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일곱 등불

건축의 일곱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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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러스킨의 연구 이력의 둘째 단계에 속한다. 건축을 전적으로 주제로 삼은 저작은 이 책 이전에 『건축의 시Poetry of Architecture』가 있고, 그 이후에는 『베네치아의 돌들』이 있다. 『베네치아의 돌들』 이후에는 주로 강의 내용을 출판한 것인데 전적으로 건축만을 주제로 한 강의는 없고 주로 건축을 다루거나 부분적으로 다룬 것들이다.
저자

존러스킨

(JohnRuskin)1819~1900

빅토리아시대영국의예술평론가이자사회비평가이며,새로운삶의형태를실험하는공동체인〈성조지길드〉의설립자이기도하다.그는옥스퍼드대학의미술슬레이드교수를역임했으며건축,교육,지질학,식물학,경제학,문학등에관한글들을썼다.
러스킨의주요저서로는『현대화가론』,『건축의일곱등불』,『베네치아의돌들』,『나중에온이사람에게도』,『펜텔리코산의쟁기들』,『포르스클라비게라』등이있다.

목차

1880년판서문/7
초판서문/10
서설/14
1장봉헌의등불/23
2장진실의등불/51
3장힘의등불/104
4장아름다움의등불/150
5장생명력의등불/209
6장기억의등불/247
7장복종의등불/274
부록/292
『건축의일곱등불』해설·정남영/309
역자후기·고명희/355
찾아보기/357

출판사 서평

작품해설

I.러스킨과근대

「삶과그예술의신비MysteryofLifeanditsArts」에서러스킨은자신의삶을실망과좌절의연속으로개관한다.그는스무살에서서른살까지그의“삶의가장강렬한10년”동안,레이놀즈(JoshuaReynolds)이후영국에서가장훌륭한화가라고생각하는터너(J.M.W.Turner)의예술가로서의우수성을보여주려고노력했으나소용이없었다.더군다나터너는이노력의“피상적효과가가시화되기도전”에사망했다.러스킨은탁월한재능을가진예술가가헛되이창작하다헛되이죽을수있다는것을알게되었다.터너는러스킨의노력에도불구하고대중으로부터외면을받았던것이다.
러스킨은회화연구를하면서건축연구를병행했다.자신의말로는회화연구에서보다“덜열심일지는몰라도더신중한노력”을투여했다고한다.러스킨은건축의경우에는회화의경우와달리공감해주는사람들을만났다.그러나이들과함께한러스킨의노력도(이미당대의건축계주류와의관계를언급한데서추측할수있듯이)대세에밀려서좌절되었다.“우리가도입하려고한건축은현대도시들의분별없는사치,형태를왜곡하는기계적구조,지저분한비참함과는어울리지않았다.(…)나는나의힘의이새로운부분또한헛되이쓰였다는것을인식했다.그리고철로된거리들과수정으로된궁전들에서물러나지질학과식물학연구로관심을돌렸다”.
그이후에도영국의주류사회는러스킨에게도통맞지않는곳이었다.러스킨은당대의현실로관심을돌리면서정치경제학비판으로나아갔는데,이비판또한당시영국의자본주의추진세력에게는당연히못마땅한것이었다.이것을잘보여주는에피소드가,1860년에일련의정치경제학비판글들이『콘힐매거진CornhillMagazine』에연속으로실리다가(편집자의우호적인태도와과감함에도불구하고)독자들과출판사의반대로네편에서중단된일이다.(이글들은나중에UntoThisLast라는책으로출판된다.)사실앞에서말한“근본적인차이”-즉삶을바라보는시각의근본적인차이-는건축계주류와의사이에만존재했던것이아니라당대영국자본주의를추진하는세력들전체와의사이에도존재했었다.당대의자본주의추진세력의사고는근본적으로공리주의적이다.즉인간의모든능력과힘을물질적효용을생산하는수단으로만본다.이들은“고기가삶(생명)보다가치있고옷이몸보다가치있다고생각하며,땅을마구간으로보고땅의결실들을말사료로보는”자들이다.이들의궁극적목적은상품화된물질적효용즉교환가치의재현자인자본의축적이다.
이와반대로러스킨은물질적효용을삶에도움을주는도구로본다.그리고예술처럼그자체로는물질적효용이없는‘무용함’이삶의목적이다.‘무용함’자체가목적이라는말이아니다.‘무용함’은공리주의와의근본적인차이를나타낼뿐이고,러스킨이깊은의미에서말하는것은예술을비롯해서삶의목적이되는어떤대상을신의활력을분유(分有)한것으로보는태도이다.여기서‘신’이라는단어에우리가종교적의미를부여할필요는없다.철학적의미의‘신’으로읽으면된다.사실러스킨의철학은그것이활력의철학이라는점에서스피노자와통하는데스피노자의철학에서‘신’은‘무한한활력’에다름아니며,러스킨에게있어서도그렇다.러스킨은이무한한활력이만물에나뉘어부여되어있고만물은이활력으로인해서그나름대로신성하고아름답다고본다.물론아무나이신성함과아름다움을보는것은아니다.이신성함과아름다움을보고공감하고경탄하고기뻐하는활력이필요하다.(이것역시신이부여한활력이다.)그래서러스킨이“인간의효용과기능은…신의영광의목격자가되는것이”라고말했을때,그는특정의종교적교리를설파하고있는것이아니라바로진정한의미의‘인간’에게서활력이가진핵심성을말하고있는것이다.
활력은개인마다,집단마다그정도가다르게나타나며,역사적으로상승과하강을겪는다.그런데근대에들어와서유럽거의전체에걸쳐서이활력의상태에전에없이심각한문제가생기게된다.바로이로인해서예술적능력은쇠퇴하고이쇠퇴에대한감이나인식이없는근대추진자들과이들을비판하는러스킨사이에근본적인어긋남이생기게된것이다.이제활력의상태에생긴이문제를좀더살펴볼필요가있을듯하다.
「삶과그예술의신비」에서러스킨은‘인간의일’,즉인간이자신의삶을위해“인간의형태를띠고사는동안”해야하는일로①먹을것을생산하기,②입을것을생산하기,③거처를만들기,④예술이나과학등사유와관련된것으로사람들을즐겁게하기를든다.①,②,③은물질적효용의차원인데,앞으로는‘유용성의차원’이라고부르기로하자.④는삶이단순한물질적욕구의충족을넘어서꽃처럼피어나는차원인데,이는‘활력의차원’이라고부르기로하자.①,②,③,④모두인간의힘이자연력과결합하는방식을나타내는데,이방식은이두차원을따라둘로나뉜다.유용성의차원은물질의법칙이적용되는차원으로서자연력이인간에게이전되고다시자연으로되돌아간다.그런데가령자연력이인간으로이전되어있는동안에는이전된양만큼자연에서는감소된다.활력의차원에서는자연력이감소되지않고거기에각인된인간의힘과함께결합된상태로보존되며,이과정에서양자모두가새로운차원의힘으로상승한다.
이제인간의삶의역사의정상적진전은유용성의차원에서인간의욕구를충족시킨후활력의차원에서각집단(민족등)이가진능력에따라서가능한만큼최대로상승하는것이다.이것을‘인간되기’라고부르기로하자.두차원모두를놓고볼때둘째차원이이과정을비로소‘인간되기’로서결정한다.만일둘째차원으로도약하지못하고첫째차원을충족하는데서끝난다면,그것은‘만족한동물’을넘어서지못할것이기때문이다.둘째차원이이런의미에서결정적이지만,사실두차원이모두필수적이다.의·식·주는인간의생존의기본조건으로서생존없이는활력적인삶도없기때문이다.이와마찬가지로중요한것은유용성의차원에서예술성이자라나온다는점이다.사물을인간에게유용한형태로바꾸는능력인기술(특히손기술)이고도화되고다양화되면서예술이발생하게되는것이다.그래서러스킨은“모든건축예술은컵과받침대의모양을짓는데서시작해서멋진지붕에서끝난다”고한다.
러스킨에게근대는이러한‘인간되기’의경로에서이탈한시대이다.러스킨의시선에먼저들어온것은예술적능력의전반적인쇠퇴이며,그다음에그가주의를돌린곳에서본것은자본주의적번성이라는외양에도불구하고생존의기본조건이충족되지않는처참한민중의모습이다.러스킨은이모습을서양의긴역사적과정에놓고한탄한다.6천년동안농업이이어져왔음에도50만명이굶어죽는일이발생하고6천년동안직조를해왔음에도불구하고유럽의수도들의거리는내다버린누더기와썩은넝마의판매로악취가나며,6천년동안집짓기를해왔음에도그모든기술과힘의대부분이흔적도남아있지않고떨어져나온돌들만들판에거추장스럽게나뒹굴거나시냇물에서물길을가로막고있는것이다.
유용성의차원이피폐해질뿐만아니라유용성의차원과활력의차원사이의건강한연결이단절된다.인구의다수가유용성의차원에서욕구를충족시키지못하는한편,이욕구를충족시킨소수는물질적이익의차원에서더많은축적(수익,이윤,지대등)을원할뿐자연력과의결합을활력으로상승시키는일에아무런관심이없다.그리하여활력의양성과발휘는현저하게쇠퇴하게되는것이다.러스킨은수익을우선으로하는조건에서는진정한건축이이루어지기어려움을다음과같이지적하고있다.

만일어떤사회가스스로를조직해서가장아름답고가능한한가장강한집들을
예술을위해서든사랑을위해서든짓고자한다면-궁전을그자체를위해서
짓거나가난한사람들을위한집을짓고자한다면-그런사회는볼만한어떤
건물을지을것이지수익을가져올건물을짓지는않을것이다.진정한건축물은
자신을위해집을원하는사람이지으며자신의비용으로자신이좋아하는식으로
짓는다.자신의이득을위해남이좋아하는식으로짓는것이아니다.

바로이것이근대에와서활력의상태에일어난심각한문제이다.이런상황에서‘인간되기’는정체혹은후퇴를겪을수밖에없는것이다.물론러스킨에게이러한‘인간되기’의실패가절망만을가져온것은아니다.“삶이[그]를실망시킬수록삶은[그]에게더근엄하고놀라운것이되었”으며,그는“예술혹은다른분야에서의모든지속적인성공은…인간의전진하는힘에대한근엄한믿음에의해서,혹은인간의유한한부분이언젠가는불멸성에함입되리라는약속에대한근엄한믿음에의해서하위의목적들을다스리는데서온다는것을점점더명확하게보았고,예술자체는이불멸성을천명하려는노력에서만…힘찬활력이나명예를획득할수있다는것을점점더명확하게보았다.”
러스킨이『건축의일곱등불』을썼던때(1849년)는그에게아직희망이있던때였다.그가나중에건축에대해말하기를포기했지만,이는자신의한말이틀려서가아니라말해도소용이없어서였다.아무리말해도귀에‘돈’못이박혀있는근대의주류세력을꿰뚫고현실에영향력을발휘하기가힘들었던것이다.


II.건축의일곱등불

『건축의일곱등불』은(앞에서말했듯이)러스킨의연구이력의둘째단계에속한다.건축을전적으로주제로삼은저작은이책이전에『건축의시PoetryofArchitecture』가있고,그이후에는『베네치아의돌들』이있다.『베네치아의돌들』이후에는주로강의내용을출판한것인데전적으로건축만을주제로한강의는없고주로건축을다루거나부분적으로다룬것들이다.『건축과회화에대한강의LecturesonArchitectureandPainting』(1853)1강,2강,『두개의길TheTwoPaths』(1859)4강이건축을다루며,1873년에한강의의내용을출판한『발다르노Vald’rno』와1874년에한강의의내용을출판한『피렌체의미학·수학유파들TheÆstheticandMathematicSchoolsofFlorence』이주로건축을다룬다.건축에대한그의생각의기본적인골격은아무래도『건축의일곱등불』과『베네치아의돌들』에담겨있다고보아야할것이며,그이후에생각의수정,심화,진전,확대가있겠지만,예의기본적인골격을크게벗어나는변화는없다고보아야할것이다.
『건축의일곱등불』의경우,러스킨은1880년3판에서추가한55개의주석을통해자신의바뀐견해를밝히고있지만,책의기본취지에해당하는것이바뀐것은아니다.오히려이기본취지는나중에더진전되고확대되었다고보아야한다.이는,러스킨자신이밝힌재출간의이유에“내가알기로대중은여전히이책을좋아”한다는점외에도“내가그후에썼던글의맹아가실은여기에있”다는점이포함되는것을보면짐작할수있다.
이책에서러스킨은“건축을진전시키기위해서”“건축에뒤죽박죽들러붙은편파적전통들과도그마들로부터,건축의모든단계와양식에적용할수있는저거대한올바른원칙들을”구해내고자한다.(이상15쪽)이법칙들은“모든노력의길잡이가될어떤지속적이고보편적이며논쟁의여지가없는올바른법칙들”이며“인간의지식이아니라인간의본성에기반을두기때문에인간본성에서보는것과같은불변성을지식의증가나결함에의해공격을받거나무효화될수없을정도로가지고있을그러한법칙들이다.”이법칙들은“어떤한예술분야에만해당”되지않으며그범위는“인간행동의전체지평을포함한다.”“이법칙들의여러측면들가운데최초형태의예술[건축예술]에특유하게속하는측면들”(이상16쪽)이바로‘건축의일곱등불’이다.그렇다면러스킨이제시하는‘건축의일곱등불’은건축에특유한것들인동시에인간행동전체에공통된것들이라고생각할수있다.이제이러한점을염두에두면서등불들각각을살펴보기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