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오브제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설레는 오브제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15.30
Description
매혹하는 사물들과의 로맨스
끌리는 것들을 향한 지적 탐색과 감성적 몰입의 기록

번역가의 책상에서 두 발짝 너머로 떠난 미행
갖지 않고도 즐기는 조금 특별한 수집품 이야기

목수연필, 뱅커스 램프, 쥘부채, 꿀뜨개, 플뢰르 드 리스……
번역가의 물체주머니에 담긴 30개의 오브제
《설레는 오브제》는 텍스트의 바다에서 헤매던 한 전업 번역가가 지면에서 마주친, 마음을 사로잡고 설레게 한 사물들을 수집한 기록이다. 10여 년간 출판 번역가로 일하며 50권이 넘는 책을 옮긴 저자 이재경은 번역하는 틈틈이 마주치는 사물들의 사연을 탐색하고 거기에 자신의 일상을 접붙이는 글을 썼다. 그 글들은 베테랑 번역가가 미처 지면에 다 옮기지 못한 “여러 편의 긴 역자 주석”인 동시에, 아주 사적인 취향으로 엄선한 독특한 수집품 컬렉션이기도 하다.
수집이라고 하면 보통은 소유를 전제로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수집품들은 다르다. 저자는 사물의 물성 대신 감성을 수집한다. 그 감성을 이루는 이야기는 두 가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 사물이 존재한 시간 동안 인간 세상과 맺은 관계, 그리고 그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맺은 저자와의 관계. 그래서 《설레는 오브제》는 사물 뒤편에 쌓인 맥락을 탐구하는 인문 에세이이자, 저자만의 내밀한 취향과 감성을 고백하는 일상 에세이이면서, 숙련된 번역가의 언어에 대한 고민과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번역 에세이이기도 하다.
저자

이재경

매일언어의국경에서텍스트가건널다리를짓고그림자처럼참호속에숨습니다.”
서강대학교불어불문과를졸업했다.경영컨설턴트와출판편집자를거친월급쟁이생활을뒤로하고,2010년전업번역가가됐다.
번역가는생각한만큼,겪은만큼,느낀만큼번역한다.자기객관화와감정이입에동시에능해야한다.그간의내이력이밑천이요,비전공자로산세월이저력이었다.어느덧번역이가장오래몸담은직업이됐다.
밑천이바닥날까봐번역가의참호안팎에서틈틈이소소한모험을추구한다.그리고언제부터인가거기서얻은발상과연상을기록한다.
산문집《젤다》,시집《고양이》,고전명언집《다시일어서는것이중요해》를엮고옮겼고,《편견의이유》《쓴다면재미있게》《깨어난장미인형들》《민주주의는없다》《바이디자인》《소고기를위한변론》《가치관의탄생》《셜로키언》《뮬,마약운반이야기》등50권넘는책을번역했다.

목차

머리말-번역가의물체주머니

소소한모두스오페란디
팔러체어_환대의공간에서혐오의상징까지
뱅커스램프_지난시대의실용,장식이되다
목수연필_흑연과다이아몬드의이름공유
페이퍼백_참을수없는수집의가벼움
종이인형_패션아바타의진화
갈색봉지_소박한걸작,삶의조각들을담다

일상의궤도밖에서
에스프레소_지구서식자의행복
꿀뜨개_인류의정주생활을추억하며
트래블러태그_도시산책자의자의식
소품함_감성유희를위한도구상자
텀블러_박카스온더록스부터친환경커피까지
무지개파라솔_캐주얼과시대유감

연상의고리들
깅엄체크_사강의수영복과바르도의웨딩드레스
메리제인슈즈_여학생과가사노동자
허니콤볼_랑그와빠롤의문제
페이퍼나이프_의도한미완성이주선한뜻밖의만남
나팔축음기_오펜바흐를좋아하세요?
쥘부채_추파의도구:정념을접었다가폈다가

욕망의부득이함
블루윌로_제조된전설
비연호_기쁨의조건
차통_시간을밀봉하다
스콘_데번이냐콘월이냐,그것이문제로다
꽃시계_자연을인간계에편입하려던오만한발상
플뢰르드리스_결사와음모의미학

마음의여러이름들
책갈피_책장과책장사이에시간의태그를달다
컴퍼스로즈_하늘과바람과별과장미
드림캐처_현실공간에꿈의통로를내다
사주침대_공주님의자기증명,또는엠패스의고통
아티초크_바람둥이의심장
화장거울_거울아거울아이제깨져줄래

맺음말
참고문헌
사진출처

출판사 서평

지면의언어를옮기던번역가,
사물에깃든이야기를옮기다

여기‘fleurdelis(플뢰르드리스)’라는단어가있다.저자는소설《셜로키언》을번역하는과정에서호텔방벽을묘사하는용도로서술된이단어와마주쳤다.소설의줄거리는물론이고어떤복선과도무관한단어였기에,저자는‘옮긴이주’로별다른설명을붙이지않고‘백합문양벽지’로번역했다.하지만이선택은저자에게후회로남는다.플뢰르드리스가현지의언중에게주는느낌과인상을한국어판으로‘옮기지’못했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

자신들의세계관을지키려는셜로키언들의집회에서끝내살인이일어나던밤,첫번째단서를찾는주인공의돋보기가무심코스쳐간곳.그곳의낡은벽지속에흐릿하게떠있던문양.그걸그렇게대수롭지않게넘길일이아니었다.소설속주인공도,번역한나도.
─201p.〈플뢰르드리스-결사와음모의미학〉

그렇게다시들여다본‘플뢰르드리스’에는생각지도못했던비밀과음모그리고피의역사가숨어있었다.중세십자군전쟁을통해유럽으로들어온플뢰르드리스는프랑스왕조와수도회기사단의심벌이되었다.그런데아이러니하게도같은백합문양을가진두세력간에충돌이일어났다.가톨릭교회를등에업은프랑스가이단의죄를씌워기사단을토벌한것이다.그이후로도플뢰르드리스는종교와왕조,프리메이슨과보이스카우트,군대등의상징으로사용되며널리퍼져나갔다.

흔히번역가를‘옮긴이’라고부른다.번역은저곳의언어(출발어)를이곳의언어(도착어)로‘옮기는’작업이다.이때,단순히언어만을일차원적으로옮기는경우는드물다.번역가는언어를옮기면서“언어너머의문화”와“행간에누운정서와태도”를함께나른다.그래야만더욱정확하면서도풍성한번역이이루어지기때문이다.
《설레는오브제》는저자가번역을하는과정에서마주친낯선사물들에다는뒤늦은‘옮긴이주’다.또한보다나은번역을위해사물뒤편에쌓인사연과궁리들을탐색하다저도모르게설레어버린것들에게바치는연서(戀書)이기도하다.

오브제센티멘털리즘,조금특별한사물감상법
─궁리하고음미하며접붙이기

그렇다고이책이번역에관한이야기만담고있거나,생소하고이국적인사물들만을다루지는않는다.저자는우리네일상과맞닿아있는흔한사물들에게도눈길을준다.책갈피,갈색종이봉지,텀블러,화장거울같은것들말이다.《설레는오브제》의글들이특별하게다가오는이유는,번역의과정에서든일상생활에서든우연히마주쳐마음이머문하나의사물을지적탐색과감성적몰입의대상으로삼아깊이궁리하고음미해보는저자의태도와관점때문이다.

한편,입구를구겨서닫아놓은종이봉지는묘한긴장감을낸다.가볍지만묵직한미스터리를자아낸다.그래서조심스레풀어보게한다.갈색봉지에든물건은선물과장물의분위기를동시에풍긴다.음모와폭로를동시에상상하게한다.(…)
종이봉지센티멘털리즘이란게있다,세상에는.
─55~56p.〈갈색봉지-소박한걸작,삶의조각들을담다〉

그렇게하나의사물에서길어낸이야기를저자는때론자신의일상과적극적으로접붙인다.《설레는오브제》의독특한점은다루는사물들을저자가직접사용해보거나소장하는이야기가나오지않는다는것이다.그런면에서이책은조금특별한수집기(蒐集記)이기도하다.저자는사물의물성을소유하는대신사물에담긴이야기를자신의일상과접붙여냄으로서사물의감성을수집한다.
오래전크리스마스무렵선배언니와의만남에대한기억은‘컴퍼스로즈’에,X세대로불리며캐주얼패션을소비했던대학생시절은‘무지개파라솔’에,수성동계곡을넘어윤동주문학관까지갔던한여름날의산책은‘트래블러태그’에접붙였다.

저자특유의사물감상법으로마련한컬렉션을따라가다보면,어느새욕심이날지도모른다.나도나만의‘설레는오브제’를갖고싶다는.‘설레는오브제’를수집하는데에는돈이나공간이들지않는다.약간의지적호기심과사물을감상하고생각할여유가필요할뿐.책장을덮은뒤에시도해보자.내가무심코지나친사물들가운데내밀한매력을간직한것이있을지도모른다.그것을이리저리궁리해보며나의일상과접붙여보는것이다.그럼느끼게될것이다.소유하지않고도누리는만족이란귀하고설레는일임을.

언어와심리,문학과역사,음악과디자인……
풍성한인문적사유와지식이교차하는매개물

《설레는오브제》는나아가언어와역사,예술과문화등인문의다양한분야를망라하며,그로부터가볍지만은않은사유를이끌어낸다.
책을여는첫글인〈팔러체어-환대의공간에서혐오의상징까지〉는묵언수행을원칙으로하는수도원에서대화를할수있도록지정된방의이름이었던‘parloir’가응접실이나담소용공간을뜻하는말로확산되고,물건너간미국에서는계급의식과인종혐오가담긴말로변질되는양상을톺아간다.

우리가아는‘팔러체어’는응접실에놓인의자를뜻한다.팔러체어의종류는다양하지만,의자의뼈대를가리고쿠션감을주기위해충전재를넣은다음화려한직물로마감한것이특징이다.팔러체어는단순히응접실에놓이는부속품이아니라‘환대의공간’을상징하는오브제가됐다.이러한‘팔러’가미국에서는특정상품이나서비스를취급하는비즈니스영역으로퍼져아이스크림가게(icecreamparlor)와피자가게(pizzaparlor)에서안마시술소(massageparlor)를이르는말로도쓰이고있다.그런데미국에서는‘팔러’에얽힌어두운과거가있다.노예제가아직살아있던시절의미국사회에서는‘팔러’가백인우월주의와계급의식을상징하는단어로쓰였던것이다.이팔러의흑역사가현대미국사회에서다시금되살아난사건이있다.2021년트럼프대통령의지지자들이트럼프대통령의계정을차단한페이스북과트위터에서‘팔러(Parler)’라는우파성향의SNS로대거갈아탄것이다.
속세와거리가먼수행의공간에속한단어였던‘팔러’가세상밖으로나와상류층의환대와과시풍조를대변했고,대서양을건너서는인종주의와특권의식의꼬리표를달았으며,21세기들어서는급기야혐오와편견의언어를내뱉는온라인공간이되어버린것이다.아이러니한‘팔러’의여정을다룬이글에서는언어를다루고추적하며관련한지식을엮어내고사유를이어가는저자특유의글맛을느낄수있다.

이외에도페미니즘의관점에서보는갈색봉지이야기나메리제인슈즈의어원에담긴이중성같은글은평범한사물너머에담긴놀라운비밀을알게되는즐거움을안긴다.꽃시계라는발상에담긴자연의사물화관점을지적하는글이나비연호와연관된두인물로상이한‘기쁨’의양상을다룬글은진한여운과생각거리를남기기도한다.

사물의뒤를캐다보면고전부터대중문화까지인문의다양한분야가두루소환된다.사물을매개로현실과환상이만나고,지식과감상이얽힌다.범주화가없는대신교차점들로가득하다.
─8p.〈머리말-번역가의물체주머니〉

하나의사물을매개로교차하는이야기들이풀려날때,그것은비로소‘설레는오브제’가된다.그래서오브제는“현실과환상이만나고,지식과감상이얽히는”교차로다.그리고그곳에문학,역사,심리,언어,음악,디자인등다양한분야가두루소환된다.그풍성하고다채로운이야기들을섬세하게풀어내는저자의글들을따라가다보면신선한지적즐거움을누릴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