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허수경 장편동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허수경 장편동화)

$13.80
Description
외로움과 사랑, 그 풀리지 않는 오라
허수경 시인 3주기에 선보이는 그의 첫 장편동화
2021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3주기를 맞아 새롭게 단장한 그의 책 한 권을 수줍게 내밀어요. 1994년 시인이 독일에서 쓴 첫 장편동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의 개정판인데요, 이는 그가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개작에 매진했던 이야기이기도 해요. 1994년 5월 독일에서 처음 이 동화를 쓰고 작가의 말을 보탠 시인은 2018년 5월 독일에서 다시 이 동화를 고치며 개정판 작가의 말을 참으로 어렵사리 한 글자에 두세 호흡 꾹꾹 눌러가며 이렇게 보내온 바 있어요. “외로운 한 아이에게 이 책을 드린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멀리, 멀리서 누군가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그 사람도 외로웠다고.”

짧고도 명징한 메시지. 따뜻한 제 마음을 우리에게 내어주는 것 같은데 시린 제 마음을 우리에게 들켜주는 것 같아서 어딘가 복잡미묘한 심정이 되어 저기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고 여기 땅을 바라보게 만드는 시인의 뼈가 단단한 말. 외로움과 사랑함, 사람 사이에 너무나 만만하게 너무도 흔하게 오가는 이 두 심경은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죽음의 끝자락에 놓인 그 순간에도 뒤엉켜서는 왜 그 오라가 풀리지를 않는 걸까요.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는 시인의 첫 장편동화지요.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난 지 1년 반 뒤에 펴냈던,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처음 선을 보였던 책이고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삼촌과 함께 사람의 손에서 자라게 된 오빠 가로미와 신령한 바위산을 두 날갯죽지로 품은 지킴이 매와 함께 자연의 손에서 자라게 된 동생 늘메의 이야기가 담긴 환상동화이기도 해요. 사고 이후 마음병이 깊어져 걷지 못하고 바퀴의자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가로미는 멀리 보이는 자연을 동경하며, 사람들을 치유하는 약초를 책으로 공부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나는 것처럼 뛰고 걷는 늘메는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읍내 마을을 불편해하지만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약초를 손으로 직접 따며 살아가고 있지요.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떨어져 살아야 했던 가로미와 늘메는 마주친 순간 서로가 찾던 서로의 오빠와 동생임을 직감적으로 알아버려요. 만남에 있어 시끌벅적한 껴안음이나 콧물 섞인 눈물바람은 없어요. 속이 묵직한 이 두 아이는 누구한테 배운 적 없음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른바 ‘순리’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아 말을 아낄 줄 알지요. 아이 둘의 속내가 담긴 독백을 좇다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아픈데, 책장이 넘어갈수록 이것이 ‘성장’이라는 과정이 아니려나 그 수순을 일견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게도 되니 이들에 우리가 자동 덧씌워지기도 해요. 삶의 환경은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 이런 고비고비를 숙성으로 우리는 성숙해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테지요.
저자

허수경

1964년경남진주에서태어났다.그곳에서자라고대학역시그곳에서다녔다.오래된도시,그진주가도시에대한원체험이었다.낮은한옥들,골목들,그사이사이에있던오래된식당들과주점들.그인간의도시에서새어나오던불빛들이내정서의근간이었다.대학을졸업하고밥을벌기위해서울로올라왔고그무렵에시인이되었다.처음에는봉천동에서살다가방송국스크립터생활을하면서이태원,원당,광화문근처에서셋방을얻어살기도했다.
1992년늦가을독일로왔다.나에게는집이라는개념이없었다.셋방아니면기숙사방이내삶의거처였다.작은방하나만을지상에얻어놓고유랑을하는것처럼독일에서살면서공부했고,여름방학이면그방마저독일에두고오리엔트로발굴을하러가기도했다.발굴장의숙소는텐트이거나여러명이함께지내는임시로지어진방이었다.발굴을하면서,폐허가된옛도시를경험하면서,인간의도시들은영원하지않다는것을뼈저리게알았다.도시뿐아니라우리모두이지상에서영원히거처하지못할거라는것도사무치게알았다.
서울에서살때두권의시집『슬픔만한거름이어디있으랴』『혼자가는먼집』을발표했다.두번째시집인『혼자가는먼집』의제목을정할때그것이어쩌면나라는자아의미래가될것이라는예감이들었다.독일에서살면서세번째시집『내영혼은오래되었으나』를내었을때이미나는참많은폐허도시를보고난뒤였다.나는사라지는모든것들이그냥사라지지않는다는것을짐작했다.물질이든생명이든유한한주기를살다가사라져갈때그들의영혼은어디인가에남아있다는생각을했다.
뮌스터대학에서고고학을공부하고박사학위를받으면서학교라는제도속에서공부하기를멈추고글쓰기로돌아왔다.그뒤로시집『청동의시간감자의시간』『빌어먹을,차가운심장』『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산문집『그대는할말을어디에두고왔는가』『나는발굴지에있었다』『너없이걸었다』,장편소설『모래도시』『아틀란티스야,잘가』『박하』,동화책『가로미와늘메이야기』『마루호리의비밀』,번역서『슬픈란돌린』『끝없는이야기』『사랑하기위한일곱번의시도』『그림형제동화집』『파울첼란전집』등을펴냈다.동서문학상,전숙희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수상했다.
2018년10월3일뮌스터에서생을마감했다.유고집으로『가기전에쓰는글들』『오늘의착각』『사랑을나는너에게서배웠는데』가출간됐다.

목차

자네,마음병이라는거아는가?/07
너희들은자매야/21
저새가진짜좋은소식을가져오려나/35
나는못걸으니까/51
아이들은우리보다언제나더현명하다네/65
잃어버린게있어서슬픈거지/87
이루어진다고믿으면이루어져/105
내가너를사랑하니까너는내딸이었어/121
마음이다정해서아마다시올거야/139
너외롭니?/155
나는너야,너는나구/173
너는정말돌아온거야/189
그러니까지금은같이가자/203
마음의말은들어서아는게아니잖아요/223
작가의말/239
개정판작가의말/243

출판사 서평

우리나라산의능선과강의물결을닮은
시인허수경의시작과끝,그전부

그러니까떨어져있다는그‘거리’로말미암아서요.거리감이있어야멀리산도계곡도호수도한눈이라는한도화지에그려넣을수있는것처럼말이에요.독일로떠난시인이‘우리나라산과강과물의이야기’를누구보다가장한국적으로쓸수있었던연유역시그거리의그리움이간절함으로두무릎을꿇게하였겠구나,새삼알게도되었어요.이들남매뿐아니라동화속등장하는인물들역시우리전통을고수하는역할로등장하는이유에대해서도요.우리전통의농사를지을줄알고우리전통의악기를만질줄알고우리전통의약을지을줄알고우리전통의절기와우리전통의사계절을우리전통의문화로알고한데어우러져살아가는사람들……도통거스름을모르고사는사람들이왜산의능선을강의물결을닮았는지도요.

이야기는어렵지않게잘읽혀요.줄거리의요약이중요한게아니라무심코툭시인이흘린문장들이손가락사이로빠져나갈까두손가득담으려안달이나는데서이야기를꼼꼼히붙잡게되는읽기의방식도요.“잃어버린게있어서슬픈거지”“마음이다정해서아마다시올거야”“나는너야,너는나구”“마음의말은들어서아는게아니잖아요”그리고특히나이두문장요.“사랑……사랑이뭐예요?뭘사람들은사랑이라고해요?”“사랑이란자기를잃는것을두려워하지않는것아닐까.”

이책을읽는내내시인이마냥그리웠던이유는시인이간절히그리워했던것이무엇인지이제야명확히말할수있을것같아서였어요.“저의몸과마음,머리끝에서발끝까지우리나라산천이키워준나에대한생각”(「작가의말」)을고스란히받아적었다하는데서이책은시인허수경의시작과끝,그전부더라고요.결국시인의간절한그리움의대상은시인자신이었겠구나,‘뜨거운눈물과함께’이제야정확히아는뒤늦음.더살피지못해미안했다고,그리외롭게두어미안했다고,그러나시인은일찌감치초연해있던것같아요.“『가로미와늘메이야기』는그러니까지금제가가진삶의조건을부정하면서씌어진것”이라(시인의말)단호히기술했으니까요.

그리움의증거가이런허기는아니었을까
내두손을다시보게하는그리운수경……

묘하게도이책은참맛있기도해요.시인이그리워한고국의밥상이등장하는까닭에군침도는순간이자주찾아오곤하였지요.“미나리와김을구워만든바삭한김가루로초장에버무려놓은청포묵은들깨냄새가머릿속까지스며들만큼향기로웠다.”(113쪽)“맛깔나게끓인호박된장국이나계란을하얀꽃망울처럼띄운수란이나색색의야채에치잣물을입혀서김한장을둘러만든부침개나제비처럼날렵하게띄운감자수제비나또,또,보랏빛물이돋아나는갓물김치나굴을넣어아리게부벼놓은젓갈이나……”(115쪽)얼마나이밥상을그리워했을지,그리움의증거가이런허기다싶으니까오늘주어진밥상위의반찬가운데어느하나소중하지않은것이없었어요.시인이우리에게주는깨달음의치유는말씀이아닌이런오감의뚜껑을열어주는두손에서부터비롯하기도하는구나,그리하여시인은내두손을다시보게도하는사람이구나.

시인은말했지요.“저는우리나라산과강과물과모습이닮아있는이야기,풀과새,꽃의이름을정확하게불러주는이야기,그리고그산천에사는사람들의상처를치유해주는이야기를쓰고싶었”다고.그러기위해서시인이택한글쓰기의정공법은‘잘’이라는능수능란함이아니라‘정직’이라는단도직입이었어요.그래서일까요.책에등장하는인물들은도통융통성을몰라휘기보다부러지는편인데묘하게그대목에서사람에대한신의를다시새기게도되더라고요.말에속기보다몸을믿기에서오는행함.“간절한마음이여럿”모이면멈췄던소리도일으킬수있다하니그한데모음으로허수경이라는이름을한번모아보고싶어지네요.사람허수경이궁금하고시인허수경이그리운분들이라면『가로미와늘메이야기』를찬찬펼쳐주세요.어느페이지를펼쳐도사람허수경이살아있고어느문장을짚어도시인허수경이살아있어요.독일에살던스스로를‘허깨비’라칭했지만이책에서만은허깨비일수가없는이유,산이저기있으니까요.저기산이있음으로이제아주조금허수경을알것도같으니까요.허수경을생각하면산이금방마음의지도위에나타나기때문이니까요.그리운수경……이라고불러볼때마다마늘처럼아리지만까치마늘새순만큼은행복해질거예요.그런의미에서이책을감히허수경일러두기라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