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병 (양장본 Hardcover)

죽음의 병 (양장본 Hardcover)

$12.00
Description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것을 잃어버리고서야 이루어지는,
모든 진정한 사랑의 완성”

뒤라스 후기작품의 원형이 된 소설이자
사랑과 욕망의 선언서
 프랑스문학의 거장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죽음의 병』을 난다에서 선보인다. 이는 한 남녀의 독특한 계약관계와 그들이 함께 한 며칠의 밤을 그려낸 ‘소설’이지만 사랑의 실패와 욕망의 지배에 대한 명징한 선언이기도 하다. 뒤라스가 장장 이 년에 걸친 시간 동안 “더이상 지울 수 없을 만큼 얇아지도록” 감정의 본질만을 남기고 “최대한 지워내는” 작업을 거듭하여 완성한 단편이다.
 『죽음의 병』 속 유일한 등장인물인 ‘당신’과 ‘여자’의 행위는 마치 무대 지시사항과도 같은,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표현만으로 전달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모리스 블랑쇼는 “더이상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실로 불가사의”한 이 텍스트가 “간결함을 넘어선 밀도”를 갖는다고 말한다. 『죽음의 병』은 이러한 간결함 속에서 비로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랑의 빈자리를 포착한다.
 『죽음의 병』은 뒤라스가 1980년부터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반자이자 연인으로 함께한 얀 앙드레아와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작품을 출간한 이후로도 뒤라스는 십 년간 끊임없이 이 텍스트로 되돌아왔다. 이 작품을 희곡으로 각색해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그 시도는 항상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고 그는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시도에서 『파란 눈 검은 머리』(1986), 『노르망디 해변의 매춘부』(1986) 등 후대 비평가들이 ‘얀 앙드레아 연작’ 혹은 ‘대서양 연작’으로 분류하는 작품들이 파생되었다. 남은 생애 동안 원고를 손에서 놓지 않고 끊임없이 다시 썼을 만큼, 『죽음의 병』은 그의 문학적 고뇌가 오롯이 담긴 결정체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조재룡 고려대 교수가 그 고뇌를 담은 문장들을 세심히 한국어로 옮겼으며,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상세한 해설을 뒤에 덧붙였다. 또한 저자의 삶과 작품 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고려하여, 텍스트에 남겨진 뒤라스의 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도록 작가 연보를 추가하였다.
저자

마르그리트뒤라스

본명마르그리트도나디외MargueriteDonnadieu.1914년,당시프랑스식민지였던인도차이나의도시지아딘에서태어났다.1921년아버지가돌아가신후,프랑스어교사인어머니의인사이동에따라두오빠와함께동남아시아곳곳으로이사를다니며어린시절을보냈다.1932년프랑스로귀국해소르본대학에서수학,정치학과법학을공부하고1943년첫소설『철면피들』을출간하면서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한다.
 이차대전중에는훗날프랑스의대통령이될프랑수아미테랑과함께레지스탕스로서활동하고,종전후에도알제리전쟁반대운동과68혁명에참여하는등프랑스현대사의현장에직접나섰다.정치적활동을이어가는한편으로그는『모데라토칸타빌레』(1958),『여름저녁열시반』(1960),『롤V.슈타인의황홀』(1964),『부영사』(1966)등을비롯한다수의작품을발표하며작가로서의입지를굳힌다.
 독특한문학적색채로인해‘누보로망’계열의작가로거론되기도하였지만,뒤라스자신은어떤갈래에도속하기를거부한채특유의반복과비정형적인문장을자유롭게구사하며자신만의글쓰기를모색해갔다.뒤라스가1982년발표한『죽음의병』은그의연인얀앙드레아와의사랑을바탕으로구체화된작품으로,후대비평가들이‘얀앙드레아연작’혹은‘대서양연작’으로분류하는작품의원형이기도하다.그의작품은부재와사랑,고통과기다림,글쓰기와광기,여성성과동성애의기이한결합등을주제로한다양한변주를보여준다.“누보로망의시대에서결국살아남을단하나의작가는뒤라스”라는말이나올만큼,그는당대의문학사적흐름에서비껴가면서도절대빛바래지않는독자적인작품들을발표했다.
 뒤라스는문학의범주를넘어영화계에도분명한발자취를남겼다.영화〈히로시마내사랑〉(1960)의시나리오를시작으로뒤라스는소설과영화를가로지르는독보적인작업을펼쳐나간다.1975년에는자신의소설『부영사』를각색한영화〈인디아송〉으로칸영화제예술·비평부문에서수상하기도한다.
 1984년에는어린시절인도차이나에서의시간을바탕으로쓴소설『연인』이프랑스최고의문학상인공쿠르상을수상한다.반세기에걸쳐문학과영화,극등다양한분야에서총칠십편에달하는작품을발표,프랑스문단을대표하는작가로부상한그는마지막몇년간의글을모은『이게다예요』(1995)로마침표를찍고1996년3월3일,파리의자택에서세상을뜬다.

목차

죽음의병ㆍ5
옮긴이의말│살아지지않는사랑,죽음이라는병ㆍ75
작가연보ㆍ91

출판사 서평

무(無)를향한사랑의시도그자체

 ‘당신’으로지칭되는남자가사랑을시도하기위해돈을지불하고여자를산다.언젠가,어디선가분명보았으리라고여겨지는이미지의여인은그의계약조건을받아들이고,그들은검은바다를마주한고립된방에서며칠밤을함께한다.남자는여자에게자신의모든요구에복종할것을부탁한다.그리고여자를사랑해보려고시도한다.그러나“평소에하던대로격렬”한,익숙한방식의육체적소유는완전한실패로이어진다.여자는미지인상태로,영원히“방의낯선여인”으로남겨지며,그들사이에는“영원히넘을수없는경계”가생겨난다.욕망하고자하면,그순간사랑역시불가능해진다.이와같은사랑과욕망의필연적인분리속에서남자는그저자기자신을위해눈물을흘릴뿐이다.이런‘당신’에게여자는“죽음의병”이란병명을내린다.

 당신은여자에게낱말들을반복해보라고부탁한다.여자는그렇게한다,낱말들을반복한다:죽음의병.
 당신은여자가그것을어떻게아느냐고여자에게묻는다.여자는그냥안다고말한다.여자는다들어떻게아는지알지못한채그걸안다고말한다.
 당신은여자에게묻는다:죽음의병이어떤점에서치명적이지요?여자가대답한다:이병이죽음을가져온다는사실을병에걸린사람은알지못한다는점에서요.또한죽기전에삶을가져보지못한채,어떤삶도없이죽는다는걸전혀알지못한채,그사람이죽으리라는점에서요._p.27~28

 독자는텍스트를읽는내내“죽음의병”에걸린이인칭인물‘당신’의눈과귀를통해여자를보고여자의말을듣는다.그리고‘당신’으로불리며‘당신’을읽는동시에‘당신’이되어버린다.옮긴이조재룡교수는이러한이인칭의사용으로독자들이“‘당신’에게빨려들어가고,‘당신’은읽는‘나’가되고,읽는‘나’는‘당신’이되는이상한교환이일어나일종의공동체적인인칭이탄생한다”고짚어낸다.그공동체는한마디로“죽음의병”에걸린이들로이루어진비극적인공동체이다.

고독속에있는자가모든자를대신해던질수있는유일한물음,
“당신은사랑받을수있을것인가.”

 지배하고자하는욕망만큼‘당신’은사랑받고자하는욕망역시느낀다.이는지배하고소유하는행위로는얻어질수없는것에대한동경이다.남자는자신이“원하는방식으로,가장위험한방식으로여자를마음대로다룰수있으리라는사실”을알고있다.여자의몸은어떤방어도하지않”으며,“목조르기,강간,학대,욕설,증오에찬고함,치명적인,정념에고취된폭발을불러일으킨다”.이러한폭력적인욕망에노출되어있음에도불구하고여자는“가공할만한힘을,가증스러운가냘픔을,연약함을,비할바없는연약함이지닌불굴의힘을”가지며,‘당신’을서서히장악하고현실을초월하여압도적으로상황을지배한다.이윽고‘당신’은“여자의형체가죽음의병을선언한다는사실”을깨닫는다.그리고여자에게마음속에있던질문을꺼내보인다.

 당신은여자에게당신이사랑받을수있을거라고생각하는지묻는다.
 여자는어떤경우에도그럴수없을거라고말한다.당신은여자에게묻는다:죽음때문에요?여자가말한다:그래요,당신의감정이무미건조하기때문에,꿈쩍하지도않기때문에,바다가검다고말하는그거짓말때문에요._57쪽

 작품뒷부분에서뒤라스는『죽음의병』이연극으로공연될경우를고려한무대지시사항을덧붙인다.여기서그는이야기를읽어나가는남자‘당신’은“근본적이고치명적인약함에사로잡혀있다”고부연한다.이간결하고짧은책의행간에서그‘약함’의성질과“죽음의병”이가진형태를읽어내는것역시‘당신’이자‘나’인독자의역할이다.죽음으로써살아내는,불가능성을전제한사랑의모습을담아낸소설『죽음의병』은블랑쇼가극찬하듯“간결성과압축성”의문학적승리로평가된다.

 “그러나당신은,이렇게당신을위해서만치러질수있는유일한방식의사랑을,미처싹트기도전에잃어버리면서,살아낼수있었다.”
_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