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현상학

시간의 현상학

$12.00
Description
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김용권 시인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보조받아 시집 『시간의 현상학』을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시인의 말과 제1부 「횡단보도」 외 시 15편, 2부 「반려동물」 외 시 15편, 3부 「악착보살」 외 시 13편, 4부 「꽃무릇」 외 시 16편 등, 총 시 63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구모룡 문학평론가의 해설 ‘관계를 사유하는 만남의 시학’이 실려 있다.
저자

김용권

김용권시인은경남창녕남지출생으로《서정과현실》등단했다.들불문학제대상,박재삼사천지역문학상,경남문협우수작품집상등을수상했다.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수혜(2018),장애인문화예술원창작기금수혜(2022),경남문화예술진흥원창작기금수혜(2025)를받았다.시집으로『수지도를읽다』『무척』『땀의채굴학』『그림자는그림자놀이를한다』『시간의현상학』이있다.현재석필동인,시향,시산맥영남시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인의말ㆍ05

제1부
횡단보도ㆍ13
북돋우다ㆍ14
홈키퍼ㆍ15
수구레국밥ㆍ16
횡단보도ㆍ17
봄비ㆍ18
빨래방ㆍ19
불두화ㆍ20
화순ㆍ21
틈ㆍ22
장화ㆍ23
자랑질ㆍ24
산불진화론ㆍ25
불장난ㆍ26
환승ㆍ27
법수반점ㆍ28

제2부
반려동물ㆍ31
동강할미꽃ㆍ32
마수걸이ㆍ33
가을다비식ㆍ34
간고등어ㆍ35
악착보살ㆍ36
오징어ㆍ37
언플러그ㆍ38
나는달린다ㆍ39
수로역을지나면황옥역이있다ㆍ40
화포ㆍ41
퇴장ㆍ42
주름상자속사람들ㆍ43
이웃들ㆍ44
오래된골목ㆍ45
내가쏜다ㆍ46

제3부
악착보살ㆍ49
슬도ㆍ50
석빙고ㆍ51
불살개ㆍ52
분내ㆍ53
병풀ㆍ54
법성게ㆍ55
바위손ㆍ56
바람의시선ㆍ57
밀감ㆍ58
만년교ㆍ59
대밭에대꽃은피어ㆍ60
당간지주ㆍ61
남지장날ㆍ62

제4부
꽃무릇ㆍ65
까치집ㆍ66
그대가가고나면ㆍ67
관전포인트ㆍ68
고철의무게ㆍ69
고래밥ㆍ70
홍도야울지마라ㆍ71
파리채는왜빨강인가ㆍ72
진우도ㆍ73
유채의말ㆍ74
안개노선ㆍ75
시와비ㆍ76
백화등과마삭줄ㆍ77
부부ㆍ78
별ㆍ79
깻단을털며ㆍ80
횡단보도ㆍ81

해설_관계를사유하는만남의시학ㆍ82
  구모룡(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은시를매개로안과밖을왕래하면서인생의의미를심화하고확대하는과정의존재라할수있다.시인김용권은끊임없이타자와사물과의관계를사유하는시인이다.그는생활세계에서만나는사물과사건의경험을놓치지않고예민하게감각하며공명한다.결코주체를우위에두지않으며대칭성관계를통한이해를위하여노력한다.다섯번째시집『시간의현상학』에도이와같은만남의시학을지속한다.마르틴부버는“온갖참된삶은만남”(『나와너』에서)이라고하였다.김용권시인이지향하는삶의진정성도이와멀지않다고생각한다.

-구모룡(문학평론가)


[시집해설]

관계를사유하는만남의시학

-구모룡(문학평론가)


매우일반적인이야기이지만시인은누구나세가지차원과맞닥뜨린다.시적주체와세계그리고언어이다.여기에서한걸음나아가면시인이더비중을두는차원에따라서시관이달라질수있음을알수있다.가령언어그자체의시적기능을따라서미학적위계를설정하는시인은제작에공력을기울이게된다.다음으로주체를중시하는시인은세계를자아화하는자기중심의표현에집중하지만점차내부에서외부로나아가는과정을보이기마련이다.그런데자기를제쳐두고세계를재현하는시인은대체로의도한목적을지니며삶의모순과부조리를그대로전달하려한다.하지만시작에서주체의표현과세계의재현이엄밀하게나누어지진않는다.오로지자기를말하기위하여시를쓰는시인이없을뿐더러자기를배제하고세상만말하는시인도없기때문이다.시인은시를매개로안과밖을왕래하면서인생의의미를심화하고확대하는과정의존재라할수있다.
시인김용권은끊임없이타자와사물과의관계를사유하는시인이다.그는생활세계에서만나는사물과사건의경험을놓치지않고예민하게감각하며공명한다.결코주체를우위에두지않으며대칭성관계를통한이해를위하여노력한다.다섯번째시집『시간의현상학』에도이와같은만남의시학을지속한다.마르틴부버는“온갖참된삶은만남”(『나와너』에서)이라고하였다.김용권시인이지향하는삶의진정성도이와멀지않다고생각한다.시집에서첫번째시편과마지막시편은모두같은표제를단「횡단보도」이다.시집의수미를상관하는두시편의배치가의미심장하다.첫「횡단보도」의전문은다음과같다.

너는건너오고/나는건너간다/
서로의이름을건너로옮기는동안,/밟아간그사이가/
백년이나깊었다.

짧은시편이지만시인은중요한의식과의미를내장한다.우선건너오는이를“너”로지칭하여대상화하지않는다.‘너’는‘나’에게‘너’이고‘나’는‘너’에게‘나’이다.이는주체가소유하거나지배하는관계가아니라대칭성을지니며서로만나는현상을뜻한다.또한모두고유한이름을지닌주체이다.이러한‘나-너’의관계에“사이”가있다.어느일방의동일성의폭력이작동할수없는거리인데시적화자는“사이가/백년이나깊었다”라고진술한다.이처럼시인은만남을‘나’가타인을향해가고타인인‘너’가‘나’를향해오는,전생애를담보한사건으로인식한다.여기에서사건은존재의가능성과진리를인식하는계기를말하는데,일상을사건으로지각하는시인의태도를주목하게한다.이는“섬에갇혔다”로시작하는또하나의「횡단보도」에의하여보충되기도한다.이시편에서시적화자는“악마에게홀릴영혼을주인으로모신이들이/붉은눈동자를끌고간다”라는진술로써속도가지배하는현실을비판한다.그러면첫시편에상응하는마지막시편「횡단보도」는어떠할까?

깜박인다/위험신호일까?/줄은이미길게,꼬리를물고있다/
냉기가몸속을횡단한다/건너가면그만인것을/망설인다/
길은무너졌지만당신은얼마나/먼곳에서왔는지/
먼곳으로가는지도모를,/저건너에는/무료급식소가있다
(「횡단보도」전문)

“깜박인다/위험신호일까?”라는시적화자의물음속에위험사회라는현실인식이내재해있다.사람이아니라자동차를위한도로에서파란불조차점멸하며건너는이를재촉하는데,시간이돈이고속도가강제하는국면을“냉기가몸속을횡단하는”존재의위협으로심각하게받아들인다.“건너가면그만인것을/망설”이는형국에서시적화자는“당신”을떠올린다.이시편은“당신”이누구인지궁금증을자아내게하는환기효과가크다.“길은무너졌지만”이라는상황인식과더불어“당신”이등장하고있음을주목하게된다.“먼곳에서왔는지/먼곳으로가는지도모를”“당신”이다.‘나’를포함하여모든‘너’를아우르는관계를총칭하는말일수도있다.이는“저건너에는/무료급식소가있다”라는결구와조응하는바,시적화자는낮은위치에서‘너’를부르고만나고자한다.이와같은지점에김용권이인식하는실존과개성적인시적지평이있다.

비의전부를그려놓고/버려지는나를본다/
비는순례자시처럼내리지만/시는부랑아비처럼온다/
젖어버린종이를아궁이에넣는다/엉켜버린묵서지편,/
타닥,타닥비의리듬만남았다/
나는나에게공연한시비를건다/
고요가떨어져시끄러웠다/너도나에게시비를걸어도좋다
(「시와비」전문)

표제와내용을통하여약간의언어유희(pun)를가미한시편이지만단순하지않은시에관한시편(metapoem)에해당한다.먹으로비를그리고시를쓰면서애쓴과정이도로(徒勞)가되는과정에서“버려지는나”의표정이역력하다.“비는순례자시처럼”내리나“시는부랑아비처럼”오는역설의형국에서“비의리듬만”남게된다.그림이며시편은불로사라지고다시무위의가능성이나기다림의반복에기댈수밖에없으니“나는나에게공연한시비를”한다.이시편의묘미는이러한시작과정에서그치지않는데있다.“고요가떨어져시끄러웠다”라는대목에서반전이나타나기때문이다.바로“고요”에관한자각이생기면서“너도나에게시비를걸어도좋다”라고열린마음을개진한다.이처럼김용권은일상을사건으로지각하면서존재의안과바깥을교호하는시적지평을확장하는시법을보여준다.
김용권의시법은앞에서말한대로첫째‘나-너’의만남과대화의형식을드러내고둘째사물과사건을통하여‘나’의바깥에관한자각과인식을크게하는과정으로발현한다.가령「나는달린다」에서‘너’는“쏜살같은질주본능”을지닌“경주마처럼”“바람을깨트리는야성”을지니지만‘나’는“차”와“사람”과경쟁하면서“나를양보없이”앞지르는“달리는생”의“과속”상태를벗어날수없다고말한다.‘너’를통하여“오늘을건너가는지도”도없이야성을상실한‘나’를반성한다.이와같은형태는「불살개」에서일정한차이를만들면서반복한다.

달한줄그려놓고/둥둥떠내려가는시간을창문에바른다/
비밀스럽게,은밀하게너를구부려놓고/눈을찌른절망,/
반듯하다/구린내나는종이를구겨서아궁이로던진다/
나를태우는붉은문장,/환생이다,백발로날아간다
(「불살개」전문)

어떤의미에서「시와비」와같은계열의시편이라할수있다.시적이상인‘너’에도달하지못하는‘나’의곤경을“눈을찌른절망”이라고선연하게표현하면서“구린내나는종이를구겨서아궁이로”던지는행위를표출한다.이처럼높은‘너’가있기에낮은‘나’는“나를태우는붉은문장”을경유하면서“환생”으로상승한다.허무를경험하고무위가시적가능성임을인식한다.또한‘나와너’의만남은사물과대대(待對)의관계를형성하는데「꽃무릇」과「만년교」와「오징어」등의시편에서잘드러난다.
한번쯤은/저래야한다/산은푸른데/걸음은하혈한듯붉다/
네푸름이번져모른다하고/내붉음이번져모른다하고/
불갑산허리를둘러메고가는/그리움이란무릇,/
하루에한번쯤은/저래야한다
(「꽃무릇」전문)

시적대상인‘꽃무릇’이의미하는“그리움”을‘너’와‘나’의관계로풀이하였다.“산”의푸름과“걸음”의붉음을병치하면서‘꽃무릇’이라는작은사물을크게확대하여숭고에육박하게만든다.물론“그리움이란무릇”이라는언어유희를가미하였기에숭고는압도적이지않고명랑하다.이러한표정은「오징어」에서“뒤집어진물속,/너와나는매번뒤바뀐꿈을꾸다가/오늘도빛나는순간”을맞는형태로변주하며“바람많은덕장에서/유영하는바다의미라”인‘오징어’가“꿈의가지로휘저을때마다/사거리좌판에걸어둔날개가퍼덕”거리는비약으로나타난다.「만년교」에서시적화자는“너를가만히올려두고천년,만년/떠받치고견디는힘을배운다”라고진술한다.“저편에있는네가이쪽에닿을때까지”“당신이걸어오는곳에나를걸어”두겠다는의지적수행의표출이다.사물을단순하게의인화하지도않을뿐만아니라그아름다움을대상화하여소유하지도않는다.오히려‘너’로만나‘나’를변화하고자한다.「언플러그」에서시적화자는“네온사인입간판에납작하게붙어있는청개구리”를보면서‘나’는“식당문이닫힐때까지너와같은자세로국밥을먹는다”라고진술하고“어디에도뛰어들수없는울음가득한암전”을공유함으로써인간과비인간의대칭관계를확인한다.이처럼김용권은‘나와너’의시법을통하여타자와사물을대상화하는현실의지각양식을극복하려한다.실제로이러한과정은「반려동물」에서“나는고양이의반려동물”이라는전도가가능하듯이시적차원에서수행하는실천에가깝다.나아가서시인은자연사물과의대대는물론장소를통하여과거와현재의대화를시도하며(「수로역을지나면황옥역이있다」에서)궁극적인깨달음의길을열기도(「법성게-실수와실패」에서)한다.

혼불처럼퍼지는/당신의말//내심장으로뿌려져/
왜그리뜨겁든지//바람만실금불어도/수만송이불길인것을//
꽃잎한장떨구는것도/고백의음계로/
나를관통하는몸짓이었네//바람에물린자리/
구름이밟은자리/한사나흘머물다가는봄이라니//
노랗게번지는것을/너라고말할때,//가만히들여다보면/
내가타고있다
(「유채의말」전문)

김용권이보이는만남의시학은이시편에서사물의부름이라는형식으로나타난다.‘유채의말’을듣고그로부터환기되는‘나’의정동(affect)이뜨겁다.“꽃잎한장떨구는것도/고백의음계로/나를관통하는몸짓”이라는구절에이르러상호적인만남의극치에다다른다.이는단순한동화나투사의은유가아니다.이보다사물이환기하는힘에이끌리면서‘나’의변화가초래하는경과를나타낸다.그래서“노랗게번지는것을/너라고말할때,//가만히들여다보면/내가타고있다”라는결구에이르면상호간에어떠한배타성의기미를발견하기어렵다.이시편처럼김용권은일상을사건으로받아들이는실존의감각을돌올하게표출한다.이럴때에‘나와너’의시법과는달리경험적인‘나’의자각과인식이결구에이르러크게부각하는형식을보인다.

밑밥으로친/새우한마리,바다를걸고있다/
걸림이심한곳에서나는/물고기노래를부른다/
푸른수심저아래에는/입큰물고기가살고있어서,/
걸려도너무큰바다가걸릴것같아서,/
수중으로나를묶어내린다/
아무래도나는,세상에서제일무거운/
나를뽑아올리다가/팽팽하던줄이툭끊어지면/
멋진이유속에바다를건너갈수있겠다/파도의흰머리가/
어망속으로들어간다/번번이걸리는바닥에는/
내가키운고래한마리살고있다
(「고래밥」전문)

시적화자는“새우한마리”로“바다를”걸수있는데서“나는/물고기노래를”부를수있지만“푸른수심저아래”“너무큰바다”를걸기위해서“나를묶어”내릴수밖에없다고생각한다.“입큰물고기”나깊은바다를알려면자기를미끼로삼지않을수없다는말인데이해의지평을구체적으로은유한다.그런데시편의후반은“세상에서제일무거운/나를뽑아올리다가/팽팽하던줄이툭끊어지면/멋진이유속에바다를건너갈수있겠다”라고진술하며비우고버리는태도를강조한다.이는“번번이걸리는바닥”에“내가키운고래한마리살고”있는이유이기도하다.존재의생성은내부가아니라외부를향하여투신하거나자기를버리는데서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