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 만든 사람 - 詩란 2

비로 만든 사람 - 詩란 2

$16.00
Description
● 편집자의 책소개

아낌없이 시가 움트는 자리, 詩란
각기 다른 시의 면면이 나란하게 이어져나갈
시의 흰 건반 시의 검은 건반, 詩란
시를 이야기하는 난다의 새로운 시리즈!

◎ ‘詩란’을 시작하며

특별히 ‘시’를 콕 집어서 화제로 삼은 자리는 맞다. 그러나 그다음 ‘란’이라 할 적에 이는 거창하게 지은 집이나 정리정돈을 완전하게 마친 방을 위시하는 건 아니다. ‘詩란’은 모서리거나 귀퉁이거나 가장자리와 같은 구석의 말을 사랑하는 이들의 면이다. 발음 끝에 절로 따라붙는 물음표처럼 미완으로 발산되고 자유로 수렴된다. 어쩌다 시의 ‘알’로도 읽히게 된 건 시치미가 그러하듯 시가 우연히 낳은 소소한 재미일 것이다.

시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아니나 그 품을 가두려는 정의 또한 아니다. 시론보단 가벼이, 아포리즘보단 헐거이, 시산문보단 느슨히, 그러므로 닫기보다 열기에 관심을 둔 글들이다. 시라는 세계, 그 한 세계가 하나의 알이라면 깨어서 여는 것이 도끼일 수도, 주문일 수도, 날갯짓일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줄탁동기(啐啄同機)이니, 쓰는 이와 읽는 이에게 동시로만 열릴 세계임은 틀림없으리라.
저자

신용목

1974년경남거창출생으로,고려대학교대학원국문과등에서현대문학을공부했다.2000년작가세계신인상에「성내동옷수선집유리문안쪽」외4편이당선되어등단하였다.시집으로는『그바람을다걸어야한다』,『바람의백만번째어금니』,『아무날의도시』,『누군가가누군가를부르면내가돌아보았다』,『나의끝거창』등이있다.시집『백만번째어금니』로제2회시작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장장난감―시는어떻게‘있는’것을‘다시있게’하는가?···7
2장술―망각속으로던지는시의그물은무엇으로짜는가?···19
3장달―시가달이라는밤의마개를열고어둠을짜내는방법은무엇인가?···33
4장비―시간을멈추기위해시가들고있는일시정지표지판은어디서켜지는가?···49
5장몸―몸이마음의포로라면,시는사랑의전쟁터인가?···67
6장가을―다섯번째계절을말하기위해시는겨울다음에있는가,여름다음에있는가?···79
7장비밀―어떤비밀을잠그고있어서시의침묵은천둥보다더큰가?···93
8장고독―모든이름이고독에입혀놓은무대의상이라면시는어떻게그단추를푸는가?···97
9장비애―자신을속이지않고알수있는유일한진실을시는어떻게드러내는가?···111
10장혼돈―삶의질서가죽음으로부터온다면,시의천사는악마의교사인가?···121
11장미래―‘말해진’곳으로부터도망가기위해시는미래를어떻게사용하는가?···135
12장생활―시가죽음을포기할수는있지만,생활을포기할수없는이유는무엇인가?···151
13장환상―시가있어서허락되는것과시가있어서포기되는것은무엇인가?···163
14장말―언어가잠든공휴일에시의여객선들은어디에떠있는가?···175
15장자낙스―마음의재난이만든폐허에시의구조대는무엇을타고도착하는가?···189
16장삐삐롱스타킹―아무도듣지않는말을소용없이외칠때,시의목소리는어디에가닿는가?···203
17장허수경―세상의모든사랑이시인의몸속으로침몰하는순간은언제인가?···217
부록N의인터뷰···233
시인의말···253

출판사 서평

아낌없이시가움트는자리,詩란
각기다른시의면면이나란하게이어져나갈
시의흰건반시의검은건반,詩란
시를이야기하는난다의새로운시리즈!

‘詩란’을시작하며

특별히‘시’를콕집어서화제로삼은자리는맞다.그러나그다음‘란’이라할적에이는거창하게지은집이나정리정돈을완전하게마친방을위시하는건아니다.‘詩란’은모서리거나귀퉁이거나가장자리와같은구석의말을사랑하는이들의면이다.발음끝에절로따라붙는물음표처럼미완으로발산되고자유로수렴된다.어쩌다시의‘알’로도읽히게된건시치미가그러하듯시가우연히낳은소소한재미일것이다.

시란무엇일까,그런질문을염두에두지않은것도아니나그품을가두려는정의또한아니다.시론보단가벼이,아포리즘보단헐거이,시산문보단느슨히,그러므로닫기보다열기에관심을둔글들이다.시라는세계,그한세계가하나의알이라면깨어서여는것이도끼일수도,주문일수도,날갯짓일수도있겠다.아무려나줄탁동기(?啄同機)이니,쓰는이와읽는이에게동시로만열릴세계임은틀림없으리라.

슬픔은물얼룩처럼멀리,『비로만든사람』

“너를안으면꿈의바닥까지잠길것이다.
춤을춘다면꿈의끝까지흘러갈것이다.
너와잠들면,나는익사체로건져질것이다.
드디어슬픔은물얼룩처럼나를남긴채멀리사라질것이다.”

1.
장난감,술,비,가을,비밀,미래,자낙스,삐삐롱스타킹……시인은이글에서열일곱가지의사물과관념들을소환한다.그가이들을통해이야기하는것은물론,오로지,‘시’.각장에부제로따라붙은열일곱개의질문역시모두시를주어로하고있거나시의어떤특성에대해서묻는다(“시는……”“시의침묵은……”“시의그물은……”“시의천사는……”).결국모든질문은,그리고이질문들에뒤따라오는모든문장은시라는정체가모호한,어둠속에서오직윤곽으로만감지되는존재를밝히려는노력인셈이다.

허나시를향하는시인의말은결코시에대한이론이나방법론으로귀결되지않는다.시인에게시는생활과동떨어진채홀로고고한삶을영위하는존재가아니기때문이다.되레시인은시라는프리즘을통해삶을,사랑을,슬픔을이야기한다.시가되든시가되지않든우리가하는모든말이결국삶을향하고있다는것을이야기한다.

드디어시간이흐르고,나는시가삶을구원한다는말을믿지않게되었다.시를쓰지않아도삶을살았지만,삶을살지않는한시를쓸수는없을것이기에.오히려삶이시를구원한다.(「혼돈」,132쪽)

2.
삶에대해묻지않는자는죽은자이고,사랑에대해묻지않는자는살인자이다.모든삶은사랑을통해서만가능해지기때문이다.죽거나죽이기때문이다.(「고독」,100쪽)

‘삶을살지않는한시를쓸수없다.그러므로삶이시를구원한다.’그렇게시를이야기하는시인의언어는삶을향해간다.그러나그여정속에서시인은결코시를벗어나지않을것이다.시가삶과함께하지않는다면그것은단지화려하지만공허한독백에불과할것이기때문이다.하나의시가우리와진정으로하나가되는과정은우리가그시를잠시내려놓았을때,지속되는삶을통해그시가우리에게준시간이무엇이었는지되묻는그순간(154~155쪽)에완성되기때문이다.

시인은시가보여주는아름다움은삶과의접촉을통해서이뤄진다고말한다.이때시인이말하는삶은결코화려하지도이상화되지도않은것,단지매일의하루하루가켜켜이쌓이며그윤곽이드러나는‘일상’이다.이‘일상’속에는하루하루의만남이있고이별이있으며,사랑이있고죽음이있다.시인은말한다.“사랑하는이의죽음을겪고도지속되어야하고지속될수밖에없는일상이라면,일상속에는우리가알수없는어떤숭고함이들어있다고믿는편”(「환상」,164쪽)이라고.

3.
열일곱개의장과한개의부록으로나뉘는이책을이루는것은그길이도서로상이한여러개의단상이다.시인은후기에서한번썼던글을“그냥가져오지않고토막토막잘라왔다”고고백한다.한장을이루는여러개의단상은기승전결의형태를띠지도않으며선형적이고직관적인논리구조의지배를받지도않는다(물론열여덟개의서로다른장들사이의사정역시이와다르지않다).이렇게사지의이곳저곳이절단된언어를읽어내려가며우리는있던것이없어진자리를더듬는다.없는것이있었던순간을떠올린다.시인의마음이가닿았던지점을우리는환상통을겪는환자처럼통렬하게느낀다.불구의언어라고해야할까.그런데한사람의몸과마음이느낀것을전해야하는언어는탄생하는순간그몸과마음에서벗어남으로써그근본에있어서부터불구였던것은아닐까.시인은태생부터불구였기에불가능에머물렀던언어를외면하지않고그고통스러운이별의순간,언어가찢어지며도려내어지는순간을직시한다.그렇게“영혼이없어서영혼을생각하게하는요리”처럼시를이야기하는곳곳이잘린그의언어를통해우리는말해진것너머에서말해지지않은것,말해질수없는것의존재를느낀다.