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열차사고〉
윤순식
한화자가열차를타고가는동안에겪는짧은‘사고’를중심으로이야기가펼쳐진다.화자는여행하는내내열차의흔들림과소음에예민하게반응하며사고가날것이라는불안에사로잡힌다.그는열차의작은진동에도죽음이다가온다고상상하며,머릿속에는이미큰재난이벌어진듯한장면이떠오른다.그러나실제로일어난‘사고’는단지열차가갑자기멈추면서다른객차와가볍게충돌한정도이고,승객들은놀라기는하지만금세상황을정리하고다시평온한분위기로돌아간다.
〈열차사고〉는제목과달리비극적사건을다루기보다는,사고가능성에과도하게불안해하는인간심리를다루며풍자하는경쾌한단편이다.화자는사고를문학적으로상상하고,비장한감정에몰입하고,자신의죽음을미리연출하지만,정작실제사고는미미한충돌에불과하여승객들은곧일상적인대화로돌아간다.이대비는인간이현실그자체보다자기감정과상상이만들어낸세계에더강하게반응하는존재임을드러낸다.
토마스만은이러한과장된불안과자기연민을가볍게비틀어,죽음을둘러싼‘문학적포즈’와예술가적감수성의과잉을희화화한다.화자의극도로예민한반응과사고의실상사이의간극은,우리가얼마나자주스스로의상상과공포에사로잡히는지를보여주는동시에,거대한감정적동요도결국은일상의소음속으로흩어진다는인간적아이러니를강조한다.결국이작품은사건자체가아니라,이를바라보는인식의왜곡과인간마음의연약함을주제로한작은심리극이자유머로읽을수있다.
그리고토마스만의전체작품들과연관짓는다면여기서드러나는것은기술문명속현대인의과민성,충격,신경적반응성이다.토마스만은부르주아적삶의나약함과신경질을날카롭게풍자한다.겉으로는멀쩡하지만내면에서는병들어있는인간의초상을보여준다.이것은1924년발표한작품,《마의산》의병·건강·문명비판을준비하는문제의식과도연결된다.〈열차사고〉는그래서단순한사고담이아니라근대적주체의병리학적초상화이다.결론적으로,이작품은“병이아니라병에대한공포가인간을병들게한다”는통찰을예리하게포착한다.
〈야페와도에스코바르가치고받은사연〉
김륜옥
이단편은원래빈의유력한일간지〈신자유신문NeueFreiePresse〉의1910년크리스마스특집을위한주문에따라그해11월에집필되었다.하지만실제첫발표는1911년2월에발간된뮌헨의〈남독일월간지SddeutscheMonatshefte〉에서이루어졌다.이후1914년에베를린에서출판된토마스만의첫단편집《신동.단편집DasWunderkind.Novellen》에묶여나온바있다.여기에함께실렸던다른6편의작품들은〈신동DasWunderkind〉,〈산고(産苦)SchwereStunde〉,〈예언자의집에서BeimPrompheten〉,〈어떤행복EinGlck〉,〈일화Anekdote〉,〈열차사고DasEisenbahnunglck〉이다.
작품의서사는,사춘기청소년들사이에서벌어지는힘겨루기와이를지켜보는주요인물들의관전이라는비교적단순한구조를띤다.‘사내다운’면모를둘러싼자존심에휩쓸려싸움을벌이는청소년들은(작품명에서언급된)독일인야페와스페인인도에스코바르이지만,서사의내적관심은서술자‘나’와그의친구조니로서,이들이실질적인‘주인공’인셈이다.
지금까지토마스만의전체작품에서문학적으로크게주목받지못하는단편으로남아있지만,사실여기서토마스만문학특유의자전적인핵심요소로서의주요모티프와서사적주체,즉궁극적으로는자전적작가토마스만자신의의식과심리가매우잘드러난다.무엇보다그의전체작품에서가장기본적인바탕을이루고있는동성애모티프는결코간과할수없는부분이다.이와함께‘남성다움’과‘여성다움’에대한작가의끊임없는생각과갈등이핵심적인요소인것도마찬가지이다.
특히〈토니오크뢰거〉에서주인공이동경하던한스한젠은조니로다시등장하고있을뿐더러,‘남자답지’못한,혹은‘여자같은’발레마이스터프랑수아크나크는이름까지그대로옮겨졌다.또한‘남성적이자여성적인’존재의대명사“아모르”로비유되는조니는바로다음해에발표될〈베네치아에서의죽음〉의미소년타치오를상당히선취하고있다.서술자‘나’는싸움의당사자들보다사실상조니의존재와자신의혼란스러운성역할의식에대해더욱깊은관심을드러냄으로써토마스만의전작품을이끌어가는핵심요소로서의성적갈등과함께그런문제의식의문학화를환기시킨다.
이작품에서언급된유럽의시대적위기역시상당히현실적이다.이소설이집필되고발표되던시기의유럽은곳곳에서영토분쟁으로전운이가득했다.특히작품이발표되기직전,즉1911년봄에프랑스와독일사이에서북아프리카모로코남부의항구아가디르를둘러싸고일어난분쟁이대표적이다.독일소년야페가상대적으로약한체질에도불구하고소위‘북구의’냉정한정신력으로제압해낸도에스코바르가겉멋에찬스페인소년이라는점은우연이아닌것으로보인다.스페인은프랑스와마찬가지로로망스어를쓰는남구의라틴계국가라는점에서분명연관성이있다.실제로아가디르분쟁이프랑스에유리하게마무리됨에따라독일내에서팽배하던반프랑스정서는곧다가오는1차세계대전으로도연결된다는점에서이단편에내재된복합적인요소는더욱흥미롭다.
〈베네치아에서의죽음〉
김현진
나르시스의시선:
토마스만의중편소설〈베네치아에서의죽음〉은병과죽음,사랑을동일한범주로그려낸토마스만의초기미학적사고를결산하는작품이라할수있다.여기에서주인공의에로스적욕망은무엇보다도보는행위를통해서생겨나고,그것은시각적환상을통해서그려진다.투철한삶의태도로시민적삶을영위하며작가로서명성을날려온중년의남자아셴바흐가여행에서마주친한소년에게이끌려순식간에죽음으로내몰리는과정을묘사하고있는이소설에서그를그처럼무너뜨리는데결정적인역할을한것은바로시선의교류이다.죽음으로이어지는그의몰락의첫단계부터가산책중공동묘지에서만난한“범상치않은모습의낯선남자”를바라보게됨으로써시작된다.이남자는아셴바흐에게불현듯여행에대한욕구를불러일으키고,그것은앞으로이어질사랑의죽음의세계로가는여행의출발점이된다.그낯선남자를바라보는주인공의눈앞에는원초적인자연의이미지로서무질서와혼란의세계를나타내는하나의시각적상이펼쳐지는데,그것은그자신의내면에자리잡고있던무의식적욕망이라고생각할수있다.잠깐동안마주친이러한환상은지금까지지탱해온모든삶을무너뜨리고,사랑과죽음의세계를향해가는여정의신호탄이된다.그것은질서도경계도없고자아와타자의분리가이루어지지않은근원적이고총체적인합일의세계를나타낸다.그가바라본시각적이미지는아직아버지의법을알지못하는아이가어머니와의결합을꿈꾸는유아기적인상상의세계와도같다.
그에게이미오랜전에잊혀졌던그러한욕망을불러일으키는결정적인물인타치오란소년과의관계는언어가전혀없는완전한시선만의관계이다.그러한시선의교류는아셴바흐가죽는순간까지이루어지는데,여기에서시선에의해야기된에로스적욕망은동성애의성격을지닌다.타치오가눈길과함께보낸나르시스의미소,즉“자기자신의영상을향해팔을뻗는저오묘하고매혹적이며매혹을당한미소”를보았을때아셴바흐의사랑은극에달한다.불현듯보게된시각적환상이아셴바흐의에로스적욕망을자극했다면,그러한욕망은미소년타치오와의이러한시선의관계를통해극단적인상태에이른다.명부의세계로안내하는사자헤르메스와도같이,바닷물속을들어가그에게손짓하는타치오를바라보며아셴바흐는마침내죽음을맞게된다.이처럼시선의교류를통해분출된에로스적욕망에사로잡히게된주인공은그가그토록투철하게지켜온시민적질서의세계에서완전히벗어나사랑과방종,무질서,죽음의세계에빠지게된다.그것은시각적만족으로서만표출되지만,주인공을죽음으로이끄는강력한힘으로작용한다.이처럼이소설에서시선과시각적환상,에로스,동성애는죽음과밀접한관계에있다.아셴바흐는죽음과속임수와질병과에로스의도시베네치아로부터도주하려고몇번이나시도했으나실패한다.그것은자크라캉이말한바,거울속에비친허구적이미지를자신과동일시하고바라보고환호하는아이를연상시키는‘상상적주체’의회귀로생각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