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풀베개

$15.00
Description
이지(理智)로 행동하면 모가 난다. 감정에 이끌리면 휩쓸려간다. 고집을 부리면 갑갑해진다. 어쨌든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유명한 첫 구절로 잘 알려진 소세키의 초기 명작으로, 1906년 소세키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빠져 있던 시기에 집필된 작품이다.
소세키의 독자적 용어로도 볼 수 있는 ‘비인정’을 그린 소설로, ‘비인정’이란 인간관계나 인간의 감정을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인정과 몰인정을 초월한 개념이다. 그 무렵 번거로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소세키의 심정을 소설 속 화공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소세키는 이 소설을 “아름다움을 생명으로 하는 하이쿠적인 소설”이라고도 했다. 그 무렵 일본 문단의 주류를 이루던 유럽의 자연주의, 사실주의에 반발해, 예술로서의 소설이 지켜야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하며, 이 소설은 오로지 독자의 머릿속에 아름다운 느낌이 남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쓴 것이라고 했다.
동서양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비평,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 삶에 대한 태도 등 그 무렵 소세키의 문학관과 예술관, 인생관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저자

나쓰메소세키

저자:나쓰메소세키(NatsumeSoseki)
1867년2월9일,에도우시고메바바시모요코초(현재의도쿄신주쿠)에서태어났다.도쿄제국대학문과대영문과를졸업하고,마쓰야마와구마모토에서교편을잡았다.1900년,문부성지원으로영국유학길에오르고,도중에파리엑스포를방문하기도했다.귀국후1905년에《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발표,연재를시작했다.1906년에《도련님》과《풀베개》를연이어발표하며명실상부한인기작가로등극했다.1907년,《태풍》을발표한그는〈아사히신문〉에입사,《우미인초》를연재하며전업작가로서집필에만전념했다.《갱부》(1908),《산시로》(1908),《그후》(1909),《문》(1910),《행인》(1912),《마음》(1914)등의작품을꾸준히연재하며독자들의사랑을받지만,거듭되는신경쇠약과위궤양에시달리면서집필활동에심각한차질을빚었다.신경쇠약과위궤양이극심해지는가운데결국1916년12월9일,위궤양악화로49세나이에생을마감했다.

역자:박성민
도쿄외국어대학교대학원에서일본어학을전공하고통번역사로일했다.전문번역가로좋은일본문학을찾아소개하고있다.번역서로《풀꽃》,《책은시작이다》,《봄은깊어》,《심호흡의필요》,《세상은아름답다고》,《나쓰메소세키-인생의이야기》,《다자이오사무-내마음의문장들》등이있다.

목차


풀베개
나의<풀베개>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풀베개》는1906년나쓰메소세키가서른아홉살에쓴소설입니다.1903년2년간의영국유학을끝내고귀국한소세키는도쿄제국대학에서영문학강사로근무하게되었지만,유학시절부터앓던신경쇠약이점점심해졌습니다.그러다가소설을써보라는다카하마교시의권유로첫소설《나는고양이로소이다》를연재하기시작했고그것이호평을받으면서작가의길을걷게되었습니다.《풀베개》는《나는고양이로소이다》의연재가끝나고열흘후에쓰기시작해약2주만에완성한초기작중하나로,소세키가학교에서도가정에서도안정을찾지못하고신경쇠약에빠져있던시기에쓴작품입니다.

《풀베개》는속세를벗어나산골마을의온천장으로여행을떠난한화공이여행지에서보고느낀것들을들려주는소설로,‘풀베개’란‘여행지또는객지에서자는잠’을뜻하는말입니다.

소설속에등장하는나코이온천장은구마모토에있는오아마온천을모델로한가공의장소로,소설을쓰기약10년전구마모토에서영어교사로지내던무렵소세키가여행했던곳입니다.그러니까그때의여행이후에《풀베개》라는소설로태어나게된것입니다.극도의신경쇠약으로인해속세의온갖번뇌를벗어나마음가는대로자연을거닐고싶었을소세키는아마도그때의한가로운여행을떠올렸는지도모릅니다.

《풀베개》에서소세키는예술의목적이고달픈인생에여유를주는것이라고했습니다.

옮겨살수도없는세상이살기어렵다면,살기어려운세상을어느정도느긋하게받아들이고,짧은목숨을잠깐이나마살기편하게만들어야한다.그리하여시인이라는천직이생기고,화가라는사명이내려진다.모든예술가는인간세상을한가롭게하고인간의마음을풍요롭게하기에고귀하다.
-본문10p.

이런한가롭고풍요로운삶은소세키가말한‘저회취미(低徊趣味)’를떠올리게합니다.‘저회취미’란소세키가만든조어로,속세를떠나여유있는마음으로자연이나예술,삶을느긋하게관찰하며즐기는것을말합니다.소세키는이것을“한곳에오래머무르는취미,쉽게움직이지않는취미”라고도했는데,《풀베개》는바로이‘저회취미’가잘나타나있는작품이라고할수있습니다.그무렵일본작가들의작품은유럽의자연주의나사실주의를따른것이대세로,삶이나죽음같은큰문제에직면한인물들이등장하거나일상의여유로움이사라진소설들이주를이루었습니다.그에대한반발로소세키는차를마시거나꽃에물을주는등한가로운일상도소설의소재가될수있고,그렇게긴장감없이느긋하게전개되는소설,즉“여유있는소설”도충분한가치가있다고말합니다.다시말해,핵심주제의깊이만으로소설의우열을판단해서는안된다고말하는것입니다.

인생의본모습을맛보게하는소설도좋지만,또한동시에인생의괴로움을잊게하고위로해주는의미의소설도있으면좋다고생각한다.나의《풀베개》는물론후자에속하는것이다.
-나의《풀베개》중에서

한가로움속에서아름다움을즐기는저회취미는《풀베개》속의화공이말하는‘비인정’과통하는말이기도합니다.‘비인정’은‘몰인정’과는다른개념으로,속세의모든도리와인정,이해(利害)와감정을초월한것을말합니다.속세의인간관계에서비롯된온갖인정을벗어나,사물을있는그대로즐기고아름다움을느끼기위해서는비인정의태도를가져야한다고화공은말합니다.《풀베개》가나오고얼마후제자에게보낸편지에서비인정에대한그무렵소세키의갈망을엿볼수있습니다.

화공은어지럽게뒤섞인세속의정을추하다고여긴다.특히20세기는더추하다고여긴다.그렇기때문에비인정의여행을떠나잠시나마떠돌아다니려는것이다.설령완전한비인정에는이르지못하더라도,비인정에가장가까운인정으로인간을바라보려고하는것이다.
-모리타소헤이에게보낸편지중에서

이런비인정은하이쿠시인마사오카시키가강조한‘사생’이라는개념과도통합니다.시키의하이쿠창작은개인의주관적인감정이나신념을배제한객관적인사생을기본원칙으로하는데,그런하이쿠창작의마음가짐은비인정의태도와비슷합니다.절친이었던시키의하이쿠에서많은영향을받은소세키가《풀베개》를‘하이쿠적인소설’이라부른것도,하이쿠를지을때의마음이‘비인정’에가깝기때문이아닐까생각합니다.

하지만그렇게‘비인정’의태도로사람을바라보려는화공에게‘나미’라는여자는도무지종잡을수없는묘한대상입니다.나미는보통사람들의눈에는상식이없는사람으로보이지만,누구보다도자기만의태도로삶을살아가는여자로,화공의눈에는“지금까지본여자중에가장아름다운행동”을하는여자로비칩니다.

하지만화공은아무리애를써도그녀를그릴수없었고,마침내‘연민’이담긴그녀의얼굴을보고서야비로소마음속에그녀의그림을완성하게되면서소설은끝이납니다.

오로지비인정을바라며속세를떠난화공이끝내는‘연민’이라는,신이모르는,너무나인간적인감정을통해서야비로소그림을완성한다는것이참아이러니합니다.

《풀베개》는문학과예술에대한비평,근대문명에대한비판,삶에대한태도등그무렵소세키의문학관과예술관,인생관을깊이들여다볼수있는작품이지만,읽기쉽지않은소설입니다.

동서양의예술비평을비롯해,한시,하이쿠,영시등동서고금의시문학,난해한어휘와불교용어,인물들의대화등,거기에는여러가지이유가있을것입니다.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곳곳에펼쳐지는감각적이면서회화적인소세키의문장을즐길수있는소설이고,읽을때마다새로운것을보게하고또생각하게하는소설입니다.

만약《풀베개》가그아름다운느낌을독자에게조금도전할수없다면,그것은실패작이될것이고,조금이나마전할수있다면,조금은성공을거둔것이다.
-나의《풀베개》중에서

《풀베개》는소세키의작품중에서제가개인적으로가장좋아하는작품입니다.《풀베개》를읽으며제가받은아름다운느낌을번역된문장으로독자들에게잘전할수있을까.번역작업을하는동안내내이것이마음에걸렸습니다.소세키가전하려고한아름다움의느낌이,번역된문장이지만조금이나마전달될수있기를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