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홍옥선 수필집)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홍옥선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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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홍옥선 수필가는 첫 수필집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를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1부에는 ‘기억의 무게’ 외 9편의 수필, 2부에는 ‘여름날의 동화’ 외 9편의 수필, 3부에는 ‘마음을 훔치다’ 외 9편의 수필, 4부에는 ‘마음이 건너가는 풍경’ 외 9편의 수필, 5부에는 ‘오래된 시간들’ 외 8편의 수필 등 총 49편의 수필과 허숙영 수필가의 해설 “외로움이 빚은 자화상”이 실려 있다.
허숙영 수필가는 해설에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 전이되는 것 같다. 그녀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속으로 삼킨 아픔이 느껴졌다. 유년의 가난이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기도 하고 글로 재정립하면서 윤색하기도 한다. 기억의 대부분은 왜곡되어 나타나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한데 홍 작가는 담담하게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도리어 툭 던져놓고 독자에게 자문을 구한다. 기억만으로 한편의 서사를 풀어놓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 홍옥선의 기억 재생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실핏줄 드러나듯이 선명한 기억을 이끌어내 아름다운 언어 조탁과 함께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 간다.”라고 말했다.
저자

홍옥선

출간작으로『산나리피는들모롱이』등이있다.

목차

■작가의말\2

1부_기억의무게
배롱나무꽃붉게피고또피어\11
라상떼카페에서\17
산나리피는들모롱이\20
창동을걷다\25
수국\29
태풍매미가상륙한날에\33
알폰스무하의그림을보며\39
기억의무게\43
진주촉석루에서\46
하우스371카페에서\49

2부_여름날의동화
독백\55
여름날의동화\58
예술작품속에숨은세상\63
사진과의대화\66
외로움과스킨십\71
코로나19상황에서\75
빛바랜상처\80
소백산산행\84
미늘\88
풋마사지\93

3부_마음을훔치다
석류와의인연\101
슬픔에대한고찰\105
‘아워바디’라는영화를보고\111
마음을훔치다\117
비망록\122
502호실\125
산밤\129
20년만의만남\133
영화이야기\137
팔월한가위\141

4부_마음이건너가는풍경
가을소풍\149
무학산에서\153
마음이건너가는풍경\158
섬진강물길따라\163
정담情談\167
행복에대하여\172
통영의사랑이야기\176
함양향교\181
가을의색채\186
초가을산행\191

5부_오래된시간들
휴대폰\197
겨울여행\201
오래된시간들\207
한마음의집에서\212
봉암수원지\215
그해의겨울바람\220
첫눈이내리던날에\224
크리스마스섬을아시나요\229
익숙함의친절에대하여\232

■해설
외로움이빚은자화상
허숙영(수필가)\237

출판사 서평

[수필집해설]

외로움이빚은자화상
-홍옥선의『산나리피는들모롱이』

허숙영수필가


로그인
홍옥선작가가등단15년만에처녀수필집을상재한다.도서관수필강의를할때한학기수강한인연으로서평을맡았다.그때는수필을한편도써오지않았다.이렇게많은글을써모았으리라짐작도못했다.홍옥선에게글쓰기는위안과치유를주기도하지만아픔과슬픔도안긴다.그래서망설인다.잊고있던과거를소환하면마음은더어두워지는데쓰지않고는배길수없게만드는무엇이있다.
작가의글을대별해본다.기저에깔린외로움과기억의환원이다.또한체험문학에서빼놓을수없는가족,그중에서도단연어머니다.기행에서얻은작품도여러편이다.글곳곳에서묻어나는색채는검어서쓸쓸하다.
수필은고백문학이다.싫든좋든자신이빚은자화상이다.체험을문학으로형상화하여보편성을획득하며,삶의의미를캐내는것이수필이다.한마디로독자나작가자신에게나삶에도움을주는것이글을쓰는목적이라할수있다.수필은사람이살아가면서맺는관계그물망을통합하고구멍나고터진곳을꿰매는역할을한다.가족과이웃뿐만아니라모든사물에게도깊은관심을가져야하기에유기적으로연결될수밖에없다.문학중에서도수필만이해낼수있는인간성회복과정을그린다.그래서수필이가치있는문학이다.대부분의작가들이문장속에교훈적으로드러내거나성급하게결론을도출하려한다.그러나홍옥선은독자로하여금숨은그림을찾아내듯이자연스레느끼게하는방법을택했다.

그녀의글을읽으면서감정이전이되는것같다.그녀의화려한외양과는달리속으로삼킨아픔이느껴졌다.유년의가난이나고통은시간이지나면서퇴색되기도하고글로재정립하면서윤색하기도한다.기억의대부분은왜곡되어나타나기에더그럴지도모른다.한데홍작가는담담하게민낯을드러내고있다.도리어툭던져놓고독자에게자문을구한다.


기억의환원
기억은과거와현재를연결해주는징검다리다.그렇기에현재의꼬인매듭을풀거나좋은감정을지속하고자할때과거를소환한다.과거의기억이현재의발목을붙잡고있다면앞으로나아가기는힘들다.어릴적소외되고뒤틀린자아는가치관에까지간섭하려든다.언젠가는들추어내어시시비비를가려야되는것이다.
기억만으로한편의서사를풀어놓는것은작가의역량에달렸다.홍옥선의기억재생력은놀라울정도이다.실핏줄드러나듯이선명한기억을이끌어내아름다운언어조탁과함께자신만의문체를만들어간다.
유년시절의아이눈에비친산나리꽃,구절초피는들녘의풍경이마냥예쁜것만은아니다.문중에서홀대하는어머니의거친삶이눈에들어와자신도모르게꽃모가지를비트는행위를한다.들녘의풍경뿐만아니라이사를자주다니면서눈에담은마을풍경,집안구석구석,그늘진뒤란까지도그녀의시야에서벗어나질못하고줄줄이소환된다.
시간이오래지났지만두줄의낡은살강위에얹힌크고작은대소쿠리,금방이라도휘어질듯한양은대야들과검게그을린부엌천장까지잡힐듯그려낸다.
온동네를하얗게덮어동화속세상이되어야하는눈이애물단지가되는산동네의좁은골목과빙판길에달려드는겨울바람이얼마나매서웠는지를들려준다.파리끓는공동화장실에가기위해뚫어진지붕밑으로길게늘어섰던줄끝에서본비참함이어린아이의가슴에서똬리를틀고들어앉아있다.

마을앞,들모롱이를지나면길게이어지는문중산이있었다.산은재넘이까지이어지는데상사목빗점옆버덩아래제법넓은자드락밭이있었다.밭이라고해보아야자갈이흙보다많아서씨를뿌려도뭐가잘되질않았다고한다.문중에서어머니에게생색을내며내준밭이었다.그래도어머니는놀고있으면뭐하냐고일손이쉬는겨울에도밭에서자갈을골라내며살다시피하였다.그래서인지해가다르게밭다운모양새도갖춰나가기시작했다.그밭에는고구마나감자,그리고참깨,들깨를심었다.
어머니는어린나를푸서리옆에있는커다란너럭바위에앉혀놓고밭일을하셨는데,한참밭일에몰두하다보면나는보이지않았다고하였다.한참을넋을놓고찾다보면,들판여기저기지천으로피어있는산나리꽃옆에서,배시시웃는나를찾아냈다.입술은온통적갈색으로물들어서범벅이되고,손에는주황색의꽃모가지를비틀고있었다.
-「산나리피는들모롱이」중에서

우리가항상머무는방은안채와떨어진미나리밭이딸린아래채의넓은방이다.원래는이십여년전에위암으로돌아가신삼촌이쓰시던방이었다.방중앙의천장아래에는통나무로만든긴시렁이자리를잡고있다.통나무의매끄러운결사이로듬성듬성갈라진몸통,여기저기흠이패여있다.시렁위에는회색빛깔의헤진천위로노란꽃무늬가그려진이불과밀짚을넣은베개,그리고오래도록그자리를지키고있는삼촌의곰방대가있다.
마을회관처럼넓은방윗목에는널따란함지박속에하얀속살같은가래떡이담겨있었다.해마다설날이면볼수있는가래떡이다.사실떡국은아들을빼고는그리즐기지않는음식이다.가져가봐야끓여먹지않고주위사람들에게나눠주는게고작이다.그러나싫어도싫은내색하지않고주는대로가져가야한다.어머니가우리에게줄수있는것중에서도가장쉽게내어줄수있는것이기에…
허옇게뼈를드러내고누워버린맘모스의골짜기처럼천장을받치며누워있는나무의매끄러운몸통들,분명울울창창한숲속에서휘젓고다녔을그들이,껍질이벗겨진채로누런황토속에발가벗겨져매달려있다.
(…중략…)
여름한낮,언제든드러누워뜨거운햇빛을마주하고있었던시간들이생각난다.코흘리개유년의그림자를따라돌아보는널따란바위등걸,그따뜻하던바위의등은석류나무를자식처럼키우며,못박히듯그자리에드러누워서일어날줄모른다.노란콩을콩콩찧어대던절구와함께,그바위의등에서봄이나겨울이나계절에관계없이그등을빌려서설거지를한다.가마솥의뜨거운물을퍼날라연신바위등걸을씻어내리며사람들의밥그릇을씻는다.그릇을씻다보면착시현상에빠져든다.유년의꼬맹이가되어햇빛아래바위와한몸이되어버릴것만같다.
-「오래된시간들」중에서

산등성이를따라얇은베니어칸막이를이어붙인집들이다닥다닥붙어있다.계곡을따라흘러내려가는물처럼마을은아래를향해서지어진산동네였다.밤이면집집마다새어나오는불빛들이사막의하늘에떠있는별들처럼반짝반짝빛났다.그러나아침이되면그집들은험하고너덜거리는초라한몰골로변했다.
그산동네에서보기좋으면서도애물단지가눈이었다.겨울이되면눈은저홀로피는꽃처럼펄펄내려쌓였다.은빛으로물들어가는산동네의풍경은동화속의세상처럼끝없이마음을설레게하였다.하얀눈속에숨어버린베니어지붕마저아름다웠다.
밤이지나고아침이되면쌓인눈들이밤사이에얼어좁은골목길과도로를빙판길로만들어버렸다.길을걷다잠시한눈이라도판다면낭떠러지같은도로를한없이굴러내려갈것이다.공동으로쓰는우물조차얼어버려서세수도하지못하고지내야했다.공동화장실은뚫어진지붕밑으로이른새벽부터길게늘어서있는사람들로붐볐다.좁은미로처럼길게이어진골목길은어른한명이지나가기에도버거울만큼좁았다.나뭇가지를엮어서만든,낮은담장들은고개를쑥내밀면집안의광경이한눈에다보였다.
-「그해의겨울바람」중에서

어린시절의풍경이지금현장을보면서쓰듯이생생하다.마을의모습이나행동그들과나누었던이야기,감정까지도세세하게전해진다.그속에서유난히그녀의마음을붙들고있는것이따뜻하고널따란너럭바위다.어쩌면바쁜어머니대신부재중인아버지대신자신을따뜻하게받아주는바위에게라도기대고싶은마음때문이아닐까.


손상된자존감이부른외로움
작가에게는누구한사람마음터놓고밤새워이야기할상대가없다.독백을하거나사진과대화를하고일기에심경을고백한다.심지어가족과같이있으면서도정담을나누기가어색하고친절이탐탁하지않다.
자존감이란‘자신을존중하고사랑하는마음’이라고사전에서는정의한다.어린시절에겪은가족관계가자존감발달에있어결정적역할을한다.낮은자존감은인정받기를원하고애정을갈망한다.개인적성취에대한열망도자존감의척도에따라달라진다.한데홍옥선은가족에게서사랑을받는것은고사하고열패감만안긴다.책읽기를너무좋아해작가가되길원했던그녀는종일노동에시달린어머니의잠을방해할까봐다락방에서숨죽이며책을읽었지만,가정형편상포기해야했다.그늘진응달로만뿌리를내린자의식은그녀를움츠러들게만들었다.
구멍뚫린아버지의자리,다른사람에게로향하는남편의눈,생계때문에아등바등해야했던어머니의무관심이남긴낮은자존감에자신을가두었다.그래서더외롭고힘들다.기저에깔린외로움이글을쓰게만들었지싶다.

손이베일것같이주름이잡힌두루마기에검은색의중절모를쓰고다시집을떠나는아버지보다는,허름한옷에지게를지고농사일을하는옆집점숙이아버지와같았으면…하는생각이들었다.특히그런생각은친구들과탱자나무울타리옆공터에서놀고있을때더했다.
해거름에지게를지고돌아오는아버지의어깨에매달려집으로돌아가는친구들을부러운눈으로바라보았다.그리고하얗게도둑눈이내린새벽녘잠이오지않아섬돌에내려앉아,아무도밟지않은마당의눈을보았을때였다.어머니는부엌의활활타오르는아궁이앞에서수건으로얼굴을감싸고서남몰래눈물을훔치고있었다.참깨대가타닥타닥타들어갔다.
-「산나리피는들모롱이」중에서

발자국사이에걸려숨을죽이는낮은풀잎을쳐다본다.너는어쩌자고그리낮은생명으로태어났느냐.저렇게하늘을둥둥올려다보는커다란나무의숨결로태어나지.그러다그네들을밟고내처옮기는내발바닥을바라보는것도또한모순이다싶은생각이들어눈질끈감고,채근하는그의목소리에화답하듯빠르게걷는다.
-「가을의색채」중에서

철길위로누군가가쏘아올린불꽃이하늘을향해가다제풀에풀썩사그라진다.아파트의거대한몸체에가려낡은철길은이제막숨을쉬는어린아이와같은표정으로어둠속에서있는데,누군가가쏘아올린불꽃으로인하여눈부신생명을얻는다.소리와빛이하나가되어명멸하는시간속으로갇혀있는자의비애가함께흘러든다.빛을따라가다보면소리는홀로그램영상으로모여든다.가슴속에숨어있는많은말들이살아서형태를갖추고,빛을따라순환하는공기처럼다가온다.
밤은빛을감추지않는다.또한소리도감추지않는다.소리가잦아지듯흐느끼다애처롭게사라지면벽안에몸을감춘그림자도어디론가사라진다.안개처럼어른거리는음영의조각사이로‘날자날자다시한번’하늘을향해날아오르고싶던이상의날개가생각남은참으로아이러니가아닐수없다.저어둠속에무엇이있을터이기에…
-「독백」중에서

그의눈빛을생각했다.그를향해있던내손짓을외면하며변해가는그의눈동자안에는이미나의모습이담겨있지않았다.나는그를보며스크린속에있는‘나쁜남자’라는타이틀이떠올랐다.그가안았던다른여자들을생각하고,그를용서할수있을까!생각하고,또생각했다.그러나시간이지날수록내자신의가치관에,확신이서지않았다.낙화하는꽃처럼마음이떨어져나간자리에는,짙은상흔이배여있었다.
그즈음의나는밤이되어도집에전등을켜는것을잊어버렸다.한밤내내캄캄한거실에서서하염없이밖을내다보는버릇이생겼다.머릿속엔새하얀새가집을지은것처럼,아무것도생각이나지않았다.무엇인가를하고싶긴하는것이냐!내면의목소리를듣는다.그래차라리아무것도하지말자.그렇게자신을감고도는미련한생각들이나를망치고있었다.그러다어느순간정신이들어자리를박차고일어나잃어버린무언가를찾듯이거리를헤매고돌아다녔다.
-「익숙함의친절에대하여」중에서

보통사람들은불꽃을보면축제를연상한다.그런불꽃놀이에까지그녀의비애가스며있다.날개를펼쳐날고싶은자신의이상을발견하지만그뿐이다.금세잦아들고스스로귀를자른고흐나안갯속에자살해버린무진기행의주인공을떠올린다.그리고는마침내가슴에비수가되어꽂혀있는무수한언어들속을헤맨다.큰나무들틈에서발아래밟힐까숨죽이는풀잎에마음이쓰이는것도자신과동일시되기때문일것이다.
아무도내편이없다고여길때는머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