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리커버)

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리커버)

$18.00
Description
2023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선정작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4년 만에 선보이는 평론가 신형철의 신작
* 『인생의 역사』 초판 한정으로 출고된 양장본은 현재 소진되어, 2쇄부터 무선본으로 출고되오니 도서 구입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 2023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선정
신형철 평론가의 시화(詩話) 『인생의 역사』를 2023 서울국제도서전 리커버 에디션으로 선보인다. 도서전 프로그램 〈다시, 이 책〉의 일환으로, 책이 가진 물성, 북디자이너의 감상 팁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책을 마주할 때의 첫 느낌, 첫 기억을 새로이 새겨보자는 취지에서다.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최초 공개되는 이번 에디션은 박서보 화백의 또다른 작품 〈묘법 No.130119〉을 실었다. 일반판과 동네서점 에디션에 이어 세번째 ‘묘법(描法, écriture)’이니, 인생이라는 무한한 스펙트럼 가운데 다채의 또 한 면을 담아냈다.
『인생의 역사』는 그 제목이 저자의 입에서 처음 흘러나온 그 순간부터 마지막 만듦새가 완성될 때까지 박서보 화백의 화집에서 손을 못 놓게, 참으로 손을 모자라게 만든 책이었다. 수많은 작품 앞에서 오래 입술을 뜯은 건 이 그림을 ‘얼굴’로 저 그림을 ‘몸’으로 우리 책의 ‘정신’을 보임에 어떤 부연이라는 게 일절 필요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작위를 모르고 자연을 따르는 책의 주제라 할 ‘시’가 큰 역할을 한다면, 평생 붓을 등뼈로 인생을 곧추세워온 박서보 화백의 ‘삶’을 시에 비유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여름 서울국제도서전을 맞아, 작년 가을 신형철 평론가가 표지로 삼고 싶다 간절히 바랐던 작품을 심는다. 묵음은 깊음이라는 믿음으로.

▣ 리커버 디자이너 노트
책의 디자인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지재단의 배려로 박서보 화백의 아카이브에 담긴 엄청난 양의 그림을 훑는 것이었다. 모니터로 그림을 보는 일은 즐겁지만 그럴수록 불안감이 번져갔다. 작품을, 그것도 대작을(다른 누구도 아닌 박서보 화백 아닌가!) 공장 인쇄기로 다량의 종이 위에 구현한다는 건 애초 여러 한계를 운명으로 하는 탓이다.
초판을 출간할 적에 동네서점과 일반서점, 두 작품을 어렵사리 골랐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이번 디자인은 당시 저자가 원했던 그림을 베이스로 하게 되어 폰트와 그 위치, 이를 잘 담아낼 종이에 대한 욕심 정도로 고민의 폭을 크게 좁힐 수 있었다.
신형철이라는 이름과 박서보라는 이름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팽팽한 균형감을 가질 수 있게 조화를 이루려면 디자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이 시급함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간만에 작업 일지를 폈다. “세련을 겪고 나면 심플함에 다다른다”라는 문장이 거기 적혀 있었다. 이 문장을 다시 읽으려 이번 리커버를 작업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문학을 향한 ‘정확한 사랑’이자 시대를 읽는 탁월한 문장, 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다섯번째 책이자 처음으로 선보이는 ‘시화(詩話)’임에 그 제목을 『인생의 역사』라 달았다. 저자 스스로 ‘거창한 제목’이라 말하지만, 그 머리에 ‘인생’과 ‘역사’가 나란한 까닭은 간명하다. 시를 이루는 행(行)과 연(聯),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일. 우리네 인생이, 삶들의 역사가 그러한 것처럼.

총 5부에 걸쳐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를 꼽아 실었다. 상고시가인 「공무도하가」부터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까지, 역사의 너비와 깊이를 한데 아우르는 시들이다. 시 한 편마다 하나의 인생이 담겼음에, 이를 풀어 ‘알자’ 하는 대신 다시 ‘겪자’ 하는 저자의 산문을 나란히 더했다. 여기에 부록으로 묶은 다섯 편의 글은 시의 안팎을 보다 자유로이 오가며 써낸 기록이다. 시를 함께 읽고자 함이나 그 독법을 가르치는 글은 아니다. 직접 겪은 삶을 시로 받아들이는 일, 그리하여 시를 통해 인생을 살아내는 이야기라 하겠다. 저자의 말대로 시를 읽는 일은 “아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일 터이므로.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聯)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7쪽)

* 『인생의 역사』 초판 한정으로 출고된 양장본은 현재 소진되어, 2쇄부터 무선본으로 출고되오니 도서 구입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저자

신형철

문학평론가.2005년계간『문학동네』에글을발표하면서비평활동을시작했다.『몰락의에티카』『느낌의공동체』『정확한사랑의실험』『슬픔을공부하는슬픔』을출간했다.2014년봄부터2022년여름까지조선대학교문예창작학과에재직했고,2022년가을부터서울대학교영어영문학과(비교문학협동과정)에재직중이다.관심사는예술의윤리적역량,윤리의비평적역량,비평의예술적역량이다.

목차

책머리에내가겪은시를엮으며……5

프롤로그조심,손으로새를쥐는마음에대하여……17
―베르톨트브레히트,「아침저녁으로읽기위하여」

1부고통의각
가장오래된인생의낯익음……31
―「공무도하가」
무죄한이들의고통에대하여……37
―『욥기』
언제나진실한것은오직고통뿐……45
―에밀리디킨슨의시두편
왜모든강간은두번일어날수있는가……53
―에이드리언리치,「강간」
아슬아슬하게아름다운,생……63
―최승자,「20년후에,지(芝)에게」

2부사랑의면
그대가잃을수밖에없는그것……75
―윌리엄셰익스피어,「소네트73」
연인들에게묻는다,우리의존재를……83
―라이너마리아릴케,「두이노의비가」
무정한신과사랑의발명……91
―이영광,「사랑의발명」
허공을허공으로돌려보내는사랑……99
―나희덕,「허공한줌」
착한사람이될필요없어요……107
―메리올리버,「기러기」

3부죽음의점
그러자나는자신이미워졌다……117
―김시습,「나는누구인가」
사람을죽이면안되는이유……125
―W.H.오든,「장례식블루스」
외로움이환해지는순간이있다……133
―황동규,「홀로움은환해진외로움이니」
유일한황제는아이스크림의황제……141
―월리스스티븐스,「아이스크림의황제」
운명이여,안녕……149
―한강,「서시」

4부역사의선
그런애국심말고다른것……161
―고대그리스의서정시두편
윤동주는‘최후의나’를향해갔다……169
―윤동주,「사랑스런추억」
그러나문학은기적적이다……177
―황지우,「나는너다44」
광화문에서밥딜런이부릅니다……185
―밥딜런,「시대는변하고있다」
아름다운석양의대통령을위하여……195
―신동엽,「산문시1」

5부인생의원
하나의절망을극복하기위한임의의다른절망……205
―이성복,「생에대한각서」
단한번의만남이남긴것……213
―레이먼드카버,「발사체」
절제여,나의아들,나의영감(靈感)이여……223
―김수영,「봄밤」
이나날들이아니라면어디에서살수있을까……231
―필립라킨,「나날들」
모두가사랑하고대부분오해하는……239
―로버트프로스트,「가지않은길」

부록반복의묘
오타쿠의덕……249
―어느‘윤상덕후’의고백
누구도완전히절망할수는없게만드는이상한노래……255
―코로나시대의사랑
인간임을위한행진곡……263
―<임을위한행진곡>의의미
실패한사랑의역사를헤치고……269
―최승자의90년대를생각하며
오디세우스와아브라함사이에서……289
―황동규의최근시

에필로그돌봄,조금먼저사는일에대하여……305
―박준,『우리가함께장마를볼수도있겠습니다』

본문에서인용한글과책……322

출판사 서평

신형철글쓰기의원형,‘시화’

저자가사랑한시를모으는일이하나,함께나눌이야기를덧붙이는일이하나.시화라함은곧인생을배우고인생을시로이루는글이기도하다.10대후반의어느날부터시를사랑했고20대처음으로사람들앞에내놓은연재역시이시화를흉내낸것이었다하니,이번책이야말로평론가이자작가신형철의글쓰기,그‘원형’이라하겠다.저자의말마따나시가인생의육성이라할적에,작가신형철의목소리에가장편히붙는곡이자몸에꼭맞는옷이바로시화인셈이다.
이번책에는저자가직접번역한아홉편의시를실었다.외국어로쓰인시를나의말우리의언어로옮긴다는것,그역시시를겪는또하나의방식일테다.어떤시가널리사랑받을때저자는그이유를이렇게읽어낸다.“나에게절실히필요한문장이있는데그게무엇인지는모른다.어느날어떤문장을읽고내가기다려온문장이바로이것임을깨닫는다.”그렇다면절실한곳에그필요를전하는것이야말로번역,그러니까‘옮김’의미덕이리라.그가데려다준곳에서만나게될이시들이곧우리가기다리는줄모른채기다려온,바로그시편들일것이다.

위대하다는시인들의시를읽으면서그들의답에놀라본적이별로없다.그답은너무소박하거나반대로너무거창했다.그러나누구도시인들만큼잘묻기는어렵다.나는그들로부터질문하는법을,그자세와열도와끈기를배운다.그것이시를읽는한가지이유다.인생은질문하는만큼만살아지기때문이다.(87쪽)

인생그자체의역사가여기에있다

5부에부록까지여섯장의제목을먼저모아둔다.고통의각,사랑의면,죽음의점,역사의선,인생의원,반복의묘.삶의키워드라할여섯테마에저마다꼭맞는틀을주었으니,‘격’을갖춤이라말할수도있겠다.
1부의제목이‘고통의각’인데에는의문의여지가없다.‘가장오래된고통’이라할「공무도하가」로시작하니말이다.이어서‘무죄한이들의고통에대하여’라일컬은성경의「욥기」,에밀리디킨슨과에이드리언리치,최승자로이어지는나머지세편의시까지통과하고나면저자가우리앞에놓은이인생의첫얼굴이‘고통’인연유를조금은알것도같다.고통이라는날카로운‘각’을겪어내는슬픔이있고,이를끝내온전히이해하지못하리란사실은부끄러운일이다.그러나저자가“일단이점을자인하는부끄러움에서부터시작할수밖에없으리라”말할때,불가능의벽이란‘진짜노력’의시작점일뿐이다.전작『슬픔을공부하는슬픔』에서부터우리가익히배워왔던바,타인의슬픔,타인의고통에대해“영원히알수없다면,영원히공부해야한다”.그러므로인생에대한이책,그첫화두는필연고통일수밖에없겠다.인생의공부가여기서출발하는까닭에.
2부‘사랑의면’에는셰익스피어의연가(戀歌)소네트와릴케의비가(悲歌)가나란히실렸다.이영광시인에게서배운「사랑의발명」,나희덕시인의「허공한줌」속부모의사랑,메리올리버의“당신이누구든,얼마나외롭든”나아가려는사랑……사랑이란응당인생을채우는너른면이면서그만큼다양한‘얼굴들’이기도하겠다.두편의글에서따로쓰인글을이렇게도나란히놓아본다.“사랑의관계속에서인간은누구도상대방에게신이될수없다.그저신의빈자리가될수있을뿐.”“신이없기때문에그대신한인간이다른한인간의곁에있을수밖에없다고,이세상의한인간은다른한인간을향한사랑을발명해낼책임이있다.”

나는인간이신없이종교적일수있는방법이무엇일지를생각하는무신론자인데,나에게그무엇보다종교적인사건은한사람이다른한사람의곁에있겠다고,그의곁을떠나지않겠다고결심하는일이다.내가생각하는무신론자는신이없다는증거를쥐고기뻐하는사람이아니라오히려염려하는사람이다.신이없기때문에그대신한인간이다른한인간의곁에있을수밖에없다고,이세상의한인간은다른한인간을향한사랑을발명해낼책임이있다고생각하는사람이다.나는신이아니라이생각을믿는다.(97쪽)

책의허리,3부에는‘죽음’을두었다.죽음이란인생의피할수없는질문이므로,그러나이것이끝이아니므로.생육신김시습에게서“살아남은자의슬픔”을볼때죽음곁에는삶이놓인다.W.H.오든이사랑하는이의죽음곁에두는것은사랑이다.황동규에게서남은자의외로움을홀로움으로환히밝히고,월리스스티븐스를통해인생의불완전함을가능성으로치환한다.죽음이라는점으로수렴하는대신여기서다시삶의읽기를시작해보는일.한강의「서시」가책의시집의맨앞이아닌끝에있는이유와이책의‘죽음’이한가운데있는이유는다르지않을것이다.죽음이라는한점,인생의방점이기도하니까.
책의제목부터인생에이어‘역사’를두었으니,4부의제목역시‘역사의선’이다.문학을읽는일이슬픔을공부하는일인것은생이나하나만의것이아니라무수한삶과삶들의사이에있는까닭이다.고대그리스서정시에서읽는국가와‘나’의관계,윤동주가끝내나아간‘최후’의자리,1980년대잿더미속에서피워낸황동규의기적,밥딜런이노래한변화하는시대,신동엽이꿈꿨던‘아름다운석양의나라’.책의제목부터‘인생의역사’라하였으니큰역사에개인의인생이일방적으로편입되어서는안되리라.어쩌면시를읽는일은곧“‘언제나’우리각자가사랑하는사람을계속사랑할수있는세상을,그러니까평화를함께지켜내는일일것이다.”
그리하여5부는‘인생의원’이다.이성복,레이먼드카버,김수영,필립라킨,로버트프로스트.이름만으로도불멸의시인들이니,끝나지않을원에더없이걸맞은셈이다.“365일내내음미해도좋을것이다.우리에게매년주어지는365개의나날들,그것들외에또어디에서살아갈수있단말인가.”인생이라는원을두고회전목마가될지굴레가될지는우리의몫임에,‘인생’에대한이다섯편의시에서저자가발견하는것은감탄과감사혹은은연한빛이다.그러므로넘어가는책장,본문의끝무렵에아쉬워하는우리가이문장을만날때,우리는더없이안도하게도된다.“다행이지않은가.인생은다시살수없지만,책은다시읽을수있다는것은.”
부록에는시화를대신해보다자유로운형식으로다채로이써간글들을한데묶었다.단연한편을소개하자면‘윤상덕후’를자처하는저자가오타쿠의덕(德)을말하는순간.인간신형철의목소리를듣는새로운기쁨이될것이다.‘코로나시대의사랑’에서는예리하게사회를읽어내는특유의시각을,<임을위한행진곡>에서는노래와시대에실은진중한음성을,최승자와황동규의시를읽는비평에서는우리가사랑하는‘평론가’신형철의반가운얼굴을마주할수있을것이다.
본문의앞뒤를감싼프롤로그와에필로그소개도빠질수없겠다.그제목을나란히놓으면이렇다.‘조심,손으로새를쥐는마음에대하여’그리고‘돌봄,조금먼저사는일에대하여’.다소벗어난독법이려니하면서도두제목의‘대하여’를지나치지못하겠다.조심과돌봄,인생을‘대하는’저자의작심이기도할테니까.그세심과살핌이야말로우리가시를읽고인생을대함에가장필요한자세일것이므로.

돌봄이란무엇인가.몸이불편한사람을돌본다는것은그가걷게될길의돌들을골라내는일이고,마음이불편한사람을돌본다는것은그를아프게할어떤말과행동을걸러내는일이다.돌보는사람은언제나조금미리사는사람이다.상대방의미래를내가먼저한번살고그것을당신과함께한번더사는일.(317쪽)

내가겪은시를엮는일

책을묶으며한국현대미술사를대표하는단색화의대가박서보화백의작품으로표지의격을더했다.시화,곧삶위에선을긋고겪음으로면을이루는일.‘인생’과‘역사’가나란한제목에다시한번방점을찍어둔다.책머리에메리올리버를빌려“시는직업이아니라삶의방식”이라했고,알렉상드르졸리앵을빌려“인간이라는직업”을가진모두에게이책을바쳤다.과연그럴것이다.우리의직업은시를넘어인간,그과업은씀을담은인생.“우리는어떤일을겪으면서,알던시도다시겪는다.”겪어야만쓸수있는글이있고,읽음으로경험할수있는삶도있을것이다.시라는‘빈바구니’에우리의삶을담음으로써보다넓고보다깊은무언가를얻게하는바로그일이시화의사명아니겠나.인생이라는화두를던지는물음이면서각자의해답을찾아가는실마리가되리라는필시의믿음으로,이책『인생의역사』를권한다.

내가조금은단호하게말할수있는것중하나는시를읽는일에는이론의넓이보다경험의깊이가중요하다는사실이다.우리는어떤일을겪으면서,알던시도다시겪는다.그랬던시들중일부를여기모을수있어서감사하다.이책의가장심오한페이지들에는내문장이아니라시만적혀있을것이다.동서고금에서산발적으로쓰인,인생그자체의역사가여기에있다.(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