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요코는현대일본문학을대표하는가장독창적인작가중한사람입니다.와세다대학문학부를졸업하고1988년〈상처입은호랑나비〉로가이엔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문단에데뷔한이후,『임신캘린더』로아쿠타가와상,『박사가사랑한수식』으로요미우리문학상,일본서점대상을받으며일본을대표하는작가로자리매김했습니다.해외에서도『은밀한결정』이부커상인터내셔널과전미도서상최종후보에오르고『다이빙풀』로셜리잭슨상을수상하는등세계적인명성을얻고있습니다.
오가와요코문학을관통하는중심키워드라면‘기억’과‘상실’이라고할수있습니다.기억을잃어버린수학자가채워가는사랑을따뜻한필치로그린『박사가사랑한수식』,사물의존재와그에대한기억이사라져가는섬을그린『은밀한결정』처럼오가와의문학에는과거에는존재했지만지금은사라져버린것들에대한이야기가자주등장합니다.현실과환상의경계에서그려지는기억과상실,인간내면에잠재된섬뜩함과광기,고독은오가와의작품세계를이루는본질입니다.
그러한오가와의문학을지탱하는가장큰힘은얼음처럼투명하고섬세한문장입니다.오가와는평범하고사소한일상을정교하고섬세한문체로,인간내면의미세한균열과섬뜩함,그리고상실의슬픔을서정적이고우아하게그려냅니다.
『말없는주검은밀한애도』는1998년에발표된오가와의초기명작으로,열한편의단편이서로느슨한연결고리를이어가며하나의전체를이루는연작단편소설집입니다.1998년작품으로일본에서발표된지거의30년가까이지났지만2013년에영미권에출간된이후서구독자들의폭발적인반응을받은이작품은지금까지미국,유럽,아시아등전세계여러나라에서잇달아출간되어시대를초월한호평을받고있습니다.2014년에부커상인터내셔널의전신인독립외국소설상최종후보에올랐고,2013년에는NPR이선정한‘올해최고의책’으로꼽히기도했습니다.
장편못지않게단편의명수이기도한오가와요코의이단편집은무엇보다독특한구조가눈길을끕니다.죽은아이의생일을위해딸기케이크를사러가는여자를그린첫번째이야기를읽은독자는두번째이야기에서이것이단순한단편집이아니라는것을알아챌수있습니다.사람의손가락모양을한당근을키우는노파,몸밖에달린심장을위한가방을주문하는가수,심장의치수를재는가방장인,온갖끔찍한고문기구를전시하는박물관,그곳에서죽어간벵골호랑이…….전혀상관없어보이는열한편의기묘한이야기속의인물과사건,소품들은거미줄처럼복잡하고촘촘하게얽히며서늘한미로속으로독자들을이끌어갑니다.각각의이야기는앞의이야기에등장한사건을확장하기도하고사소해보이는소품들의더깊은의미를부여하기도합니다.또는주변부의인물을화자로내세워무대앞으로내보내기도합니다.그리고마침내마지막편은다시첫번째이야기로이어지면서각각의이야기는독립적이면서동시에하나의전체를이루고있습니다.
오가와요코는오에겐자부로와무라카미하루키의소설에서,죽음은삶의반대편에있는것이아니라평범한일상속에스며들어있다는것,살아있는사람속에죽은이가함께한다는것을배웠다고말합니다.상실과결핍을품은인간의고독과죽음,슬픔을직접적으로말하지않고사물이나신체,기억,결핍등을통해우회적으로드러내는것은오가와가문학에서평생탐구해온방법입니다.오에겐자부로는“오가와요코는섬세하고도예리한문체로인간심리의가장미묘한움직임까지도탁월하게표현해내는”작가라고도했습니다.
『말없는주검은밀한애도』는말없이사라져간것들,그리고그주변을겉도는인간들이보내는독특한애도가매혹적으로펼쳐지는소설집입니다.“스릴러와순문학의매력적인결합”이라는찬사를받으며기괴함과서늘함속에서도특유의서정성을잃지않는오가와요코의매혹적인미로속으로독자여러분을초대합니다.
작가의말
언젠가개를데리고산책을하고있는데,중학생남자아이가다가와서“만져봐도돼요?”하고물었다.나는“그럼”하며개를앉게했다.
소년은개에게관심은있지만익숙하지는않은모양이었다.조심스레손을뻗어머리윗부분을손끝으로톡톡두드리듯쓰다듬었다.
“몇살이에요?”
“다섯살이야.”
“아직아이네요.”
“아니야.벌써어른이지.개는수명이15년정도니까.”
“네?”
소년은손을멈추고짧게소리를질렀다.
“15년밖에살수없는거예요?”
진심으로놀랐다는게느껴졌다.
“그럼,이제얼마안남았잖아요…….”
소년은이번에는손으로머리부터목까지정성껏쓰다듬었다.
“이렇게큰개가죽으면어떻게해야돼요?”
그개는수컷래브라도였는데몸무게가나와비슷했다.자신의죽음에관한이야기를하고있는줄도모르고개는기분좋다는듯이소년의손에몸을맡기고있었다.
“이렇게큰개가죽으면정말어떻게되는거예요…….”
누구에게묻는것같지도않은듯소년은되풀이했다.
나는뭔가대답하고싶었다.예의바르고마음씨착한이소년을어떻게든안심시켜주고싶었다.하지만내입에서나온말은,동물장례식장에맡기면괜찮아,아직10년이나남았잖아,같은적당히둘러대는말뿐이었다.
호르헤루이스보르헤스는자신이쓰려고하는책은이미누군가에의해쓰였다,라고하면서,얼핏작가에게부자유스러운것으로여겨질만한가정을참으로매력적인가능성으로비약시켰다.내가지금까지맛본독서체험중가장행복했던것은,아,지금읽고있는이이야기는먼옛날이름도얼굴도모르는누군가가비밀의동굴에새겨놓았던것을,폴오스터가,가와바타야스나리가,가르시아마르케스가지금나에게들려주고있는이야기구나,하고느낀순간이었다.
소설을쓴다는것은동굴에말을새기는일이아니라,동굴에새겨진말을읽어내는것이아닐까,하고요즘생각한다.그곳에이미있는말을내가읽어낼수만있다면,개가죽고나면어떻게될지에관한이야기를소년에게들려줄수있을텐데.
이번에열한편의애도의이야기를이렇게소개할수있어감사하게생각한다.마지막으로이책을읽어주신모든분들께진심으로감사를드리고싶다.
-오가와요코
책속으로
이사람은어쩌면‘죽는다’라는말의의미를모르는게아닐까,하고나는생각했다.그게아니라면,사람이죽는다는게어떤것인지,그모든것을속속들이알고있는사람일지도모른다고생각했다.
---「양과자점의오후」중에서
“곰팡이라는거,어쩌면이렇게도예쁠까.”
나는중얼거렸다.허공에숨어있던작은요정들이내려앉듯이,그것들은차례차례모습을드러냈다.온갖색깔과정교한모양으로케이크를뒤덮어갔다.
---「양과자점의오후」중에서
왜울고있는걸까.연인과다툰걸까.일하다가무슨실수라도한걸까.하지만나에게이유따위는뭐가됐든상관없었다.이유같은건없을지도모른다고생각했다.그정도로순수한울음이었다.언제까지고그모습을지켜보고싶다고생각했다.슬픔이어떤식으로찾아오는지,눈물이어떤식으로흐르는지나는잘알고있었다.
---「양과자점의오후」중에서
죽음은어디쯤에서찾아오는것일까.나는가만히기다렸다.그리운냄새가났다.아들을발견했을때와똑같았다.습기가있고,어딘가비밀스러우며,희미하게달콤했다.
---「양과자점의오후」중에서
나는그저지켜볼수밖에없었다.슬픔의발작이지나가버릴때까지곁에서가만히기다려주는것밖에할수없었다.입술에서흘러넘친과즙이눈물처럼그녀의뺨을적셨다.-
〈과즙」중에서
전화기너머에서그녀는울고있었다.그남자의죽음을슬퍼하고있는게아니었다.그날,우체국에서흘렸어야했던눈물이이제서야쏟아지고있다는것을알았다.먼기억의한점에서고요히다가오는눈물이었다.
---「과즙」중에서
순간,고요한차내의공기가떨렸다.맑은노랫소리가우리위로내려앉았다.그것은목소리가아닌무언가처럼아름다웠다.고막을빠져나가아득히먼기억의샘물에까지닿아수면을흔들었다.아직아주어린아이들인데도,그들은사람의마음을평온하게한다는게어떤것인지알고있었다.
---「잠의요정」중에서
하지만무엇보다내마음을끈것은항공우편봉투를봉하는그녀의혀였다.그것은아주짧은순간,입술사이로모습을내비치더니연하늘색봉투의가장자리를핥았다.붉고,젖어있었다.
---「흰색가운」중에서
그곳도역시겉모습처럼매력적일까.선명한붉은빛을띤점막은황홀해질만큼따스하다.주름과돌기,움푹팬곳이복잡한공간을만들어내고있다.잘훈련된하인처럼섬모들이일제히나부끼면서더깊은어둠속으로유혹한다.조교수는더욱깊숙이내시경을밀어넣는다.
---「흰색가운」중에서
그것들은전부독특한빛깔을띠며냄새를풍겼다.인간의몸속은왜이렇게나많은불결한액체로가득차있는걸까.
---「흰색가운」중에서
“심장을넣기위한가방말씀이시군요.”
“네,맞아요.”
인상적인목소리였습니다.한순간고막을얼려버릴듯한차가움을숨긴목소리였습니다.
---「심장을담는가방」중에서
여자는태어날때부터심장이몸밖으로튀어나와있었던것입니다.하지만그렇게설명을들어도그모습을제대로상상할수가없었습니다.아무튼정상이라면당연히몸속에있어야할심장이피부바깥쪽에붙어있다는말이었습니다.
---「심장을담는가방」중에서
먼저나는심장에더다가갈수있도록한쪽무릎을꿇었습니다.여자앞에서갑자기나자신이작아져버린기분이들었습니다.그리고줄자를당겨심장의치수를쟀습니다.최대가로폭,최소가로폭,세로길이,두께,동맥과정맥의직경,혈관사이의간격을쟀습니다.
---「심장을담는가방」중에서
어째서다들이렇게도갑작스레죽어버리는걸까.어제까지는분명히살아있었을텐데.
---「고문박물관에잘오셨습니다」중에서
반짝이는눈에비쳐호랑이모피는더더욱아름답게빛났다.짐승의냄새에숨이막힐것만같아나는무릎을꿇고눈위에누워있는호랑이의파편들을주워모았다.
---「고문박물관에잘오셨습니다」중에서
처음부터바로토마토라고알아챈것은아니다.나는이름모를붉은꽃이독살스러울만큼흐드러지게핀꽃밭에서갑자기길을잃은건가하는착각이들었다.아니면운전수의피가흘러이토록아름답게도로를물들이고있는건가하고.
---「벵골호랑이의임종」중에서
타이어의감촉이핸들에전해져왔다.손끝이저릿해지는것같았다.차뒤로이어지는붉은띠가백미러에비쳤다.사람을치어죽일때도이런느낌일까.
---「벵골호랑이의임종」중에서
하늘끝까지울려퍼질듯호랑이가한번울부짖었다.그여운이사라져가는가는것과마찬가지로,내손바닥에와닿은따스함도사라져갔다.송곳니부딪히는소리가멎고마지막숨이흘러나왔다.우리들위로천천히고요함이내려앉았다.
---「벵골호랑이의임종」중에서
나의주검이다.이런답답하고어두운곳에서,독초를먹고,아무도지켜봐주는이없이나는죽어있었던것이다.냉장고앞에쭈그려앉아나는소리내어울었다.죽은나자신을위해울었다.
---「독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