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인이평생을사랑해온열여덟명의예술가
이책에서우리는열여덟명의예술가에게편지를썼습니다.
처음부터작정한건아니었지만쓰다보니
우리가불러낸예술가들이죄다죽은사람이었지요.(박연준,159쪽)
이책에서두시인은이미세상을떠난열여덟명의예술가에게편지를씁니다.처음부터죽은이들을불러낼작정은아니었다는시인의말에도불구하고어쩌면이들이편지를쓰기로마음먹었을때부터그수신자가지금이곳에없는이가되리라는것은정해져있던일인지도모릅니다.편지를쓴다는행위,그자체가지금여기에부재하는상대방을호명함으로써지금여기에서상대방의온기를느끼는것,종국에는지금여기에그를존재하게하는것일테니까요.
그렇게두시인은자신이평생을애정하고존경해온열여덟명의예술가들을불러들입니다.그이름들을여기서다시한번호명해봅니다.에릭사티,프랑수아즈사강,바츨라프니진스키,김소월,존버거,버지니아울프,빈센트반고흐,알바알토,프란츠카프카,페르난두페소아,실비아플라스,권진규,나혜석,로맹가리,배호,장국영,다자이오사무,그리고박용래까지.두시인이이들에게서발견하는모습들도그들의면면만큼이나다채롭습니다.존버거,김소월같은이들에게는마치“나란히앉아대화를나누는”마음으로애정어린존경심을고백하다가도,실비아플라스,니진스키와같이“제날개가꺾이는것도모른채무용한아름다움을좇던”이들의삶을돌아볼땐말그대로가슴이찢길듯한아픔에괴로워하기도합니다.애정의방식도다양하죠.평생존경해오던박용래시인을울보라고놀리는가하면,지금시인보다훨씬젊은나이에요절한가수배호를짐짓형님이라부르며마음속의외로움을넌지시드러내기도합니다.
열여덟명의예술가들은두시인의부름에다가와곁을내어줍니다.그와함께사라진이들의초상이나타나지요.우리는이초상을통해반대로그것을그리는두시인의모습을읽어낼수도있습니다.예술가들에게자신의내밀한아픔과외로움,고독과즐거움을고백하는두시인의편지를읽고있노라면마치친밀한두친구사이의대화를몰래엿듣고있는것같습니다.에릭사티에게바치는“우리는고독속에서온전한사람들이었”다는고백을통해장석주시인이‘나’와‘당신’이서로독립적으로존재하지만동시에어떤동류의식을통해결속되어있음을표현할때,또박연준시인이존버거에게“당신이써놓은이야기에둘러싸여시간을보내는걸좋아”한다고고백할때,우리는편지를쓴자와그것을받는자가하나의공간속에서서로뒤섞이는것을목격합니다.
그러니결코답장이오지못할편지를썼던두시인에게어쩌면애초에답장은필요없던것일지도모르겠습니다.그들의답신은어쩌면두시인이보낸편지에이미와있던것일지도요.
-계속태어나는예술가들
아시지요,소월.태어나면서부터당신과같은부류에속하는이들이있어요.계속태어나요.(박연준,39쪽)
두시인의편지를읽다보면자연스레마음속으로여기없는이에게편지를쓰고있는스스로를발견하게됩니다.어쩌면우리는이렇게떠나간이를추억하며이들을‘계속태어나게’하는것은아닐까생각합니다.
책의제목‘계속태어나는당신에게’는박연준시인이김소월시인에게쓴편지의한구절에서착안했습니다.이세상을떠난이들은그들을추억하는이들의마음속에서다시태어납니다.그렇다면다시태어나는이들중에서도유독끊임없이태어나는이는누구보다도예술가일지도모릅니다.그들이세상에남겨놓은그림,노래,책,건축물,영화,시로그들은다시태어나니까요.그뿐인가요.그들을추억하고,그들의작품을감상하고,그것에영감을받아새로운것을창작해내는이들의몸짓속에서도그들은다시태어납니다.그렇게한예술가는수많은예술가들로다시태어납니다.김소월이라는한명의시인은그의시를읽으며자란수많은김소월들로다시태어납니다.소월에게당신시처럼슬픔이가득한시만을써왔다며스스로를‘소월클럽’의정식회원이라고밝힌박연준시인처럼말이지요.
-나누고마주보며
책의독특한형태에대해서도이야기하지않을수없겠습니다.『우리는서로조심하라고말하며걸었다』는두사람이각각1부와2부를나누어썼고,『내아침인사대신읽어보오』는각자한면씩을맡아마주보며썼다면,이번에는서로반대편에서시작하여가운데에서만나는모양새를택했습니다.어쩌면나눔과마주봄이동시에있는구성이라할수있겠지요.
이런형태를택한것은두시인의편지가따로또같이읽히기를바라는마음에서비롯되었습니다.“취향도생각도열렬히다른”두시인은실제로같은예술가를바라보면서도그들에게서사뭇다른면모를발견합니다.그다양함이곧한예술가의다채로운면모이자그들에대한각시인의애정어린시선의증거이겠지요.이를제대로읽기위해서는각각의편지가각시인의고유한자장안에놓여야한다는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두시인의편지는또한같이읽었을때더욱아름다워지는듯합니다.장석주시인의섬세한사유는박연준시인의따뜻한시선과만나온전해집니다.그러니,두시인의글은각자의길을가는도중에도언제나서로를바라보고있는셈이지요.이러한모습을드러내고자책의구성역시서로에게서가장먼곳에서시작하여가운데에서만나도록만들었습니다.그러한도정내내두글은서로를향하고있겠지요.
두시인의마지막글은후기를대신한,이들이서로에게보내는편지입니다.어쩌면편지야말로사랑에대한가장아름답고정확한표현방식이아닐까,아니편지자체가사랑에대한한은유가아닐까하는생각이듭니다.죽어도죽지않고도처에서새로태어나는예술가들에게,또서로에게보낸두시인의연서를,소중한누군가에게편지를쓰는마음으로읽어보셨으면좋겠습니다.
우리는한해반에걸쳐편지를썼습니다.각자의방에서예술가에게열여덟통의편지를다쓰고나왔을때우리내면의아이는더성장하고,폐소공포증은나아졌을겁니다.(…)당신과내가쓴편지들이야만의세상에선한영향력이라는작은파문을만들기를바랍니다.한해중어둠이가장긴동지의깊은곳모란과작약이꽃망울을피우려는기척속에서당신에게편지를쓰고싶은순간이지나갑니다.(장석주,156~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