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월춘은 ‘그늘의 힘’을 믿는 시인이다. 내로라할 것 없는 처지, 삶의 음지에 스며들 수밖에 없어 그늘로 표상된 사람을 향한 구원과 위안이 그의 시의 지향점이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불행하고 불안하며 속속들이 병든 불신 사회”(「봄날의 맑은 시름」)이거나, “귀신은 없고 귀신같은 것들이 넘친다”(「귀신을 찾습니다」) “세상은 백 년 전에도 거지 같았다”/(중략)/“여전히 바뀌지 않는 나만의 안전지대/다시 백 년이 가도 세상은 거지 같았다”(「노썸바디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앞세워 남을 향한 차별과 멸시, 대놓고 가르는 왜곡된 우월감을 바라보는 시인은 아뜩하다. 게다가 시인이 바라보는 인간은 “돈이 만드는 경쟁과 서열화의 마당에서 불안과 불행의 사다리”(「리얼리티」)에 내던져 진(geworfenheit) 존재이다.
이번 시집에 도드라진 것은 우리 사회를 둘러싼 실존적 정황의 여럿 시는 물론, “혼자 먹는 밥의 숟가락질 익숙하다”(「혼자 먹는 밥」)라는 이른바 낯설면서도 지극히 익숙한 고립에 처한 시적 주체가 〈내가 있다!〉를 천명하는 실존적 외침이다. “디오게네스처럼 대낮에 등불을 들고/숨어버린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찾아”(「조푸」) 나섰다. 스스로 의롭지 못하고 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만, “경화오일장을 바람처럼 거닐었지/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속으로/나만의 고독을 끌고 들어가 아픔을 벗고/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냈지”(「바람 냄새 나는 사람」) 이는 시적 주체인 동시에 시인 자신이 바라는 정체성이며, 독립된 존재의 본질로서 이월춘 시인 그 자체이다. 스스로 “깊은 산으로 들어갈 용기는 아예 없어/어찌어찌 기상천외한 21세기형 은자隱者가 되었네”(「시은市隱」)라고 하듯, 세상을 피하여 시중市中에 숨어 사는 사람이기는 한데, ‘그늘의 힘’을 믿는 저잣거리 시인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 이성모(문학평론가, 창원시김달진문학관장)
“바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냄새”가 배어 있을까. 세 단어 모두 입술이 마주 붙는 ‘미음(ㅁ)’을 보듬고 있듯이, 서로의 몸에서는 닮은 냄새가 난다.
이 시집의 표제작을 보면, 시인은 어느 날 경화오일장을 거닐다가 “가격표가 없는 월남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는 장면을 눈여겨본다. 한쪽 귀로는 “장돌뱅이들의 호객 소리”를 듣고, 혀로는 “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맛본다. 그 틈틈이 “국산 콩 수제 두부는 어떻게 사야 하며/맏물 봄나물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며 “과일 노점 옆 참기름집에서 이웃을 만나고/오는 사람마다 결을 맞춰주는 마법의 시장”과 한 몸이 된다. 그렇게 “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속으로/나만의 고독을 끌고 들어가 아픔을 벗고/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데,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 감각 요소가 “삶은 돼지머리 냄새”라는 후각이다.
이 “냄새”는 “바람”과 “사람”을 잇는 삶의 눅진한 현장으로 독자를 인도하면서 ‘어둠 속의 길 찾기’라는 방식으로 우리와 동행한다. 그런 점에서 표제시 「바람 냄새 나는 사람」을 「사람 냄새 나는 바람」으로 바꿔 읽어도 또 다른 흥미와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이렇듯 바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안쪽, 내면의 감응을 길어 올리면서 우리 삶의 어두운 심연에 푸르스름한 여명을 비춘다. 이 시집을 읽는 일은 마음속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새벽길을 함께 걷는 것과 같다. 그 길에서 “화단의 꽝꽝나무 가지가 꿈틀거리”는 몸짓이나 “산모롱이 돌아 그에 벚꽃 피는 기척”, “그대의 마음이 오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가끔은 “강렬한 밤 벚꽃” 내음과 함께 “꽃잎 뒤의 아픈 그림자”가 “사람답게 사는 길을 묻고 있”는 장면도 만날 수 있으리라.
- 고두현(시인)
이번 시집에 도드라진 것은 우리 사회를 둘러싼 실존적 정황의 여럿 시는 물론, “혼자 먹는 밥의 숟가락질 익숙하다”(「혼자 먹는 밥」)라는 이른바 낯설면서도 지극히 익숙한 고립에 처한 시적 주체가 〈내가 있다!〉를 천명하는 실존적 외침이다. “디오게네스처럼 대낮에 등불을 들고/숨어버린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찾아”(「조푸」) 나섰다. 스스로 의롭지 못하고 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만, “경화오일장을 바람처럼 거닐었지/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속으로/나만의 고독을 끌고 들어가 아픔을 벗고/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냈지”(「바람 냄새 나는 사람」) 이는 시적 주체인 동시에 시인 자신이 바라는 정체성이며, 독립된 존재의 본질로서 이월춘 시인 그 자체이다. 스스로 “깊은 산으로 들어갈 용기는 아예 없어/어찌어찌 기상천외한 21세기형 은자隱者가 되었네”(「시은市隱」)라고 하듯, 세상을 피하여 시중市中에 숨어 사는 사람이기는 한데, ‘그늘의 힘’을 믿는 저잣거리 시인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 이성모(문학평론가, 창원시김달진문학관장)
“바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냄새”가 배어 있을까. 세 단어 모두 입술이 마주 붙는 ‘미음(ㅁ)’을 보듬고 있듯이, 서로의 몸에서는 닮은 냄새가 난다.
이 시집의 표제작을 보면, 시인은 어느 날 경화오일장을 거닐다가 “가격표가 없는 월남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는 장면을 눈여겨본다. 한쪽 귀로는 “장돌뱅이들의 호객 소리”를 듣고, 혀로는 “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맛본다. 그 틈틈이 “국산 콩 수제 두부는 어떻게 사야 하며/맏물 봄나물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며 “과일 노점 옆 참기름집에서 이웃을 만나고/오는 사람마다 결을 맞춰주는 마법의 시장”과 한 몸이 된다. 그렇게 “나만의 광야, 즐거운 소란 속으로/나만의 고독을 끌고 들어가 아픔을 벗고/마침내 어둠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데,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반응한 감각 요소가 “삶은 돼지머리 냄새”라는 후각이다.
이 “냄새”는 “바람”과 “사람”을 잇는 삶의 눅진한 현장으로 독자를 인도하면서 ‘어둠 속의 길 찾기’라는 방식으로 우리와 동행한다. 그런 점에서 표제시 「바람 냄새 나는 사람」을 「사람 냄새 나는 바람」으로 바꿔 읽어도 또 다른 흥미와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이렇듯 바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안쪽, 내면의 감응을 길어 올리면서 우리 삶의 어두운 심연에 푸르스름한 여명을 비춘다. 이 시집을 읽는 일은 마음속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새벽길을 함께 걷는 것과 같다. 그 길에서 “화단의 꽝꽝나무 가지가 꿈틀거리”는 몸짓이나 “산모롱이 돌아 그에 벚꽃 피는 기척”, “그대의 마음이 오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가끔은 “강렬한 밤 벚꽃” 내음과 함께 “꽃잎 뒤의 아픈 그림자”가 “사람답게 사는 길을 묻고 있”는 장면도 만날 수 있으리라.
- 고두현(시인)
바람 냄새 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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