘절절한사연/다들어주고나니반성문같은새벽이’오는현장이다.그러는가운데도시인은주위의자연과환자들에게도관심을놓지않는다.

달빛이
창가에귀를대고있다
아무도
울지않아도귀가먹먹하다

그렇게죽은사람은
장례식장으로바쁘게옮겨갔고
가족들은호상이라고웃는다

-중략-

저승사자
왔다간빈침대를사이에두고
초록이치매할머니의
대화가조근조근글케아프다
-「대화」일부

요양병원이라는특성은노인들이기에늘죽음이가까이있다.삶에있어서피할수없는일이다.그러나어떤사람에게는호상이되고어떤사람에게는커다란아픔이된다.시인의시가죽음에대해더깊은성찰로이끌어지는현장인것이다.

이밖에도다루지못한시들중에는삶을이기는해학의지혜가있는-‘엄마의잔소리도/장독안에넣어봉했다-「삼월삼짓날」’이나‘“샘!지는아직18살입니더”’그러자승낙하셨다.오늘약속도거짓말인줄도모르고…-「2009년4월1일」’그리고표제작인‘“영수야앞지퍼터지겠다”/벚꽃들이자지러졌다-「봄의지퍼가터지다」’등은시인이삶을살아가는현장에서유머로주위사람들을늘기쁘게해준다는것을알수가있다.실제로안진숙시인은모임에서좌중을기쁘게하는대화를툭툭던져서모두를웃게만드는센스가있다.그런삶의태도가시에서도여지없이보이고있다.

첫시집『봄의지퍼가터지다』는안진숙시인의삶을하나로묶어서독자들에게보여주는출발점인동시에시인으로한껏도약하는전환점이될것이다.지금껏보여준행보위에시의깊이도더해지고앞길에보이지않는안개가걷히고꽃길에꽃이더만발하는시간이많기를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