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깊어 - 시와서 산문선

봄은 깊어 - 시와서 산문선

$14.00
Description
《봄은 깊어》는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마사오카 시키, 나카하라 주야 등 일본 근대 작가 열아홉 명의 수필 마흔다섯 편을 엮은 선집이다.

허구적 상상력에 의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소설과 달리, 수필은 주변의 현실이나 실제 경험을 자신이 보고 느낀 그대로 담아낸 글이다. 현실을 상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자신의 감수성과 정서로 바라보는 것, 바로 여기에 수필의 매력이 있다.

일본의 수필 문학은 천 년 전 헤이안 시대에 시작되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문학 장르로, 일본 특유의 애절함, 무상함, 쓸쓸함, 한적함, 소박함, 아련함 등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을 통해, 그런 다양한 정서 속에서 일본 특유의 정취, 미적 감수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나쓰메소세키,다자이오사무

시인,수필가,아일랜드문학번역가.외교관의장녀로도쿄아자부에서태어났다.아일랜드문학에매력을느껴예이츠,존싱,그레고리부인등의작품을번역했다.자기삶의소소한단상을절제되고우아한문체로엮은만년의수필집『등화절』은근대여성의아름다운산문으로이름이높다.아쿠타가와류노스케와깊은문학적교류를통해서로사랑의감정을느끼기도했는데,아쿠타가와가『어느바보의일생』「나보다나은사람」편에서“재능면에서나와겨룰수있는여자를우연히만났다”며“어찌내이름을아낄까,아껴야할것은그대이름인것을”이라노래한대상으로알려졌다.

목차

1장고요한봄의빛에감싸여
바다_다자이오사무  
봄_다자이오사무  
아,가을_다자이오사무
귤_아쿠타가와류노스케
연말의하루_아쿠타가와류노스케
연말_구보타만타로  
봄은깊어_구보타만타로 
설날_구보타만타로  
생각나는것들28_나쓰메소세키
이상한소리_나쓰메소세키  
꿩_나쓰메소세키  
묵즙일적_마사오카시키
병상육척_마사오카시키
앙와만록_마사오카시키
9월14일아침_마사오카시키
런던의소세키에게_마사오카시키 

2장무엇이그리워쓰는시인가
문조_나쓰메소세키  
마음_나쓰메소세키  
가을풀_나카간스케  
머리에꽂은꽃_쓰무라노부오 
꽃이야기_데라다도라히코  
나의색비름_마쓰네도요조  
복숭아가있는풍경_오카모토가노코 
병실에드리워진꽃_오카모토가노코 
꽃집의창_가타야마히로코  
가을안개_미야모토유리코  
새모이_미야모토유리코  
추운밤_미야모토유리코  
하늘의아름다움_미야모토유리코  
모깃불_미야모토유리코  
생활_하야시후미코

3장붓을드는것이울적하구나
서리내린밤_아쿠타가와류노스케 
가을밤_아쿠타가와류노스케  
머위_아쿠타가와류노스케  
추억_아쿠타가와류노스케  
얼음가게의깃발_이시카와다쿠보쿠 
병실에서_이시카와다쿠보쿠  
망제_나카하라주야  
풀베는냄새_스스키다규킨 
서재와별_기타하라하쿠슈  
아이와의여행_다야마가타이 
여름의하루_도쿠토미로카  
어느밤_도쿠토미로카  
가을,쓸쓸하다_도쿠토미로카
눈_도쿠토미로카

출판사 서평

일본의첫수필문학은11세기초헤이안시대의궁녀세이쇼나곤의《마쿠라노소시(베갯머리서책)》라고알려져있다.천년이넘는긴세월동안이어져와지금까지도많은일본인들에게읽히고있는만큼,수필이일본인들에게얼마나많은사랑을받아온문학장르인지알수있다.

일본의수필은일상의소재를가지고그저생각나는대로자유롭게쓴것이많다.일본3대수필중하나인《쓰레즈레구사》의첫머리에등장하는“무료하게온종일벼루앞에앉아,마음속에떠올랐다가사라지는시시한것들을생각나는대로쓰고있으니……”라는유명한구절은일본수필문학의특징을잘보여주는데,그속에서자연과일상을대하는일본인의태도와삶의방식을느낄수있다.

화려한귀족문화를꽃피웠던헤이안시대에시작된만큼,일본의수필문학은섬세하고기교적인면을보여주기도하지만,한편으로는대상에주관적으로몰입하면서공감을나누기도하고,또다른한편으로는객관적이고관조적으로자연과사물을바라보는모습을보여주기도한다.세속을벗어난불편함속에서한적함과여유로움을느끼기도하고,덧없고쓸쓸함속에서삶의본질적인모습을보기도하고,죽음을앞둔이의체념과비애속에서당연한듯누리는하루하루의소중함을되돌아보기도한다.

나쓰메소세키,다자이오사무,아쿠타가와류노스케등을비롯해,도쿠토미로카,구보타만타로등국내에잘알려지지않은작가총열아홉명의수필마흔다섯편을통해일본고유의정취,특히애절함,쓸쓸함,무상함,소박함,한적함등일본특유의정서와미의식을느낄수있을것이다.

늘가까이에있는일상과자연이라도찬찬히바라보고가만히귀기울이면,뜻밖의발견과새로운생각을던져줄때가있다.그러한것들이무미건조하게느껴지기도하는삶을여유롭고풍요롭게만들어주는것같다.아쿠타가와류노스케는수필을청한(淸閑)의문학이라고했다.이책을읽는독자한분한분의마음속에,삶속에,한줄기맑고한가로운바람이불어들기를바란다.

-
책속에서


이제서른일곱살이됩니다.얼마전에어느선배가,자네,용케그럭저럭살아왔군,하고진지하게말했습니다.나자신도서른일곱까지살아왔다는것이거짓말처럼여겨질때가있습니다.
---다자이오사무「봄」중에서

그는이글을쓰고나서얼마후〈점귀부〉,〈겐카쿠산방〉에이어〈갓파〉를쓴것이다.그리고그후,그는죽었다.……
어쩌면그때,……이미그때그는죽음을의식하고있었는지도모른다.“싸우기라도하듯힘껏수레를미는”그의모습은너무도비참하다.흐린하늘아래,휘몰아치는바람속에서어떻게하면자신을단단히붙들수있을까,어떻게하면자신의존재를확인할수있을까?……울려고해도이제는눈물이다말라버린해협의공허한눈을들고,그저멀리앞길을지켜보는그의뺨의납과같은차가움이여…….
---구보타만타로「연말」중에서

그래도희망의축소는거기서멈추지않았다.“앉는것은고사하고한시간만이라도고통없이편안히누워있을수만있다면얼마나기쁠까”하는것이어제오늘의내희망이다.작은바람일까?
이제내희망은더는작아질수없을만큼작아졌다.이다음차례는희망이영(零)이되는시기다.희망이영이될때,석가는이를열반이라하고,예수는이를구원이라하겠지.
---마사오카시키「묵즙일적」중에서

나는지금까지소위선종(禪宗)의깨달음이라고하는것을오해하고있었다.깨달음이란어떠한경우에도아무렇지않게죽을수있는것이라고생각했다.하지만그것은잘못된생각이었다.깨달음이란어떠한경우에도아무렇지않게살아있는것이었다.
---마사오카시키「병상육척」중에서

뭘입고있었는지,어떤머리모양을하고있었는지는거의알수없었다.눈에비친것은단지그얼굴이다.그얼굴은눈도,입도,코도,하나하나따로서술하기가어렵다.아니,눈과입과코와눈썹과이마
가함께하나가되어,오로지나한사람을위해만들어진얼굴이다.백년전부터이곳에서서,눈도코도입도한결같이나를기다려온얼굴이다.백년이지나도나를따라어디까지나갈얼굴이다.말없이말을하는얼굴이다.
---나쓰메소세키「마음」중에서

봄안개는사람의마음을칭칭감아서사바세계의한복판으로데려간다.가을안개는금욕적이고은둔적인기분으로가득차있다.
나는아직은가을안개쪽을좋아한다.
가끔은차분한머리가되고싶기때문이다.
---미야모토유리코「가을안개」중에서

가끔씩먼지털듯이하나하나집어내는비평을받을때가있다.괴롭기도하고그런것에남보다곱절은더영향을받는탓인지,완전히넋이나가버려썩은물고기처럼이삼일이불을뒤집어쓰고누워버린다.내작품이좋지않기때문이다.누구보다나자신이잘알고있기때문에한동안갈곳을잃어버리지만,다시책상앞에앉아서한자한자쓰기시작한다.나에게종교라는게있다면,그저한자한자쓴다,라는것이다.
---하야시후미코「생활」중에서

‘생명’이라는것은그것이아무리변덕스럽고헛된표현을가진다고해도,거기에는아름다움이있고,
힘이있고,반짝임이있다.온갖사물중에서풀로태어난생명만큼겸손하고소박하고정직하고또한참을성이강한것은많지않다.풀은나에게그야말로‘말’이다.잠깐이라도가만히있을수없는신기한존재이다.발굽이없기에늘한자리에서있는작은짐승이다.목청이없기에늘침묵하고있는작은새이다.
---스스키다규킨「풀베는냄새」중에서

“도쿄에는별님이없어.”
그렇게우리집아이는자주말한다.
“아아,난서재가없구나.”
이것은아이의아버지인내가하는탄식이다.
---기타하라하쿠슈「서재와별」중에서

인생은생각하는인생보다보는인생이다.듣는인생이다.보는것에서,듣는것에서,여러가지현상이그의미를풍부하게했다.
눈만밝으면된다.눈이감겨있다면,귀만밝으면된다.귀도들리지않는다면,만져서라도인생을알고싶다.
---다야마가타이「아이와의여행」중에서

지금은오후4시다.구름사이로흘러나와서쪽의햇빛이쨍하고비쳐왔다.뜰에한가득지기시작하는코스모스,피기시작하는국화,아직남아있는다홍색맨드라미,벌과등에가떼지어있는팔손이나무의크고하얀꽃,희미하게노란색을품은잔디,잎이갈색으로마르고시든싸리나무와자작나무와낙엽송,다들석양에쓸쓸히빛나고있다.선명하지만,울고있다.아름답지만,쓸쓸하다.
오늘은쓸쓸한날이다.
---도쿠토미로카「가을,쓸쓸하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